<1999, 면회> 영화 스틸

▲ <1999, 면회> 영화 스틸 ⓒ 광화문 시네마, 인디스토리


영화 <1999, 면회>는 <독>과 <환상극장-천만>을 연출했던 김태곤 감독의 신작이다. 전작들이 보여준 공포의 분위기를 떠올리며 지레짐작으로 1999년에 교도소로 면회를 가는 영화라고 판단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런 기대는 살포시 접으시길. <1999, 면회>는 1999년의 연말 어느 날에 대학교에 입학한 친구와 재수를 하는 친구가 1년 만에 만나 강원도 철원에 군 복무 중인 친구에게 면회를 떠난다는 내용이다.

김태곤 감독이 미래에 대한 희망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20살이라는 기억, 그리고 1999년이란 시간으로 돌아간 이유가 궁금했다. 2013년 2월의 어느 날, 안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태곤 감독은 영화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트위터를 하시더라. 아이디가 특이하던데?
"트위터가 영화 홍보에 도움이 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홍보를 열심히 하려고 노력한다. 트위터 계정을 만들던 때 <바스터즈:거친 녀석들>이 떠올라서 트위터 아이디를 '태곤티노(@Taegontino)'로 결정했다. 원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팬이다."

- 개봉 이전이지만 시네토크나 시사회 등을 통해 관객과 만나고 있다. 반응은 어떤가?
"개봉이 결정되기 전까지는 영화제 등에서 관객과 만났다, 개봉이 다가오면서 일반 개봉관의 관객 반응은 어떨까 궁금했다. 다행히 관객들이 이전에 만든 작품보다 재미있게 보시는 것 같고, 공감도 많이 표시한다. 영화가 마음에 드셨는지 벌써 몇 번씩이나 감상한 분들도 있다."

- <1999, 면회>는 이전에 작업하신 <독>과 <환상극장-천만>과 비교해서 영화의 색채가 굉장히 달라졌다.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1999, 면회>는 이제 겨우 두 번째 장편영화다. 아직은 나는 이런 색깔이고, 앞으로 이런 영화만 만들겠다는 식의 마음가짐은 안 먹는다. 무엇보다 이야기가 중심이라 생각하고, 그 이야기에 어울리는 옷이 무엇일까 고민한다."

 영화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김태곤 감독

영화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김태곤 감독 ⓒ 이학후


12명이 12일간, 1000만 원으로 만든 영화

- <1999, 면회>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1999, 면회>를 처음 구상한 것은 대학교 때다. 1999년에 대학교에 입학했는데, 당시는 IMF의 여파가 남아서인지 주변 분위기가 우울했다. 또한, 어른이 된 거 같은데 막상 맞닥뜨린 벽은 버거웠다. 나는 이제 어른이라 생각했지만, 세상에서 본다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며,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풋내기였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1999년이다. 언젠가는 이때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우연히 술자리에서 친구들에게 이야기해주니 재미있다며 영화로 만들자고 부추겼다. 자신이 좀 없었는데 친구들이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나도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면 이 이야기를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나리오로 완성하는데 하루밖에 안 걸렸다. 영화는 사실이 20% 정도, 허구가 80% 정도의 비율로 구성되었다. 극 중 인물인 승준과 민욱은 실제 내 친구인 승준과 민욱에게서 이름과 모습 등을 가져왔다. 내 친구 승준과 민욱이 <1999, 면회>를 본 후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 도입부에 나오는 고등학교 성가대 동영상을 넣은 이유는?
"부산에서 서울로 전학을 왔던 내가 승준, 민욱과 친해질 수 있었던 계기가 성가대 활동이다. 그리고 함께 성가대회에 나가서 극적으로 1등을 했던 추억은 지금까지도 강렬하게 남아있다. <1999, 면회>가 그 때의 세 친구를 다룬 영화니까 당시 성가 대회를 녹화한 영상을 넣으면 관객들이 영화 속 세 친구를 진짜 친구 사이로 이입하는데 좋은 장치가 될 거라 여겨졌다. 다행히 민욱이가 녹화 영상을 갖고 있었다."

- 배우까지 합쳐서 총 12명의 스탭이 12일간 1000만 원으로 촬영했다고 들었다.
"친구들이 이걸 꼭 영화로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1000만 원을 모아주었다. 이 중에서 장비에 600만 원이 들었고, 나머지 400만 원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예산이 부족하기에 잠은 노인회관 2층에서 다 같이 잤고, 밥은 해먹었다. 스탭들도 자신의 전문 분야를 벗어난 업무까지 열심히 해주었다. 많은 어려움이 존재했지만, 누구 한 사람 투정 한 번 않는 게 감독으로서 무척 고마웠다.

군부대 주위에서 촬영하다 보니 제재가 심했다. 군의 협조를 받지 못했다. 그래서 몰래 찍기도 하고, 군부대와 비슷한 느낌이 드는 장소에서 찍는 등 즉흥적으로 결정한 부분도 많다. 하지만 그동안 만든 9편의 장, 단편영화 중에 가장 즐겁게 작업했다."

 영화 <1999, 면회> 스틸

영화 <1999, 면회> 스틸 ⓒ 광화문 시네마, 인디스토리


군대 이야기 몰라도, 20대 성장통으로 이해

- 배우에 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
"세 인물이 정말 친구처럼 보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서 동갑내기의 배우를 찾았다. 영화를 찍기 전에 시간이 촉박해서 주위 분들의 추천을 많이 받았다. 세 명의 배우가 결정된 다음에는 그들과 함께 술도 자주 마시고, 합숙도 했다. 그러면서 친해졌다.

김창환씨는 다양한 연기 경력이 있지만 안재홍씨는 영화 출연작이 적었다. 연극에서 활동한 심희섭씨는 첫 영화 연기였다. 이런 부분들을 고려해서 배우가 편하게 감정선을 잡도록 영화를 시간 순서대로 찍으려 했다. 그러나 상황이 그렇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 황미영씨는 줄곧 연극에서 활동해서 영화가 다소 낯설었을 텐데 멋진 연기를 보여주셨다."

- 보희(황미영 분)가 빈 맥주병을 손으로 쳐서 맥주 박스에 넣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시나리오부터 있었던 장면이다. 내 기억 속엔 가능하다고 남아있는데, 현장에선 가능 여부에 대해 갑론을박을 벌였다. 황미영씨가 몇 번 실패했지만 끝내 성공했다. 현장에서 박수가 터졌다. 현장에서 낸 아이디어를 영화에 반영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리허설을 하는데 안재홍씨가 자기 친구 중에 양반다리가 안 되는 친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재미있기에 바로 추가시켰다."

- 영화 속에 그 시절의 노래가 많이 담겨있다. 서울 다방에서 보희와 미연(김꽃비 분)이 함께 부르던 에코의 '행복한 나를'을 고른 배경은?
"그 시절 나는 공부를 하건, 다른 일을 하건 음악과 가깝게 지냈다. 노래방도 자주 갔다. 그런 잔상들이 영화에 녹아든 것 같다. 인물들에게 위로를 해줘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서울 다방에서 보희와 미연이 노래 부르는 장면을 넣었다. 닭살 돋는다는 의견도 있었다. 난 춤추는 장면까지 넣고 싶었지만, 그것만큼은 결사적으로 만류하기에 포기했다. 에코의 '행복한 나를'은 당시 여자들이 가장 많이 부르던 노래였고, 나도 좋아했던 곡이다. 그리고 가사가 영화 분위기와 잘 어울려서 선곡했다."

- 얼마 전에 네덜란드의 '로테르담 영화제'에 다녀오셨다. 거기선 <1999, 면회>를 어떻게 받아들이던가?
"사실 로테르담에 가기 전엔 외국 관객은 우리나라의 군대 문화나 IMF 같은 시대상을 몰라 <1999, 면회>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전부는 아니더라. 그분들은 자연스럽게 20대 청춘의 성장통으로 받아들이셨다. 어느 외국 관객은 20대면 어느 나라 사람들이나 비슷할 거라고 말했다. 관객과의 대화에선 제목에 관한 질문이나 군대 문화에 대한 질문 등을 많이 받았다. 또, 한국 군대의 월급이 정말 그 금액이 맞냐는 질문도 기억난다."

- 차기작으로 알려진 <족구왕>에 대해 알려 달라.
"영상원 전문사 동기들이 모여 우리가 꼭 만들고 싶은 영화는 우리 힘으로 하자는 마음으로 설립한 회사가 '광화문시네마'다. 첫 작품으로 <1999, 면회>를 만들었고, 두 번째 작품이 <족구왕>이다. 제목처럼 복학생이 대학교에서 족구하는 내용으로, 요즘 대학교가 취업을 위한 학원 같은 분위기가 팽배하면서 낭만이 사라졌다는 점에 착안했다. 족구를 좋아하는 복학생이 그런 분위기를 바꾼다는 내용으로 가려 한다.

나는 각본 및 제작에 참여하고, 연출은 <1999, 면회>에서 미술감독을 했던 우문기 감독이 맡을 예정이다. 우문기 감독은 단편 영화 <이공계소년>에서 좋은 감성과 아름다운 영상을 보여준 전력이 있는 뛰어난 인재다. <1999, 면회>를 극장에 보러 가시면 엔딩크레딧 후에 <족구왕>의 예고편이 나오니 끝까지 기다렸다가 꼭 보셨으면 한다."


1999, 면회 김태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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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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