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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60시대의 '육법당(陸法黨)', 그런 생각이 나는데요, 조금 박 당선인이 시야를 넓혔으면 좋겠다"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지낸 인명진 목사가 12일 SBS라디오 '서두원의 시사초점'에 출연해 한 말이다. 임 목사가 말한 육법당이란 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 시절 육사 출신과 서울대 법대 출신을 고위공직자에 임명하자 나온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인사스타일 역시 군출신과 법조계 출신이 많다. 단적인 예로 부동산 투기와 두 아들 병역면제 논란으로 박근혜 정부 초대 국무총리에서 낙마한 김용준 인수위원장은 서울대 법대를 나와 대법관-헌법재판소장을 지냈다. 정홍원 국무총리 내정자 역시 검사 출신이다.

그리고 청와대 참모진도 비슷하다. 매파로 불리는 육군참모총장과 국방장관을 지낸 김장수 새누리당 의원은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 장관급으로 격상된 경호실장에는 박흥렬 전 육군참모총장(64)이 각각 내정됐다.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은 육사 27기, 박흥렬 경호실장은 28기다.

박 당선인이 법조인들을 중용하는 이유가 "법과 원칙"을 중요하게 여기때문이라고 해명하지만 "조금 박 당선인이 시야를 넓혔으면 좋겠다"며 우리 사회에는 육사와 법조인만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시민 사회가 얼마나 커졌나. 그쪽 지도자들도 있고 문화예술 지도자들도 있다"는 인명진 목사 충고를 새겨야 한다.

특히 15년 동안 차관급이었던 경호실장을 장관급으로 격상한 것을 두고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역대 대통령 경호는 이승만 전 대통령까지는 경찰이 맡았다가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3년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대통령 경호실을 창설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1대 경호실장은 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홍종철 육군9사단 포병 부사령관(63.12∼64.5)이었다. 2대는 서울대 상대 출신으로 미국 육군보병학교 고등군사반 출신인 박종규씨였다. 박 전 경호실장은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으로 물러났다. 박 전 실장에 이어 역대 경호실장 중 가장 막강한 실력자였던 차지철씨가 경호실장을 맡았다. 차 전 경호실장은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인 김재규에게 박정희 당시 대통령과 함께 암살 당했다.

전두환 역시 자신과 함께 12·12군사반란을 일으킨 육사 16기인 장세동을 경호실장에 임명했다. 장세동(5대)은 81년 7월부터 85년 2월까지 경호실장을 지냈다. 장세동 후임인 안현태(85.2∼88.2)씨 역시 육사 17기다. 노태우 전 대통령도 육사 17기 이현우(7대, 88.2∼92.10), 육사 19기 최석림(8대, 92.10∼93.2)씨를 경호실장에 임명했다.

이처럼 1대부터 8대까지 모두 군 출신이 대통령 경호실장을 지냈다. 군 출신 경호실장 맥을 끊은 것은 정부 이름을 '문민정부'라고 한 김영삼 전 대통령인 임명한 9대 박상범 경호실장이다. 박 실장은 공채 경호요원이었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은 육사 17기으로 50사단장을 지낸 김광석씨를 10대 경호실장에 임명해 다시 군 출신으로 회귀시켰다.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육사 24기인 안주섭 전 35사단장을 11대 경호실장에 임명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ROTC1기 출신으로 경찰청장을 지낸 김세옥씨를 경호실장으로 임명했고, 김 실장 후임으로 경호실 출신인 염상국씨를 경호실장에 임명했다. 염 실장은 경호본부장, 경호처장을 지내 내부승진을 한 셈이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도 다시 군 출신으로 회귀한다. 지난해 '내곡동사저' 문제로 물러난 김인종 전 경호처장은 육사 24기로 육군 2군 사령관을 지냈다. 김 전 경호처장이 군 출신이지만 이 대통령은 아예 정부조직개편을 하면서 경호실을 대통령실 소속기관 기구로 축소시켜 '경호처'로 만들어 대통령 경호만을 전담하게 했다.

박 당선인은 경호실장을 장관급으로 격상시켰을 뿐만 아니라 육군참모총장 출신으로 대통령 경호실장에 내정했다. 3공,5공으로 돌아갔다는 비판이 제기된 이유다. 그런데 과연 군출신이 대통령 경호를 잘할까? 우리나라 경호 역사에서 공교롭게도 군 출신이 경호실장을 지낼 때, 대통령 위해와 암살이 일어났다.

2대 경호실장인 박종규 때인 1974년 8월 15일 문세광은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했다. 박 전 대통령은 무사했지만, 부인 육영수씨가 피격 당해 숨졌다. 당시 동영상을 보면 육영수 여사를 보호하는 경호원은 아무도 없었다. 문세광 다리를 걸어 넘어뜨린 이도 경호원이 아니라 광복절 기념식에 참석했던 시민들이었다. 경호원은 대통령만 아니라 모든 경호대상을 온몸으로 막아야 한다. 하지만 경호원 누구 하나 육 여사를 보호하지 못했고, 결국 육 여사는 운명을 달리했다. 명백한 경호 실패였다.

박정희 대통령 암살 역시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차지철이 있었지만 그 역시 살신성인해 대통령을 보호하지 못했다. 1983년 10월 9일 북한 인민무력부 정찰국이 저지른 버마 아웅산 묘역 테러도 전두환 당시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것이다.

당시 경호실장은 '의리의 사나이' 장세동이었다. 대통령은 보호했지만 서석준 부총리와 이범석 외무부 장관, 김동휘 상공부 장관 등 각료와 수행원 17명이 희생당했다. 전두환 대통령은 에정시간보다 30분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화를 면했다. 시간이 전 대통령을 살린 것이지, 경호를 잘해 살린 것이 아니었다. 명백한 경호 실패였다.

이처럼 군 출신이라고 무조건 대통령 경호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경찰 경호가 더 낫다는 평가도 있다. 무엇보다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4성장군이 대통령 경호실장을 맡음으로써 군사정권에서 무소불위를 권력을 행사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는 노파심까지 나온다. 시간이 자꾸만 거꾸로 흐르는 듯하다.


태그:#육법당, #경호실장, #군출신,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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