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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할 수 없는 書籍(서적)

가까이 할 수 없는 서적이 있다
이것은 먼 바다를 건너온
용이하게 찾아갈 수 없는 나라에서 온 것이다
주변없는 사람이 만져서는 아니될 책
만지면은 죽어버릴 듯 말 듯 되는 책
가리포루니아라는 곳에서 온 것만은
확실하지만 누가 지은 것인 줄도 모르는
제이차대전 이후의
긴긴 역사를 갖춘 것 같은
이 엄연한 책이
지금 바람 속에 휘날리고 있다
어린 동생들과의 잡담도 마치고
오늘도 어제와 같이 괴로운 잠을
이루울 준비를 해야 할 이 시간에
괴로움도 모르고
나는 이 책을 멀리 보고 있다
그저 멀리 보고 있는 듯한 것이 타당한 것이므로
나는 괴롭다
오오 그와 같이 이 서적은 있다
그 책장은 번쩍이고
연해 나는 괴로움으로 어찌할 수 없이
이를 깨물고 있네!
가까이 할 수 없는 서적이여
가까이 할 수 없는 서적이여.
(1947)
수영은 영어에 능통했습니다. 1941년에 21세의 나이로 선린상업학교를 졸업할 때도 영어는 상업 미술, 주산 등과 함께 수영이 우수한 성적을 거둔 과목이었지요. 광복 직후, 동경 유학 동기인 이종구와 함께 서울 성북중학교 자리에 영어 학원을 연 것도 그런 영어 실력 덕분이었습니다. 영어 학원은 6, 7개월 동안 이어졌습니다. 돈도 제법 벌어들였지요. 그때 수영이 쓴 교재는 괴테의 <베르테르의 슬픔> 영역본이었습니다. 수영이 갖고 있던 영어 실력을 대강은 짐작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1946년 4월, 수영은 연희 전문(연세대학교의 전신) 영문과에 편입합니다. 영어나 영문학에 대한 공부를 좀 더 본격적으로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겠지요. 물론 학적은 그리 오래 유지하지는 않습니다. 3, 4개월 다니다가 그만 두어버렸으니까요. 또 앞('공자의 생활난' 편)에서 소개해드린 것처럼, 수영은 이 해에 미 군정의 경제협력위원회(E.C.A) 통역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통역이란 게, 아무리 어지럽고 어리숙한 세상일지라도, 어지간한 언어 실력이 뒷받침되어 있지 없으면 쉽게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이런 점들을 통해 수영이 영어에 대해 가지고 있던 관심의 크기나 능력을 능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이 시는 1947년에 쓰였습니다. 그 전 해인 1946년 경, 수영이 임화가 청량리에 차린 사무실에 자주 드나들었다는 얘기는 앞에서 잠깐 말했었지요. 수영은 이때 외국 잡지를 번역하는 일에도 손을 댔습니다. 이 시의 제재로 쓰이는 '책'이 아마 바로 그런 번역거리가 아니었을런지요. 작품에 등장하는 책은 미국에서 건너왔습니다. 이는 6행의 '가리포루니아(필자 주-캘리포니아)라는 곳에서 온 것만은 확실하'다는 구절에서 알 수 있지요.

그런데 이 시에 등장하는 화자의 모습이 묘합니다. 그는 지금 그 미국에서 건너온 한 권의 책을 보고 있습니다. 바라보되, 다만 멀리서 보고 있지요. 그렇게 '멀리 보고 있'(16행)는 화자는 '괴로움을 모'(15행)릅니다. 하지만 곧 "그저 멀리 보고 있는 듯한 것이 타당한 것이므로 / 나는 괴롭다"(17, 18행)고 말합니다. 괴로움을 모르고 멀리서 보고 있는 듯한 것이 옳다고 하면서, 그는 그것이 왜 또 괴롭다고 하는 걸까요? 이건 참 묘한 심리입니다.

아마도 그는 그 책을 멀리서 보고 있지만 가까이 가서 만져보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무슨 일이 생깁니다. 진짜 '괴로움'과도 같은 것 말이죠. 그러니 가까이 가지 않고 멀리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합니다. 그러면서도 실상은 그 타당함이 옳은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괴로운 것이지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쯤 될까요? 화자는 지금 정말 가까이 하고 싶어도 알 수 없는 어떤 이유 때문에 가까이 할 수 없을 때의 안타까움과 좌절감에 푹 빠져 있습니다.

연극에서 문학으로 전향한 수영이 맨 처음 동인 활동을 하면서 접한 문학적 흐름은 서구 모더니즘이었습니다. 그 서구의 대표 주자 중 하나인 미국은 수영에게 거대한 산맥과도 같았을 겁니다. 그러한 생각은, 미군이 점령군이 되어 한반도의 남쪽을 쥐락펴락하던 미 군정기(美軍政期) 아래서 더욱 굳어지지 않았을런지요. 그러니 분명 수영에게는 그들의 거대한 힘에 대한 경외심이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당시는 우리 민족이 갈 길을 잃고 방황하던 시기였지요. 더군다나 미국은 그런 우리 민족의 발목을 잡고 군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는 수영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우리는 그 마음의 한켠에 미국의 오만에 대한 분노와 미움이 어떤 식으로든 자리잡고 있었을 것으로 충분히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모더니스트로서의 수영이 서구 문물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상상해 봅니다. 당시 우리 민족이 처해 있던 그 지리멸렬한 상황을 타개하려면 일단 힘이 있어야 했겠지요. 강대한 미국처럼 말입니다. 화자가 미국에서 건너온 어떤 책을 바라보려고 하는 이유입니다. 그리하여 이 책은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도 현실의 괴로움(13, 14행의 "오늘도 어제와 같이 괴로운 잠을 / 이루울 준비를 해야 할 이 시간에" 참조)을 사라지게 하는 마력을 보여줍니다.

그러자 이 책은 화자의 머릿속에서 점점 부풀려집니다. "주변없는 사람이 만져서는 아니될 책 / 만지면은 죽어버릴 듯 말 듯 되는 책"(4, 5행), "제이차대전 이후의 / 긴긴 역사를 갖춘 것 같은 이 엄연한 책"(8~10행), "그 책장은 번쩍이고"(20행) 등의 구절이 이를 말해줍니다. 이렇게 부풀려진 책에 화자는 강하게 압도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여기까지입니다. 이 책은, 그것에 가까이 가려고 하면 할수록 알 수 없고 보이지 않는 깊은 바닥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화자는 감히 가까이 가지 않습니다. "나는 괴로움으로 어찌할 수 없이 / 이를 깨물고 있"(21, 22행)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가까이 하고 싶지만 가까이 할 수 없는 것, 또는 가까이 가서 온통 알고 싶지만 가까이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수영에게 미국, 나아가 서구는 바로 그런 이중적인 대상이 아니었을런지요.

우리는 수영이 당시의 시대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뚜렷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가 미국을 대표로 하는 서구 문물을 어떻게 생각했는지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말하기가 힘듭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시를 통해서 알 수 있는 수영의 태도는 분명해 보입니다. 비록 서구에 대한 그의 인식이 설익은 관념의 차원에 놓여 있는 것이었을지라도, 민족 앞에 놓인 냉혹한 현실의 이면을 간파하려고 몸부림쳤던 것을 말이지요.

이는 당시 많은 문인들이 서구의 근대성을 추종하기에 바빴던 모습과는 분명히 달랐습니다. 이 시에서, 미국과 서구를 동경하면서도 결코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다는, 우리는 우리 나름의 갈 길이 있어야 한다는 수영의 주체 의식과 도도함을 읽어내는 이유입니다. 이와 같은 수영의 태도는 훗날 끊임없이 우리 문학의 건강성과 주체성을 강조했던 그의 지론과도 상통하는 것이겠지요.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가까이 할 수 없는 서적>, #김수영, #모더니즘, #주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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