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물고기> 영화 포스터

<물고기> 영화 포스터 ⓒ DIMA Entertainment, 미로비젼

"사후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인간이 살면서 가지는 가장 큰 의문은 죽음 이후의 시간에 대해서다.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기에 무덤에서 해답을 얻겠지만 살아있는 동안에는 절대로 풀 수 없다. 물론 많은 사람이 사후 세계를 경험했다고 주장하지만, 결코 믿을 만한 이야기는 없다고 생각한다. 생명의 탄생 '이전'만큼이나 생명의 소멸 '이후'는 신비로운 영역이며, 이것은 인간의 상상력과 언어로 쉽사리 기술될 수 없는 신의 영역이다.

호기심의 동물인 인간은 끊임없이 사후 세계를 인간의 언어로 서술하려 노력했다. 영화에서도 사후 세계는 흥미로운 소재로 다루어졌다. 그중 인간이 죽어 귀신이 된다는 흔한 설정이 아닌, 사후 세계에 대해 참신한 발상을 했던 영화는 조엘 슈마허 감독의 <유혹의 선>과 알레한드르 아메나바르 감독의 <디 아더스>였다. <유혹의 선>이 의학 장비와 약물을 통해 인위적으로 몇 분간 심장이 멎게 함으로써 금단의 영역을 엿본다는 설정으로 신선했다면, <디 아더스>는 항상 타자적인 위치에 놓였던 죽은 자를 동일자로 설정하는 관계 전복이 돋보였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아내 지연(최소은)을 찾기 위해 흥신소에 의뢰한 전혁(이장훈). 부인의 행방을 의뢰했던 흥신소 직원(김선빈)이 아내를 찾았다는 말에 전혁은 진도로 내려간다. 진도에서 만난 흥신소 직원은 아내가 무당이 되어 가사도에서 지낸다고 전한다.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전혁은 아내를 만나러 가사도로 향한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일이 그의 주위에서 일어난다.

바다 한가운데서 낚시를 하는 나이 든 낚시꾼(박노식)과 젊은 낚시꾼(권용환).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은 낚시를 즐기던 중에 물고기 한 마리를 잡게 된다. 그런데 그 물고기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두 사람은 이상한 분위기에 사로잡히게 된다.

초현실적으로 진행되는 이야기

 <물고기> 영화 스틸

<물고기> 영화 스틸 ⓒ DIMA Entertainment, 미로비젼


<물고기>는 (영화 속에서) 현실과 허구가 혼재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전혁이 가사도로 향하는 이야기는 그가 물에 빠져 죽기 이전 경험했던 과거다. 전혁의 과거는 무당이 된 아내 지연의 몸을 빌려 다시금 재생된다. 아내의 의식 속에서 자신의 기억을 또다시 바라보는 전혁은 자기가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설정에서 누구가 쉽사리 떠올릴만한 영화는 <식스 센스>와 <디 아더스>다. 우리나라에서 박찬욱, 박찬경 형제의 단편 영화 <파란만장>에서도 비슷하게 다루어진 바 있다.

이들 영화와 다르게 <물고기>는 지연의 의식 속에서 초현실적으로 벌어지는 전혁의 이야기와 별도로 하나의 이야기를 더 삽입했다. 두 명의 낚시꾼의 이야기는 이미 죽은 다른 망자의 노래다. 그들은 "물 밖으로 나오고 싶어하는 물고기도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면서 관객이 다른 시각으로 이야기를 볼 수 있게끔 유도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전혁의 이야기에 붙인 친절한 주석과도 같다.

<물고기>는 관객과 어려운 게임을 할 의사가 없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셔터 아일랜드>같은 쉽게 풀 수 없는 퍼즐을 제시하지 않는다. 이런 류의 영화 퍼즐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초반부터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난이도가 쉽다.

어려운 퍼즐이 없다면, 임권택 감독의 <안개 마을>처럼 공동체가 감추고 있는 비밀이 발산하는 기괴한 분위기가 있어야 하는데 <물고기>에선 그것을 찾기 어렵다. 그저 유사한 장면이 반복되며 피로감만 준다.

이야기의 형식은 아쉽지만 3D의 시도는 높이 산다

 <물고기> 영화 스틸

<물고기> 영화 스틸 ⓒ DIMA Entertainment, 미로비젼


정형화된 이야기 구조를 탈피하려 했던 박홍민 감독의 노력은 <물고기>에서 읽힌다. 그러나 <물고기>는 아핏차퐁 위라세타군 감독이 <엉클 분미> 등의 영화에서 보여준 '유령성'이나, 레오스 카락스 감독이 <홀리 모터스>에서 선보인 그만의 '마술적 리얼리즘'과 같은 새로움과는 거리가 멀다. 신연식 감독의 <러시안 소설>처럼 흡입력 있는 이야기와 신선한 형식미가 조화를 이루지도 못했다. 그저 데이빗 린치 스타일의 영화를 애정 어리게 습작하는 느낌이 크다.

그러나 7000만 원이란 저예산으로 3D 영화를 완성한 박홍민 감독의 뚝심은 놀랍다. 박흥민 감독은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진도 씻김굿과 풍광을 입체로 담으면 감흥이 클 것 같았고, 입체공간이란 기호를 가져오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오가는 <물고기>를 재밌게 풀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한국에서 애니메이션이나 방송국이 제작한 다큐 영화 외에 일반 영화에서 3D가 시도된 경우는 <나탈리> <7광구>, 부분적으로 3D가 사용된 <마녀의 관>만이 있을 정도로 3D 영화 시장은 척박하다. 거대한 자본이 투입되어 현재 만들어지는 김용화 감독의 <미스터 고>정도만이 제작 현황에 오른 3D 영화다. 이런 분위기에서 저예산 영화 <물고기>가 3D로 제작된 점은 놀랍다. 다른 아쉬움을 차치하고 무모하리만치 느껴지는 3D 영화에 대한 도전 정신은 높이 산다. 이런 열정을 잘 살려 다음엔 더 좋은 영화를 만들 거라 기대한다.

물고기 3D 박홍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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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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