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 출신 가수 셰인을 지난 11월 23일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코리아에서 만났다. 오디션에서 우승하지 못했지만 셰인은 한국에 남아 팬들에게 그의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MBC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 출신 가수 셰인을 지난 11월 23일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코리아에서 만났다. 오디션에서 우승하지 못했지만 셰인은 한국에 남아 팬들에게 그의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 김수민


한 남자아이가 태어났다. 아이의 피부는 하얬고, 머리칼은 까맸다. 캐나다인 아빠와 필리핀인 엄마를 공평하게 반씩 닮은 아이였다. 한 살이 좀 넘었을 때, 엄마는 아이의 왼쪽 눈동자가 엄마의 손가락을 따라오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의사는 정밀검사를 하지 않고도 아이의 병을 찾았다. 종양이 너무 커서 육안으로도 보인다고 했다. 안암이었다. 첫 어금니가 나던 때에 아이는 왼쪽 눈에 의안을 꼈다.

다행히 재능이 많은 아이로 컸다. 여섯 살에 고사리 같은 손으로 스스로 피아노를 깨쳤다. 주를 대표해 스피드 스케이트 대회에 나갔다. 테니스, 축구 대회에서도 매년 많은 메달을 땄다. 가장 축복받은 재능은 목소리에 있었다.

어느 날인가 아이가 교회에서 혼자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목소리에 특별한 힘이 있다는 것을 느낀 건 비단 가족만이 아니었다. 아이는 성가대에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는 성가대를 그만두겠다고 했다.

"왜 성가대를 나가려고 하니? 노래를 부르는 것이 싫어진 거야?"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그렇지만 내 목소리가 너무 높아서 성가대에 방해가 되요. 화음이 깨지는 게 너무 슬퍼요."

대신 방에 키보드를 놓아두고 혼자 노래를 불렀다. 녹화하여 올린 동영상은 유튜브를 타고 전 세계인의 컴퓨터에서 재생됐다. 그렇게 가수의 꿈을 키웠다.

아이는 더 이상 '아이'라고 부를 수 없을 만치 소년이 되자 한국에 가겠다고 선언했다. 한국에서 열리는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자격을 얻었다고 했다. 소년은 한국에 오래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방학이 끝나면 학교로 돌아갈 거라고 했다. 부모는 꿈이 그를 한국으로 데려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허락했다.

한국은 고향인 오타와보다 추웠고, 낯설었고, 외로웠다. 그래도 소년은 집에 군소리 한번 하지 않았다. 소년은 한국말을 못했다. 자신의 노래에 대해 한국의 유명한 가수들이 해주는 말은 칭찬인지 질책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어쩌다 고개를 끄떡인 것이 절묘하게 편집되어 다 알아듣는 것처럼 방송됐다. 한국어 가사를 프린트 해주면 다음날 하도 빽빽하게 볼펜 질을 해서 너덜해진 종이를 보물단지마냥 쥐고 왔다. 소년은 낯선 땅에서 커피를 한국식으로 똑부러지게 커피라고 발음했고, 멜론이 단지 과일이 아니며, 신승훈이 '형님'임을 배웠다.

오디션에서 우승하지 못했지만 소년은 한국에 남았다. 그리고 공연을 했고, 음반을 내고, 팬 미팅에 나갔다. 사람들은 그걸 데뷔라고 불렀다. 소년은 단어에 연연하지 않았다. 분명한 건 한국에서 한국 팬들에게 계속 노래를 들려주고 싶었다는 것이었다. 그가 바로 셰인이다.

※ 위는 인터뷰 내용와 다큐멘터리 <그날>의 셰인 편을 바탕으로 기자가 재구성한 것으로 인터뷰이의 실제 발화내용과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셰인에게 근래의 시간들은 자신을 면밀히 관찰하고 조율해 가는 중간점검의 시간이다.

셰인에게 근래의 시간들은 자신을 면밀히 관찰하고 조율해 가는 중간점검의 시간이다. ⓒ 김수민


# 누가 그를 신비롭다고 모함했나?

셰인이 말수가 적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조근 조근한 노래를 부르는 가수는 성격도 그러리라 예상하게 된다. 그러나 셰인은 한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말했다. 그것도 한국어로 또박또박 분명하게. 아무래도 우리는 이제껏 셰인에 대하여 많은 것을 생략하고 넘겨 짚어왔다. 익숙하기만 한 그의 환한 미소가 전부가 아닌데도 말이다.

- 오랜만에 얼굴 보니까 정말 좋네요. 요즘 어떻게 지내나요?
"요즘은 라디오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올해 3월에 냈던 앨범활동이 끝나고부터는 계속 라디오에 집중해왔어요. 노래 연습하고 있고, 특히 노래를 많이 쓰고 있어요. 한국말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고요. 바쁘긴 바쁜데 약간은 심심해요." (기자주- 현재 셰인은 TBS eFM(101.3Mhz)에 편성된 'Shayne's Music Magic'(셰인즈 뮤직 매직)의 DJ로 활동 중이다. 해당 프로그램은 국내 최초로 모든 코너를 영어로 진행하고 있다.)

- 뮤지션은 아무리 바빠도 음악을 많이 하지 못하면 심심한가 봐요. 라디오 프로그램은 진행하기 어떤가요?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건데 힘들진 않았나요?
"처음엔 힘들었어요. 라디오를 진행하는 게 처음이라 떨렸고, 실수도 많이 했거든요. 더군다나 생방송이잖아요. 어느 날인가 작가님들까지 스펠링 실수를 하신 적이 있어요. 제가 (라디오 진행을) 많이 해봤다면 당황하지 않았을 텐데, 저도 처음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할 지 몰랐어요. 그렇지만 이제는 어려움 없이 잘 하고 있어요. 프로듀서님, 작가님, 다들 정말 많이 도와주셔서 빨리 적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할 수 있으면 계속하고 싶은 프로그램이에요. 얼마 전에는 프로그램 개편을 했는데 새 코너를 제가 직접 제안해서 만들었어요. 청취자분들께 가사를 받으면 제가 멜로디를 작곡을 하고 그걸 들려드리는 코너예요."

- 본인이 직접 제안한 것 인줄은 몰랐네요. 준비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은 코너인데요?
"맞아요. 시간 진짜 많이 걸려요. 가끔은 제 곡 쓸 시간이 모자라서 방해처럼 생각될 때도 있어요. 그렇지만 새 코너는 저한테도 큰 도움이 되요. 곡을 쓰는 게 너무 힘들어서 동기부여가 필요한데, 코너가 있기 때문에 힘들어도 계속 작곡해야 해야 되니까요. 유명한 재즈 뮤지션이나 인디 뮤지션을 초대했던 옛날 코너도 재미있었는데, 인기 있고 영어 잘하시는 분을 모셔오기 정말 어려웠어요. 그럴 바엔 노래 많이 쓰고 싶고 노력하고 싶어서 새 코너를 만들었어요."

- 생각보다 한국어가 정말 유창해요. 이제 완전히 한국사람 다된 것 같아요.
"아직 한참 더 배워야 되요. 한국어는 깊이 배울수록 어려운 것 같아요. (이미 충분히 잘하는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아직은 더 노력해야 되요. 이제 대화는 대부분 알아들을 수 있는데 듣기보다 말하기가 더 어려워서요. 한국어로 곡 써야 되는데. 그게 아직까지 어려워요."

 셰인의 성장사가 남들과 똑같았다면 그의 음악은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이다.

셰인의 성장사가 남들과 똑같았다면 그의 음악은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이다. ⓒ 김수민


# 어떤 은총은 가면을 쓰고 온다

세상이 너그럽고 단순하다면 사람들은 도전 같은 건 알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어떤 새로운 일을 맘먹게 되는 것은 내게 닥친 혼란을 독대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셰인의 성장사가 남들과 똑같았다면 그의 음악은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이다.

- 어렸을 때 음악 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동생도 음악을 한다고 들었어요. 집안 전체가 음악 하는 것을 장려하는 분위기였나요?
"물론 반대하셨던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힘들 것에 대해 걱정하셔서 그런 거지 음악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건 아니었어요. 어머니는 제가 어렸을 때 아팠다는 걸 누구보다 잘 기억하는 분이셨고 동시에 제가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해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어요. 결국 어머닌 제가 노래를 재밌게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셨죠. 사실 동생도 음악을 해요. 캐나다에 있을 땐 가끔 동생이랑 경쟁하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지만 이젠 아니죠.(웃음) 이렇게 가족 전체가 다 서로를 응원하는 분위기에요. 그래서 한국 오기 전까지 레슨도 정식 선생님도 없었지만 음악을 놓지 않고 계속 할 수 있었어요."

- 이야기가 나온 김에 민감한 질문일 수도 있겠지만 물어보고 싶어요. 현재 의안인 왼쪽 눈에 대해서요. 혹시 셰인에게 콤플렉스가 되는 부분인가요? 아니면 어떤 것에도 전혀 지장을 주지 않나요?
"전혀요. 병은 제가 기억하지도 못할 어린 나이에 완치되었어요. 잘 보이지 않아 불편할 수도 있겠냐고 묻는 분도 있으시지만 문제없어요. 어릴 적을 떠올려봤을 때 기억나는 가장 이른 시기부터 저는 지금과 같은 모습이었어요. 어떤 어려운 점도, 적응하지 못할 점도 없어요."

- 그렇게 음악을 하다가 유튜브 셀레브리티로 데뷔했어요.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는 것은 누구의 아이디어였나요?
"제 아이디어였어요. 맨 처음에는 피아노 치는 영상을 올렸어요. 반응이 좋았어요. 그 다음에는 캐나다의 인디뮤지션의 커버를 올렸고 더 엄청난 반응이 왔어요. 그때 한참 저스틴 비버같이 유튜브 동영상으로 인기를 얻는 가수들이 나올 때였어요. 저도 할 수도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커버를 더 만들었죠. <위대한 탄생>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도 유튜브를 통해서 봤어요."

- 셰인은 아무래도 영어권 사람이고 <아메리칸 아이돌> 같은 해외 오디션 프로그램이 더 유리했을수도 있는데 어떻게 한국의 오디션에 참가할 생각을 했나요?
"저는 그렇지 않았을 것 같아요. <아메리칸 아이돌>에 출연했다면 사람들은 저한테 관심을 보이지 않았을 거예요. 미국이나 캐나다에는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진지하게 하는 사람도,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는 정도인 사람도 있지만 모두들 개성 있으면서도 실력이 뛰어나요.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내기란 쉽지 않아요. 더 나아가서 레이블과 계약하기는 정말 어렵구요.

한국에도 훌륭한 뮤지션들 진짜 많아요. 그렇지만 한국에서 저는 외국인이고, 그래서 힘든 점도 있었지만 일단은 관심을 받았어요. 저의 특징을 조금 더 특별하게 봐줄 거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랬어요. 그래서 제 노래를 들려드릴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해요. 결국 이렇게 한국에서 데뷔까지 하게 됐잖아요. 한국에서 데뷔한 건 후회 없이 좋은 선택이었어요."

 활동무대는 옮겨왔지만, 셰인의 색깔만큼은 바래지 않았다.

활동무대는 옮겨왔지만, 셰인의 색깔만큼은 바래지 않았다. ⓒ 김수민


# 내가 하는 음악에 대한 일리 있는 변호

셰인의 음악에는 특별한 색이 있는데 워낙 신비로운 색이라 세상의 어떤 색을 갖다 붙여도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색이다. 그의 활동무대는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유튜브에서 공중파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 옮겨왔지만, 그 색깔만큼은 바래지 않았다. 아티스트가 자신의 방에서 스튜디오로 녹음실을 옮길 땐 어쩔 수 없이 여러 종류의 가면을 쓰게 된다. 그것을 버티게 하는 것은 아직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솔직할 수 있는 나만의 음악이 있기 때문이다.

- 싱어송라이터로서 셰인은 어떻게 곡을 쓰나요?
"사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어요. 그렇지만 대체로 저는 거의 멜로디에서 시작해요. 그게 제일 중요하니까요. 물론 라디오 프로그램에서처럼 가사를 먼저 받고 멜로디를 써야할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멜로디를 먼저 생각해요. 멜로디에 따라서 가사를 한국말로 쓸지 영어로 쓸지도 정해져요. 어떤 멜로디는 영어가사가 더 어울릴 때가 있어요. 어떤 멜로디는 한국말로도 충분히 표현할 수 있고요.

영어로 가사를 쓰고 그걸 한국말로 번역하는 일은 거의 없어요. 의미가 완벽하게 번역될 수는 없으니까 조금 힘들어도 한국말로 가사를 쓰는 걸 택해요. 옛날에는 하지 못했지만 이제 그 정도 한국말은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작업은 주로 피아노로 하는데, 일단 저한테 가장 익숙하고 또 모든 걸 표현할 수가 있으니까요."

- 그래서인지 셰인의 곡은 피아노 베이스에 멜로디가 화려하지 않은 어쿠스틱 팝이 많아요. 혹시 다른 장르의 음악에는 관심 없나요?
"듣는 것은 장르를 가리지 않았어요. 좋아하는 아티스트도 마이클 부블레, 콜드 플레이부터 빅뱅까지 걸쳐있어요. 한국에 와서 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듣게 된 것 같아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미션곡을 연습을 하면서, 멘토링을 받으면서, 앨범을 준비하면서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밖에 없었죠. 구체적으로는 태양, 지드래곤, 빅뱅을 예전부터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해요. 캐나다 인디 뮤지션들의 곡을 많이 들었었고 커버도 했었는데, 한국 인디 뮤지션들의 곡도 많이 듣고 있어요."

- 직접 다른 장르에 도전해볼 생각은 없고요?
"물론 듣는 것 좋아하고 관심도 있고 빅뱅 좋아도 하지만, 저는 댄스 못하고.(웃음) 아니, 할 수는 있을지도 모르는데 제가 잘하는 게 아니니까요. 저보다 댄스나 힙합 잘하는 가수들이 훨씬 많은데 제가 하는 거는 조금 낭비같이.(웃음) 제가 잘하는 것 하는 게 좋잖아요. 저는 싱어송라이터예요. <위대한 탄생> 때도 강조했고 지금도 강조하고 싶어요. 대신 어반 자카파, 10cm 노래를 많이 듣고 있는데 같이 (콜라보레이션을)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단 생각을 해요."

- 지금까지는 같은 소속사인 김보경과 많은 콜라보레이션을 했는데요. 김보경과의 작업은 어땠나요?
"보경 누나와의 작업은 너무 좋았어요. 작업하기도 너무 좋았고, 작업으로 나온 노래도 너무 좋았고요. 보경 누나는 노래 부를 때 (같이 부르는 사람을) 정말 많이 이해해줘요. 노래를 너무 잘하기도 하지만, 그 모습이 너무 좋았어요. 배울 점이 많았어요."

- 배울 점이 많았다는 말이 나와서 말인데 한국에 와서 처음 맞은 음악적 스승인 신승훈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신승훈 역시 <위대한 탄생>의 제자들을 '나의 마지막 제자들'이라며 공개적으로 아꼈어요. 신승훈에게 구체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받았나요?
"신승훈 형님은 정말 좋은 형님이자, 멋있는 아티스트(great artist)예요. <위대한 탄생>에서 제 멘토가 되어주셔서 형님의 노래를 많이 들어볼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특히 형님 덕분에 다양한 장르를 듣고 연습할 수 있었던 게 좋았던 것 같아요. 형님을 통해서 어쿠스틱 팝 계열이 아닌 다양한 장르의 케이팝을 접했어요. 다양한 음악을 들어보라고 직접 말씀 해주기도 하셨고요."

 셰인은 재능 외의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노력, 가능성 대한 믿음, 가능성을 입증할 수 있는 기회같은 것들.

셰인은 재능 외의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노력, 가능성 대한 믿음, 가능성을 입증할 수 있는 기회같은 것들. ⓒ 김수민


# 번뜩함과 진득함 사이

키보드를 치는 법, 가사를 쓰고 멜로디를 입히는 일명 작곡이라는 작업, 감정선을 잡는 방법. 어느 것도 누구에게 배운 적이 없다. 이쯤 되면 엄마 뱃속에서 쥐고나오는 재능이란 게 있음을 믿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러나 셰인은 재능 외의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노력, 내 가능성에 믿음을 가지는 것, 그리고 그 가능성을 입증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

- 셰인에게 따라다니는 여러 가지 수식어 중에 눈에 띄는 하나는 '천재'라는 수식어죠. 반면 셰인은 지금까지 여러 인터뷰에서 노력의 중요성을 이야기 해왔어요. 본인의 재능은 선천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후천적이라고 생각하나요?
"물론 부모님이 물려주신 것들이 있어요. 그것 때문에 저는 노래를 부르고 싶거나 곡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 그 마음을 포기하거나 미룰 필요가 없어요. 하지만 그 이후에 정말 좋은 노래를 부르고 곡을 쓰는 건 노력해야 하는 것들이에요. 제게 주어진 재능이 저에게 기회를 허락해 주었다면, 그 기회를 성공으로 바꾸는 건 노력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만약 천재였다면 저는 곡을 쓸 때 이렇게 힘들어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저는 곡을 쓸 때 밤도 새고, 자책도 하고, 힘들어도 하거든요."

- 셰인이 곡 작업을 이렇게 어렵게 하는 줄 몰랐어요. 셰인을 떠올리면 너무나 편안한 표정으로 신비롭게 노래 부르는 모습이 저절로 떠올라서요.
"저에게 신비로운 매력이 있다고 말씀해주시는 건 무척 감사한 일이고 마음에 들어요. 그렇지만 저는 싱어송라이터로서 셰인의 이미지가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노래를 부르는 건 제가 할 수 있는 것 중에 하나예요. 저는 곡을 쓰고, 많은 자작곡을 가지고 있어서 그 노래를 부르는 게 좋은 싱어송라이터에요. 노래 할 때 목소리의 중성적인 면이나 신비로운 분위기를 사랑해주시는 건 좋지만 그렇다고 그게 저의 전부는 아니에요."

- 곡 작업을 할 때 제일 어려운 게 뭔가요?
"엄청 어려운 점은 없지만 아무래도 저는 한국에서 혼자 살고 있으니까요. 제가 당장 응원이 필요할 때 친구와 가족들이 너무 멀리 있다는 게 힘들 때가 있어요. 물론 <위대한 탄생>으로 만난 친구들과 동료들이 있지만 가끔 혼자라는 게 느껴지고 외롭다는 생각도 해요. 외로울 때 곡이 더 잘 써질 수도 있지만, 곡이 더 잘 안 써지는 경우도 많아요."

# 계획은 유예됐지만 꿈은 가까워졌다

오디션에 참가할 때 까지도 셰인은 음악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교에 돌아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내 음악이 인정받아 세계로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이 될 때'라는 단서를 달면서 계획은 유예됐다.

- 어렸을 적부터 음악과 함께 자란 셰인도 혹시 음악을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있었나요?
"(웃음) 처음 한국에서 가수 활동을 시작할 때 좀 힘들었어요. 그땐 지금보다 한국말을 훨씬 못했는데 활동 더 많이 했거든요. 노력 많이 해야 했어요. 노래 연습도 열심히 하고 한국말 연습도 똑같이 열심히 해야 했어요. 그래서 다른 가수들보다 더 노력하고도 티가 안 났죠. 지금도 완벽하진 않고 항상 노력중이에요. 앞으로 좀 더 열심히 하면 편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 만약 셰인이 뮤지션이 되지 않았다면 지금 어떤 모습일까요?
"저 아마도 공무원이 되었을거에요. (의외의 대답에 기자가 되묻자) 왜냐하면 사실 부모님이 경제학자세요. 두 분 다 캐나다 공무원이시구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즐겁게 일하시는 걸 봐왔어요. 막연하게 그런 안정적인 삶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어요. 가수를 하지 않았더라면 혹은 한국에 오지 않고 캐나다에 머물렀다면 모를 일이죠."

- 요즘 많이 바쁘시겠지만, 만약 지금 셰인에게 일주일의 완전한 여유시간이 주어진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고 싶나요?
"여행이요.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좋은 점은 어디든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그걸 실현시키기 좀 더 쉽다는 거예요. 특히 아시아 지역으로 여행하고 싶을 때요. 올해 캐나다에는 두 번 정도 갔는데 필리핀엔 가본지 정말 오래됐어요. 어렸을 때 두 세번 정도 갔고. 기억이 별로 남아있지 않을 만큼 오래 전에요. 할 수만 있다면 가족과 함께 가고 싶어요."

-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싶나요?
"내년쯤에 앨범을 낼 수 있으면 좋겠고요. 앨범에 자작곡이 많이 실렸으면 좋겠어요. 요즘은 재즈, 소울 장르를 시도해보고 싶어서 악기를 배울 생각은 해요. 그 쪽으로 곡 작업을 해서 앨범에 실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다른 나라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에 대해서도 항상 생각해요. 고향인 캐나다에서도 활동하면 정말 좋죠. 당장은 될 수 없겠지만요. 다른 나라에도 팬 분들이 있으시다면 그건 너무 감사한 일이고 가서 공연도 하고 싶어요. 제가 노력하면 언젠가 다 할 수 있을 일이라고 생각해요.

#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라 해서 편견을 품지 않는다

어쩌면 기자가 느낀 셰인의 이미지는 얼음도 녹일 것 같던 그의 미소에 의해 더욱 반듯하게 미화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대는 핑계는 언제나 자기 자신이었다는 점이다. 힘들었거나 아쉬웠던 경험을 말하고서는 항상 "제가 더 열심히 할 거예요"라는 말이 따라붙었다.

그 방에 있는 누구나 다 알게 됐다. 셰인의 가장 큰 힘은 팬들을 하루 종일 설레게 한다는 미소가 아니라 진심을 전달하기 위해서 어떠한 반성과 노력도 감당할 자세라는 걸.

셰인은 많은 이미지의 커튼 속에 가려져있다. 연습벌레인 그의 노력은 천재라는 이미지에 의해 잘 드러나지 않았다. 싱어송라이터로서 그의 작곡력은 신비로운 음색에 가려 자주 언급되지 못했다. 그가 이제 갓 성년이 되었다는 사실보다 외국인이라는 사실이 우선시 됐다.

지금 셰인의 '신비롭다'는 이미지는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의 오독일 수 있다. 그 커튼을 걷고 스스로 걸어 나올 때 비로소 셰인은 진짜 신비로운 것이 무엇인지 보여줄 것이다. 그래도 커튼을 성급하게 거둘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자신을 면밀히 관찰하고 조율해 가는 커튼 속 중간점검의 시간이 분명히 필요한 시점이다.

혹자는 그가 데뷔 1년차로서 아직까지 인상적인 성과를 보여주고 있지 못하고 말한다. 그러나 셰인의 음악적 성과를 논하기엔 아직 이르다. 그의 작업들은 어느 활동의 시작도 끝도 아닌 음악인생이라는 큰 판에 놓는 한 수이며, 그 수를 가능한 신중하고 의미 있게 두려는 노력을 우리의 과거 습관으로 재단하기엔 너무 가혹하다.

명랑과 순수함과 진심은 연출되지 않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눈치 챘으면 좋겠다. 그의 손에 쥐어진 잠재력을.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보노플로우(Bonoflow)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셰인 SHAY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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