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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일보를 폐간하고 조용수 사장을 죽인 최고책임자, 그 세력은 진정한 사과는커녕 자신의 행위에 대해 조금도 뉘우치지 않고 있다. 그런 점에서 민족일보 사건은 끝나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민족일보사건의 범죄자가 다시 득세하는 이 암울한 현실은 더욱 민족일보 사건의 현재적 과제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 평전>(1995, 언론노조 간행)을 썼던 원희복 <경향신문> 선임기자가 밝혔다. 민족문제연구소 진주지회(지회장 이기동)는 11일 오후 진주 경남과학기술대 산학협력관 강당에서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추모 및 재조명 학술회의"를 열었는데, 원 기자가 발제했다.

조용수(1930~1961) 선생은 진주 수정동에서 태어났는데, 고향에서 추모행사가 열리기는 처음이다. <민족일보> 사장이었던 조용수 선생은 1961년 5․16쿠데타 이틀 뒤 연행되어 '특수범죄처벌에관한특별법'으로 구속됐다. 조용수 선생은 그해 10월 31일 변호인 변론도 없이 상고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12월 21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이 집행됐던 것이다. 31살의 짧은 삶이 마감됐다.

1883년 이후 발행인이 사형 당한 경우는 없는데...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의 생전 모습.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의 생전 모습.
원희복 기자는 "박정희는 쿠데타의 첫 희생양으로 언론인 조용수 사장을 선택했다"며 "1883년 10월 30일 근대적 첫 신문인 <한성순보> 이후 현재까지 우리 언론사에서, 일제 때 필화사건․항일운동으로 정간․폐간은 됐을망정 발행인이 사형 당한 경우는 없다"고 설명했다.

"박정희는 왜 민족일보와 조용수를 겨냥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 원 기자는 "바로 자신의 사상적 문제를 증명하고, 미국으로부터 쿠데타의 정당성을 입증받기 위한 것이었다. 박정희와 5․16쿠데타의 첫 번째 희생양이었던 것"이라며 "박정희 자신의 좌익 전력에 의심을 가진 미국을 납득시키기 위해 5․16쿠데타를 인정받기 위해 젊은 조용수 사장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라고 밝혔다.

민족일보사건의 현재 의미는 무엇일까? 원희복 기자는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번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가 여당 후보로 출마했다. 박 후보는 바로 민족일보사건을 일으키고, 조용수를 죽인 최고 책임자인 박정희의 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박정희는 정말 지독한 독재자라고 할 수 있다, 그 독재자 박정희의 딸이, 박정희의 정치적·물질적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박근혜씨가 집권여당의 대통령 후보가 돼 있는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이회창 총재를 언급했다. 원 기자는 "민족일보는 1997년․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한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회창 후보가 혁명재판소 심판관으로 조용수 사장의 사형 판결을 내린 바로 그 당사자였기 때문"이라며 "이 후보는 민족일보 사건으로 '언론탄압의 장본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원희복 기자는 "이번 대선은 참담하게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 후보로 나온 선거가 됐다. 박근혜 후보는 민족일보사건을 조작하고 조용수 사장을 죽인 박정희의 딸이다. 참 공교로운 운명"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무엇보다 민족일보 사건은 흘러간 역사가 아니다. 민족일보 사건의 진상규명이 이뤄진 것은 불과 수년 전이고, 피해 보상이 이뤄진 것도 얼마되지 않았다"며 "지금도 많은 과거사 재심이 법원에서 진행되고 있고, 피해 보상이 이뤄지고 있다. 민족일보 사건은 현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그는 "박근혜 후보는 민족일보와 조용수의 죽음에 대해 현재, 이 땅에 존재하는 누구보다 실제적이고, 현실적으로 가장 책임이 큰 사람"이라며 "박근혜 후보가 민족일보와 조용수의 죽음에 대해 최소한의 사과, 혹은 역사인식의 문제"라고 밝혔다.

남한산성에 위치한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의 묘.
 남한산성에 위치한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의 묘.
ⓒ 오마이뉴스 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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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숙 이화여대 교수와 비교했다. 그는 "얼마전 박근혜 후보는 마지 못해 사과했다. 진정성을 느낀 사람 누가 있는가"라며 "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자신이 증조부가 동학혁명의 원인이 된 고부군수 조병갑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무릎을 꿇고 울면서 사과했다. 얼굴도 본 적이 없는 증조부였다. 그것이 바로 사과의 진실성이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박근혜의 사과, 그것에서 진솔성․진정성이 느껴지는가. 단 1%라도 느낄 수 없다. 이것이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간단한 논리의 문제다. … 박근혜 후보 자신의 사과에서 단 1%라도 진정성이 있다면 설사 당에서, 측근들이 좌빨…좌판을 벌이려는 것을 점잖게 아니 단호하게 말려야 하는 것이 상식 아닌가. 따라서 박근혜 후보 사과의 진정성이 믿기 어렵다."

"우리가 조용수 선생을 간절히 기리는 것은?"

이날 추모제·학술회의에서 발언이 쏟아졌다. 여러 인사들은 발언과 자료집을 통해 조용수 선생을 기렸다.

장영달 민주통합당 경남도당 위원장은 "친일군벌·재벌언론들이 아직도 끄떡없이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며 버텨 서 있다"며 "조용수 선생을 간절히 기리는 것은 그의 억울한 죽음의 한을 위로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큰 의미는 박정희의 총칼에 스러진 우리 민족의 역사를 다시 일으켜 세우자는 분노의 마음을 높이 세우는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철 민청학련정신계승사업회 회장은 "조용수 선생님. 이제 남은 저희들은 선, 후를 잘 가려 선생님께서 생전에 남기신 유지인 친일 잔재 청산, 반통일 외세 배격, 군사독재 잔재 청산, 완전한 언론자유 쟁취에 매진하여, 진정한 민족통일국가 건설에 진력을 다 할 것을 거듭 다짐하면서, 이제 여기 한 잔 술을 올리고 재배 드린다"고 추모했다.

남두용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 진주지부 위원장은 "선배님의 큰 희생 앞에 차마 고개를 들 수 없는 것은 5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이 땅의 언론현실이 크게 다르지 않다"며 "공정해야 할 공영방송은 특정 권력의 주구가 돼 버렸다.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똑같은 논조의 보수신문들이 방송사를 꿰차고 민중들을 현혹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와 지역성이 말살되고 이에 저항하는 무수한 언론인들이 쫓겨나는 기가 막힌 일들이 벌어졌다"고 밝혔다.

민족문제연구소 진주지회는 11일 오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산학협력관 강당에서 "조용수 선생 추모제, 학술회의"를 열었다.
 민족문제연구소 진주지회는 11일 오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산학협력관 강당에서 "조용수 선생 추모제, 학술회의"를 열었다.
ⓒ 심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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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덕 4.9인혁열사계승사업회 이사장은 "이번 대선은 분단된 조국 남쪽의 민족 민주 진보 개혁세력이 철통같은 연대전선을 구축하여 독재자 박정희의 딸 박근혜를 추종하는 반통일세력, 반민족 외세의존 사대주의 세력, 그리고 신자유주의 세력 등 반역사적 반동세력의 정권을 과감히 교체하고 반외세 자주화 반파쇼 민주화 반재벌 민중사회 평등화를 지향하는 민족 민주 민중세력의 승리를 목전에 두고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조용수 선생의 동행인 조용준 민족일보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여러 사회단체, 언론인, 그리고 시민들이 함께 참석한 가운데 고인을 추모하는 행사를 갖게 된 것을 뜻깊게 생각한다"며 "기념사업회는 고인의 유지를 받들고 민족일보의 정신을 계승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인사했다.

토론에서 강정구 전 동국대 교수는 "우리 모두 만약 조용수 선생이 지금 이 자리에 오신다면 무슨 일을 하셨을까라는 역사추상을 하면서 우리 자신의 민족사적 책무를 설정하고 실행하자. 그것이야말로 진정 조용수 선생의 거룩한 뜻과 민족일보의 얼을 계승하는 것일 테다"고 말했다.

정대화 상지대 교수는 "조용수 선생은 해방이 분단과 전쟁으로 굴절되고 그 위에 독재와 억압이 강요되었던 어두운 현대사의 한 시기에 민족의 통일과 민중의 이익을 위해 진력하다가 박정희 군사정권에 의해 32살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4월혁명이 진행 중이던 혁명적 공간에서 선생은 짧지만 불꽃같은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선생은 한국현대사의 질곡 속에서 짧은 삶을 살았지만, 학창기와 청년기를 통해 분단체제와 장기독재의 모순을 생생하게 체득하였으며, 이러한 체험을 바탕으로 4월혁명의 열린 공간에 참여하여 혁신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민족일보를 창간하여 혁신운동을 대변하고 통일논의를 활성화하는 등 매우 짧지만 불꽃같은 삶을 살았다"고 덧붙였다.


태그:#조용수, #민족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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