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 위너 브라더스 코리아(주)


1979년 이란은 미국과 영국이 주도하여 추대한 샤(이란어로 지도자를 뜻함) 리자 팔레비의 무능하고 부패로 얼룩진 통치에 항거하여 그를 몰아내고 호메이니를 새로운 지도자로 추대한다. 그 과정에서 리자 팔레비는 미국으로 정치 망명을 신청하게 되고, 성난 이란 군중들은 미국 대사관을 점거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미국 대사관 직원 6명은 캐나다 대사관으로 피신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신변이 탄로나게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생명이 위태로운 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미국 국무부는 자전거를 동원한 작전, 영어교사를 가장하여 구출하는 작전 등을 검토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터무니 없이 낮아보이는 것들이었다. 결국 CIA의 인질 구출 전문요원 토니 멘데스(벤 에플렉)가 투입된다.

하지만 이란의 특수한 상황과 폐쇄성은 멘데스로 하여금 고민을 거듭하게 한다. 그러나 아들과 통화하던 중 TV에서 '혹성탈출'이란 영화를 보면서 멘데스는 억류되어 있는 대사관 직원들을 가짜 영화 제작자들로 위장시켜 탈출시키는 기발한 계획을 구상한다.

멘데스는 자신의 지인인 할리우드의 특수분장 제작자 존 챔버스(존 굿맨)에게 가짜 영화 제작을 의뢰하게 되고, 챔버스를 통해 할리우드의 유명한 제작자로 명성을 떨쳤던 레스터 시겔(앨런 아킨)을 소개받게 된다. 세 사람은 가짜 영화 소재로 쓰일 만한 시나리오를 검토하게 되고, 결국 '아르고'란 제목의 SF영화를 그들의 가상 프로젝트로 사용하게 된다. 일명 '아르고 엿이나 쳐먹어' 작전은 이렇게 시작된다.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 워너 브라더스 커리아(주)


제작 발표회를 통해 신문에 기사가 수록되고, 전 세계에 영화 제작 계획이 알려지는 기발한 쇼가 연출된다. 터키를 거쳐 (최근 개봉되는 할리우드 영화에 유독 터키 이스탄불이 급격히 자주 등장한다. '테이큰2', '007 스카이폴'에 이어 '아르고'에서도 터키가 배경으로 등장한다.) 이란으로 입국한 멘데스는 사전에 준비한 여권, 출입국 카드, 그리고 대사관 직원이 각자 맡아야 할 영화 제작자, 감독, 시나리오 작가 등의 사전 정보를 치밀하게 준비하고, 각자의 가상 역할을 맡은 직원들을 대상으로 실제 상황을 가정한 압박 인터뷰를 통해 이란을 빠져나갈 준비를 진행한다.

미국 대사관에 실제 인원의 숫자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이란 군인들은 인력들을 총동원하여 파쇄된 대사관 직원들의 사진을 끼워 맞추는 작업을 진행하고, 영화 중간중간에 보여지는 이 장면은 서서히 대사관 직원들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보여주며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예정된 D-DAY가 다가오는 순간, 멘데스 일행은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미국 국무부 내에서 방침을 바꿔 델타포스를 이란에 투입해 미국 대사관에 억류된 인질들을 구출한다는 계획이 확정된 것이다. CIA 국장은 멘데스에게 예정된 일정 및 비행기 티켓을 모두 취소하고 미국으로 돌아오라는 명령을 내린다.

D-DAY를 앞두고 밤을 새우면서 고뇌를 거듭한 멘데스는 상부의 지시를 어기고 자신이 책임져야할 대사관 직원 6명을 데려오겠다고 결심한다. 멘데스의 결심을 전해 들은 CIA 국장은 정신없이 움직이면서 취소된 작전을 다시 실행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카터 대통령의 최종 재가를 받아야만 아르고 작전이 다시 실행될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할리우드에 개설한 임시사무소도 폐쇄가 결정된 상황이다. 예정된 시간이 다가오는 가운데 시종일관 지속되던 영화의 긴장감은 절정에 달하게 된다.

시종실관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영화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을 위해 더 이상의 내용은 공개하지 않겠다. 이 영화의 최대의 매력은 실제로 일어난 이야기라 이미 결론이 정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연출을 맡은 벤 에플렉의 촘촘한 연출력이 영화 내내 시종일관 긴장감을 놓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워낙 오래된 역사이고, 배경지식을 모르는 관객들이 많다는 점을 감안하여 영화 도입부에 이란의 역사에 대해 간략한 내래이션을 곁들여서 영화에 대한 몰입을 더 쉽게 돕는 점도 연출의 미덕이라 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용기가 결국 다른 개인들의 운명과 나아가 국가의 운명을 뒤바꾸는 과정이 생생하고 긴장감있게 그려지고, 가슴 뭉클한 감동을 이끌어낸다. 또한 대사관 직원들 중 아르고 작전에 대해 가장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던 대사관 직원이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에 기지를 발휘하는 장면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영화 곳곳에 드러나는 감칠맛 나는 대사들도 영화의 잔재미를 한층 돋구어준다. 특히 할리우드의 베테랑 제작자로 등장하는 레스터 시겔(앨런 아킨 분)이 영화 '아르고'의 판권을 사들이기 위해 판권 소유자와 담판을 벌이는 장면은 치열한 할리우드의 비즈니스 세계의 단면을 해학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영화 엔딩 타이틀이 올라가면서 당시 실제 인물들과 영화 속에 등장한 인물들의 사진들을 함께 보여주는데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의 싱크로율이 100%에 가까울 만큼 영화는 고증에도 충실한 흔적이 돋보인다. 그리고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멘트가 직접 나오는 부분이다.

당시 카터 대통령은 아르고 작전이 성공한 이후 CIA의 주도 하에 이루어졌음에도 이를 기밀에 붙이고 캐나다 정부의 적극적인 협조 하에 이루어진 작전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하였다. 여전히 미국 대사관에 억류된 다른 인질들의 무사한 구출을 위한 배려였던 것이다.

당시 재선을 위한 선거가 임박한 순간에 카터 대통령은 이란 주재 미국 대사관 인질 구출이 지지부진하면서 자신의 지지율에 치명상을 입고 있었다. 만약 자신의 치적을 부각시키기 위해 '아르고' 작전의 실체를 만천하에 알렸다면 카터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르고 작전은 17년 동안 기밀에 붙여졌다가 1997년 클린턴 대통령에 의해 기밀에서 해제되었다. 국가를 위해 카터 대통령은 개인의 욕심을 버리고 끝까지 대사관 인질들의 구출을 위해 헌신했고 결국 1년 여만에 인질들을 평화적으로 구해낼 수 있었다. 재임 당시 카터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가장 나약하고 겁쟁이같은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아야 했다.

하지만 카터는 미국 역사상 가장 용기있는 대통령이었다는 재평가를 받을 필요가 있다.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토건 사업으로 자신의 치적을 과시하려는 국내 지도자들과는 수준이 다르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만들었다.

영화의 감동과 더불어 한 달 후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소중한 선택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아르고'는 필자에게 또 다른 울림을 가져다준 영화였다.

P.S 작품성이나 오락성 면에서 손색없는 이 영화가 개봉한지 1주일 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잘 나가는 일부 영화(특히 영화판을 쥐락펴락 하는 대기업 계열에서 제작된 영화)에 편중되는 멀티플렉스의 특성 때문에 예매하기가 꽤나 힘들었다. 다양성이 무시되는 작금의 멀티플렉스 영화 상영 풍토는 반드시 고쳐야할 악습이라 생각이 든다.

여담으로 영화가 끝나고 상영관을 나왔는데 '나는 꼼수다'의 김어준 총수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같은 상영관에서 '아르고'를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당연히 인정옥 작가도 함께 동행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yes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영화 아르고 벤에플렉 지미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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