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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덕수궁 대한문에서 열린 '희망밥콘서트' 사회를 맡은 변영주 감독(오른쪽)과 희망식당 기획자 임두혁씨, 박래군 인권재단 상임이사의 모습
 26일 덕수궁 대한문에서 열린 '희망밥콘서트' 사회를 맡은 변영주 감독(오른쪽)과 희망식당 기획자 임두혁씨, 박래군 인권재단 상임이사의 모습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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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로 수감됐던 철거민 두 명이 오늘 가석방됐다. 한 사람은 '노모가 따뜻한 밥 해놓고 기다린다'고 말했고 다른 한 명은 '딸하고 밥 먹으러 가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에게 밥이란 이런 것이다."

박래군 인권재단 상임이사가 말했다. "우리에게 밥이란 이런 것"이라고 했는데, 무슨 의미일까. 감옥에서 막 출감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하는 말. '나이든 어머니가 차려놓은 밥'과 '어린 딸과 함께 먹는 밥'은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우리에게 던져준다. 사실 "밥 한번 먹자"는 말만큼 평소 쉽게 말하고 지키지 않는 약속이 있을까. 그저 서로의 안부를 묻는 말에 너무도 당연하게 '밥'을 넣는 것 또한 같은 의미일 것이다.

26일 제법 쌀쌀해진 가을 저녁,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는 '밥 한번 먹자'는 말을 정말로 실천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이날 열린 '희망 밥 콘서트'는 쌍용자동차를 비롯해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으로 고통받는 노동자들과 '밥 한번 먹는' 자리다. 무대에 오른 박래군 이사는 "밥은 평등한 것"이라며 "우리가 밥을 나누면서 평등한 세상, 비정규직 없고 정리해고 없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가는 모습을 서로 확인하자"고 말했다.

"오늘 먹는 밥은 아주 정치적인 밥"

26일 덕수궁 대한문에서 열린 '희망밥콘서트'에 참석한 시민들이 주먹밥과 어묵을 먹고 있다.
 26일 덕수궁 대한문에서 열린 '희망밥콘서트'에 참석한 시민들이 주먹밥과 어묵을 먹고 있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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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부터 콘서트를 후원하기 위한 바자회를 시작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주먹밥과 '희망식당 하루'(희망식당)가 준비한 어묵탕이 이날의 메뉴로 차려졌다. 쌍용차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17일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는 김정우 전국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이 머무는 천막 바로 옆에서 뜨끈한 어묵탕의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다소 '잔인해' 보일 수 있겠지만 김 지부장은 "많이 먹고 함께 해 달라"며 웃었다.

5천 원을 내면 큼지막한 주먹밥 하나와 어묵 꼬치 세 개를 먹을 수 있었다. 상이 차려지기 무섭게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부터 손님으로 입장했다. 각기 다른 사람들이 만든 여러 가지 재료의 주먹밥이 손에 하나씩 들렸다. 기름진 주먹밥을 크게 입을 벌려 베어 물고 우물우물 거리다가 어묵국물을 후루룩 마시면 든든한 한 끼가 됐다.

이날 '희망 밥 콘서트'는 지난 3월부터 시작한 희망식당이 '영업 7개월'을 맞아 더 많은 시민들과 함께 밥을 나누기 위해 만든 자리다. 희망식당은 서울 상도역에 1호점을 시작으로 상수역에 2호점, 청주에 3호점, 대전에 4호점이 연달아 문을 열었다. 일주일에 한 번 문을 여는 희망식당은 5천원에 밥을 팔고 수익금 전액을 해고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 쓴다. 곧 5호점이 대구에 문을 열 예정이다.

희망식당을 처음 제안하고 지금까지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블로거 '오후에'씨는 이날 오후 7시부터 시작한 콘서트 무대에서 "그동안 5천 원짜리 밥을 팔아 4400만 원을 해고노동자들에게 지원했다"며 "오늘 우리가 먹는 밥은 구호를 외치지 않아도 아주 정치적인 밥"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리해고 철폐하고, 쌍용차문제 해결하라는 의미가 담긴 정치적인 밥이란 것을 알고 마음껏 먹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는 "처음에는 희망식당이 이렇게까지 잘 되고 늘어나게 될지는 생각 못했다"며 "곧 대구에도 희망식당 5호점이 생기는데 시민들이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를 함께 풀어낼 수 있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즉석에서 '해고는 나쁘다'라는 말을 각자의 트위터나 페이스북 남겨야 하는 희망식당의 숙제를 제시했다. 객석을 가득 채운 500여 명의 시민들은 모두 일제히 스마트 폰을 꺼내 숙제를 바로 해결했다.

"나도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감"... 11월 3일 3000인 동조 단식

26일 덕수궁 대한문에서 열린 '희망밥콘서트'에서 록밴드 옐로우몬스터즈의 공연에 맞춰 참가자들이 호응하고 있다.
 26일 덕수궁 대한문에서 열린 '희망밥콘서트'에서 록밴드 옐로우몬스터즈의 공연에 맞춰 참가자들이 호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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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식당 3호점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유진아(21)씨는 "희망식당에서 밥을 먹는 게 단지 한 끼를 채우는 게 아니라 조금이나마 해고로 고통 받는 노동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며 "희망식당에 오면서, 그리고 몰랐던 사실들을 알아가면서 내가 조금씩 자라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청주에 있는 희망식당 3호점은 지난해 직장폐쇄 과정에서 용역들의 폭력으로 논란이 된 유성기업 해고노동자들이 격주로 운영하고 있다.

퇴근 길에 대한문 앞을 찾은 직장인 김미호(29, 서울)씨는 "지난주에 처음 희망식당에 가서 오늘 콘서트를 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며 "트위터에서 자주 쌍용차 문제에 대한 글을 봤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마땅히 없었는데 이런 참여를 할 수 있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나도 직장을 다니지만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감이 항상 있다"며 "쌍용차뿐 아니라 해고로 힘들어하는 모든 분들의 문제가 빨리 해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콘서트의 사회를 맡은 영화 <낮은 목소리><화차>의 변영주 영화감독은 "얼마 전 안철수 대선후보가 여기 대한문 분향소에 다녀갔다, 야권 후보들이 나서서 이번 대선 전에 이 문제가 해결되길 바란다"며 "그냥 얼굴만 비추고 가는 게 아니라 직접 싸울 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은 지금 해고가 된 사람들과 아직 해고되지 않은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라며 쌍용차해고자를 비롯한 정리해고 문제에 관심을 호소했다.

이어 "불타는 금요일 밤 홍대 앞을 포기하고 이날 공연을 위해 찾아온 밴드"라는 변 감독의 소개로 록밴드 네바다51, 게이트플라워즈, 옐로우몬스터즈와 가수 한동준씨의 공연이 이어졌다. 콘서트 참가자들은 박수를 치고 때로는 자리에서 일어나 점프를 뛰며 가수들 공연에 호응했다.

한편, '쌍용차 희생자 추모와 해고자 원직복직을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는 오는 11월 3일 현재 단식 중인 김정우 지부장과 함께 쌍용차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3000인 동조단식을 진행한다.


태그:#쌍용자동차, #희망식당 , #희망콘서트, #변영주, #게이트플라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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