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보드 차트 2위에 등극한 싸이

빌보드 차트 2위에 등극한 싸이 ⓒ 빌보드닷컴




빌보드 차트의 권위와 위상은 미국을 넘어 전 세계에서도 유효하다. 오늘날까지도 빌보드 차트는 전 세계 모든 음악인의 선망의 대상이며 꿈의 무대이다. 그러나 그 차트의 주인공은 철저히 미국, 영국을 중심으로 한 영어권 아티스트의 몫이어서 아시아권 아티스트가 설 자리는 사실상 없었다. 물론 우타다 히카루, 원더걸스 등 극소수의 아티스트는 자국 내 인기를 기반으로 미국 시장을 노렸지만, 현재까지의 결과물을 놓고 보면 안타깝게도 사실상 실패에 가깝다. 이러한 결과의 원인을 파고 들어가면 매우 복합적인 결과물이 나오겠지만, 일단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원인은 아시안이라는 인종적 차이, 현지의 트렌드를 쫓다 자신만의 정체성과 경쟁력을 잃어버린 음악, 미숙한 경험으로 인한 마케팅, 유통 전략의 실패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렇게 직접 부딪치며 겪은 미국 시장과 빌보드 차트의 성벽은 굳건했다. 10위권은커녕 100위권에만 진입해도 '가문의 영광'으로 여겼던 빌보드 차트에서 싸이는 당당히 2위에 올랐다. 그것도 2주 연속으로 말이다. 이는 한국 대중음악사 사상 가장 위대한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미국 시장은 규모로도 넘버원이지만 전 세계 메이저 콘텐츠 허브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어서 미국 시장에서 통하면 곧 전 세계 시장으로 나갈 수 있는 발판이 된다. 실제로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아이튠스, 빌보드 차트 상위권을 기록함과 동시에 전 세계 43개국 차트에서 1위에 올랐다. 

K-POP이 아니다! 싸이다!

  강남스타일 MV

강남스타일 MV ⓒ YG엔터테인먼트


혹자는 싸이의 성과를 두고 '세계로 뻗어 나가는 K-POP' '한국 음악의 우수성을 알렸다'고 표현하지만, 싸이는 기존 국외진출을 위한 K-POP 아티스트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이전부터 온전히 자신의 음악을 해왔다. 기존의 전문 프로듀서, A&R, 마케터 등이 멤버 선발부터 음악, 비주얼, 유통까지 전 과정에 참여하여 제작한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획물인 K-POP과 달리, 싸이는 철저히 자신의 힘으로 이 모든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기획자이며 싱어송라이터이다. 그 결과물이 본토 힙합이라 하기에도, 가요라고 하기에도 어중간하지만, 분명 그의 음악에 내포된 에너지는 사람들을 마법처럼 하나 되어 움직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 음악으로 특히 국내 공연 시장에서 싸이는 웬만한 아이돌 그룹도 부러워할 정도의 좌석 점유율과 폭발적인 관객 호응을 이끌어냈다. 한 번 공연을 본 관객은 그의 확실한 고정 관객이 될 정도. 게다가 싸이는 전역 후 빅뱅, 2NE1 등이 소속된 YG엔터테인먼트에 둥지를 틀었다. YG는 상대적으로 소속 아이돌에게도 그들만의 캐릭터를 부여하는 등 음악적, 캐릭터 적으로 허용하는 범위가 넓다. 마침 코스닥 상장을 위해 아티스트 인프라 확보와 공연 등을 통한 수익 다각화가 필요했던 YG와 안정된 환경의 활동 기반이 필요했던 싸이는 전략적 제휴 관계로 거듭났다.

이런 전략적 제휴는 싸이에게 안정된 활동 기반을 마련했으며, YG의 온, 오프라인 유통망을 통한 국외진출도 가시화되었다. 이 같은 시스템의 결과물이 유튜브에서 3억 건의 조회 수를 기록한 '강남스타일'이다. 시작은 국내 대중을 위한 홍보용 프로모션 비디오였지만, YG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전 세계로 퍼졌다.

비록 '강남스타일'이 음악적으로 완성도나 실험성이 뛰어난 음악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싸이 특유의 끼는 충만했다. LMFAO가 시도해 센세이션을 일으킨 셔플 리듬에 국내 아이돌이 들려줬던 클럽 사운드를 싸이 식으로 이식한 음악, 여기에 '유머'라는 코드를 삽입한 뮤직비디오는 보편성과 재미를 동시에 획득하여 유행을 증명하는 수많은 '패러디물'을 양산했다. 또 전형적인 아시아인 모습의 싸이는 음악에 맞춰 미친 듯이 즐기는 똘끼로 의외성을 안겼다. 그 결과, 전 세계 사람들은 단순히 싸이를 '아티스트'가 아닌 '캐릭터'로 인식하게 되었다. 보편적인 음악과 독특한 캐릭터는 '강남스타일'이 한국어 노래임에도 싸이만의 개성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했다.

물론 아직까지 싸이가 완벽히 세계 시장에 자리 잡은 것은 아니다. 1996년 빌보드 차트에서 14주 연속 1위를 차지하고 60주간 차트에 머물렀던 스페인 듀오 로스델리오의 '마카레나'처럼 싸이도 '원 히트 싱글'만 남긴 가수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비영어권 아시아인으로서 이 같은 열풍을 불러일으킨 것만 하더라도 싸이의 도전은 국내외 팝 역사에 충분히 남을만한 의미 있는 행보이다. 

'강제출국'은 이제 그만!

 6집 타이틀곡 <강남스타일>로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가수 싸이가 미국에서의 스케줄을 마치고 귀국, 25일 오후 서울 삼성동의 한 호텔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폭탄주 만드는 시늉을 하며 미국에 한국의 주류문화(술문화)를 전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하고 있다.

지난 25일 귀국 기자회견 당시 싸이의 모습 ⓒ 이정민


한국은 그야말로 싸이 열풍이다. 그의 행보 하나하나는 각 방송사 메인뉴스와 포털사이트에 언급되고, 그를 활용한 각종 행사, CF 등이 물밀 듯이 들어오고 있다. 대중 사이에도 '강남스타일'은 핫이슈 아이콘으로 회자된다. 그러나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한 것. 그 열기가 최근 너무 과열되는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정작 콘텐츠의 주인인 싸이는 가만히 있는데 대중은 "쓸데없는 대학 축제에 시간 낭비하지 말고 빌보드 1위에 올라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라"면서 그에게 강제 출국을 명령한다. 이와 함께 싸이에 대한 다양한 담론을 차단하며 "싸이 신을 찬양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외친다. 이처럼 대중이 외치고, 바라보는 싸이의 빌보드 1위는 마치 스포츠에서 "조국의 위상을 위하여 반드시 올림픽 금메달을 따야 한다"는 논리와 하나도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이 같은 사람들의 시선에 싸이는 "꿈은 없다. 어떻게 더 꿈을 꾸느냐. 여기서 멈춰도 기쁘다. 바람이 있다면 이상한 애 말고 '한국 가수들이 콘서트를 잘하는구나' '한국 가수 진짜 무대에서 잘 노는구나' 보여주고 싶다"고 표현할 정도로 초연했다. 그만큼 세계 시장에서 지금 자신이 오른 위치가 얼마나 지속될 지는 본인도 모르고, 대중의 이런 자신을 영웅시하여 바라보는 기대 어린 시선이 불편하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강남스타일'은 남녀노소를 넘어 전 세계에서도 통할만큼 재미있고 매력적인 콘텐츠이다. 그러나 이를 받아들이고 소비하는 대중의 일방적인 응원은 오히려 아티스트에게 후속작에 대한 큰 부담만을 안겨줄 뿐이다. 그래서 이제는 단순히 '강남스타일'을 넘어 싸이라는 아티스트를 그저 팬의 한 사람으로서 응원하는 건 어떨까 싶다. 싸이는 대중이 자신에게 뭘 원하는지 영리하게 아는 능력 있는 아티스트다. '딴따라' 싸이가 보여줄 무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상훈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hello_hoon)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싸이 강남스타일 빌보드차트 YG엔터테인먼트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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