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본 레거시>의 포스터 흥행부진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 영화 <본 레거시>

▲ 영화 <본 레거시>의 포스터 흥행부진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 영화 <본 레거시> ⓒ UPI KOREA

지난 6일 개봉한 영화 <본 레거시>가 흥행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개봉 초반만 해도 기존 <본 시리즈>(이하 <본 아이덴티티>, <본 슈프리머시>, <본 얼티메이텀>을 의미한다)의 후광에 힘입어 기세 좋게 박스오피스 1위도 기록했건만, 이후 기대보다 별로라는 입소문이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그 천문학적인 제작비 1400억여 원이 무색할만큼 지릴멸렬한 성적을 보이고 있는 중이다.

<007 시리즈> 이후 21세기 첩보물의 전형으로 일컬어지던 <본 시리즈> 중의 하나이건만 이번 <본 레거시>는 왜 이토록 죽을 쑤고 있는 것일까? 단순히 기존의 감독과 주연배우가 바뀌었기 때문일까?

영화 <본 레거시>의 흥행부진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존의 <본 시리즈>의 매력을 고찰해야 한다. 결국 <본 레거시>에 대한 실망은 기존 시리즈를 통해 형성된 기대에 대한 배신감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도 기존 <본 시리즈>를 생각하지 않고 <본 레거시>만 떼어놓고 생각한다면 영화가 그리 졸작은 아니라고 평하지 않던가. 그렇다면 <본 레거시>가 놓치고 만 <본 시리즈>의 매력은 무엇일까?

<본 시리즈>의 매력, 자아 찾기

처음 <본 시리즈>가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우선 영화의 실감나는 액션에 매료되었다. 화려하지만 현실적인, 군더더기 하나 없는 몸놀림. 제이슨 본은 <007>과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와 ㄷ달리 화려한 첨단무기에 의존하지 않은 채 오로지 본능적인 감각의 몸만을 이용하여 상대방을 제압하는데 이는 많은 이들을 영화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격투의 궁극적인 쾌감은 총싸움보다 상호 간의 주먹다짐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새로운 첩보영화 <본 시리즈>의 탄생

▲ 새로운 첩보영화 <본 시리즈>의 탄생 ⓒ UPI KOREA


특히 제이슨 본의 액션이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은 영화 내용의 전개상 그가 기억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묻는 머리와 달리, 그의 몸은 위험이 닥쳐올 때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하며 킬러로서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는데 이는 그만큼 관객들의 허를 찌르며, 제이슨 본의 정체를 궁금하게 만들었다. 영화의 액션신이 단순히 볼거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도대체 제이슨 본은 누구이기에 이리도 대단한 몸놀림을 가지고 있는가?

결국 시리즈를 관통하여 제기되었던 이와 같은 의문은 3부작 <본 얼티메이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해결되었고, 그 해결의 짜릿함은 시리즈의 결정적인 약점마저도 극복하게 만들었다. 제이슨 본이 사실은 CIA가 '트레드스톤'이란 프로젝트로 만들어낸 인간병기라는 진부적인 설정이 관객들에게 크게 무리 없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사실 CIA가 여론과 청문회가 무서워 '트레드스톤'이라는 프로젝트를 폐기하고 그와 관련된 요원들을 제거한다는 게 말이 될까? 당장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국가가 그와 같은 인간병기를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본 시리즈>는 그와 같은 틈새를 자아 찾기와 관련된 훌륭한 액션들로 미끈하게 소화해 내었고, 결국 21세기 첩보 영화의 전형이라는 감개무량한 타이틀까지 획득했던 것이다.

<본 레거시>의 한계

여전한 액션 <본 시리즈>다운 액션신

▲ 여전한 액션 <본 시리즈>다운 액션신 ⓒ UPI KOREA


반면 <본 레거시>를 보자. 물론 <본 레거시>의 주인공 애론 크로스는 제이슨 본과 마찬가지로 화려하고 현실적인 액션을 선보인다. 알래스카에서, 필리핀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그의 몸놀림에서 군더더기를 찾아보긴 힘들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액션은 <본 시리즈>와 달리 그냥 한낱 볼거리에 불과하다. 제이슨 본의 액션이 곧 그의 정체성이라면 애론 크로스의 액션은 생존을 위한 수단, 딱 거기까지이다.

이는 결국 <본 레거시>가 <본 시리즈>와 달리 자아 찾기를 생략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누군지도 모른 채 몸을 움직이는 제이슨 본과 달리 애론 크로스는 자신이 누구인지, 또한 누가 자신을 해치려는지 알고 대응하는데, 이것이 <본 시리즈> 특유의 긴장감과 호기심을 앗아가 버렸다. 즉 제이슨 본이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었던 스릴러적 쾌감이 사라진 것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장르적 쾌감이 증발되면서 영화의 어설픈 설정이 눈에 들어온다는 사실이다. CIA의 '트레드스톤' 프로젝트가 발각되었기 때문에 그와 비슷한 국방부의 '아웃컴' 프로젝트를 중단시켜야 한다는 이야기 하며, 그 프로젝트의 비밀을 숨기기 위해 어렵사리 적지에 투입되어 있는 요원을 죽인다는 논리 등.

새로운 본 어정쩡한 애론 크로스

▲ 새로운 본 어정쩡한 애론 크로스 ⓒ UPI KOREA


특히 그 중 가장 실망스러운 것은 애론 크로스가 남다른 능력을 갖게 되는 과정이었다. 심지어 남보다 못한 지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계속되는 약물 투여로 일반인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가지게 된 주인공. 그것은 결국 <본 시리즈>의 주인공이 더 이상 유일무이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논리적으로, 좀 더 센 약물만 개발하게 되면 언제든 더 강력한 인간병기가 탄생할 수 있으며 계속해서 인간병기를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화에서는 이론적으로 애론 크로스보다 더 강한 인간병기가 등장하기도 한다.

게다가 주인공은 줄기세포를 직접 투여하여 약물의 주기적인 투입도 필요 없게 만들었다. 말 그대로 아주 강력한 영웅이 등장한 것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끊임없이 고민하며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국가주의의 잔학성을 고발하던 제이슨 본과 달리 주사 투입 한 번으로 반체제적인 영웅이 되어버린 애톤 크로스. 과연 감독은 그를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일까?

요컨대 <본 레거시>는 <본 시리즈>의 액션과 그 주된 틀만 가져왔을 뿐, 결정적인 부분에서 매우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던 <본 시리즈>의 인간적인 고뇌는 사라지고 현란하고 기계적인 액션만 남아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현재 <본 레거시>의 후속편이 기획되고 있다고 한다. 부디 <본 시리즈>가 초심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본 레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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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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