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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여수의 한 주공아파트가 개별난방공사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전남 여수의 한 주공아파트가 개별난방공사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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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오후 8시 30분. 전남 여수의 한 주공아파트 관리사무소 앞이 소란합니다. 집에서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 할 주민 50여 명이 관리사무소 건물에 있는 노인정에 모였습니다. 주민들은 "아파트 난방공사를 맡은 K업체가 계약서와 다른 제품을 사용해 부실공사를 했다"고 주장합니다.

또 주민들은 "입찰과정도 의문점이 많다"며 "공사 부실에 대해 K업체가 책임지고 재시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특히 이들은 "입주자대표자회의(이하 '대표자회의'라 부릅니다)와 관리사무소 소장이 특정업체를 너무 티나게 편들고 있다"며 "대표자회의 구성원인 각 동 대표들과 소장은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9개동 742세대(78.98㎡ (약24평) 복도식)가 살고 있는 이 동네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 그 밤의 소란을 거친 다음날 주민들은 대표자회의와 별도로 '○○ 단지 문제해결을위한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라 부릅니다)라는 다소 긴 제목의 조직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주민들이 주장하는 '부실시공'과 '입찰의혹'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봤습니다. 주민들은 부실시공 문제로 불량자재를 언급했습니다. 가정용 가스보일러에서 안방으로 들어가는 '피복스테인리스주름관'이 KS인증 제품이 아니라는 겁니다. 계약서에 포함된 시방서를 보면 "피복스테인리스주름관으로 KS제품을 사용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하지만 업체는 KS인증 제품을 쓰지 않았답니다.

"KS인증 핵심은 열처리, 주름관 외부 피복과 상관없어"

이 부분에서 주민들과 K업체의 주장이 엇갈립니다. 주민들은 "피복스테인리스주름관의 핵심은 스테린리스주름관이 KS인증을 받았느냐의 여부"라며 "KS인증 제품에 피복을 덧입힌 제품으로 시공해야 했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K업체 사장은 "스테인리스주름관에 피복을 입힌 '피복스테인리스주름관'으로 KS인증을 받은 제품은 없기 때문에 계약서에 따라 비인증 제품으로 시공했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서로 주장이 엇갈립니다.

스테인리스주름관을 생산하는 업체에 사정을 설명하고 의견을 들었습니다. S스테인리스주름관 생산업체 관계자는 "스테인리스주름관의 KS인증 핵심은 '열처리' 여부에 달렸다. 때문에 열처리된 스테인리스주름관을 KS제품으로 인증 받았으면 관 외부에 피복을 입혔더라도 그 물건은 KS 인증 제품으로 봐야한다"고 말합니다. 이어 그는 "반대로 주름관이 KS인증을 받지 않았으면 피복 씌운 제품도 당연히 KS제품이 아니"라고 덧붙였습니다.

오른쪽 제품이 KS인증 제품입니다.
▲ KS인증 제품 오른쪽 제품이 KS인증 제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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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업체가 사과문을 냈습니다. KS 인증 제품을 사용하지 않았음을 인정했습니다.
▲ 사과문 K업체가 사과문을 냈습니다. KS 인증 제품을 사용하지 않았음을 인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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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플 세대 KS 제품→ 검수 후 비 인증 제품→ 주민반발 후 KS 제품 시공

K업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KS인증 제품에 피복을 덧입힌 피복스테인리스주름관'으로 시공했으면 이런 말썽이 생기지 않았을 텐데, 업체가 의심살 만한 행동을 했군요. K업체가 주민들에게 부실시공했다고 지탄을 받는 이유는 한 가지 더 있습니다.

K업체는 지난 5월 22일 계약 후, 세대별 가스보일러 공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두 세대를 골라 검수를 위한 샘플 시공을 진행했습니다. 당시 샘플 시공한 세대 주름관은 KS인증 제품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검수가 끝난 뒤 K업체는 본격적인 공사를 진행하면서 700여 세대에서 'KS인증을 받지 않은 피복스테인리스주름관'을 사용해 시공했습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주민들이 들고 일어났죠. 그러자 K업체는 공사가 95%정도 마무리된 지난 8월 31일, 주민들에게 사과문을 내고 다시 나머지 40여 세대 공사를 KS인증 제품으로 마무리 지었습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주민들이 참았던 불만을 터뜨린 겁니다. 지난 3일 밤 아파트 경로당에 주민들이 모인 배경에는 이런 상황이 있습니다.

주민들은 세 번씩이나 자재를 바꾼 K업체와 이를 감싸는 대표자회의 그리고 관리사무소 소장을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그리고 K업체에게 부실 시공한 700여 세대에 대해서 재시공하고 공사에 따른 피해도 보상하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이에, K업체는 주민들 앞에서 재시공을 약속했습니다.

아파트 공사에서 이례적인 '지명경쟁입찰'을 공고했습니다.
▲ 입찰공고 아파트 공사에서 이례적인 '지명경쟁입찰'을 공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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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경쟁입찰'에서 갑자기 '지명경쟁입찰'로 변경한 이유는?

K업체와 대표자회의 그리고 관리사무소 소장이 주민들로부터 비난받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공사 입찰과정이 매끄럽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아파트 대표자회의는 입찰을 통해 개별난방공사 시공업체를 선정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처음에는 '제한경쟁입찰'로 공고를 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입찰 방식은 '지명경쟁입찰'로 바뀌었죠. 여기서 경쟁 입찰 방식에 대해 설명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경쟁 입찰은 크게 3가지로 구분됩니다. 공개, 제한, 지명경쟁 입찰방식이 있습니다. '공개경쟁입찰'은 입찰에 참가하는 자가 자격을 갖췄으면 특별한 제한을 두지 않는 방식입니다.

입찰에 참가한 자 중에서 가장 유리한 조건, 이번 경우에는 가장 낮은 공사금액을 제시한 자를 선정하는 방법입니다. 건설공사에서 흔히 이용하는 입찰방식입니다. '제한경쟁입찰'은 사업 종류별로 관련 법령에 따라 면허, 등록 또는 신고 등을 마치고 사업을 영위하는 자가 자격이 있습니다.

자격 있는 자 중에서 계약목적에 따라 사업실적, 기술능력, 자본금 등을 제한해서 공개경쟁입찰에 참가하도록 한 후 입찰에 응한 자 중에서 가장 낮은 금액을 써 낸 자를 낙찰자로 정하는 방법입니다. 이 방식은 입찰에 5인 이상이 신청해야 합니다.

지명경쟁입찰은 계약의 성질 또는 목적에 적합한 특수한 장비나 설비, 기술, 자재, 물품이나 실적이 있는 5인 이상 대상자를 미리 지명해서 내용증명우편으로 입찰에 참가하도록 하는 방식입니다. 우편을 보낸 자 중에서 3인 이상이 입찰에 참가해야 합니다. 말 그대로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 사용합니다.

계약에 필요한 각종 서류입니다.
▲ 계약서 계약에 필요한 각종 서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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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경쟁입찰, 아파트 공사에서 이례적인 일"

이번에 말썽이 된 해당 단지의 '개별난방전환을 위한 옥, 내외 도시가스배관공사 및 세대 보일러설치 및 배관 공사'는 마지막엔 지명경쟁입찰 방식을 택했습니다. 관리사무소 소장에게 지명경쟁으로 업체를 선정한 이유에 대해 물으니 "입주자대표입주자대표자회의에서 결정했다"고 간단히 말합니다.

덧붙여 그는 "수차례 제한경쟁입찰을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대표자회의 사정으로 입찰이 안 됐다"며 "대표자회의에서 의논한 결과 타 지역에 있는 업체가 공사를 맡으면 하자보수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서 지명경쟁입찰로 바꿨다"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대해 여수 지역 아파트 관리사무소 소장 J씨는 "지명경쟁입찰은 아파트 공사에서 이례적인 일로 소장이 큰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한 이유를 모르겠다"고 의아해했습니다.  입찰방식을 전격적으로 바꾼 부분도 의문이지만 더 황당한 경우는 다음입니다.

대표자회의는 지난 4월 2일 입찰공고를 내고 6개 업체를 지명해 입찰에 참여하라고 내용증명을 보냅니다. 그 결과 6개 업체가 모두 입찰에 응했죠. 업체들은 공개 현장설명회도 참여하면서 나름대로 낙찰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시방서에는 '배관자재는 피복스텐레스 주름관으로 KS제품을 사용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 시방서 시방서에는 '배관자재는 피복스텐레스 주름관으로 KS제품을 사용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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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자회의와 소장, 업체 낙찰 후 다른 시공 요구

대표자회의 의장과 관리사무소 소장은 4월 9일 열린 공개 현장설명회에서 중요한 말을 합니다. 소장은 "각 가정에 들어가는 가스 배관은 거실을 지나 베란다를 관통하도록 설계하고 이에 맞는 견적을 제시하라"고 말했습니다. 그 설명을 듣고 입찰에 참여한 업체가 견적서를 제출합니다.

그 결과 현재 공사를 시행하고 있는 업체가 아닌 H업체가 낙찰됐습니다. 낙찰가격은 3억5900만 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H업체가 낙찰 받은 후 벌어집니다. 갑자기 대표자회의 의장과 관리사무소 소장이 H업체에게 "공사를 할 때 각 가정에 들어가는 가스 배관을 거실에서 베란다로 관통하지 말고 거실 벽을 타고 베란다로 연결하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면서 공사비는 입찰 때 써낸 가격 그대로인 3억5900만 원에 시공하랍니다. H업체 사장은 갑작스런 요구를 듣고 나름대로 자재비를 계산했습니다. 거실 벽을 따라 가스 배관을 설치하면 한 가정에 배관 길이가 약 8m씩 더 늘어납니다.

이를 742세대에 모두 적용하면 약 5900m가 넘는 자재가 필요합니다. 추가된 자재비를 돈으로 계산하니 약 1000만 원이 늘어 나더랍니다. 때문에 H업체 사장은 관리사무소 소장에게 "인건비는 포기하겠지만 자재비는 줘야 한다"고 말했답니다. 하지만 대표자회의 의장과 소장은 낙찰 가격으로 공사를 하라고 고집을 꺾지 않았답니다.

H업체의 공문내용입니다.
▲ 공사입찰 선정결과 통보요청 H업체의 공문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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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자회의와 소장이 내린 결정, 입주민을 위한 결정이었나

결국, H업체 사장은 아쉽지만 공사비를 맞추기 어려워 낙찰 받은 공사를 포기하기에 이릅니다. 그 후, 공사는 부실시공 논란을 빚고 있는 K업체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럼 K업체는 낙찰가격으로 얼마를 써 냈을까요? K업체는 3억7040만 원을 써 내 두 번째 낮은 금액을 적은 업체였습니다.

대표자회의는 입찰이 시작되기 전 회의를 통해 가장 낮은 금액을 써 낸 업체가 공사를 포기하면 두 번째로 낮은 금액을 써 낸 업체에게 공사를 맡기기로 결정해 두었더군요. 때문에 K업체는 3억7040만 원에 관리사무소 소장과 계약을 맺고 개별난방전환 공사를 시행하게 된 겁니다.

우연인지는 모르나 갑작스런 설계 변경으로 늘어난 가스 배관 자재비용 1000만 원을 포함하면 2순위 K업체와 1순위 H업체 간의 입찰가격 차이가 비슷하더군요. 때문에 H업체 사장은 지난 6월 15일 K업체가 3억7040만 원에 공사를 계약했다는 말을 듣고 관리사무소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공문을 보냈습니다.

KS인증을 받지 않은 제품을 썼습니다. 베란다에서 방으로 연결되는 피복스테인리스주름관입니다. 재시공해야 합니다. 붙박이 장을 뜯어야 하고 바닥도 걷어낸 후 다시 붙여야 합니다. 복잡한 공사가 될 듯합니다.
▲ 주름관 KS인증을 받지 않은 제품을 썼습니다. 베란다에서 방으로 연결되는 피복스테인리스주름관입니다. 재시공해야 합니다. 붙박이 장을 뜯어야 하고 바닥도 걷어낸 후 다시 붙여야 합니다. 복잡한 공사가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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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대책위원회'가 '대표자회의' 권한 정지시킨 상태

하지만 관리사무소는 현재까지 아무런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답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와 입주자대표자회의는 필요할 때마다 모여 필요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모든 결정은 입주민 전체를 위한 결정이었을까요? 이곳 주민들은 그동안 관리사무소 소장과 대표자회의가 내린 결정에 의문이 많다고 말합니다.

현재, 이들은 '비대위'를 구성해 대표자회의의 권한을 정지시킨 상태입니다. K업체는 KS인증 제품과 비인증 제품을 마음대로 사용했습니다. 또, 대표자회의와 관리사무소 소장은 이해 못할 행동으로 낙찰자를 바꿨습니다. 이에 대해 관리사무소 소장은 이 모든 것이 대표자회의에서 결정한 사안이라고 설명하고, 대표자회의는 "회의를 통해 결정한 것"이라고 답변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이 문제제기하는 것에 대해 이렇다할 반박을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뉴스와 인터넷을 뒤져보니 주변의 많은 아파트들도 크고 작은 비리로 몸살을 앓고 있더군요. 이 곳 주민들 행동에 사람들의 눈과 귀를 쏠리는 이유입니다.

덧붙이는 글 | 비슷한 기사가 여수넷통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아파트 비리, #관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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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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