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의 한 장면. <남자의 자격>에 출연한 한서희씨가 역시 고정게스트로 출연 중이다.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의 한 장면. <남자의 자격>에 출연한 한서희씨가 역시 고정게스트로 출연 중이다. ⓒ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시청률이 극히 낮은 동아 종편 채널A에서 방영되는지라 낯설겠지만, 남희석이 진행하는 이 토크쇼는 새터민 여성들을 스튜디오로 초대해 북한에 대한 실상과 현재를 들어보는 콘셉트다. '탈북미녀'로 소개된 이 새터민들은 한 가지 주제를 놓고 각자의 경험과 생각들을 자유롭게 털어놓는다.

자, 여기까지만 듣고 방송인 '남희석'과 십 수 명의 '미녀들'이란 키워드로 연상되는 또 하나의 예능 프로그램이 떠오르지 않는가. <미녀들의 수다> 말이다(실제로 남아공 출신의 미녀로 인기를 모았던 브로닌이 남희석의 보조 MC로 출연하고 있기도 하다). 현재 36회까지 방영된 이 프로그램은 북한에 대한 사연이 있는 일반인과 연예인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에서 탈피, 17회 때부터 '탈북미녀'와의 집단 토크 형식으로 자리를 잡아 나가고 있다.

5일 방송된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이하 <남자의 자격>) '남자, 북녀를 만나다' 편은 이 <이제 만나러 갑니다>의 지상파로 옮겨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비단 '무산 심은하'로 소개된 함경북도 무산 출신의 신은하씨나 연극영화과에 다니고 있다는 청진 출신의 김진옥씨, 전국노래자랑 출신의 박영심씨 등 출연진이 겹쳐서 만은 아니다.

 5일 방송된 <남자의 자격>의 한 장면.

5일 방송된 <남자의 자격>의 한 장면. ⓒ KBS


새터민, 탈북자의 대표는 20대 여성?

중요한 것은 남자들의 '성장'을 모티브로 하는 <남자의 자격>의 성격에 부합하느냐다. 그간 <남자의 자격>은 친구나 지인을 초대하거나 각자 나이에 맞는 이성 친구를 찾아 주는 등 여성 게스트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왔다.

헌데 난데없이 새터민 여성이라니. 심지어 인터넷 게시판이나 포털 기사로만 접하던 '무산 심은하' '함흥 씨스타' '회령 김하늘'과 같은 작명이라니. <남자의 자격>은 초반부 '북한' '여성'을 만나기 전까지의 기대감과 인사와 소개까지 40분이란 분량을 할애 했다.

이후엔 <이제 만나러 갑니다>와 다를 바 없이 실내로 초대, 한 명 한 명의 자기소개를 듣고, 장기를 보는데 그쳤다. 여성들의 외모에 대한 칭찬은 물론이요, 이들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멤버들의 리액션도 빠지지 않았다. 그간 우리가 봐왔던 새터민 혹은 북한사람이 출연했던 방송의 관습적인 시선. 차이라면 출연진이 모조리 20대 여성이라는 점이랄까.

여기서 질문. 왜 하필 출연진을 20대 여성으로 국한 시켰을까.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김제동의 "이 방송은 왜 (김국진)형 소개팅만 하지?"라는 농담처럼 김국진을 위해? 아니면 '남남북녀'라는 오래된 명제를 이 여성들을 통해 확인하는 동시에 비주얼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혹 젊은 층인 이들이 새터민과 북한의 현재를 생생하게 전달해 줄 수 있기 때문에?

종편 <이제 만나러 갑니다>보단 부드러웠던 <남자의 자격>?

안타깝게도 이 질문들 중 5일 방송에서 도드라지게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미녀'들의 비주얼뿐이었다. 포털 주요뉴스로 배치되곤 하는 '평양 김태희'에 대한 호기심 수준과 다를 바 없었다는 말이다.

'세계 최초! 방송 최초! 남과 북의 화합을 모색하는 소통버라이어티!', <이제 만나러 갑니다> 제작진이 내건 카피다. 소통 참 쉽다. 헌데 실상이 어디 그러한가. 지난 29일 방송에서 이 종편 예능은 북한의 군대를 알아본다는 취지를 통해 미녀들의 사격시범은 물론 전국민의 군인화를 이룬 북한의 실상에 대해 '고발'했다. 예능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과 자료화면이 과히 종편만이 시도할 수 있는 파격이랄까.

<남자의 자격>에 출연한 '북한미녀'들 중 일부도 이에 맞춰 맞춤형 방송과 토크를 시전 중이기도하다. 종편에서의 군사, 정치, 사회적인 이야기와 주제만 다를 뿐이다. '남격' 제작진은 북한과 남한의 개그 차이, 멤버들에 대한 인기투표, 출연자의 장기자랑을 통해 (아마도 제작진이 궁극적인 제작의도라 내놓을 것 만 같은) 남과 북의 소통을 작은 부분부터 이뤄나가자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그러기엔 마치 외국인을 대하듯 새터민을 타자화시키는 시선을 고스란히 드러낸 <남자의 자격>은 그저 종편보단 소프트했다고 안심해야할 수준이었다.

궁금한 것은 시기다. 왜 하필 지금 <남자의 자격>이 <미녀들의 수다>의 '북한 여성판'인 <이제 만나러 갑니다>를, 그것도 중복된 출연자까지도 아랑곳 않고 '북녀를 만나다'란 주제를 가져와야 했을까(곧이어 방송된 <1박2일>은 재외동포 특집이었다). 부디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부인 이설주에 대한 쏟아지는 관심에 편승한 기획은 아니기를.

더불어 제작진은 다음 주 예고를 통해 북한의 피폐한 삶과 험난하고 목숨을 위협받았던 탈북 과정에 대해 눈물로 증언하는 출연자들의 인터뷰를 내보내기도 했다. 의아한 것은 그 화면이 <남자의 자격> 멤버들과의 대화가 아닌 제작진과의 1대1 인터뷰였다는 점이다.

만약 통일을 대비한 소통과 북한에 대한 이해라는 콘셉트를 살릴 의도였다면, 집단 토크 외에 출연자들과의 밀착을 통해 멤버들이 '북녀'들을 조금이라도 이해해나가는 과정을 연출하는 것이 적절하진 않았을까?

새로운 제작진과 멤버들을 영입하고 분위기를 쇄신 중인 <남자의 자격>. 제작진은 다음 주 '북한 심은하' 따위의 화제몰이를 의도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 만나러 갑니다>와의 차별성을, 무엇보다 제작진의 진정성을  방송을 통해 증명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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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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