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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여름을 '피서의 계절'이라 했는가. 방학 동안 한 푼이라도 더 벌어 용돈에 보태고 학비를 마련해야 하는 대학생들에게 여름은 '알바의 계절'이다. 편의점, 마트, 과외에서부터 시작해서 공장, 택배하역, 엑스트라 일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청춘들은 오늘도 땀을 흘린다. 여름방학을 맞이해 땀 냄새 물씬 나거나 좀처럼 볼 수 없는 특이한 알바 체험기를 소개한다. [편집자말]
택배 트럭의 모습
 택배 트럭의 모습
ⓒ 윤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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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 일 해보신 적 있으세요? 처음이시면 조금 힘들 수도 있어요. 그래도 뭐… 3일밖에 안 하니까 괜찮을 거예요."

아르바이트 알선 업체 직원의 말이었다. 그가 '조금' 힘들 수도 있다고 친절하게 경고해준 일은 택배 상하차 알바. 며칠 전 한 유명 아르바이트 포털 설문조사에서 '폭염 시즌 최악의 알바 3위'로 뽑히기도 했다.

이 알바는 별칭도 있다. 일명 '지옥의 알바'다. 이 살벌한 별칭을 증명하듯, 인터넷에 '택배 상하차'를 검색하면 별의별 이야기가 다 나온다. 일한 지 한 시간 만에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도망갔다는 말부터, 알바비보다 병원비가 더 나오니 하지 말라는 이야기까지. 정도는 다르지만 검색된 후기 대부분은 지옥의 알바의 '위엄'을 보여주는 글들이었다.

'지옥의 알바', 쉴틈 없이 밀려드는 수천 개의 박스들

반신반의했다. '그래도 사람이 하는 일인데 버틸 만하겠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래서 집 근처 작은 택배 터미널에서 단기알바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올라왔을 때 당장 지원했다. 대부분의 택배 상하차 알바는 그날 바로 일당을 지급하는 대신 밤새워 일해야 하지만, 이곳은 오전이나 오후에 4시간씩 3일 일하면 된다는 점도 끌렸다.

오히려 걱정했던 것은 '육체'보다 '정신'이었다. 일이 워낙 바쁘고 고되다 보니 생전 처음 듣는 욕설들을 경험할지 모른다는 지인의 귀띔 탓이다. 다행히 내가 갔던 곳은 그런 험한 분위기의 작업장은 아니었다. '가족' 같은 대우는 아니었으나 적어도 '가축' 같은 대우는 받지 않는 곳이었다.

처음 했던 일은 택배 상차였다. 트럭 위에 서서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올라오는 화물들을 트럭에 쌓는 일이다. 다행히 무거운 화물은 없었다. 대신 작은 크기의 박스 수천 개가 쉴 틈 없이 올라왔다. 같이 일하던 아저씨가 "처음인데 제일 힘든 것부터 한다"며 웃었다.

워낙 화물이 바로바로 올라오다보니, 말 그대로 허리 한 번 펴지 못하고 일했다. 그래도 무거운 물건을 드는 게 아니라 그런지 생각보다는 참을 만했다. 오히려 문제는 다른 곳에서 찾아왔다. "처음인데 잘한다"는 아저씨의 말과 무거운 화물이 아니라는 점에 방심한 탓인지 컨베이어 벨트 기계에 손가락이 끼어버린 것. '아차'하는 생각을 하며 황급히 손을 뺐지만 이미 왼손 중지와 약지 두 마디가 벨트 사이로 들어간 후였다.

다행히 약지에서 피가 조금 났을 뿐 큰 이상은 없어 보였다. 나보다 더 놀란 아저씨는 트럭 밑으로 상자가 떨어져도 괜찮으니 천천히 조심해서 하라고 당부했다. 나도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장갑을 다시 끼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놀란 탓인지 이때까진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점점 무거워지는 화물들... 압력밥솥 실은 트럭까지

끊임없이 올라오는 소화물들
 끊임없이 올라오는 소화물들
ⓒ 윤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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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에 시작한 그 일은 오후 8시가 넘어 끝났다. 이미 한편에서는 다른 트럭이 들어와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곳으로 가서 일손을 거들었다. 이번엔 1톤짜리 작은 트럭에 있는 화물들을 큰 트럭으로 옮겨 싣는 일이다. 

처음엔 잘됐다 싶었다. 컨베이어 벨트를 사용하지 않고, 작은 트럭 위의 사람이 건네주는 물건을 받아 쌓으면 되니 허리를 굽힐 일도 별로 없었던 탓이다. 게다가 뭐가 들었는지는 몰라도, 화물도 가볍고 작은 것들이었다.

그러나 오판이었다. 처음 왔던 작은 트럭의 짐을 다 옮기자 새로운 트럭이 들어왔다. 압력밥솥이 대량으로 실려 있는 트럭이었다. 크게 무겁지는 않았지만, 부피가 커서 온몸을 사용해 들어야 했다. 아까 다쳤던 손가락도 조금씩 아파왔다. 게다가 8시가 넘었는데도 더위는 가실 줄을 모른다.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됐고, 가끔 따끔거리는 것이 모기도 많은 것 같았다.

그리고 들어온 세 번째 트럭. 정체 모를 박스들이 가득했다. 내용물이 뭔지는 알 도리가 없지만 꽤나 무거운 물건들이었다. 아무래도 종이나 책 종류의 물건인 것 같았다. 반팔을 입고 있었는데 박스의 모서리에 팔이 닿을 때마다 팔에 생채기가 났다. 설상가상으로 이번엔 화물을 내릴 때마다 바코드를 찍어야 해 작업이 더욱 더뎌졌다.

택배 상하차 알바를 한다는 내게 새벽에 택배 알바를 해봤다는 후배는 "처음에는 만만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무거운 게 오더라"고 말했다. 직접 해보니 실감이 났다. 4시간짜리 알바라 망정이지 밤새 하는 일이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전치 4주, 작업은 끝나고 상처는 남았다

손가락이 낀 컨베이어 벨트 부분
 손가락이 낀 컨베이어 벨트 부분
ⓒ 윤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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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끝나고 장갑을 벗어보니 아까 컨베이어 벨트에 꼈던 손가락들이 퉁퉁 부어 있었다. 생각처럼 멀쩡하진 않은 모양이었다. 원래 3일 동안 나가기로 했던 알바지만 하루하고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었다. 부어 있는 것은 일시적인 증세지만, 왼손 약지의 뼛조각이 조금 떨어져 나갔단다. 다행히 심각한 것은 아니라 수술 없이 4주 정도 간이깁스만 하고 있으면 된다고 했다.

웬일인지 헛웃음이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 알바를 하고 내게 남은 것은
시급 6500원의 알바비와 약간의 허리 통증, 7개의 모기 물린 자국과 전치 4주짜리 진단서였다. 물론 다친 것이야 변명의 여지없이 내 부주의로 인한 사고였기에 억울한 마음도 없다.

그런데 손가락 때문에 든 진료비와 약값은 알바비의 약 3배다(물론 보험처리는 되겠지만). 처음 '지옥의 알바' 후기에서 읽었던 '알바비보다 병원비가 더 나온다'라는 말을 몸으로 인증해버린 셈이다. 한마디로, '웃펐다'. 웃기고 슬펐다는 뜻이다. 힘든 알바 해보려다 허리도 아닌 손가락이 다친 상황이 웃겼고, 한편으론 내가 체험기를 쓰는 이 야밤에도, 어떤 청춘은 그런 위험을 안고 택배일을 하고 있으리라는 사실이 슬펐다. 아픈 와중에 헛웃음이 나왔던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윤형준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프리덤 2기'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택배 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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