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천하 유아독존'

축구에 빗대본다면 이는 스페인을 두고 표현했을 때 가장 적확하게 표현되지 않나 생각한다.

유럽 축구 역사상 최초로 메이저대회 3연패(유로2008, 2010월드컵, 유로2012)를 달성한 스페인의 독주가 끊이질 않고 있다. 이번엔 아우들이 달성했다. 스페인 U-19 대표팀은 16일(이하 한국시간) 오전 에스토니아 탈린의 릴레쿨라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UEFA U-19 결승전에서 그리스를 1-0으로 꺾고 정상에 올랐다.

이로써 스페인 U-19 대표팀은 2002년 이후 무려 여섯 번째 유럽 챔피언을 차지했다. 지난 대회에 이어 두 번째 연속 우승 기록이기도 하다. 또 통산 9회 우승으로 잉글랜드와 함께 최다 우승 타이 기록을 세웠다.

이날 경기의 최고 수훈 선수는 선제 결승골을 넣은 레알 마드리드의 헤세였다. 경기 내내 주도권을 잡았으나 후반 막판까지 골이 터지지 않아 애를 먹던 후반 35분, 헤세 로드리게스의 침착한 마무리 슈팅이 골문으로 들어갔다. 헤세는 5골로 대회 득점왕에도 올랐다.

스페인의 전성기는 4년 전인 유로 2008부터 시작됐다. 2009년 남아공에서 열린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4강전에서 미국에 0-2로 지면서 3위에 랭크되어 빛이 바랬지만 이듬해 열린 남아공 월드컵 우승, 지난해 열린 UEFA U-21세 대회와 U-19 대회, 지난달 막을 내린 유로 2012와 2012 U-19 우승까지 최근 스페인이 참가한 모든 대회에서 우승 트로피를 가져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페인 축구의 근간이 된다고 하는 바르셀로나의 성적 역시 스페인 대표팀과 그 맥을 같이 한다. 2008년 이후 바르셀로나의 우승 트로피는 자그마치 14개다. 세계 최고의 대회라 일컬어지는 챔피언스리그도 두 번(2009,2011)이나 우승했고 FIFA 클럽월드컵 우승도 기록했다. 이만하면 전 세계 축구는 스페인이 '독식'하고 있다고 표현해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 같다.

현대축구의 이상향을 가장 완벽히 제시한 전술

티키 타카(Tiki-Taka), 탁구공을 치듯 짧고 재빠르게 패스를 끊임없이 시도해 볼 점유율을 높이는 스페인식 축구를 일컫는 말이다.

스페인 축구는 공통적인 강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A 대표팀을 포함한 각 연령별 대표팀은 물론 스페인의 각 클럽과 유소년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정교한 볼 컨트롤 기술과 짧고 빠른 패스 연결을 통한 중원 장악이다. 압박의 강도가 높아진 현대축구에서 '탈압박'을 하기 위한 스페인의 해법인 것이다.

이러한 스페인의 짧고 빠른 패스가 원활히 이뤄지기 위해선 공을 가진 선수의 움직임 만큼 공을 갖지 않은 선수들의 움직임이 매우 중요하다. 스페인의 축구는 공을 갖지 않은 선수들의 움직임이 매우 활발하다. 스페인 선수들은 패스를 누구에게 줄지 늘 고민하며 플레이한다. 패스를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선수가 늘 2명 이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패스를 받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이는 와중에 공간이 발생하고, 그 작고 좁은 공간에서 스페인의 공격이 시작되는 것이다.

스페인 축구의 강점은 공격 뿐 아니라 수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공을 뺏긴 이후 공격수들의 움직임이 매우 이상적이다. 최전방부터 압박을 가해 공을 빼앗아 공격을 시작하는 최초 라인을 끌어올려 '빌드업' 과정을 최소한으로 줄이겠다는 토털사커의 진화형태라고 할 수 있다.

스페인의 전술은 현대축구에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했다. 정교한 볼 컨트롤 능력을 활용한 기술축구에 압박축구가 추가됐다. 특히 이번 유럽선수권대회에서 보여준 제로톱 전술은 스페인 기술축구의 정점을 찍었다. 전문가들은 제로톱을 두고 미래의 이상적인 축구라며 아낌없이 찬사를 보냈고, 스페인은 이탈리아와의 결승전에서 완벽하고 아름다운 제로톱의 예시를 확실하게 보여줬다.

공격 시에는 공을 도무지 뺏길 줄을 모르고, 공을 뺏겼다 치더라도 최전방 공격수부터 달려들어 공을 뺏은 후 다시 볼 소유권을 유지한다. 이는 분명 현대축구에서 나올 수 있는 최고의 전술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술을 자유자재로 완벽하게 사용하는 팀은 스페인밖에 없다. 아니, 이러한 전술을 사용할 수 있는 팀이 스페인밖에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승리가 아닌 기술 향상에 목적을 둔 유소년 훈련 시스템

스페인의 세계축구 정복은 프리메라리가라는 세계 최고의 리그가 있기에 가능했다. 프리메라리가가 세계 최고의 리그가 된 것은 당연히 리그를 구성하는 클럽들 덕분이다. 그리고 스페인 클럽들을 구성하는 선수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클럽을 구성하는 선수들의 대부분이 자클럽의 유소년 출신이다. 특히 2000년대 들어 스페인의 명문 유소년 팀에서는 뛰어난 실력을 갖춘 깨알같은 유망주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스페인이 강한 것은 바로 풀뿌리 시스템에 있다. 유소년 축구가 강하다는 뜻이다. 스페인의 어린 선수들은 성인 선수들과 똑같이 훈련을 한다. 성인 선수들처럼 공수전환 훈련을 반복하고, 슈팅 이후 자신의 포지션으로 재빠르게 돌아오는 훈련을 반복한다. 이는 승리에 목적을 둔 훈련 시스템이 아니다. 그저 축구를 잘하기 위한 시스템일 뿐이다.

스페인은 1988년부터 유소년을 상대로 8인제 축구를 도입했다. 더 많이 공을 소유할 수 있게 해 기술과 패싱력을 키우기 위한 방안이다. 8인제 축구는 경기장만 조금 좁고 출전 선수만 8명으로 줄어든 축구인데, 선수의 숫자가 적기 때문에 개개인의 볼터치와 패스 횟수가 늘어난다. 이는 분명 선수의 개인 기술 발전에 도움이 된다.

8인제 축구는 특히 축구에 대한 센스와 다양한 기술을 익히기 좋은 나이인 9~12세 선수들에게 적합하다. 공을 소유하는 시간이 늘고 공수전환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기술축구를 익힐 수 있는 것이다.

1988년 도입한 8인제 축구방식에서 성장한 선수들이 바로 지금 스페인 각급 대표팀 선수들이다. 이니에스타, 사비, 실바, 파브레가스, 사비 알론소 등 이름만 들어도 숨이 턱턱 막힌다.

물론 스페인의 연령대별 대표팀의 우승 소식을 놓고 축구팬들의 의견이 갈릴 수도 있다. 청소년 대회의 성적이 유스 시스템의 건실함을 보여주는 잣대는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들은 U-20과 같은 연령대별 대회를 통해 이름을 알린 뒤 최고의 자리까지 오른 선수들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한 예로는 메시, 테베즈, 오언, 앙리, 호나우지뉴 등이 있다.

하지만 저들은 정말 제대로 성공한 선수들이고, 대부분의 청소년 스타들은 저런 위대한 선수가 되지 못했다. 사비올라나 아이마르가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그들은 U-20 대회에서의 빼어난 활약으로 세계적인 클럽에 입성했으나 이렇다 할 큰 활약을 보이지는 못했다.

그러나 스페인의 경우는 다르다. 1999년 FIFA U-20 대회 우승 명단에 사비와 카시야스의 이름이, 2002년 UEFA U-19 대회 우승 당시 명단에 이니에스타와 토레스의 이름이 있다. 2004년 우승 명단에는 라모스와 실바의 이름을, 2006년 명단에서는 후안 마타와 제라드 피케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스페인 축구의 연령대별 우승이 유스 시스템의 건실함을 보여주는 잣대로 증명될 수 있는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대한민국이 스페인에게 배울 수 있는 것들

대한민국은 이미 스페인 축구의 모방을 시도하고 있다. 그들의 유스 시스템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기 위해 백승호, 이승우, 장결희 등 3명의 유망주들이 FC 바르셀로나 유스팀에서 활동 중이다. 알메리아에는 김우홍과 김영규도 있다. 최근 '슛돌이' 이강인이 발렌시아 유스팀에 들어갔고, 그 지역 출신이거나 인연이 없으면 경기에 뛸 자격을 부여하지도 않는 팀인 빌바오 유스에도 김대연을 포함한 한국 청소년이 4명이나 있다.

또한 내년부터 유소년을 상대로 8인제 축구를 도입하여 유소년의 볼 컨트롤과 기술 향상에 큰 힘을 쓸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소년의 8인제 축구는 장기적인 관점으로 내다봤을 때 분명 한국축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K-리그의 팀들도 스페인 전술 따라잡기에 나섰다. 포항과 제주, 성남이 이미 스페인의 '제로톱' 따라잡기에 나섰다. 전문적인 골잡이 없이 골을 마무리 짓는 데서 한계를 느꼈고, 과도한 활동량으로 후반 체력 소모가 많아 단점이 많이 노출됐지만 포항의 경우 지난 수원과의 경기에서 5-0으로 크게 승리하며 '제로톱'의 효과를 톡톡히 봤다.

물론 세계최고 스페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맹신하고 죄다 끌어다가 쓰는 것은 잘못된 자세이다. 그러나 분명 스페인은 우리가 가지지 못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이는 분명 최근 유소년 클럽 시스템이 자리를 잡은 K리그가 스페인의 교육 방식과 육성 모델을 참고해야 할 이유이다.

스페인 U-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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