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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프 네이더의 〈슈퍼리치만이 우리를 구할 수 있다〉
▲ 책겉그림 랄프 네이더의 〈슈퍼리치만이 우리를 구할 수 있다〉
ⓒ 꾸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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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마치 영화 <어벤져스>를 보는 느낌이었다. 무너져가는 미국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모두가 제 살을 깎는 모습이었다. 17명에 달하는 미국의 '슈퍼리치'들이 그 주동자들이었다. 죽기 전에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겠다는 '기부서약 캠페인'(Giving Pledge)에다, 최저임금제를 보장하고, 국민건강보험법을 입법하고,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물리는 세제 개혁안을 통과시키다니,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일까?

'현실유토피아'란 그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대기업이 좌지우지하는 금권정치를 뛰어넘어 공동체적 가치를 복원케 하는 '대전환 프로젝트' 말이다. 비록 '공상'이긴 하지만 기부의 왕인 워런 버핏과 빌게이츠 같은 슈퍼리치들이 뭉치면 못할 일도 아니다. 피도 눈물도 없다던 대 자본가들이 말년에 착해지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80세에 가까운 랄프 네이더의 <슈퍼리치만이 우리를 구할 수 있다>(꾸리에 펴냄)에 들어 있는 시각이 그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시장을 떠받치고 있는 '하부경제'를 강화해서 기득권층이 방기하고 있는 고용문제를 해결할 획기적인 방안을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들이 지닌 영향력이라면 여러 부문에서 돌파구를 뚫을 회사를 새로 만들 수도 있고 사들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재생 에너지와 유기농 식품 개발, 폐기물 순환시스템, 의료 협력체계, 노숙자들을 위한 주택 제공 프로그램, 대중을 일깨우는 텔레비전과 라디오, 인터넷 프로그램의 제작과 유통, 가계 예산을 고갈시키는 악덕 마케팅의 대체에 이르기까지 실현가능한 사업의 영역을 설정하고 즉각적으로 실행해가야 합니다."(43쪽)

기득권을 손에 넣고 있는 이들이 사회개혁을 부르짖은 일이 있었나? 그렇다. 전쟁 영웅인 아이젠하위 대통령도 군산복합체를 비판하고 제제를 가한 바 있다. 보수 공화당 출신인 루스벨트도 부자들의 전횡을 비판한 것으로 유명하다. 모두 이 책에 명시된 내용들이다. 네이더가 설계한 '국가개혁 프로젝트'가 설득력을 얻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는 왜 그런 프로젝트를 꿈꾼 걸까? 단지 '소비자보호운동' 차원에서? 아니면 네 차례나 출마했던 대통령의 꿈을 다시 그려보고자? 그런 흐름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더 큰 차원이 있는 것 같다. 국민이 없으면 슈퍼리치들도 존재할 수 없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다국적 자본과 국가 국민은 별개라는 생각 때문이다. 국가 국민이 없다면 다국적 자본도, 슈퍼리치들의 존재 의미도 유명무실하다는 뜻이다.

이 책의 첫 장에서 워런 버핏이 그런 감동적인 행동을 자아낸 것도 그 때문이다. 2005년 9월에 불어 닥친 뉴올리언스의 카트리나 피해, 그 때 버핏은 직접 손발을 걷어 부친 채 고통당하는 이들의 손을 잡고 위로한다. 정부의 늑장 대응과 복구 지연이 큰 이유였다. 그런 일이 일어날 경우를 대비하고, 보다 나은 미국의 대전환을 꾀하기 위해 2006년 1월 그는 미국 하와이의 마우이섬에서 억만장자 16명을 불러놓고 회의를 주도한다. 기부와 자선에 모두 앞장선 인물들로 말이다. 국가가 못 하는 일들을 그들이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축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마우이 원주민들은 사회개선론자들의 업적에 경의를 표하고 마우이 전통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가 끝나자 17명의 어린이들이 앞으로 나와 사회개선론자들의 뺨에 가볍게 입맞춤을 하고는 목에 재스민으로 엮은 화한을 걸어주었다. 그런 후 할레아칼라 국립공원의 경비대장이 '미합중국 국민들의 정의를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으신 여러분을 영원히 기리며'라고 외치고는 할레아칼라 분화구의 격조 높은 조각품들을 사회개선론자들에게 선물했다."(538쪽)

계획을 갖고, 정부와도 싸우고, 국민들과 연대하는 것, 그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하여 일궈낸 성취다. 그야말로 꿈같은 일도 현실가능하다는 걸 보여준다. 물론 어디까지나 '소설'에 불과한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들이 주도한다면, 과연 누가 따라나서지 않겠는가? 그들이 솔선수범한다는데 말이다.

과연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흐름이 가능할까? 대한민국 사회의 슈퍼리치들이 재산상속 대신에 '기부서약 캠페인'에 동참하고, 비정규직들에게도 최저임금제를 동등하게 보장하고, 국민건강보험을 일관되게 유지토록 하고,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물리는 세제 개혁안을 통과시킨다면, 어떻게 될까? 국민브랜드인 안철수도 실현하고 있으니,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다만 우리의 슈퍼리치들이 합류하고 연대하는 게 큰 과제일 것이다.


슈퍼리치만이 우리를 구할 수 있다

랄프 네이더 지음, 강경미 옮김, 꾸리에(2011)


태그:#슈퍼리치, # 〈슈퍼리치만이 우리를 구할 수 있다〉, #랄프 네이더, #안철수, #‘기부서약 캠페인’(GIVING PL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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