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주민감사를 청구한 '교과서넷 구마모토' 소속 회원들이 의견 진술에 앞서 자료를 검토하는 등 긴장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주민감사를 청구한 '교과서넷 구마모토' 소속 회원들이 의견 진술에 앞서 자료를 검토하는 등 긴장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심규상

관련사진보기


18일 오전 9시 일본 규슈 구마모토(熊本) 현청 신관 3층 청문실. 교과서네트 구마모토 소속 회원 10여 명이 자리를 잡았다. 얼굴마다 긴장감이 묻어났다.

이 단체 소속 회원을 비롯한 114명은 구마모토현 교육위원회가 역사왜곡이 심한 이쿠호샤(育鵬社)판 공민교과서 부교재를 선정해 3곳의 현립중학교에 내려 보내자 지난달 17일 사용을 중지해달라며 '주민감사'를 청구했다. 일본 시민들이 교육위원회의 교과서 선정을 문제 삼아 주민감사를 청구한 것은 에히메(愛媛)현을 비롯 두 곳뿐으로 이례적인 일이다.

이날 청문은 감사를 청구한 주민 측 의견을 듣기 위해 마련됐다. 2명의 감사위원(마스미 위원, 우치다 변호사)과 5명의 사무직원이 참석했다. 방청객은 모두 10명으로 제한했다.

"교과서 채택 과정 무너뜨리는 폭거"

하타다 미즈코(65)씨는 문제의 이쿠호사판 공민교과서 부교재의 위험성을 분석한 내용으로 방청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하타다 미즈코(65)씨는 문제의 이쿠호사판 공민교과서 부교재의 위험성을 분석한 내용으로 방청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 심규상

관련사진보기

모두 3명에게 진술기회가 주어졌다. 첫 의견 진술은 하타다 미즈코(65)씨가 시작했다. 그는 "공립고교에 38년, 사립학교에 3년 모두 41년 간을 영어교사로 근무했다"며 "하지만 지금처럼 현교육위원회가 현장교사의 의견을 묻지 않고 독단적으로 부교재를 채택한 일은 처음 접한 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부교재 등 교육교재 선정은 현장교사들의 의견을 모아 매우 신중히 결정하고 있다"며 "그런데도 현교육위원회가 현내 어느 시정촌(한국의 시군구) 교육위원회에서도 선택하지 않았던 이쿠호샤판 공민 부교재를  강요한 것은 교과서 채택 수순을 무너뜨리는 폭거"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교육기본법(제16장)의 '공정하고 적정한 교육행정'과도 거리가 멀 뿐만 아니라 현립 학교 관리규칙(제 8조)이 정한 '학교장은 교과용 교재에 대해 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규정에도 어긋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방교육행정 조직 및 운영에 관한 법률(제33조)에도 교재사용과 관련 '교육위원회에 제출,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돼 있어 현 교육위원회 역할은 현장에서 올라온 의견을 관리 승인하는 것임이 명확하다"고 덧붙였다.

"이쿠호샤판 부교재, 가르쳐서는 안 될 위험한 내용"

부교재 비용에 대해서도 "부교재 구입비는 학생들이 부담해야 하는데도 현민들의 세금으로 한 것은 현교육위원회가 나서 교육현장의 혼란을 야기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하타다씨가 무엇보다 우려한 것은 부교재 내용이다. 그는 감사위원들에게 공민교과서 부교재를 페이지별로 펼쳐 보이며 조목조목 "위험한 교과서 내용"을 열거했다.

"직접 부교재를 구입해 살펴보니 위험한 내용일 뿐만 아니라 사실과도 다르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공민 과목은 학생들이 균형적인 감각과 평화의식을 갖춘 시민을 키우는 데 목적이 있다. 때문에 무엇보다도 전쟁을 반성하고 헌법정신을 살리고 있는 교재를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선정된 이큐호샤판 공민부교재는 또다시 시민들을 전쟁으로 이끄는 시대착오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먼저 국민주권에 대한 내용이 매우 희박하다. 다른 출판사 교재에 비해 천황사진 이 훨씬 많고, 오바마 미 대통령이 천황에게 깊이 머리 숙여 인사하고 있는 사진을 의도적으로 크게 실어 천황의 권위를 부각시키려는 인상이 짙다. 이런 교재를 보면서 아이들이 어떻게  스스로가 주권자라는 인식을 갖게 되겠는가.

기본적인 인권조차 경시하고 있다. 채택된 부교재에는 다른 교과서와 달리  집단을 위해서는 개인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다는 내용을 강조하고 있다. 평화를 부정하고 국방을 강조하는 내용도 위험하다. 부교재는 자위대 탄생과정을 자세히 다룬 후 병역의무를 헌법으로 하고 있는 다른 나라의 사례를 예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평화는 군사력으로 밖에 지킬 수 없다는 인상을 심어 주고 있다. 게다가 일본국기와  국가에 충성을 강제해 과거 전쟁을 긍정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전쟁을 좋아하는 아이들로 자라나지 않을 까 걱정된다. 전쟁을 경험한 시민들과 전쟁 통에 끌려온 재일한국인 입장에서 볼 때 고통스러운 내용이다.

특히 탈핵 여론에도 불구하고 원자력에너지의 장점만을 다루고 심지어 '군사보장(핵무장)까지 종합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기술하고 있는 것은 너무나도 무서운 일이다. 독도 문제 등 영토문제를 일방적으로 기술해 남의 나라와의 대립을 부추기고 있다. 그러면서도 실업자 및 노동자 권리에 대해 매우 간단히 취급하고 있다."

그는 "위험한 내용에다 선정과정도 위법"이라며 "현 교육위원회와 교육장은 즉각 부교재 결정을 취소하고 구입비 지출을 백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나카 노부유키 "현민 세금으로 부교재 구입, 법률 근거 없다"

하타다 미즈코(65)씨가 감사위원들에게 논란이 되고 있는 이쿠호샤판 공민교과서 부교재를 펼쳐 보이며 문제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하타다 미즈코(65)씨가 감사위원들에게 논란이 되고 있는 이쿠호샤판 공민교과서 부교재를 펼쳐 보이며 문제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 심규상

관련사진보기


방청석 청중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진술에 나선 다나카 노부유키씨도 부교재 선정 과정의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학교 현장 어디에서도 공민 교과서 부교재로 이큐호샤판을 요청한 사실이 전혀 없다"며 "그런데도 현교육위원회가 독단으로 이를 강요한 것은 '지방교육행정법'과 '현립학교 관리규칙'에 명백히 위반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어 "부교재 구입비를 현민들의 세금으로 한 것은 법적 근거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마지막 의견 진술에 나선 이 단체 대표인 호리 코타로(58, 구마모토 대학 교육학부 교수)씨는 현교육위원회의 일방적 결정은 '교사의 직업상 자유 침해'라는 논지를 폈다. 그는 "교원의 지위에 관한 법령에 따르면 '교원은 학생들이 적합한 교재선택을 통한 지도방법을 판단할 각별한 자격을 갖도록' 돼 있다"며 "현장 교사의 의견을 무시한 현교육위원회의 일방적 결정은 전문직인 교원의 직업상 자유를 명백히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특히 구마모토현과 29년째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한국의 충남도와의 관계를 해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충남에서는 시민단체, 도의회를 비롯 도지사 등이 일제히 항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만큼 문제의 부교재 채택은 양 지역 간 평화선린 외교를 위해서도 바람직 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호리 코타로 대표 "충남도와 선린관계 해칠 수 있다" 우려

주민감사를 청구한 호리 코타로 대표(오른쪽, 교과서 넷 구마모토)가 현감사위원회 직원과 감사 청구자료를 확인하고 있다.
 주민감사를 청구한 호리 코타로 대표(오른쪽, 교과서 넷 구마모토)가 현감사위원회 직원과 감사 청구자료를 확인하고 있다.
ⓒ 심규상

관련사진보기


이들은 두 시간 가까운 의견진술을 통해 한 목소리로 "위험한 부교재를 법령을 무시해 선정한 일이 용인돼서는 안 된다"며 현 감사위원회의 현명한 판단을 요청했다.  

의견을 들은 감사위원들은 "학교 현장에서 해당 부교재를 요청한 사실이 정말 없었냐"고 묻는 등 부교재 선정과정을 재차 확인했다.  구마모토 지역 신문 및 방송에서도 이날 의견진술 전 과정을 취재하는 등 관심을 보였다.

현 감사위원회의 감사결과는 내달 26일 경 나올 예정이다. 방청객들은 "위법성이 분명한 만큼 감사청구 취지가 인용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한편 가바시마 이쿠오(蒲島 郁夫) 구마모토현지사는 최근 안희정 충남지사의 문제의 부교재 사용중지 요청에 대한 회신을 통해 "(부교재 선정은) 독립된 교육위원회가 결정하게 한 일로 현지사가 관여할 입장이 아니다"며 거절의 뜻을 밝혔다.


태그:#구마모토현, #역사왜곡, #주민감사청구, #법령위반, #이쿠호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