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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노조 사무실 밖에 걸려있던 'MBC 국민의 품으로'라는 문구가 적혀있던 현수막.
 MBC 노조 사무실 밖에 걸려있던 'MBC 국민의 품으로'라는 문구가 적혀있던 현수막.
ⓒ 김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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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여기서 말하기는 곤란해요. 노조 사무실 가서 이야기 하죠."

16일, 문화방송 복도를 지나는 도중 MBC 조승원 기자는 숨죽이며 말했다. <제대로 뉴스데스크>(이하 제대로 뉴스) 편집은 비밀리에 이루어지는 '전투'였다. 현장 사진 촬영은 물론, 편집 장소 언급도 '취재 불가'였다. 이게 다 김재철 MBC 사장 때문이다. 조 기자는 "김재철 사장이 조합원을 고소할 수 있고, 보도에 동원된 장비를 빼앗거나 편집 장소를 봉쇄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1월 시작한 MBC 노동조합 파업이 100일을 넘겼다. MBC 파업은 서울과 지역을 포함한 전체 조합원 1900여 명 중 130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파업과 함께 시작한 MBC 노조 파업 방송 <제대로 뉴스>도 어느덧 12회를 맞았다.

파업에 동참한 205명의 조합원들이 만드는 <제대로 뉴스>는  첫회 조회수만 10만을 돌파했다.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MBC 직원 44명이 제작하는 <뉴스데스크>는 시청률 약 1~2%대를 기록하고 있다. SNS 등 인터넷으로 유통되는 상황을 감안하면 <제대로 뉴스>의 조회수는 결코 적은 수치가 아니다. 

국내 역사상 가장 긴 언론사 파업을 진행하는 MBC 노조. "진정한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나기 위한" 분투는 오늘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특명, 김재철 사장의 고소를 피하라

"저희도 찍는 거 아니죠? (우리 사진 나가면) 고소 당해요.(웃음) 아, 서글픈 농담이다."
"기사 사진을 보고 <제대로 뉴스> 편집에 사용된 사무실 출입을 막을 수도 있고, 사진에 나온 기자는 고소당할 수도 있어요. 소송으로 사람 혼을 빼놔 파업의 전력을 상실하게 하려는 거죠."

'고소왕'. 전국언론노동조합 MBC 본부(MBC 노조)는 김재철 사장을 이렇게 부른다. 김 사장이 <제대로 뉴스> 내용을 문제 삼아 자신의 대학 후배인 입사 3년차 김민욱 기자 등 조합원을 잇따라 고소했기 때문이다.

방송 한 편을 편집하기 위해 MBC 노조는 빈 사무실을 찾아다녀야 했다. MBC 1층에 위치한 노조 사무실은 많은 사람으로 소란스러워 작업 장소로 적합하지 않았다. 어렵게 찾은 빈 사무실에서도 CCTV를 흰 종이로 가리는 등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노트북과 개인 카메라가 그들의 방송 장비였다.

<제대로 뉴스데스크> 편집 현장의 모습이다. 촬영은 개인카메라, 동영상 편집도 개인 노트북으로 이루어졌다.
 <제대로 뉴스데스크> 편집 현장의 모습이다. 촬영은 개인카메라, 동영상 편집도 개인 노트북으로 이루어졌다.
ⓒ 김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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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가내수공업' 형태로 방송을 만들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1분 방송을 위해 예전에는 10분을 투자했다면, 이제는 1시간 이상을 투자해요. 회사장비 사용했다가 걸리면 빼앗겨요. 거의 10년 이상 일한 프로들이 아마추어 장비로 일하다 보니 오히려 더 쩔쩔매네요."

<제대로 뉴스>를 총괄하는 조승원 기자의 말이다. 그는 15년차 베테랑 기자다. <제대로 뉴스> 방송 취재진도 상시가 아닌 '게릴라' 조직이다.

"<제대로 뉴스>를 만드는 정규조직이 있는 것은 아니고, '너 시간되냐'라고 물어서 시간 되는 사람끼리 모여서 만들어요. 일할 공간이 없으니 빈 사무실 있으면 이용하고, 없으면 집과 PC방을 이용해요."

카메라도 디지털 카메라 정도면 양호하다. 대부분은 스마트폰으로 촬영한다. MBC 취재기자 권희진 차장의 스마트폰에는 그간 찍은 수많은 영상물이 들어 있다. 권혁용 카메라 기자는 "내가 갖고 있는 디지털 카메라가 그나마 쓸만하고, 작업은 대부분 집에서 한다"고 말했다.

소형 MP3가 녹음 마이크 "시설은 문제되지 않아"

방송장비의 열악함은 <제대로 뉴스>에 참여하는 아나운서 조합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뉴스> 12회 녹음을 위해 1994년 MBC에 입사한 김범도·김상호 아나운서를 비롯해 올해 5월 수습을 뗀 신입 아나운서들까지 한 곳에 모였다. 임신 중인 이주연·방현주 아나운서까지 참여했다. 20여 명의 아나운서가 한 곳에 모였지만, 주어진 장비는 녹음 기능이 있는 소형 MP3플레이어 하나였다.

"지난 <제대로 뉴스> 1~4회 보도 뒤 김재철 사장이 김정근 아나운서를 고소했어요. 이후 다른 아나운서 조합원들이 '우리 모두를 고소 하라'며 집단적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이렇게 참여해 주니 참 고맙죠."

보직 사퇴 후 파업에 동참한 전동건 선거기획방송 부장은 "한곳에서 보기 힘든 MBC의 얼굴들이 거의 다 모였다"며 아나운서들이 똘똘 뭉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아나운서들의 회동 역시 일급 비밀이었고 사진 촬영 역시 금지였다.

MBC 아나운서 조합원들의 큐시트 종이. 각 단락을 나누었던 흔적이 담겨있다. 그나마 담을 수 있던 현장 모습이다.
 MBC 아나운서 조합원들의 큐시트 종이. 각 단락을 나누었던 흔적이 담겨있다. 그나마 담을 수 있던 현장 모습이다.
ⓒ 김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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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추 아나운서의 지휘 아래 녹음 분량은 한 단락씩 일사불란하게 나눠졌다. 아나운서 조합원들은 어느새 큐시트를 드고 연습에 들어갔다. 방음조차 되지 않는 빈 사무실이었다. 빈 초콜릿 상자 위에 꽂힌 MP3플레이어가 녹음 마이크를 대신했다.

"너무 혼을 담았더니 머리가 띵하네." (하지은 아나운서)
"으아, 진짜 100년 만에 하니깐 '음식점' 발음이 안 되더라." (이정민 아나운서)

녹음을 마치고 나오는 아나운서의 입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아쉬운 소리가 터졌다. 열악한 녹음 환경에 대해 박경추 아나운서는 "시설은 중요하지 않다, 어떤 내용이 담기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겠다는 약속 지킬 것"

"답답하다. 당장 취재해야 하는데, 이러고 있다."

녹음 후 편집 중이던 취재기자들 눈에 때마침 터진 민간인 사찰 관련 추가 문건 보도가 들어왔다. 기사를 읽으며 "이건 영화다"라며 "대박!"을 외치던 그들은 어느새 한숨을 내쉬었다. 당장이라도 취재해 보도하고 싶은 맘이 크지만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조합원 모두 방송하고 싶은 맘이 절실하죠. '김재철 체제'를 끝내고 복귀하면 만들고 싶은 뉴스의 상이 <제대로 뉴스>예요. '그동안 다루지 못했던 것을 파헤쳐 보자'며 조합원들이 적극 동의해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뜨거운 첫 반응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정신없이 MBC 사옥 여러 층을 오가며 막바지 편집을 이어가던 조승원 기자는 담담히 말했다.

16일 오후 사측은 여의도 MBC 보도국에서 시용 기자 채용 반대 농성을 벌이려는 노조를 제지하기 위해 보도국으로 연결되는 모든 통로를 봉쇄한다고 적힌 알림판을 설치했다.
 16일 오후 사측은 여의도 MBC 보도국에서 시용 기자 채용 반대 농성을 벌이려는 노조를 제지하기 위해 보도국으로 연결되는 모든 통로를 봉쇄한다고 적힌 알림판을 설치했다.
ⓒ 김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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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들의 바람과 달리 사내 분위기는 험악했다. MBC 노조는 투명인간처럼 자신들의 흔적을 남기지 않고 <제대로 뉴스>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많게는 20년 이상 자신들의 손길이 묻은 방송 장비와 사무실이지만, 지금은 오로지 회사의 것이다.

오후 4시쯤, 사내 방송으로 얼마 전 MBC 노조를 탈퇴하고 방송에 복귀한 최대현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보도국에서 시위가 예상됨에 따라 뉴스의 정상적인 방송을 위하여 일부 출입구를 폐쇄한다"는 내용이었다. 5시부터 MBC 기자회의 보도국 농성시위가 예정돼 있던 상황이었다.

이윽고, 5층 보도국으로 연결되는 모든 통로가 봉쇄됐다. 1년 시용 후 정규직 전환을 조건으로 건 경력 기자 채용 방침에 반발하는 노조의 움직임을 제지하기 위해서다. <제대로 뉴스>를 편집하던 기자들은 사내 방송을 듣고 "최대현 아나운서 목소리네" "이게 무슨 일"이냐고 한숨을 내뱉었다.

지난 2월 <제대로 뉴스데스크>가  MBC 김재철 사장의 법인카드 사용 내역 의혹을 제기했다.
 지난 2월 <제대로 뉴스데스크>가 MBC 김재철 사장의 법인카드 사용 내역 의혹을 제기했다.
ⓒ MBC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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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역시 냉랭하다. 총선 이후 이들을 향한 국민의 관심이 식어간 탓이다. "MB 임기 말이 돼서야 파업을 하느냐"고 비판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에 이재훈 기자는 "반은 억울하고, 반은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2010년에도 39일간 파업했고, 보도되지 않은 여러 투쟁들이 사내에서 계속 있었어요. 그때까지는 회사 '공정방송협의회'를 통해 어느 정도 (김재철 사장을) 견제를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2010년 파업 패배 이후, 김재철 체제에서 <뉴스데스크>와 시사 프로그램들은 더욱 망가졌어요. 공영방송 MBC가 무너졌습니다."

조승원 기자는 "파업의 장기화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확실한 것은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우리가 이긴다는 겁니다. 물론 패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우리의 파업은 '정의'이며, 이기지 못한다 하더라도 공영방송에 대한 '의지'는 확고히 남을 겁니다."

이어 그는 "현재 MBC 노조는 서로가 서로에게 힘을 얻고 있다"며 "우리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반드시 확인하고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16일부터 MBC 보도국은 사측에 의해 철제 셔터까지 내려져 완전 폐쇄됐다.

"배현진-양승은 복귀, 개인 선택이라 존중하지만..."

MBC 노조가 만드는 파업 방송 <제대로 뉴스데스크> 11회 화면 갈무리. 현재 <뉴스데스크>에 남아있는 인원은 44명, 불공정 보도에 항거해 거리로 나온 파업 인원은 205명이다.
 MBC 노조가 만드는 파업 방송 <제대로 뉴스데스크> 11회 화면 갈무리. 현재 <뉴스데스크>에 남아있는 인원은 44명, 불공정 보도에 항거해 거리로 나온 파업 인원은 205명이다.
ⓒ 제대로 뉴스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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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아나운서 노조를 탈퇴하고 <뉴스데스크> 앵커석으로 돌아간 배현진·양승은 두 아나운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이번 일로 아나운서 노조의 사기가 꺾이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이에 16일 <제대로 뉴스데스크> 녹음 현장에서 박경추·김정근 아나운서를 만났다.

박경추 아나운서는 "원망의 감정보다는 오히려 올라간 그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두 아나운서는) 파업 동참할 때, 공영방송을 반드시 회복해서 올라가자며 앵커석에서 내려왔다"며 "그러나 그들은 공영방송이 회복되기도 전에 경제적, 인간적, 간부들의 회유 등 다른 이유들로 앵커석에 올라갔다"고 말했다.

김정근 아나운서는 "아나운서 노조의 대오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며 "100일이라는 긴 파업을 고려하면 복귀하는 사람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아나운서라는 직업상 더 눈에 띄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개인의 선택이니 존중해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배현진 아나운서가 MBC 사내게시판에 "그 어떤 대상에도 일방적으로 끌려다니지 않겠다"라고 언급한 것에 대해 김정근 아나운서는 "파업 동참은 그 누구의 권유에 의해 끌려간 선택이 아닌 엄연한 민주주의 절차에 따라 이루어진 자발적 선택"이라고 꼬집었다.

박경추 아나운서는 "(파업 동참이) 선배들에 권유에 의해 의도치 않게 끌려간 선택이었다면 지금 '앵커석에서 내려오라'고 하면 내려와야 할 것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김정근 아나운서는 "우리들도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고 얼른 방송에 복귀하고 싶다"며 "그러나 일터로 돌아가는 것보다 붕괴된 공영방송을 회복시키는 것이 우선이다. MBC가 국민의 품으로 돌아갈 때까지 끝까지 이곳에 남겠다"고 말했다.


태그:#MBC 파업, #제대로 뉴스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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