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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치의 위기, 노동정치의 실종."

김세균 서울대 교수는 19대 총선과 그 이후의 국면을 이렇게 평가했다.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를 비례대표 1번으로 내세웠던 진보신당은 불과 1.1%의 득표율을 얻어 등록이 취소됐고, 통합진보당은 부정선거 논란으로 당내 갈등이 격화되면서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쌍용자동차에서 발생한 22번째 죽음 등 여러 노동현안이 19대 총선에서 논쟁의 대상이 되지 못하면서 노동정치 역시 실종됐다.

진보교연이 주최한 ‘19대 총선, 그리고 노동정치와 진보정치’ 토론회에서 김세균 서울대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진보교연이 주최한 ‘19대 총선, 그리고 노동정치와 진보정치’ 토론회에서 김세균 서울대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 김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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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후 7시 금속노조 회의실에서 '진보세력 연대를 위한 교수-연구자모임'(진보교연) 주최로 토론회가 열렸다. '19대 총선, 그리고 노동정치와 진보정치'를 주제로 열린 이날 토론회에서는 19대 총선을 평가하고,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논의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김세균 서울대 교수와 김종철 진보신당 부대표, 노중기 한신대 교수, 박세준 현장노동지회 집행위원장, 전병덕 현장실천노동자연대 부의장 등이 참석해 진보정치와 노동정치가 맞이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했다. 

"통합진보당의 위기는 예정된 것... 야권연대가 패배 원인"

이날 발제를 맡은 김세균 교수는 현재 통합진보당이 맞은 위기와 관련해 "국민참여당과 합당하면서 진보정치의 독자성을 잃었을 때부터 위기가 내재돼 있었다"며 "야권승리를 위해 의식적으로 '탈노동' 정당으로 자신을 부각시켜 총선에서 노동의제를 소실시키는 데에 앞장섰다"고 통합진보당을 비판했다.

김 교수는 이어 "어떤 경우든 통합진보당을 노동자정당 성격을 가진 진보정당으로 개조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고 분석했다.

"통합진보당이 당권파 중심으로 재편되거나, 당권파와 비당권파가 어설프게 타협하면 당이 정치적으로 사망할 것이다. 비당권파가 당권을 잡으면 대외적 신망은 회복하겠지만, 당권파의 반발 때문에 지도부의 지도력이 손상되고 국민참여당계의 발언권이 높아져 우경화가 심해질 것이다."

노중기 한신대 교수 역시 "이번 총선 결과 때문에 위기가 온 것은 아닌 것 같다"며 "총선 결과 전에 이미 위기의 징후가 다 있었다"고 말했다. 노 교수는 "통합진보당 사태는 2008년 진보신당 분당 때와 본질적인 내용이 같다"고 덧붙이며 현재의 부정선거 논란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야권연대에 대한 비판도 쏟아졌다. 배성인 한신대 교수는 "계속 야권연대 필요성을 이야기하는데 DJP 연합만 선거연합으로 승리했다"며 "총선 결과는 만날 수 없는 세력끼리 만났던 걸 확인시켜줬다"고 비판했다. 이종회 사노위 중앙집행위원도 "민주노총이 민주통합당과 정책협약하면서 노동자 투쟁 자체를 억압했고, 선거공학으로 변하면서 박근혜가 살아날 수 있는 근거를 줬다"며 "야권연대가 결정적 패인이라고 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노총이 노동정치를 망치고 있다"

이날 사회를 맡은 손호철 서강대 교수는 "노동자 정당을 위한 노력은 이번 총선을 계기로 실패로 일단락된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그 실패는 이번 총선 패배 때문이 아니라 1997년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시작했을 때부터 내재됐다는 게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김세균 교수는 "민중운동진영에서 만든 정당이 민중승리 21도 아니고 국민승리 21이 뭐냐"면서 "민중해방, 노동해방이란 말도 꺼내기 힘든 분위기였다"며 "논의지형이 이미 우경화된 상태에서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어 "투쟁의 성과를 바탕으로 간 게 아니라 오히려 투쟁의 성과를 줄이는 형태로 나갔다"고 평가했다.

노동자 정당의 중요한 축이었던 민주노총에 대한 불신도 터져 나왔다. 박세준 현장노동지회 집행위원장은 "민주노총이 과연 노동정치에서 자기 역할과 자기 목소리를 냈는가, 노동자를 대변하는 자기 위치를 만들어 왔는가"라는 의문을 표했다. 전병덕 현장실천노동자연대부의장 역시 "결국 민주노총 스스로가 노동정치를 망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이 현장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대안은 마땅치 않다는 것이 전반적인 분위기였다. 노 교수는 "조직화된 민주노총을 우회하거나 배제하고 노동자 정당을 만드는 게 가능할까,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한다는 말도 있지만 그게 얼마나 현실적일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 중앙집행위원도 "민주노총을 어떻게 규정하고 관계 맺을지 난감하다"며 "많이 고민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좌파운동은 지역운동과 결합해야 한다"

기존의 노동자정당을 만들기 위한 시도가 실패했다는 진단 하에 새로운 노동자정당을 만들자는 대의에는 참석자 모두 공감했지만, 3시간이 넘는 토론에도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쉬이 답이 나오지 않았다. 다만, 지역운동과 결합해야 한다는 원칙은 확인했다.

김종철 진보신당 부대표는 "민주노동당의 좌파 활동가들이 지역에서 조직하고 활동하는 것들이 경기동부연합이나 인천연합에 못 미쳤다"며 지역 활동이 부족했음을 자성했다. 김 부대표는 "우리는 지역정치를 하려는 사람들을 어떻게 먹여 살릴지 고민하는데 NL들은 실제로 그걸 해왔다"면서 "그런 부분은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손 교수 역시 "좌파운동이 지역운동과 결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LA 청소노동자들의 예를 들며 "미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도시에서 청소노동자들의 파업이 승리한 이유는 지역 정치와 결합했기 때문"이라며 "결국 선거구가 지역 단위기 때문에 지역 운동과 결합하지 않고는 선거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태그:#진보정치, #노동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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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15기 인턴기자. 2015.4~2018.9 금속노조 활동가. 2019.12~한겨레출판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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