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선수는 이번 아이스 쇼에서 2개의 새 갈라프로그램을 선보였다.

김연아 선수는 이번 아이스 쇼에서 2개의 새 갈라프로그램을 선보였다. ⓒ 정혜정

지난 6일 오후,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특설 아이스링크. 역대 올림픽 챔피언과 세계선수권대회 우승권자들이 대거 참가한 '이원(E1) 올댓스케이트 2012' 아이스 쇼 마지막 날 2부 공연에 김연아(22·고려대)가 연보라색 하늘하늘한 드레스를 입고 등장했다.

영국 가수 아델의 <썸원 라이크 유>(Someone Like You)가 흐르고, 김연아는 이별의 아픔을 겪는 여인이 돼 온몸으로 애절한 연기를 펼쳤다. 더블 악셀(두 바퀴 반 회전 점프)등 고난이도의 기술과 특유의 감성 연기가 어우러진 공연이 끝나자 관객들은 탄성과 함께 일제히 기립박수를 보냈다. 환호에 답하던 김연아가 왈칵 눈물을 쏟았다.

"글쎄 딱히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오늘이 마지막 공연이고, (감정이) 북받쳐서 눈물이 났던 것 같아요."

공연 후 기자회견에서 김연아는 웃으며 눈물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9개월 만에 선 무대에서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챔피언다운 최고의 기량을 선보인 김연아. 그녀는 뿌듯함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번 공연에서 선수들은 이벤트를 통해 미리 선발된 일반인과 무대에 동반 입장했다. 세계적인 선수들과 손을 잡고 얼음 위에 오른 팬들은 선수들을 따라 스파이럴(한쪽 발로 활주하기)을 하는 등 보기 드문 장면을 선보였다. 세계적인 스케이터와 국내 피겨 꿈나무들이 적절히 섞인 이번 공연의 출연진은 관객들의 감탄과 응원을 최대로 이끌어낼 수 있는 조합이었다는 평이다.

피겨여왕, 보디가드 4명 거느린 '보스'로 변신

김연아는 1부에서 검은색 헐렁한 재킷과 딱 맞는 바지에 검은 모자를 쓴 '껄렁한 보스'의 모습으로 무대에 올랐다. 에반 라이사첵(27·미국), 패트릭 챈(22·캐나다), 스테판 랑비엘(27·스위스), 김진서(16·오륜중) 등 4명의 남자 선수가 '보디가드'로 출연했다.

김연아는 건들건들한 동작과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지질하지만 귀여운 남자'를 표현해 관객의 웃음과 환호를 끌어냈다. 캐나다 가수 마이클 부블레의 <올 오브 미>(All of me)에 맞춰 스핀(회전)과 스파이럴을 이어가던 김연아는 모자를 가슴에 얹고 이너바우어(허리를 뒤로 젖힌 채 활주하는 기술)를 선보였다. 이때, 관중석에서는 탄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김연아는 기자회견에서 "최대한 남성적이고 힘 있는 모습을 보여주려 연습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밴쿠버올림픽 남자피겨 금메달리스트 에반 라이사첵은 2007년 김연아가 연기한 <록산느의 탱고>(El Tango de Roxanne)를 남성 버전으로 재해석했다. 위아래 검은색 의상을 입고 얼음판에 나온 라이사첵은 훤칠한 외모에 과감하고 거침없는 점프를 선보이며 여성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2012 세계피겨선수권대회 우승자인 패트릭 챈은 안무가 데이비드 윌슨의 작품 <매니쉬 보이>(Mannish Boy)를 통해 귀여운 외모 뒤에 숨겨온 남성미를 아낌없이 드러내 큰 박수를 받았다. 챈은 기자회견장에서 "늘 좋은 반응을 보여주는 한국 팬들 앞에서 '매니쉬 보이'를 연기할 수 있어 기뻤다"고 밝히기도 했다.

쑥쑥 성장하는 김진서 '스타성' 현장 확인

올해 초 열린 'KB금융그룹 코리아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뒤 김연아 소속사와 계약한 김진서 선수는 그룹 빅뱅의 <판타스틱 베이비>(Fantastic Baby)에 맞춰 매력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공연 시작과 동시에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낸 김진서는 관중석으로 손 키스를 날리는 등 천연덕스런 모습으로 '스타성'을 드러냈다.

"항상 보기만 했던 공연에 제가 선다는 생각에 한 달 전부터 떨렸어요. 첫 공연인데도 많은 박수와 환호를 보내주셔서 기분이 정말 좋았고요. 세계적인 선수들과 함께 연습하면서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기자회견에서 김진서가 한 말이다. 김연아는 김진서에 대해 "스케이트를 시작한 지 몇 년 안됐는데도 (큰 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잘 하고 있다"며 "처음 아이스 쇼에 섰는데도 즐겁게 타는 모습을 보고 너무 뿌듯했다"고 칭찬했다.

국내에서 처음 선보인 아이스 아크로바틱 공연도 관객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블라디미르 베세딘과 올레세이 폴리슈츄크 팀은 잔잔한 음악 <백조의 호수>(Swan Lake)와는 어울리지 않는 우스꽝스런 동작들을 진지하게 연기해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파트너의 등을 밟고 어깨 위로 올라가 스케이트 날로 머리를 찍으려는 시늉을 하는 등 아슬아슬하면서도 익살스러운 연기가 나올 때마다 관객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다양한 볼거리로 관객층 넓히기 성공

  6일 마지막 공연 후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포토타임을 가진 선수들. (오른쪽 부터) 패트릭 챈, 김진서, 데이비드 윌슨, 김연아, 스테판 랑비엘, (페어팀) 제이미 살레 & 데이비드 펠티에.

6일 마지막 공연 후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포토타임을 가진 선수들. (오른쪽 부터) 패트릭 챈, 김진서, 데이비드 윌슨, 김연아, 스테판 랑비엘, (페어팀) 제이미 살레 & 데이비드 펠티에. ⓒ 정혜정


사흘 동안 펼쳐진 이번 아이스쇼에는 2만5000여 명의 관중이 몰렸다. 친구와 함께 왔다는 김경례(63)씨는 "아이스쇼에 온 건 처음인데 나이 많은 우리가 즐길 수 있을 만큼 분위기가 좋았다"고 관람 소감을 밝혔다. 김씨는 기억에 남는 무대로 김진서의 공연을 꼽고 "어린 선수가 떨지도 않고 어찌 그리 잘하는지, 공연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저절로 좋아지더라"며 "다음에 아이스쇼가 또 열리면 다시 찾을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친동생과 함께 공연장을 찾은 김아무개(37)씨는 아이스 쇼를 보기 위해 연차휴가를 내고 부산에서 올라왔다고 말했다.

"김연아 선수는 피겨의 새로운 기준을 세운 존재죠. 제가 살면서 가장 영감을 많이 받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지난해 여름에 아이스 쇼를 본 후 자꾸 생각나서 다시 오게 됐어요."

국내 피겨 선수들도 공연장을 찾았다. 이벤트에 당첨돼 공연 첫날 2008 유럽피겨선수권대회 은메달리스트 스테판 랑비엘과 동반 입장한 김하은(18) 선수는 "랑비엘 선수가 '떨지 말라'며 계속 말 걸어주고 재미있게 해줘서 긴장을 풀고 잘 마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국가대표 조경아(16) 선수는 "태릉선수촌에서 연아 언니가 연습하는 것을 봤을 때는 <썸원 라이크 유>가 마음에 들었는데, 공연장에서 보니 <올 오브 미>가 더 좋았다"며 "아니, 그냥 연아 언니가 하는 것은 다 좋다"고 평했다.

'피겨 낙원'이라는 주제로 펼쳐진 사흘간의 아이스 쇼는 데이비드 게타와 어셔가 함께 부른 <위드아웃 유>(Without You)에 맞춰 선수와 관객이 함께 '낙원 댄스'를 추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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