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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TV리모컨을 손에 쥐고 황금시간대에 채널 독점권을 행사하며 아내의 원성을 샀던 것이 한두 해도 아니고 주말이면 나들이 핑계로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야구장을 찾았던 적도 부지기수다. 어디 그뿐이랴, 응원하는 팀이 서울에서 경기를 할라치면 팀 단합대회를 명목으로 후배들을 이끌고 야구장을 찾았던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뉴스는 시청을 하지 않더라도 늦은 시간 케이블채널에서 하는 프로야구 하이라이트는 꼭 봐야 했고 그것도 모자라 야구에 대한 글까지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던가? 눈으로 보고 듣는 야구는 2% 부족했고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의 심리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글을 쓴다는 것에도 한계를 느꼈다.

"축구 잘 하시던데 야구해볼 생각 있으세요?"
"야구요? 하고는 싶은데 받아주는 팀이 있을까요?"

"정말 하고 싶으세요? 그럼 우리 팀에서 뛰실래요?"
"글쎄요. 뛰는 건 문제가 아닌데 팀에 가서 민폐나 끼치지 않을까 모르겠네요."

3년 전, 당시 10년 넘게 매주 축구를 즐겼던 나에게 야구는 그렇게 찾아왔다. 물론 운동을 좋아하고 야구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야구를 경험해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에 다시 야구를 시작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야구를 할 기회를 쉽게 얻을 수 없을 것 같아 굳은 마음으로 결정했다.

물론 아내의 성화는 대단했다. 매일 야구를 보고, 글을 쓰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야구를 직접 한다고 하니 이를 곱게 봐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러나 아내는 내 뜻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내 분신과도 같았던 축구화를 신발장에 올려놓고 "다치면 무조건 끝이야!"라는 협박과 함께 얄미운 남편을 위해 마련한 야구화를 건넸다.

마음은 이종범이었지만, 현실은 달랐던 첫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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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키스의 추억이 그렇듯 처음이라는 단어는 왠지 모르게 느낌부터 다르다. 축구화를 벗고 야구화를 처음 신고 운동장에 나섰던 그날. 마음은 이종범이었지만 현실은 너무도 달랐다. 낯선 그라운드도 문제였지만 사실 경기에 대한 결과보다는 어떻게 경기를 했는지 그리고 경기가 어떻게 끝났는지 모를 만큼 긴장 속에서 경기를 마무리했던 기억뿐이다.

주변인들에게 사회인야구를 한다고 하면, 대다수 사람들은 어렸을 적 동네야구를 추억하며 자신이 야구를 정말 잘 하는 것처럼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쯤에서 해주고 싶은 말은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 눈으로 보는 것과 직접 하는 것은 확실히 다르고 마음은 20대인데 몸은 그렇지 않듯 야구는 할수록 어렵고 또 그만큼 짜릿함도 크다.

무엇보다 그라운드의 가장 높은 곳인 마운드에 올라 상대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울 때의 짜릿함과 타석에서 비록 홈런은 아니지만 안타를 치고 2루, 3루를 훔칠 때 그리고 상대 타자의 타구를 잡아 아웃시킬 때의 희열은 오로지 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야구의 최고의 매력이다.

또 하나, 기록의 스포츠로 불리는 야구는 사회인야구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비록 1심제이기는 하지만 경기는 전임심판이 진행하고 별도의 기록원이 그날 있었던 경기내용을 모두 기록한다. 물론 프로야구처럼 공 하나하나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아니지만 안타와 도루, 삼진, 볼넷 등 프로야구에서 관리되는 대부분의 기록을 관리하고 경기가 끝나면 마치 성적표를 받아드는 것처럼 개인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나의 주적은 부상... 아내에게 최고의 적은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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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운동이 그렇듯 운동을 즐기는 이들에게 있어 가장 큰 적은 부상이다. 특히, 야구의 경우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투수의 공에 맞아서 부상을 입기도 하고 타구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부상을 입기도 한다. 하지만 다치는 것이 두려워서 운동을 그만두는 사람은 드물다. 부상의 공포보다는 야구가 주는 매력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구를 하면서 가장 큰 적이 부상이라는 내 말과는 다르게 아내가 말하는 최고의 적은 술이다. 운동을 하면서 다치는 것은 어쩔 수 없고 또 이해를 할 수 있지만 운동하러 갔다가 술을 마시는 것은 이해를 하지 못한다고 한다. 물론 그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일주일을 참고 기다리고 운동을 갔다가 술을 마신다면 운동을 한 보람이 없기 때문이다.

단순히 야구를 즐기는 것을 떠나 건강 유지의 목적도 있는데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남편을 반갑게 맞아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하지만 아내가 싫어하는 것을 알면서도 경기가 끝나면 승패를 떠나 그날 경기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게 된다. 처음에는 허기를 달랜다는 명목으로 '밥만 먹고 들어갈게'라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지만, 그 자리는 쉽게 끝나지 않고 밤늦도록 이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당신은 야구를 하는 목적이 운동이야? 아니면 술 마시러 가는 거야?"
"배고파서 밥 먹다가 한잔하고 또 끝나고 나서 얘기하다 보면 술 한 잔 할 수 있지."
"매번 이렇게 술 마시고 오면 어떻게 해? 또 한 번만 이렇게 술 마시고 들어오면 야구장비 다 갔다 버릴 거야!"

남편이 쉬는 주말만을 손꼽아 기다린 아내는 야구를 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술까지 마시고 들어온 남편이 달갑지는 않을 터, 아내의 핀잔은 더욱 심해진다. 어쩌면 야구를 하는 내가 가장 관심을 가져야할 부분은 부상이 아니라 술 때문에 마음이 상한 아내의 마음을 풀어주는 것 아닐까 싶다.

야구의 위상은 높아지고 있건만, 현실은 제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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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고의 인기스포츠임을 자부하면서도 전용구장 하나 없는 프로야구의 열악한 인프라와 현실은 마치 부모에게서 가난이 대물림 되듯 유소년야구 뿐만 아니라 사회인야구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이미 WBC와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며 야구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사회인야구팀 또한 많이 생겨났지만 그 위상에 비해 야구 인프라는 매년 제자리 걸음이다.

리그에 참여하지 않거나 리그경기가 없는 사회인야구팀이 주말에 경기장을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다. 반면 축구의 경우 야간에도 경기를 할 수 있는 시설이 많고 조기축구도 인조잔디 구장이 아니면 매치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경기장 시설은 둘째치고라도 그만큼 야구를 할 수 있는 공간조차 턱없이 부족하다.

때문에 매년 초 대부분의 사회인야구팀은 1년 단위로 리그에 가입해서 경기를 치른다. 물론 전국단위 규모의 대회도 많이 생겼지만, 제대로 된 리그를 찾아 가입하는 것은 쉽지 않고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반면 이런 사회인야구의 열악한 현실을 역으로 이용해 리그비만 받아 챙기고 사라지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왜 사회인 야구는 이닝제가 아니고 시간제로 이렇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렇게 하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그래요."
"그래도 이 금액에 이렇게 많은 경기를 하는 리그는 찾아보기 힘들어요."

사회인 야구팀들이 리그에 참여를 하는 이유는 안정적인 경기일정 확보를 위해서다. 하지만 한정된 인프라는 경기일정을 빡빡하게 만들고 대다수 사회인야구리그는 프로야구처럼 이닝 수 제한이 아닌 두 시간 단위로 경기가 치러지고 있다. 프로야구의 화려함 속에 감추어진 척박한 현실, 하지만 이마저도 고맙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 사회인야구의 현실이다.

때로는 투구에 맞기도 하고 타구에 맞기도 한다. 물론 맞으면 아프다. 하지만 치고 달린다. 손끝에 느껴지는 짜릿함을 아는 이상 야구를 쉽게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프로야구는 일주일에 여섯 번을 만날 수 있지만 내가 하는 야구는 일주일에 단 한 번이다. 만약 비라도 오면 일주일을 더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도 왜 그렇게 야구를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야구 해보셨어요? 못해 보셨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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