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영화의 흥행은 분명 한국 영화계의 경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외화는 상대적으로 위축된다면 과연 바람직한 현상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최근 한국영화가 점점 강세를 보이는 동안 국내에 수입되는 외화는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있었다. 물론 이 와중에서도 할리우드 거대 배급사를 낀 대작은 예외였다. 국내 영화시장을 대기업 배급사가 쥐고 있는 상황처럼 자본력을 바탕으로 직접 배급했기 때문이다.

위기감을 느끼는 쪽은 중소규모의 한국 외화 수입사였다. 해외 각지에서 양질의 영화를 발굴해 국내에 소개하는 이들이 갈수록 시장에서 밖으로 밀려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드림웨스트픽쳐스의 이범수 대표. 영화 수입을 위해 아메리칸 필름 마켓(American Film Market, AFM)을 찾았을 당시 모습.

드림웨스트픽쳐스의 이범수 대표. 영화 수입을 위해 아메리칸 필름 마켓(American Film Market, AFM)을 찾았을 당시 모습. ⓒ 이범수


"한국영화가 대세라는데 요즘 같아선 외화 시장은 공멸하겠더라고요. 건전하게 외화가 들어오고 배급돼야 하는데 왜곡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오죽하면 외화쿼터를 만들어줬으면 하는 심정이었으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드림웨스트픽쳐스 이범수 대표의 말은 충분히 귀담아들을 만하다. 신생 수입업체로 작품성과 대중성을 골고루 가미한 수작들을 꾸준히 국내에 소개해왔던 그였기 때문이다.

그간 이범수 대표는 다큐멘터리 <축구의 신 : 마라도나>를 시작으로 2011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개막작이었던 <뮤직 네버 스탑>, 조셉 고든 래빗 주연의 휴먼 드라마 <50/50>, 캐서린 헤이글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물 <원 포 더 머니> 등을 국내에 들여왔다.

모두 관객들에게 호평을 받은 좋은 작품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50/50>을 제외하면 개봉관을 제대로 만나지 못했다.

'눈 가리고 아웅' 국내 배급 시스템..."이해는 하지만 도가 지나쳐"

 드림웨스트픽쳐스의 첫 수입 작품인 다큐멘터리 <축구의 신: 마라도나>

드림웨스트픽쳐스의 첫 수입 작품인 다큐멘터리 <축구의 신: 마라도나> ⓒ 드림웨스트픽쳐스

좋은 이야기로만 풀기엔 이범수 대표를 비롯한 외화 수입자에게 국내 영화 시장은 매우 아쉬운 상황일 법 했다. 그중에서도 배급의 벽이 가장 컸다고 한다. 중소기업이자 국내 영화가 아닌 외화 수입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특별한 보호장치 없는 현 배급체제에선 시장논리 중심으로 각 대기업 배급사의 입맛과 취향대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제작도 하고 배급까지 하는 시스템이잖아요. 물론 입장을 바꾸면 자기 영화를 챙기는 거 이해는 가죠. 하지만 외화를 소개하는 입장에선 관객에게 분명 반응이 있는데도 제대로 걸리지 못하면 영화를 사온 값도 제대로 못 찾게 돼요. 우리뿐만 아니라 산업 구조적으로 홍보업체와 인쇄업체까지 연쇄로 피해를 보는 상황입니다."

15만 관객이 들었던 <50/50>은 흥행작에 속했다. 그러나 <원 포 더 머니>는 쓰라린 참패였다. 국내 배급시스템의 냉혹함이 원인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외화 한 편이 국내 개봉을 하면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과 상영관 수를 협의한다. 전국에 수많은 극장 체인 별로 1개 관을 온전하게 배급받으면 상황은 매우 좋은 편. 그러나 중소 외화는 보통 교차 상영, 이른바 '퐁당퐁당' 개봉으로 관객들에게 노출되기 쉬운 상황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개봉해 관객들에게 호평을 받은 영화 <50.50>

지난해 11월 개봉해 관객들에게 호평을 받은 영화 <50.50> ⓒ 드림웨스트픽쳐스


보통 국내 박스오피스 1위에서 3위까지 작품들은 상영관을 4개에서 1.5개까지 배급받는다. 상영관 1개 관을 배급받는다는 건 하루 1개 관이 10회 상영을 한다고 치면 해당 회차 모두 영화 상영을 보장받는 걸 말한다. 배급사에서 배려해 10회 중 7회를 보장(0.7개)한다고 해도 중소 외화는 저녁 프라임 타임을 제외한 이른 오후, 혹은 심야로 배정받는 경우가 많단다.  

"개봉 직후 표 예매율과 좌석점유율을 보고 그 이후 상영관 수를 조정하는데 구조적으로 심야와 이른 오전에 누가 영화를 볼까요. 당연히 저조하죠. 그러면 첫 주에 150개의 스크린 수를 확보했다 하더라도 이후엔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에요."  

미안한 이야기였다. 최근 영화진흥위원회 통계를 보면 한국영화의 점유율은 꾸준히 증가해 올해 1분기는 60.8%를 기록했다. 관객 수와 수익률 역시 역대 최고. 한국영화의 성장세가 원동력이라지만 이 과정의 이면엔 상대적인 외국 영화의 위축이 있었던 게다.     

올해 아카데미 수상에 빛나는 작품들도 국내에선 조용히 사라졌다. 작품상 부문 5관왕에 빛나는 <아티스트>, 기술 부문 5관왕의 <휴고>,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철의 여인>까지 말이다. 개봉 당시 90개~100여개였던 이 영화의 스크린 수는 2주도 채 안 돼 절반에서 3분의 1 수준으로 크게 떨어졌다. 아카데미 수상작이 이러한 상황이다. 이범수 대표의 말은 충분히 곱씹어 볼만 하다. 

한국 영화? 영국과 미국도 뚫을 수 있다...목표는 콘텐츠의 글로벌 제작 

 지난해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던 영화 <뮤직 네버 스탑>의 한 장면.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음에도 당시 영화는 개봉 직후 상영관 확보의 어려움으로 금새 내려야 했다. 뇌종양에 걸린 아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아들이 좋아했던 음악을 들으며 헌신적인 사랑을 기울이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지난해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던 영화 <뮤직 네버 스탑>의 한 장면.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음에도 당시 영화는 개봉 직후 상영관 확보의 어려움으로 금새 내려야 했다. 뇌종양에 걸린 아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아들이 좋아했던 음악을 들으며 헌신적인 사랑을 기울이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 드림웨스트픽쳐스


국내 영화 배급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지만 이범수 대표의 진짜 꿈은 더 높은 곳에 있었다. 바로 국내 영화 콘텐츠의 해외 진출이었다. 싸이더스 연출부 출신으로 영화에 눈을 뜬 후 영국에서 영화를 공부하면서 얻게 된 꿈이었다.

"우리 콘텐츠가 좋은 게 너무 많은데 그간 할리우드에서 판권을 다 사갔잖아요. 언어적 한계를 극복하기 어렵겠지만 우리 정서를 담은 영화를 리메이크 하는 부분은 바람직한 성장이라고 봐요. 저 역시 영국에서 그걸 시도했었습니다.

영국은 할리우드보다 제작비가 싸요. 동시에 미국과 함께 아카데미상을 탈 수 있는 유일한 나라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보면 영국배우를 많이 써요. 연기를 잘하면서도 영국배우들이 더 싸기 때문이에요. 스태프도 마찬가지고요. BBC 드라마를 편집하는 친구가 스필버그 감독에게 연락이 와 함께 작업한다더라고요. 그만큼 교류가 많아요.

잘만 만들면 세계 시장으로 올라가는 게 쉬울 수 있기에 글로벌 비즈니스를 시작한 겁니다. 할리우드는 시스템에 들어가야 하지만, 영국에선 사람으로 시장을 뚫을 수 있거든요. 이미 한국 공포영화의 리메이크 작업을 시도했었어요. 중간에 소통의 문제로 잠시 중단하긴 했지만 유수의 제작사와 작업할 수 있는 역량이 있으니 언제든 시도할 수 있어요."

인터뷰 중 이범수 대표는 한때 미국에서 마치 한국 작품의 판권을 수집하듯 사갔는데 현재 어떻게 진행이 되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그만큼 국내 콘텐츠의 해외 제작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영국의 정서와 한국의 정서가 통하는 지점을 그는 영화별로 비교하기도 했다. 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은 <빌리 엘리어트>, <라디오 스타>는 <러브 액추얼리>의 한 에피소드와 상통한다면서 말이다.

"영국에 가면 한국 영화가 상당히 많은데 호러와 스릴러가 대부분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한국엔 박찬욱 감독과 김기덕 감독만 있는 줄 알아요. 개인적으로 안타깝습니다. 본래 우린 드라마 영화가 강하잖아요. 각색을 거치면 충분히 영국에서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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