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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손잡고 영화관에 갔다. '인디다큐페스티발 2012'. 엄마 대학동창 아줌마가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영화관에 도착하니 엄마 대학동창 아줌마들이 많이 계셨다.

외국인 노동자 밴드를 소재로 한 <우리가 원하는 것>이란 영화, 엄마 때문에 약간의 의무감으로 영화관을 찾은 나는, 나처럼 엄마를 따라온 엄마 친구 딸 한 명을 만나서 그제야 마음을 놓았고, 우리는 시끄러운 엄마들 '흉'을 보면서 꾸역꾸역 자리에 앉았다.

'외국인 노동자'가 소재라 지루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영화는 볼만했다. 밴드를 했던 경험 때문인지 그들이 '외국인 노동자'라는 사실보다 '밴드'를 한다는 사실에 더 집중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영화에 빠져들었다. 가끔 심하게 흔들리는 화면이나 줌인·줌아웃이 잦아서 눈이 아프긴 했다.

 지난 달 28일 폐막한 '인디다큐 페스티발 2012'

지난 달 28일 폐막한 '인디다큐 페스티발 2012' ⓒ www.sidof.org


두 번째 영화...결국 나는 잠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노래가 좋았다. 노래를 통해 외국인 노동자의 현실을 알리는 그들의 취지도 좋았다. 그러나 길었던 상영시간에 비해서 영화가 그들의 깊은 이야기까지는 전해주지 못했던 것 같다. 언어 문제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촬영자가 그들을 심도 있게 인터뷰하는 세심함이 부족해 보였다.

오랜 시간에 걸쳐 국가를 넘나들며 촬영을 한 노력은 보였지만 그만큼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기에는 부족했다. 짧은 질문과 대답으로 몇 마디 나누는 모습보다는 그들이 땀 흘리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더 와 닿았다.

좀이 쑤실 때쯤 첫 번째 영화가 끝나고 두 번째 영화 <그의 이름은 도시>가 시작됐다. 역시 음악에 관한 영화였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에 비해 매우 정적이었다. 나는 잠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영화가 생각보다 금방 끝나버렸다. 나중에 엄마한테 들어보니 엄마는 두 번째 영화가 가장 좋았다고 한다. 주거 문제를 주제로 한 영화라는데, 생각해 보니 영화 도입부 '철거' 표시가 붙은 쓰러져 가는 건물이 비춰진 것이 기억난다.

그러다...모녀를 빵빵 터지게 만든 <오징어와 복면>

 인디다큐 페스티발 2012 국내신작전을 통해 상영된 <오징어와 복면>

인디다큐 페스티발 2012 국내신작전을 통해 상영된 <오징어와 복면> ⓒ www.sidof.org

그리고 세 번째 영화 <오징어와 복면>이 시작됐다. 시작부터 나와 내 옆에 앉은 '엄친딸'의 눈을 사로잡았다. 우리 또래 남자아이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잘생기지는 않았지만 첫 번째 영화의 외국인 노동자 아저씨들이나 두 번째 영화의 랩하던 언니들보다는 훨씬 관심이 갔다.

속초 남자애들 4명이 '오징어와 복면'이란 밴드를 만들었지만 망했다는 내용. 영화는 네 명이 서로 서로를 인터뷰하고 함께 이야기하는 장면을 담았다. 서로 조금씩 정도는 다르지만 음악과 밴드에 대한 어느 정도의 관심과 열의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 조금씩 차이 때문에 균열이 생긴다.

그들은 영화 내내 일관된 솔직함으로 그들의 심경을 고백했다. 인터뷰만으로 구성돼 있어 지루할 법도 한데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영화관은 '빵빵' 터졌다. 나와 '엄친딸'도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그런데 문득 '이 영화를 엄마들도 좋아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지극히 20대 초반인 우리 세대의 언어로 이뤄져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언어로 하는 우리의 대화 방식을 여과 없이 보여줘서 왠지 부모님 세대들은 눈살을 찌푸릴 것 같아 걱정이 됐다. 슬며시 고개를 돌려 엄마들이 앉아 있는 곳을 봤는데, 웬걸? 엄마들은 우리보다 더 크게 웃고 있었다.

엄마의 '아줌마 정신', 실제 멤버들과 기념사진까지

영화가 끝나고 엄마와 아줌마들에게 물어보니 그들은 <오징어와 복면>이 어떤 인간관계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다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함께 무언가를 할 때 일어날 수 있는 갈등이지, 꼭 청년 세대의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평소에 내가 털어놓는 이야기를 통해 청년 세대의 문제에 관심이 많은 엄마는 <오징어와 복면>에 담긴 청년 세대의 애환도 읽어냈다. '오징어와 복면' 밴드에 균열이 생긴 것에는 밴드를 제대로, 열심히 하고 싶어하는 멤버와, 밴드는 취미로 할 뿐 대학생이 돼서 할 수 있는 여러 활동에 더 시간을 쏟아야 된다는 멤버 사이의 생각 차이가 크게 작용했다.

나도 밴드를 할 때 겪었던 문제다. 결국 밴드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싶어하던 친구는 우리 밴드를 나가서 전문 밴드에 들어갔다. 나를 포함한 나머지 멤버들은 밴드는 가끔씩 하고 학교 공부와 취업 준비에 전념하다가 모두 3, 4학년이 된 지금 밴드는 해체됐다. 하고 싶은 일을 그저 취미로만 해야 하는, 그것이 청년 세대의 현실이다.

 '오징어와 복면' 멤버들과 '엄친딸', 그리고 나.

'오징어와 복면' 멤버들과 '엄친딸', 그리고 나. ⓒ 문해인


영화가 끝나자 외국인 노동자 밴드, 랩하던 언니들, 그리고 '오징어와 복면' 멤버들을 모두 실물로 볼 수 있었다. (자느라 얼굴들 제대로 못 봤던 랩하던 언니 빼고) 영화에서 보던 얼굴들을 실제로 보니 매우 반가웠다.

엄친딸과 내가 오징어와 복면 멤버들을 좋아하자 엄마는 아줌마 정신을 발휘해 '오징어와 복면' 멤버들을 불러다 우리와 사진을 찍어 주었다. 나도 감독과 배우와 사진을 처음 찍어 보지만, 그들도 관객들과 사진을 찍어보기는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엄마 친구 영화감독 아줌마 덕분에 찾은 영화관에서 엄마들과 딸들은 저녁을 즐겁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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