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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은 노천박물관이다. 곳곳에 숨어있는 다양한 부처들을 만날 수 있다.
 경주 남산은 노천박물관이다. 곳곳에 숨어있는 다양한 부처들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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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천년 고도 경주

경주를 천년고도라는 말을 한다. 그곳에 가면 아주 오래된 흔적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학창시절 수학여행부터 수차례 다녀왔지만 여전히 다시 가고 싶은 곳이 경주다. 천년의 세월을 이야기하고 옛 사람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곳이다.

지난 1일 경주를 찾은 이유는 불국사나 석굴암이 아닌 남산을 오를 생각에서였다. 남산이라면 우리 동네에도 있을 정도로 흔한 산 이름이다. 물론 경주에도 있다. 경주에 있는 남산은 그냥 남산이 아니다. 경주 남산일원은 사적 제311호로 지정되어 신화와 역사가 깃들어 있는 산이다.

남산은 옛 서라벌의 남쪽에 있다고 하여 남산이라 하고 금오봉(468m)과 고위봉(494m) 두 봉우리와 50여 개의 골짜기로 이루어져 있다. 골짜기 마다 많은 불교 유적이 남아있어 산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그래서 일명 노천박물관이라고 말한다.

경주 남산을 보려면 등산을 해야 한다. 많은 문화유적이 곳곳에 숨어있어 보물찾기를 해야 할 정도다. 산길을 오르다 만난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은 이정표에 노란 글씨로 새겨진 것을 찾아보라고 한다. 물론 산행을 해야 하니 쉬운 일만은 아니다.

바위능선 타고 남산 최고봉인 고위봉으로

출발은 용장마을에서 시작한다. 고민이다. 갈림길에서 용장사지로 가면 고위봉을 갈 수 없고, 고위봉 길을 선택하면 용장사지를 볼 수 없다. 보려고 하면 못 볼 것도 없지만 산 능선에서 아래로 한참을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가는 것은 쉽지가 않은 일이다.

경주 남산 이정표. 노란 표지판을 따라가면 남산의 보물을 만날 수 있다.
 경주 남산 이정표. 노란 표지판을 따라가면 남산의 보물을 만날 수 있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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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최고봉인 고위봉으로 가는 길. 암릉지대를 줄을 타고 올라간다.
 남산 최고봉인 고위봉으로 가는 길. 암릉지대를 줄을 타고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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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용장사지를 포기하고 남산 최고봉인 고위봉으로 오르기 위해 이무기 능선을 선택한다. 고위봉까지 2.2㎞를 가야한다. 소나무 숲을 지난다. 진달래가 분홍빛으로 반짝거린다. 이 계절에 가장 아픔다운 색이다. 가파르게 올라가는 소나무 숲길을 벗어나면 바위지대다. 남산의 하얀 화강암들이 불쑥불쑥 앞을 막고 있다.

줄을 잡고 오르는 곳도 있다. 내려가는 곳도 줄을 잡고 가야한다. 줄을 잡고 뒤로 돌아서 내려오는 게 쉽지는 않다. 결국 내려오다 중심을 잃고 빙글 돌아서 바위에 부딪쳤다. 순간 머릿속에는 아프다는 생각보다는 엄청 창피하다는 생각 밖에 없다. 위에서는 걱정하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소리가 들린다. 산은 서두른다고 잘 가는 게 아니다.

산길은 암릉지대를 계속 간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이라 만만히 봤는데, 산길이 쉽지만은 않다. 남산의 특색은 큰 나무가 없어 어디서나 주변이 훤하게 보인다. 가끔 바위에 앉아 산 아래를 바라보며 쉬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 바위들을 오르고 내리다 보니 고위봉에 섰다. 정상은 생각만큼 감동을 주지는 않는다. 고위봉에 서면 경주 시내가 보일 거라 생각했는데 보이지 않는다. 대체 경주시내는 어디지?

무한 감동의 칠불암 마애석불군

백운암이 내려다보이는 바위에 잠시 쉬었다가 금오봉으로 향한다. 산길은 완만하게 이어진다. 칠불암으로 가는 이정표를 만난다. 칠불암은 등산로에서 350미터 정도 내려가야 한다. 조금 내려가면 바위사이로 가는 좁은 길이 있다. 작은 기와에 신선암 가는 길이라고 쓰였다.

보물 제199호로 지정된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보물 제199호로 지정된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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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암에는 암자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암자는 없다. 보관을 쓴 마애보살반가상이 손을 모으고 있다. 와! 이런 곳에 마애불을 새겨 놓다니. 몇 사람 서있을 정도의 좁은 터 밖에 안 되는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은 보물 제199호로 지정되어 있다. 남산에서 만난 첫번째 보물이다. 아슬아슬한 바위에 새겨놓은 마애보살은 여유 있는 미소와 꿈틀거리는 손모양이 너무나 생생하다.

신선암 아래로 칠불암이 내려다보인다. 칠불암 내려가는 길은 산행객들끼리 실랑이다. 다시 올라와야 한다면 안내려 간단다. 올라오는 사람들은 후회하지 않을 거라며 내려가기를 권한다. 내려와라. 안내려간다. 사실 나도 내려가기는 싫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안 보면 무척 후회할 것 같다.

칠불암은 정말 아늑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부처를 새긴 바위가 있고 작은 법당이 있다. 바위에 새긴 불상은 돋을새김을 강하게 해서 생동감이 넘친다. 앞에 네모진 바위 사면에는 부처님 네 분을 모시고, 후면 병풍처럼 선 바위에는 삼존불을 모셨다. 이런 마애불을 볼 수 있다니 감동이다. 칠불암 마애불상군은 국보 제312호다.

국보 제312호로 지정된 칠불암 마애석불군
 국보 제312호로 지정된 칠불암 마애석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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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불암 깨진 삼층석탑. 기단석이 커다란 옥개석을 뒤집어 놓았다.
 칠불암 깨진 삼층석탑. 기단석이 커다란 옥개석을 뒤집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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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불암은 작은 암자지만 너무나 편안하다. 소나무 몇 그루가 만들어준 그늘은 쉬어가기에 좋다.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거리지만 전혀 어수선하지 않다. 아마 마애불의 감동 때문일 것이다. 칠불암 마당에 있는 깨진 석탑 조각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받침돌에 홈이 있는 게 석탑에 계단을 만들었는가 싶었다. 이상하다 싶어 다시 보니 석탑 기단이 아니라 옥개석을 뒤집어 놓은 거다.

옥개석을 뒤집어서 그 위에 부서진 석탑 조각들을 올려놓았다. 와! 옥개석 조각이 이렇게 크다니! 감탄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문화해설사분께서는 어찌 알았냐며 설명을 해 주신다. 깨진 석탑은 후대에 만든 것이며, 석탑 받침돌은 옥개석 4조각 중 한 조각으로, 세 조각은 아래 숲속에 흩어져 있단다. 그리고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른단다. 다만 칠불암 뒷면에 삼층석탑을 세우려 했다는 추측을 할 뿐이란다. 이 작은 암자에 감은사지 석탑만한 삼층석탑을 세우려 했던 신라인들의 기상에 무한 감동을 받는다.

삼릉계곡의 안타까운 부처 모습들

칠불암 장관을 봐선지 다시 올라가는 길이 힘들지 않다. 능선으로 올라서서 다시 금오봉 쪽으로 길을 잡는다. 산길은 정말 부드럽게 오르내린다. 차도 다닐 수 있을 정도의 삼화령 길을 지난다. 산길은 온통 전설과 역사가 살아 있다. 가는 길에 용장골, 비파골 등 안내판을 보면서 천년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다.

삼화령에서 본 남산 풍경
 삼화령에서 본 남산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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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봉까지는 편안한 길이다. 금오봉에 섰다. 정상에 널찍한 마당을 만들었다. 말 그대로 밋밋한 봉우리다. 내려가는 길에 상사바위를 만난다. 바위가 험상궂게 생겼는데 왜 상사바위라 했는지 모르겠다. 상사바위 바위틈에 돌을 던져서 넣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나. 열심히 돌을 던져서 얹혀놓고 간다.

상사바위 뒤로 마애석불좌상이 있다. 입구는 통제되었다. 왜 그런지 이유를 써 놓지 않아 궁금하기만 하다. 옆으로 사람들이 다녀서 길이 났다. 조심스럽게 들어간 곳에는 정말 웅장하고 잘생긴 마애불이 있다. 코가 잘 생겼다. 옛날 신라인들은 코가 저렇게 컸나? 안타깝게도 마애불은 균열이 진행되고 있어 보수를 해 놓았다. 그래서 통제를 했는가 보다. 천년이상을 아무 탈 없이 지켜왔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안타깝다.

마애석불좌상의 온화한 부처 모습. 하지만 머리 뒤로는 균열이 진행되고 있어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마애석불좌상의 온화한 부처 모습. 하지만 머리 뒤로는 균열이 진행되고 있어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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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666호로 지정된 삼릉계석불좌상. 얼굴은 여러 조각으로 깨진 것은 맞춰 놓았다. 페이스오프한 부처
 보물 제666호로 지정된 삼릉계석불좌상. 얼굴은 여러 조각으로 깨진 것은 맞춰 놓았다. 페이스오프한 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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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선암을 지나고 내려오는 길에 좌대위에 하얗게 앉아있는 석불좌상을 만난다. 보물 제666호 경주삼릉계석불좌상이다. 산길에 지치다 보니 보물찾기도 힘들다. 대좌 위에 광배를 가진 잘생긴 불상이다. 하지만 얼굴은 페이스오프를 했는지 여러 조각을 맞춰 놓았다. 온화한 눈매가 서글퍼 보인다. 내 얼굴이 조금 그렇지 하면서 어색해하는 표정이다. 내 마음도 아프다.

선각마애불도 보고 머리가 없는 부처님도 본다. 머리가 없더라도 조금 편안한 곳에 모셨으면 좋았을 텐데. 바위위에 위태롭게 앉아있는 모습이 편안하지가 않다. 산길은 이제 평지에 가까워진다. 소나무 숲으로 난 길이 아름답다. 구불구불 마음대로 자란 소나무는 여유롭게 보인다. 산 속이라면 좁아서 그랬다지만 왜 이렇게 구불거리며 자랐는지. 삼릉의 세 봉분이 따사로운 봄 햇살을 맞고 있다.

구불구불한 소나무 숲에 자리잡은 삼릉
 구불구불한 소나무 숲에 자리잡은 삼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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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경주 남산, #금오봉, #칠불암, #경주, #삼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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