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산일기(2011) 박정범 연출, 박정범 진용욱 강은진 출연.

▲ 무산일기(2011) 박정범 연출, 박정범 진용욱 강은진 출연. ⓒ 영화사 진진

전란 중에 쓴 일기를 '난중일기'라고 하듯이 '무산일기'도 그런 부류의 일기인 줄 알았다. 처음엔 그리 짐작하였다. 혹은 무산계급이 쓴 일기라 '무산일기'일 거라고.

승철은 세상 말로 탈북자다. 주민등록번호가 125로 시작되는 탈북자, 아니 새터민 승철은 남녘 땅에서 참 고달프게 살아간다. 번듯한 직장은커녕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임시직 자리도 겨우 얻어 생활한다. 그 임시직의 사장이란 자가 어지간히도 악질이다.

사장은 탈북자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에 승철을 막 대한다. 욕설과 구타, 인격 모독은 상습이다. 그래도 승철은 찍소리 한번 내지 않는다. 그의 레퍼토리는 오직 "잘할 수 있습니다"이다. 업소용 벽보를 붙이는 일마저 끊기면 먹고살 일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자기 말고도 벽보를 붙일 사람은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이런 승철이 동네 교회에 어렵사리 발 하나를 걸친다. 거기서 본 성가대원을 마음에 둔다. 그 여자가 찬송가를 부르면 순진한 얼굴로 힐끗힐끗 쳐다보는 게 승철의 유일한 '낙'이다. 꽃 같은 여자이다. 승철이 여자를 미행하다가 여자가 노래방에서 일한다는 걸 알고, 거기 아르바이트로 들어간다. 제 부친의 사업장인 노래방에서 일을 거드는 여자는 승철이 자기와 같은 교회에 다닌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는 맨 먼저 이렇게 당부한다.

"우리 교회에서 아는 척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밑바닥 인생들의 집합소이기도 한 노래방에서 승철은 도우미 여자들이랑 잘 섞인다. 도우미 여자들이 승철에게 찬송가를 가르쳐주기도 하고, 승철이 그네들과 한데 어울려 찬송가를 부르기도 한다. 성가대원 여자는 승철이 도우미 여자들과 어울리는 게 영 못마땅하다.

성가대원 여자에게 노래방 도우미들은 고작 '여기서 일하는 여자들'이다. 자기와는 급이 다른 부류일 뿐이다. 교회에선 우아한 얼굴로 성스러운 노래를, 밖에서는 찡그린 얼굴로 차별과 멸시를 일삼는 게 성가대원 여자의 본모습이다. 여자는 급기야, 승철을 해고한다. 승철이 한 도우미를 돕느라 분란을 일으키고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에서이다.

낙담한 승철은 우연히 광장서 팔려나갈 처지에 있는 개를 보고 햄버거를 나눠먹는다. 나중에 그 개는 주인한테 버림을 받는다. 잡종이라 팔리지도 않고, 비싼 사료만 축낸다고. 승철이 그 개를 거둔다. 그 개는 바로 승철 자신이다. 승철이 스스로 의식을 하던, 하지 않던 그 개는 승철 자신이다. 진돗개도 아니고 풍산개도 아니고 혼혈 개. 북한 사람도 아니고 남한 사람도 아닌 승철.

무산일기의 한 장면 팔려나온 흰 개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승철.

▲ 무산일기의 한 장면 팔려나온 흰 개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승철. ⓒ 영화사 진진


그런데 승철이처럼 당하고만 사는 순둥이만 있는 건 아니다. 같은 약자인 탈북인을 등쳐먹는, 탈북인 브로커도 있다. 하필 승철의 유일한 친구인 경철이가 그 브로커의 똘마니 노릇을 한다. 그 짓으로 돈을 모은다. 부도덕한 돈이다.

어느 날 탈북인 브로커가 당국에 붙잡히는 바람에 경철이도 덩달아 쫓기는 신세가 된다. 경철은 숨겨놓은 목돈을 승철에게 가져다 달라고 부탁한다. 승철밖에 믿을 사람이 없어서다. 그러나 놀랍게도 승철은 경철을 배반한다. 그 목돈을 꿀꺽해버린다. 노래방에서 부당하게 해고를 당하고, 나이트클럽 벽보를 붙이는 일도 수월치 않던 차에 승철은 돈의 유혹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러자 얼마 뒤 승철은 살해당하고 만다.

마치 예정된 일이라는 듯이. 사실은 승철이 거두어들인 개가 살해당한 것이지만, 진실은 승철이가 살해당한 것이다. 우리는 사실보다 진실을 봐야 하고, 감독은 그걸 우리에게 보여주었다고 나는 믿는다. 순수에서 타락으로 승철은 떨어졌다. 그가 차에 치여 죽은 개를 오래도록 내려다보는 것은 곧 제 영정 사진을 내려다보는 게 아니고 뭐란 말인가.

어려운 현실에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고 꿋꿋이 정직하게 살아가다가 끝내는 친구의 돈을 탐하고 체제(교회라는 울타리) 안에 들어가는 데, 성공하는 승철. 하지만 그것은 성공이 아니고 타락이다. 개의 죽음은 승철의 순수성이 무너졌음을 처절하게 증언한다. 애초에 승철은 순수한 사람이었다. 배척과 차별, 멸시를 일삼는 세상으로부터 따귀를 맞으면 복수심과 증오심이 타오를 듯한데, 승철은 그러지 않았다.

남루한 행색으로 업소용 포스터나 붙이는 밑바닥 인생이어도 승철은 꾀 부리지 않고, 묵묵히 맡은 일을 다 했다. 진흙에서 연꽃이 피어나듯 그 어두운 세계에서 승철은 연꽃처럼 홀로 빛났다. 그는 친구가 백화점에서 옷을 훔치자 돌려주자고 간곡히 부탁을 한 사람이었고, 노래방을 찾은 남자 손님이 도우미에게 지분거리자 조용히 말리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이런 승철을 벌레 보듯 했다.

동네 양아치들은 승철을 볼 때마다 자기네 구역에 얼쩡거린다고 두들겨 팼다. 그렇게 늘 당하기만 하던 승철이 불현듯 어떤 문을 열고 나간다. 하지만 그 문은 낭떠러지로 이어져 있다. 승철이 잡은 그 문은 안락과 평화로 인도하는 문이 아니라 나락으로 떨어지는 문이기 때문이다. 

<무산일기>에서 박정범 감독은 교회를 꽤 호의적으로 그린다. 박정범이 보여준 교회는 탈북인 승철을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승철은 이제 성가대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박 감독의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이창동 감독이 <밀양>에서 교회를 비판적으로 성찰한 것과는 사뭇 다르다.) 흥미로운 것은 교회에서 승철이 고백을 하는 장면이다. 승철이 고백하기를, 자기는 너무나 배가 고파 우발적으로 사람을 죽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살인하고 도망쳐왔다는 것이다. 교회 성도들이 저마다 토해놓은 고백은 뭔지 모르게 이기적으로 느껴지는데, 승철의 고백은 진실하게 다가온다. 승철은 분명 자기 잘못을 진정으로 고해할 줄 아는, 신의 사람이다.

이런 승철이가 죽었다. 순수한 영혼이 죽어버렸다. 앞으로 교회 성가대서 찬송가를 부르게 될 승철은 더이상 예전의 승철이 아니다. 그러므로 <무산일기>는 순수에서 타락으로 옮겨간 사람의 이야기이다. 순수만으로는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어 결국은 순수함를 버리고 거짓을 택한 이의 몰락을 다룬 영화이다. 이 현실을 두 눈 똑똑히 뜨고 보라고, 나지막하게 외치는 영화이다.

무산일기 탈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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