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범 그가 누구인가? 1970년 8월 15일 광주에서 태어나 광주 서림초, 충장중, 제일고, 건국대를 거쳐 고향의 야구단인 해태에 1993년 2월 프로로 데뷔한 선수다. 프로데뷔 20년의 선수이며, 광주에서는 신이라 불리우는 사나이다.

야구장에서 이종범의 등장에 어느 선수보다도 응원소리가 크고 야구팬들을 그를 보며 야구에 열광하며, 하루를 즐긴다. 그렇게 많은 팬들에게 불리우는 이종범을 2012리그 개막 일주일을 앞두고 은퇴라는 결정을 내렸다. 일각에서는 만우절(4월 1일)에 별 우스운 소리까지 한다고 했다.

장난이려니 하고 신경쓰지 않았던 내용에 인터넷에서 기사를 보고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아 한동안 자리에서 멍하니 있었다. 나와는 개인적으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생일이 하루차이인 나로서는 그동안 이종범 선수를 보며 즐거워했다. 그는 희망이었으며, 우리 아이들에게는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다.

매년 우리고향의 특산물인 고추장을 선물하며 응원을 하였고 2012리그가 시작되면 한해동안 불같은 열정을 보여주라며 고추장과 함께 늦동이 우리 아들과 한컷의 사진도 부탁하려 했는데, 이제 그를 야구장에서 볼 수 없다니 정말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

야구를 좋아하고 사랑하기에 사회인야구를 하면서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고 중년이 된 야구인들의 우상이기에 더욱 가슴이 아프다.

이종범(42)은 국내 프로야구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개인성적으로는 각종 기록을 깨뜨린 신기록 제조기였으며, 팀원으로선 잠시 주춤했던 해태 왕조의 부활을 이끈 정신적 지주였다. 야구인으로선 1990년대 프로야구 중흥기를 이끈 스타였고,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일본을 무너뜨린 한국의 자존심이었다.

이종범은 광주 서림초 3학년이던 1979년 야구를 시작했다. 체격은 왜소했지만 발이 빨랐고 어깨가 좋았다. 그는 광주일고 2학년 때부터 전담 유격수로 자리를 잡았고 건국대학교를 거쳐 1993년 신인드래프트 1차 지명으로 해태에 입단했다.

그는 데뷔 첫해 득점 1위를 거두며 해태 타선을 이끌었고 그 해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상을 거머쥐며 스타 탄생을 알렸다. 이종범은 이듬해인 1994년 타율 0.393을 기록하는 등 타율, 득점, 최다안타, 도루, 출루율에서 1위를 차지했다. 1994년 그가 기록한 한 시즌 최다 안타(196개), 도루(84개)는 아직 깨지지 않고 있다. 이종범은 1996, 1997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뒤 1998년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에 전격적으로 입단했다.

하지만 그의 일본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이종범에 대한 일본 투수들의 집중 견제는 계속 이어졌고, 그 해 6월 23일 한신 투수 가와지리가 던진 커브에 팔꿈치를 맞아 골절상을 당하고 말았다. 그는 부상 여파와 심각한 스트레스 증상으로 성적 부진을 이어가다 2001년 여름, 해태를 인수한 KIA에 복귀한 이종범은 다시 역사를 써나갔다.

그는 2001년 45경기에서 타율 0.340을 기록하며 부활의 기지개를 켰고, 2002년 타율 0.293, 18홈런을 기록했다. 2003년엔 20홈런 50도루(1위)로 당시 최고령 20-20클럽에 가입했다. 2005년엔 타율 0.312를 기록했다.

이종범은 2006년 제1회 WBC 대표팀 주장을 맡아 그간 복수의 칼날을 갈았던 일본과의 2라운드 경기에서 8회초 1사 2, 3루에서 일본 최고 마무리 후지카와 규지를 상대로 결승 2루타를 터뜨렸다.

그는 광주의 아들이며 끝까지 야구의 대한 열정을 버리지 못해 자존심을 꺾으면서 2008년엔 전년도 연봉의 60% 삭감된 2억 원의 연봉에 재계약까지 하며 선수로서의 열정을 불태웠다. 2008년 5월 한 달 동안 타율 0.398을 기록하는 등 부활의 날개를 폈다. 그는 2009년 최소 경기 통산 500도루, 1000득점 기록을 달성하며 KIA의 10번째 우승과 자신의 4번째 우승을 팬들에게 선물하였다.

하지만 그에게 온 구단의 대접은 무엇인가. 양신이라 불리던 양준혁도 화려한 은퇴경기를 치렀는데, 팬들에게 '바람의 아들'이라 불리며, 기아 타이거즈의 정신적 지주였던 이종범에게 야구장에서의 은퇴가 아닌 정말 바람처럼 사라지길 바라는 것일까.

나는 광주인도 전남인도 아니다. 비록 전북에 살지만 타이거즈를 사랑하고 개인적으로는 나와 하루밖에 차이나지 않는 이좀범을 우상처럼 여기며 살아왔다. 단순한 팬이 아닌 인생의 친구로 열정과 패기와 의지를 보여주는 그에게 많은 것을 배우며 맨토로 생각해 왔기에 은퇴는 너무나도 아쉬움을 남긴다.

단순한 야구선수가 아닌 해태의 전신이며 이를 이어가는 기아타이거즈의 정신적 지주이며 광주의 영웅이라는 것을 기아 타이거즈는 잊지 말아야 한다. 이종범을 사랑하는 팬들은 그를 영원히 가슴속에서 열정을 불사르는 야구인으로 새겨질 것이다.

이종범 바람의아들 기아타이거즈 기아 타이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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