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타분하지만 학자의 주장 하나부터 소개한다. 샬럿 퍼킨스는 인간이 성적 관계가 경제적 관계가 된 유일한 종이라고 정의 내리고 있다. 이 말이 뭔가. 수렵 채집 사회까지 잠깐만 거슬러 가보자.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을 여러 가지 찾을 수 있지만, 그중 하나, 인간에게만 나타나는 독특한 행태가 남녀가 배우자가 구해온 것을 같이 먹는다는 것이라고 한다.

영장류들은 가족 단위로 산다고 해도 인간처럼 암컷과 수컷이 서로의 먹이를 절대 나눠먹지 않는다고 한다. 유일하게 인간만이...남자들은 사냥을 하고, 여자들은 채집하여, 그 결과물을 공유하고, 아이들에게도 나누고, 이것이 이른바 인류 가정의 시초가 되었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긴다. 남자들이 사냥을 해올 동안 여자들은 채집을 하고 돌아와 가사 노동에 종사하게 됨으로써 생겨난 성별 분업. 이로 인해 지금까지 역사에서 확인한 대로 남성들은 수혜자로 등극하고, 여성들은 극단적으로는 '노예'라고도 칭해지는 '잔혹사'가 시작된 것이다.

 JTBC 드라마 <아내의 자격>의 한 장면

JTBC 드라마 <아내의 자격>의 한 장면 ⓒ JTBC


JTBC가 선택한 카드세트, 정성주-안판석-김희애

그리고 21세기하고도, 대한민국 서울하고도, 가장 잘 나간다는 대치동에서 이 '보기 좋지 않은 그림'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은가?  여전히 남자들은 밖에 나가서 돈을 번다고 하지만, 이젠 아내도 <아내의 자격>의 홍지선처럼 남편보다 더 잘 나가는 경우도 있다. 또 21세기 첨단 사회에서는 돈만 있으면 모두 해결된다. 가사 노동의 의미는 어디에 둬야 할까.

결국 굳이 믿어야 할 건 없지만, 샬럿 퍼킨스라는 학자가 주장하는 바, 혹은 수렵 채집 사회 이래로 규정되어온 가정, 결혼, 남편과 아내라는 정의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자꾸 희미해져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런 점에서 JTBC가 선택한 카드는 현명했다.

물론 모든 아줌마들이 윤서래(김희애 분)에 공감하는 건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녀가 사랑스러울 수록, 그녀의 사랑이 애달플수록, 한편에서 불쑥 솟아오르는 '자기 방어 기제'가 빨간 불을 켠다. 그래서 더 역정을 내며, 어떻게 불륜을 미화하느냐 고래고래 언성을 높이기도 한다.

아내의 자격 <아내의 자격> 윤서래 역의 김희애

▲ 아내의 자격 <아내의 자격> 윤서래 역의 김희애 ⓒ JTBC



<아내의 자격> 또 그 이야기였지만

하지만, 그러면서도 또 그 시간이 되면, 아니 그 시간을 놓치면 재방송, 아니 요즘은 편하게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 통로를 통해 김희애의, 윤서래의 사랑을 찾아든다. 일찍이 <여로>에서부터 시작된 여주인공의 비련의 역사, 오늘날 서울 대치동에서도 여전히 결혼은 경제적 관계이며, 부부간의 계급 격차가 모든 비극을 잉태한다는 정의에 충실한 스토리에 나이 불문 주부들의 공감을 낳는다.

게다가, 늘 도도하기만 했던 김희애가 저렇게 사랑스럽고 귀여울 수 있느냐는 감탄을 자아냈던 여주인공 연기는, 문득문득 거울 속의 자신을 잊은 듯, 모처럼 그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그리고 이 동년배의 사랑은 <해를 품은 달>의 훤을 품는 것보다 훨씬 직접적이고 짜릿하다.

더구나 아들의 교육만이 자기 삶의 모든 것 인양 버티던 윤서래가 팥쥐보다도 더한 고모 한명진(최은경 분)에게 시원하게 퍼붓고 그 지옥 같던 집을 훌훌 떠나고, 결국 동화 작가로 성공하는 모습은 대리 만족으로 '만땅'이다. 게다가 사랑도 이루고. 혹자는 종편 불문 최고 드라마라고 칭송하기조차 한다.

<아내의 자격>에서 새로운 것은 없었다. 이런 이야기들은 예전부터 드라마로 충분히 우려먹었고, 최근에도 <사랑과 전쟁> 또 기타 등등 아침 드라마에서 밥먹듯 되풀이돼 왔다.

 <아내의 자격> 홈페이지

<아내의 자격> 홈페이지 ⓒ JTBC


진부함과 참신한 리바이벌, 그 차이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부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던 것은, 대치동이라는 현실 공간을 제대로 반영한 정성주의 극본과 안판석의 연출 그리고 무엇보다 김희애라는 배우의 불륜조차도 사랑스럽게 만든 연기였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우리 삶의 본질이 달라지지 않는 한, 원곡의 끊임없는 리바이벌, 하지만 참신한 리바이벌이 여전히 우리의 심금을 울릴 것이다.

<아내의 자격>덕분에 JTBC는 케이블 대박이라는 시청률 1%를 넘어, 2% 이상의 높은 성과를 올렸다. 참 아이러니하다. <중앙일보>를 모태로 한 JTBC를 '살린' 드라마가 결국은 이 시대 중산층의 궤멸적 삶을 그려내고 있으니 말이다. 결국 종편이 살아날 길이 '리얼리티!',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는 것이라니, 이 얼마나 자기 모순적 결과인가.

아내의 자격 JTBC 종편 김희애 안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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