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김해성대표, 곽노현 교육감, 이인영 민주당 최고위원(뒷줄 좌측부터)이 지구촌학교 학생들과 함께 케이크 촛불을 끄고 있다.
 김해성대표, 곽노현 교육감, 이인영 민주당 최고위원(뒷줄 좌측부터)이 지구촌학교 학생들과 함께 케이크 촛불을 끄고 있다.
ⓒ 조호진

관련사진보기


"지구촌학교 학생여러분!
저는 여러분의 엄마아빠 나라를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가나, 깊이 존경하는 나라입니다.
베트남, 깊이 존경하는 나라입니다.
모로코, 너무 좋아하는 나라입니다.
방글라데시, 마찬가지로 큰 나라입니다.
몽골, 모든 것이 큰 나라이지요.

여러분의 엄마아빠 나라는
전 세계가 존경하는 나라입니다.
여러분 자부심을 가지십시오.
여러분의 엄마아빠들은 대단한 분들입니다.
용기를 가지고 개척자의 정신으로 여기까지 오신 분들입니다.
아무나 하지 못합니다.
엄청난 용기와 개척자 정신이 없으면 멀리까지 와서 정착할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여러분들은 누구보다 훌륭한 엄마아빠를 가진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도 좋습니다."

지난 2일 '지구촌학교'(대표 김해성) 개교식에서 행한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즉흥연설 날것 그대로다. 곽 교육감 또한 의례적인 축사를 준비해왔으나 이를 양복 속주머니에 도로 집어넣고는 4분간의 짧은 연설을 통해 다문화-이주민에 대한 관점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곽 교육감은 짧고 힘찬 인사말로 다문화 학부모들과 아이들의 자존감을 살려주면서 국내 최초의 다문화 대안초등학교 개교식을 축하했다.

즉흥연설은 위험부담이 큰 화법이다. 자칫 실수하면 구설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에 대다수 기관장들은 연설문 담당 직원들이 써준 축사를 낭독하는 것으로 자신의 순서를 마친다. 그래서 고관(高官)들의 축사나 인사순서가 되면 참석자들은 괴롭다. 이와 달리 곽 교육감의 즉흥연설에서 감동을 받게 된 것은 고관의 자리에서 내려와 다문화-이주민의 눈높이에 맞췄기 때문이다.

교육감의 즉흥연설 "진보 휴머니즘 드러낸 것"

곽노현 교육감이 지구촌학교 학생들에게 교기를 전달하고 있다.
 곽노현 교육감이 지구촌학교 학생들에게 교기를 전달하고 있다.
ⓒ 조호진

관련사진보기


개교식에 참석했던 두 사람과 함께 5일 점심식사를 했다. 식사하면서 지구촌학교 개교식에 대한 뒷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화제의 초점은 곽 교육감의 즉흥연설에 모아졌다. 이들은 곽 교육감의 즉흥연설에서 감동을 받았다고 했고 나 또한 깊은 감명을 받았다. 우리 세 사람은 그의 짧은 연설에서 가난한 이웃나라에 대한 진솔한 배려와 연대감을 읽었다.

두 사람은 "다문화-이주민을 돕는 상당수 인사들은 다문화-이주민들을 동정 혹은 시혜의 대상으로 여기는 경우가 대다수"라면서 "그런데 곽 교육감은 다문화-이주민 학부모들을 훌륭한 엄마아빠이자 용기 있는 개척자라고 칭찬했는데 그것은 진보의 휴머니즘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두 사람은 "지구촌학교 설립으로 다문화-이주민 학부모와 아이들이 혜택을 입었다는 게 아니라 훌륭한 다문화 학부모와 아이들 때문에 지구촌학교가 만들어졌다는 곽 교육감의 관점이 지구촌학교의 존재 이유가 되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한 "사립 대안학교 운영의 어려움을 강조하면서 후원 참여를 호소하고 직접 후원 약정한 것도 인상 깊었다"면서 교육감의 언행일치를 높이 샀다.

김해성 대표는 개교식에 참석한 인사들 사이에서 곽노현 교육감의 신선한 인사말이 화제가 됐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5일 "한국에서 겪은 차별과 냉대로 위축됐던 다문화-이주민들이 곽 교육감의 격려 덕분에 자존심을 되찾게 됐다"면서 "서울시교육청 수장으로 개교식에 참석했다기보다는 다문화 교육을 깊이 고민했던 동지로서 참석해준 것 같다"며 학교운영에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진보 교육감 "엄마아빠는 위대한 개척자"

곽노현 교육감이 지구촌학교 학생들에게 엄마아빠 나라의 훌륭한 언어와 문화를 잊지말라고 부탁하면서 손도장을 찍고 있다.
 곽노현 교육감이 지구촌학교 학생들에게 엄마아빠 나라의 훌륭한 언어와 문화를 잊지말라고 부탁하면서 손도장을 찍고 있다.
ⓒ 조호진

관련사진보기


이날 개교식은 케이크 커팅과 사진촬영을 끝으로 2부 순서를 마쳤다. 그리고 내·외빈들은 김해성 대표의 안내로 지구촌학교 둘러보기 순서에 따랐다. 그런데 곽 교육감은 식장에 남은 지구촌학교 아이들과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시간을 할애했는데 고관이 아닌 세계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무릎을 꾸부리며 아이들 곁으로 다가갔다.

"너희들의 엄마아빠는 위대한 개척자라는 것을 잊지 마라. 그리고 엄마아빠의 나라는 훌륭한 나라란다. 그러니 너희들은 엄마아빠 나라를 잊지 말아야 한다. 자부심을 갖고 엄마아빠 나라의 말과 문화를 배워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겠지! 그럼 도장 찍을까! 좋아 그럼 그렇게 하는 거야!"

곽 교육감은 태국 엄마의 딸 할리(2학년), 인도 엄마의 딸 샵토미 쿤드(4학년), 필리핀 엄마의 아들 태완(3학년)이를 비롯한 아이들과 차례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부심을 심어주려고 애썼다. 특히 엄마아빠 나라의 귀중함을 강조하면서 언어와 문화를 배울 것을 부탁했다. 그러자, 눈동자를 동그마니 떴던 아이들은 곽 교육감과 손도장을 찍고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환한 웃음 터트렸다.

곽 교육감이 이날 보여준 가치는 그가 교육감이든 평범한 시민이든 달라지지 않을 세계관으로 보인다. 곽 교육감의 다문화-이주민에 대한 언행을 지켜보면서 만약,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이었다면 어땠을까? 각종 학교의 입학식과 개교식 치하에 바쁜 3월 2일인데 과연 외떨어진 다문화 대안학교 개교식에 왕림했을까? 방문했다면 과연 가난한 다문화 학부모와 학생들이 안중에나 들어왔을까?

다문화 학교의 길은 멀지만 불은 붙였다

서울시 구로구 오류동에 위치한 지구촌학교 전경
 서울시 구로구 오류동에 위치한 지구촌학교 전경
ⓒ 조호진

관련사진보기

국내 최초로 인가받은 다문화 대안초등학교인 '지구촌학교'. 이 학교는 교육청 인가에 따라 초등학교 각 학년 당 1개 학급씩(15명 내외) 모두 6개 학급 90명 정원으로 학교를 운영하게 된다. 이와 함께 한국의 소외계층 학생들도 일부 받아들여 다문화-통합교육을 진행하는 동시에 일반 초등학교 다문화학생들의 위탁교육도 함께 진행하게 된다.

이 학교는 특히 학부모의 등록(합법체류) 또는 미등록(불법체류) 여부에 상관없이 학생들을 받는다. 외려 미등록 부모의 자녀를 더욱 챙기면서 동화교육이 아닌 다문화 다중언어 교육을 중시한다.

게다가 무상교육과 무상급식은 물론 준비물까지 무상 제공한다. 준비물을 무상 제공하는 이유는 통신문에 적어 보내더라도 다문화 엄마들이 한글을 모르기 때문에 준비물을 챙겨주기 힘들다. 그래서 아예 무상제공하기로 했다.

곽 교육감은 지구촌학교를 꿈과 희망의 학교라고 불렀다. 그래서 지구촌학교가 다문화 대안학교의 모델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자며 이렇게 호소했다.

"(한국 학생들은) 한 나라의 언어, 한 나라의 문화, 한 나라의 전통을 알고 배우는데 여러분들은 (지구촌학교에서) 두 나라의 언어, 두 나라의 문화, 두 나라의 역사와 전통을 배우면서 가능성과 다양성을 갖게 됩니다. 지구촌학교는 꿈과 희망의 학교입니다. 한국의 다문화 모델 학교가 될 수 있도록 힘차게 지원합시다. 꿈을 찾아온 부모들이 우리 아이들을 통해 미래와 행복을 만들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학교로 만들어 갑시다."

지구촌학교의 또 다른 이름은 '오바마학교'다. 부모의 사망, 이혼, 편부편모 등의 어려운 처지에 있는 학생들을 버락 오바마 미국대통령처럼 인재로 키우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오바마 또한 다문화 부모의 이혼과 재혼의 상처를 겪고 이겨내면서 세계 대통령이 됐다. 지구촌학생들은 지난해 10월 오바마 대통령을 학교에 초청하는 편지를 백악관에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이 아니다. 한국 교육현장은 갈등의 현장이다. 경쟁의 속도전이 한참인 한국 공교육은 상대를 밟아야 이기는 승자독식의 질서를 구조화하고 있다. 왕따와 학교폭력이 난무하는 이런 구조에서 약자에 대한 배려, 다문화에 대한 인간존중 교육은 현실적으로 가능치 않다. 결국 다문화 자녀의 초등학교 진학률은 60%, 중학교는 40%. 고등학교는 30%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상급학교에 갈수록 진학률은 크게 떨어지는 것이다.

지구촌학교는 다문화 자녀들의 교육받을 권리가 외면당하는 토대에서 설립됐다. 이 학교의 갈 길은 첩첩산중이다. 사립 대안학교이기에 운영비를 자체 조달해야 한다. 한국의 뿌리 깊은 다문화 동화정책과 순혈주의의 틈바구니에서 다문화 대안교육을 실현해야 한다. 진보 교육감의 관심과 지원호소에 용기를 얻은 것은 사실이지만 현실에선 얼마나 도움이 될지 미지수다. 하지만 불모의 다문화 교육현실에 불을 사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태그:#지구촌학교, #곽노현 교육감, #다문화, #김해성, #대안학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