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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 노을엔 신묘년 마지막 해가 저물고 있다. 누구나 똑같이 주어지는 세월만큼 공평한 것도 없다. 일 년이라는 긴 시간을 다 써버린 지금 한해의 끝자락에 서서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올해는 마지막 연말까지 왜 이다지도 아쉬움과 허무함이 잦게 찾아들꼬?"

 

얼마 남지 않은 2011년, 머릿속을 맴도는 영상이 있다. 바로 '죽음' 이다. 몇 년 전부터 연이어 많은 유명 인사들이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서민 대통령 노무현, 인동초 김대중 대통령, 시대의 양심 리영희 선생 그리고 밖으로는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등등. 다 나열하지는 못해도 얼핏 떠오르는 사람만도 여럿이다. 또 30일 새벽, 민주화의 대부였던 김근태 고문마저 우리 곁을 영영 떠났으니 황망하기 그지없다. 야만의 시절과 슬픈 계절이 지속되고 있다.

 

한해를 정리하다보니 내게도 문득 떠오르는 사건이 있다. 올해 5월이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여인에게 한 통의 멜을 받았다. 정확히 말하면 5월 17일이다. 며칠 후 그 내용을 확인했다. 멜을 보낸 사람은 강아무개라는 주부였다.

 

"안녕하세요. 심 기자님 !

2009년 4월 17일  여수 방송국에서 최상재 언론 위원장님이 오셔서 강연회가 있었는데 제 아들이 질문하는 장면을  심 기자님이 사진을 찍어 <오마이뉴스>에 올리셨는데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강연회는 제 아들 녀석의 진로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들은)그 후에 <오마이뉴스>에 글도 기고하고 몇 가지 기사도 써 놓았더군요. 하지만 그 꿈을 펼치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먼저 갔답니다.

 

심 기자님이 찍어 주신 그 사진이 제 아들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사진으로 확대하여 보관하고 싶지만 해상도가 떨어져서 출력이 불가능하여 염치없이 부탁을 드립니다. 꼭 좀 부탁드립니다. 도움이 되실까하여 그 내용을 보냅니다.

 

언론민주주의가 잘된 나라라고? 나만의 착각!"

 

애절한 내용의 편지였다. 첨부된 아들 사진과 기사내용을 훑어보니 당시 기억이 생생히 떠올랐다. 당시 취재요청을 받고 취재에 나섰다. 여수MBC공개홀에서 여수MBC노조 주관으로 열린 초청강연회였다. '미디어악법과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시국강연회인데  연사로 나선 사람은 바로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이었다. 강연회가 끝난 후 질의응답시간에 전남대 멀티미디어 과에 재학 중인 이진수(당시 23세) 학생은 용기 있게 질문을 던졌다. 그 순간이 포착되어 플래시가 터졌다.

 

"저는 정치에 관심이 많습니다. 미네르바 구속 이후 네티즌의 정치참여 방안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후 최상재 위원장의 답변이 이어졌고 그 내용은 기사로 실렸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진수 학생은 진로에 많은 변화가 생겼던 모양이다. 어머니의 멜을 받고 그 흔적을 뒤져보니 진수학생은 그해 6월부터 시민기자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3편의 기사를 남겼다.

 

그 첫 기사가 여수시청 앞에서 개최되는 '6월항쟁 계승. 민주회복 6.10 범국민대회'에 관한 기사였다. 그는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기 위해 우리 광장으로 나가자'라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또한 여서동에서 진행된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추모분양소 모습을 기사로 실었다. 마지막 기사에는 謹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각하'께 드리는 편지도 썼다. 그는 편지에서 이렇게 마무리 했다.

 

"소중한 것은 항상 잃어버린 뒤에야 그 소중함을 알게 된다.(중략) '우리 아이들에게 불의와 타협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하나의 증거를 꼭 남기고 싶었습니다'던 그 말씀을 제 가슴에 새기고 살아가겠습니다. 언젠가 그곳에서 대통령 각하와 막걸리 한 사발 할 그날을 기다리면서……."

 

그러던 7월 방학 무렵, 신호를 위반한 택시가 횡단보도를 건너던 이 청년의 생명을 앗아갔다는 것이다. 이후 엄마는 아들의 흔적을 정리하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다.  그래서 아들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원본 사진을 보내달라는 사연을 기자에게 보낸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고 가지고 있던 파일들을 뒤져봤지만 아쉽게도 원본사진은 찾을 수가 없었다. 취재 때마다 찍은 사진들이 많다보니 메모리가 꽉 차 아쉽게도 오래된 사진을 다 날려버린 것이다. 너무나 안타까웠다. 나의 선행이 누군가에게 위로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이후 나는 즉시 500G 용량의 휴대용 메모리를 장만했다. 취재 다닐 때마다 찍었던 사진을 보관하기 위해서다.

 

정치에 꿈을 품었던 한 청년의 불행한 죽음이 오늘처럼 우울한 연말이면 떨어지는 낙엽처럼 쓸쓸하게 느껴진다. 이 해가 지나면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아픔이 씻겨지고 아들에 대한 좋은 추억만 가슴속에 간직하며 살아가길 간절히 기원해 본다. 불현듯 하늘나라에서  평소 존경했던 노 대통령과 막걸리  한 잔 하고 있을 진수씨의 모습을 떠올리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의 명복을 빌어본다. 

덧붙이는 글 | 전라도뉴스와 여수넷통에도 송고합니다.


태그:#김근태, #이진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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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 말해도 좋다. 단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라!" 어릴적 몰래 본 형님의 일기장, 늘 그맘 변치않고 살렵니다. <3월 뉴스게릴라상> <아버지 우수상> <2012 총선.대선 특별취재팀> <찜!e시민기자> <2월 22일상> <세월호 보도 - 6.4지방선거 보도 특별상> 거북선 보도 <특종상> 명예의 전당 으뜸상 ☞「납북어부의 아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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