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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임승차 권장하는 이집트 열차

룩소르에 가면, 짓다 만 듯 속살을 훤히 드러내 놓은 건물을 흔히 볼 수 있다. 건물이 완전히 마감이 되면 세금이 크게 달라진다고 한다.
▲ 룩소르의 뒷골목 룩소르에 가면, 짓다 만 듯 속살을 훤히 드러내 놓은 건물을 흔히 볼 수 있다. 건물이 완전히 마감이 되면 세금이 크게 달라진다고 한다.
ⓒ 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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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하고 역을 찾았는데, 이게 웬떡? 룩소르 행 기차가 막 떠나려는 듯 서 있었다. 여차하면 역 대합실에서 죽치고 기다리다 기차를 탈 각오를 했다. 기차가 있을 시간도 아닌데, 오로지 이집트에서는 기차의 연발착이 흔한 일이라는 것 하나만 믿고 나와 봤는데, 운 좋은 날이다.

티켓도 사지 못해 좀 켕기는 마음으로 기차에 올라섰는데, 1등석 자리는 텅텅 비어 있으니, 또 한 번 운수 대통이다. 이럴걸 그렇게 고생했었나? 아스완에 도착한 첫날 고생한 기억이 떠올랐다.

이집트의 겨울은 성수기, 열차 예매를 미리 하지 않으면 금방 매진되어 버린다는 가이드북의 경고를 금과옥조로 여기고, 아스완에 도착한 날 저녁, 우리 가족은 기차역부터 찾았었다.

이틀 후에 룩소르로 가기 위한 기차표를 예매하기 위해, 허름한 이집션들 사이에 줄을 서야 했다. 작은 시골역처럼 어둑하고 허술해 보이는 아스완역에는 외국인이라고는 우리 가족 밖에 없었다. 줄이 많이 긴 것도 아닌데 좀처럼 줄어들지를 않았다.

고개를 빼고 보니, 역무원의 일처리는 너무 느리고 답답하다. 그러다 일어나 한참을 자리를 비우다가 다시 나타난다. 그래도 이집션들은 늘 겪는 당연한 일이라는 듯 불평 한마디 없다. 낙타눈처럼 긴 속눈썹의 이집션들은 오히려 우리를 흥미롭게 바라볼 뿐이다.

한참을 기다려 우리 차례가 돌아왔는데, 말이 아예 안 통해, 시간과 목적지를 종이에 적어 보여 주니 잘 보려고도 하지 않고 손만 내젓는다. 표가 매진되었다는 걸까? 표를 아예 팔지 않는다는 걸까? 그 이유는 이틀 후 룩소르행 기차에 올라타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기차에 운 좋게 올라탄 우리 가족은 역무원이 올 때까지 조금은 불안했다. 역무원이 나타났을 때, 티켓을 사지 못한 나는 선처를 바라듯 꼬리 팍 내리고 올려다 보니, 별일 아니라는 듯 47파운드씩, 그러니까 1인당 6파운드씩(1이집션 파운드= 약 220원)만 더 내면 된다는 거다. 그 정도쯤이야 뭐 각오하던 바, 흔쾌히 돈을 내는 순간, 이거였구나! 싶었다.

아직 이틀이나 남았는데 표가 없다고 잡아 떼었던 건, 목적지가 어디인지 잘 들어 보지도 않고 외면했던 건, 무임승차를 조장하고 웃돈을 받으려고 했던 거다. 바가지의 진화, 바가지치고는 조금 신선한 느낌마저 들어 웃고 넘어가고 만다.

앗시르의 따뜻한 오믈렛 때문에

룩소르에 도착한 우리 가족은, 한인 게스트 하우스를 찾아가는 동안 신기한 듯 거리를 두리번거렸다. 이집트 신왕조(BC1550~1075) 시기 최고의 고대 문명을 자랑하는, 테베라는 또 다른 이름의 룩소르는 번잡한 시골 도시처럼 정겹고 따뜻했다.

길거리 상점에 삼삼오오 모인 할아버지들은 물담배 샤샤를 피우며 오후 햇살을 즐기고 있다. 그 모습들이 너무 다정해 사진을 찍을까 말까 우물쭈물하는 나에게 할아버지는 사진을 찍으라고 부추긴다. 용기백배해서 찍으면 그걸 보여 달란다. 보여주면 만족한 듯 웃어 보인다. 그걸로 끝. 더 요구하는 건 없다.

얼마든지 사진 찍으라면서 폼을 잡아준 할아버지들. 룩소르 역에 도착해 처음 만난  저 할아버지들 때문에 룩소르에 대한 첫인상이 좋은 건지도 모르겠다.
▲ 룩소르의 유쾌한 할아버지들 얼마든지 사진 찍으라면서 폼을 잡아준 할아버지들. 룩소르 역에 도착해 처음 만난 저 할아버지들 때문에 룩소르에 대한 첫인상이 좋은 건지도 모르겠다.
ⓒ 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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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도 없는 푸줏간 입구에 주렁주렁 걸린 고깃덩이가 신기해 사진기를 들이댔다. 퇴근길에 푸줏간에 들른 양복 차림의 사내는, 내가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고깃덩이들 사이에서 쓸데없는(?) 포즈를 취해 주며 벙싯 웃는다.

길에서 잡아 탄 마차를 모는 소년은, 자신의 마차는 람보르기니라며 자랑스러워한다. 길을 달리다 제 누이를 발견한다. 새초롬한 누이가 한사코 거절하는데도, 그 누이를 손님인 우리 옆에 기어이 태우고 만다.

룩소르는 어쩐지 다르다. 카이로처럼 약빠르지도, 아스완처럼 늘어지지도 않았다. 골목길의 건물들은 껍질을 벗은 듯 벽돌 속살이 드러나 있고, 낡은 빨래들이 색종이처럼 걸려 있다. 여기 어디쯤인데, 한인 게스트하우스를 찾아 헤매는 중이었다.

"아녕하쎄요!"

올려다 보니, 빨래를 널던 젊은 청년이 우리를 향해 환하게 웃고 있다. 이 골목에 들어서는 한국인들은 다 게스트하우스를 찾는 것일 테고, 한국말을 하는 저 이집션이 있는 곳은 바로 우리가 찾는 그곳일 테지. 앗시르와 우리는 서로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우리 가족이 여행 가서 한두 번쯤 한인 게스트하우스를 들르는 이유는, 모국어로 여행정보를 주워 들을 수 있다든가, 이왕이면 현지에서 고생하는 한국인에 대한 동포애 때문이라든가, 한 번 쯤은 한식으로 배 든든히 채우고 싶다든가, 뭐 이런 것 때문만은 아니다. 짧지 않은 여행,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칠 때 낯선 나라에서 둥지 찾아들 듯 한인 게스트하우스를 들르게 된다.

일명 걸레빵. 아랍어로 Life라는 의미의 에이쉬빵은 이집트인들의 주식이다. 아침이 되면 이집션들은 가슴에 한아름의 에이쉬빵을 사들고 가기도 한다. 정부의 보조로 값은 아주 싸다. 다섯개에 5파운드(1100원 정도).  특별한 맛은 없지만 따끈할 때 먹으면 제법 고소하다.
▲ 에이쉬(Aish) 일명 걸레빵. 아랍어로 Life라는 의미의 에이쉬빵은 이집트인들의 주식이다. 아침이 되면 이집션들은 가슴에 한아름의 에이쉬빵을 사들고 가기도 한다. 정부의 보조로 값은 아주 싸다. 다섯개에 5파운드(1100원 정도). 특별한 맛은 없지만 따끈할 때 먹으면 제법 고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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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집트에서 한인 게스트하우스의 평판은 별로 좋지 않다. 하여 알뜰한 여행자들은 의도적으로 한인 게스트하우스를 피하는 추세다.

우리 가족 역시 카이로에서의 게스트하우스가 마음에 안들었다. 주인 할머니는 첫날 아침부터, 학생증을 위조하는 한국인 여행자들을 험담했다. 물론 그건 욕먹을 짓이긴 하지만, 이제 막 여행을 시작하는 여행자로서 그런 말을 들어야 한다는 건 어쩐지 썩 유쾌하진 않았다. 마치 우릴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너희는 그러지 말라고 은근히 경고를 하는 듯도 하고.

게다가 후식으로 먹는 오렌지를 두 알만 가져가도 되냐고 물으니 단칼에 베어버린다. 거기 그 자리에서만 먹으라고. 무슨 뷔페야? 어린 딸에게 인심도 쓸법하건만 인심 사나운 할머니란 걸 단박에 파악했다. 거기다 음식도 너무 성의 없고 형편없었다.

룩소르의 게스트하우스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시설면에서는 별로 다르지 않았다. 딸린 욕실에는 휴지나 슬리퍼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고, 카이로에서처럼 방문도 잠기지를 않았다. 

더 열받는 일은 샤워 중에 일어났다. 남편은 무사히 샤워를 마쳤고, 딸은 샤워 도중, 뜨거운 물이 잘 안 나온다며 후다닥 끝냈다. 불안한 마음으로 내 차례. 아니나 다를까 한창 샤워를 하는 중에 더운 물이 끊겨 버렸다. 남편이, 퇴근해 버린 주인장에게 전화를 하는 동안, 오돌오돌 떨며 샤워기만 해바라기하고 있어야 했다.

욕실의 보일러 스위치를 올리고 10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는 걸 주인장은 이제사 가르쳐 주었다. 이런 젠장! 그럼 이렇게 떨며 다시 10분을 기다리란 거야? 싸지도 않은 숙박비 미리 다주고 예약했건만 서비스가 영 마음에 안든다. 서울에 돌아가면 인터넷에 반드시 올려 응징하리라, 어금니를 깨물었다.

때로 여행자가 주인 행세(?)를 하기도 하는 곳.  먼저 온 여행자가 나중 온 여행자를 맞기도 하고 정보를 주기도 하다.
▲ 한인 게스트 하우스 때로 여행자가 주인 행세(?)를 하기도 하는 곳. 먼저 온 여행자가 나중 온 여행자를 맞기도 하고 정보를 주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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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기가 흐르는 방에서 잠이 들었는데 새벽녘에 슬그머니 방문이 열리고, 거기, 낯선 자의 실루엣이 드러났다. 잠결에 화르륵 놀라, 누구세요, 하고 묻자, 사과의 말만 남긴 채 후다닥 문을 닫았다.

다음날 아침, 그는 밤늦게 도착한 여행자였으며 방을 잘못 찾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또, 다른 방을 둘러보다, 방안에 난방시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 이런 젠장! 아니 대체 이런 걸 왜 알려주지 않은 거야, 서울에 돌아가면 홈페이지 들어가서 잘근잘근 씹어 주리라, 입술을 앙다물었다.

하지만 돌아와서, 그럴까말까 우물쭈물하는 사이 시간이 흘러버렸고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은 순전히 앗시르 때문이었다.

세탁기에 돌린 빨래를 말없이 널어주고 걷어 준 앗시르, 떠나올 때 사진기를 들이댔더니 수줍게 포즈를 취해 주던 앗시르, 골목에서 헤매고 있을 때 먼저 우리를 알아보고 소리 치던 앗시르. 무엇보다도 아침마다 부쳐주는 앗시르의 도톰한 오믈렛이 좋았다.

내가 더 이상 그 한인 게스트하우스를 되알지게 씹어대지 못하는 건 어쩌면, 시간이 흐를수록 안 좋았던 기억들은 희미해지고, 앗시르의 따뜻한 오믈렛은 점점 그리워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집트 여행 5일만에 맛있는 이집트 음식을 만났다. 뜨거운 뚝배기에 토마토 스튜같은 진한 국물과 고깃덩어리가 푸짐했다. 친절한 주인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맛있냐고 서너번을 물어왔다.
▲ 따진(meat pot) 이집트 여행 5일만에 맛있는 이집트 음식을 만났다. 뜨거운 뚝배기에 토마토 스튜같은 진한 국물과 고깃덩어리가 푸짐했다. 친절한 주인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맛있냐고 서너번을 물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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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11년 1월 2주 동안 이집트를 여행했습니다.



태그:#룩소르, #한인게스트하우스, #에이쉬 빵, #따진, #이집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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