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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나 몰래 고가의 카메라를 샀다. 사실인즉, 지난 9월에 이미 구입한 것을 워낙 '꼼꼼하게' 할부로 잘게 쪼개 놓아서, 카드 명세서를 대충 보고 마는 나로서는 몇 달이 지나도록 그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지난 여름 휴가 때 남편이 갖고 있던 좋은 카메라를 분실하고는, 노상 "카메라를 사고 싶다"고 졸랐던 터라 배신감이 더했다. 이미 사놓고도 안 산 척 했단 말이니까.

처음엔 돈이 아깝다는 생각을 했는데, 사실 돈이 큰 문제는 아니었다. 40대 회사원이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그나마 사진 찍는 게 낙이었는데, 카메라를 분실했으니 다시 사고 싶어할 법도 했다. 남편의 욕구야 어찌 보면 이해가 된다. 문제는 '발각' 이후 남편의 대응이다. 그는 당연히 '미안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지난 26일, 제주도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건설 반대시위를 하는 활동가 27명이 경찰에 붙들려갔다. 내 친구들도 거기에 포함돼 있었다. 이틀동안 붙들렸다가 어제 풀려난 모양이다. 이 정권이 베푼 크리스마스 선물인 듯했다. 크리스마스가 막 지나자마자 대규모 연행을 하는 '꼼꼼한 배려'라고나 할까.

28일 아침엔 커피와 과일로 아침식사를 하다가 스마트폰으로 활동가들이 잡혀가던 동영상을 보게 됐다. 오늘부터 연말 휴가인데 마음이 급격히 무거워지고, '당장 제주도라도 가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가 '미안해'라는 말로 충분할 줄 알고 덤덤히 출근한 남편 생각이 났다. 소심한 복수로 아침상을 차려주지 않았더니, 우유 두 잔에 오곡 플레이크를 넣어 오독오독 먹고 가던 모습도 생각났다. 따지기 위해 남편에게 전화했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

"이 정권의 꼼수도 지겨워 죽겠는데, 당신마저 꼼수를 부리냐!"

말이 끝나자 눈물이 주룩 흘렀다. 남편은 "정말 미안하다"고 하면서 볼멘소리로 "내가 공공의 적이 되어버렸네…"라고 대답한다.

남한강에 사는 귀여운 물떼새
 남한강에 사는 귀여운 물떼새
ⓒ 마용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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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면 내 나이가 마흔둘이다. 나는 별로 나이에 신경 쓰지 않고 즐겁게 살려 하지만, 적어도 사회에 대한 책임은 더 가지려 한다. 나도 한 아이의 엄마고 미래세대를 키워내야 하는 구성원이니까. 나이가 들며 몸의 변화야 자연스럽지만(몸도 기계처럼 쓸수록 더 낡아가는 거야 당연지사 아니겠는가) 마음의 변화도 많이 느낀다. 그중 하나가 눈물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오, 이 감수성…. 최근 <경향신문>의 기획 기사 '10대가 아프다'를 읽으면서도 눈물이 나고, 누가 자살했다거나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들어도 마음이 아린다. 또한 매섭게 추운 겨울이 되니 문득 파괴된 4대강에서 겨울을 날 꼬마물떼새나 다른 작은 동물들이 떠올라 마음이 쓸쓸해지기도 한다.

올해는 정치 현실이 나의 일상의 행복을 침식해버렸던 한해였다. 일개 시민으로서, 밥벌이를 해야 하는 직장인으로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부당한 현실에 대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그저 보통의 시민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고만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몇가지 기억나는 것만 꼽아보면 이렇다. 그렇게 강한 반대에도 4대강 사업은 화려한 준공식과 함께 마무리됐다. 나는 4대강 파괴 현장에 몇차례 가 봤고, 그 참혹한 풍경이 마음에 작은 트라우마로 자리잡았다. 그렇기 때문에 정권이 4대강 홍보를 위해 여기저기 뿌린 광고만 봐도 울화통이 치밀었다. 피곤하기만한 지하철 퇴근길에 우연히 고개를 들면 광고판에 '생명의 새 물결'을 운운하는 가증스런 4대강 광고를 보게 된다. 완성된 보(일종의 댐)에서 물이 새고 터지고, 가둬진 물에선 녹조류가 더 늘어나고…. 이런 내용은 알려지지 않아 수많은 시민들은 잘 모를 것이다.

내년, 꼭 심사숙고 하겠습니다

평화운동가들을 잡아가는 경찰
 평화운동가들을 잡아가는 경찰
ⓒ 황현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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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아름다운 제주도의 강정마을은 어떤가. 은어떼가 노니는 강정천이 바로 옆에 있고, 부드러운 연산호 팔랑거리는 문섬을 앞에 둔 강정바다. 그곳에서는 신이 깃든 것만 같은 구럼비 바위를 폭파하며 해군기지를 지으려 하고 있다. 주민들은 4년 넘게 힘겹고 외로운 싸움을 해왔다. 그러나 어디 제주도가 강정마을 주민들만의 것인가.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은 우리 모두의 것이고, 그 마을은 우리가 함께 지키고 누려야 할 곳이 아닌가. 그 아름다운 강정마을을 지키기 위해 혹한에도 길 위에서 '해군기지 반대'를 외치는 노구의 신부님과 평화운동가들은 저들은 마구 붙잡아간다.

올봄에 있던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체르노빌 사고보다도 더 큰 사고라는데, 이 정권은 '녹색성장'이라는 웃기는 단어(애초 녹색과 성장은 결혼하기 어려운 사이다)를 외치며 원전을 확대하고 있다. 독일은 단계적으로 원전을 전부 폐쇄한다는데, 우리나라는 원전을 새로 짓는 것도 모자라, 성탄절 즈음에 신규 원전 건설 부지 후보로 삼척과 영덕을 발표했다. 연말연시에 사람들이 경황없을 때 이런 중차대한 발표를 효율적으로 해버리는 그들의 꼼수란! 아이들을 위해 원전을 없애야 한다고 믿는 나는 가장 추웠던 23일, 27일에 1인 시위를 해야 했다.

사회 전반적으로 있었던 여러 가지 큰 소식들. 모두 나열하려면 한도 끝도 없을 정도로 많다. 정신없이 큰일이 많았던 한해였다. 나는 아이 엄마로서 생태적 감수성을 가지지 않을 수 없기에, 내가 일상에서 깊이 느끼고, 내 일상의 행복을 침해하는 것만 적어도 이 정도다. 물가가 터무니없이 올라 엥겔지수가 높아진 가정경제부터,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먹거리에 대한 불안이 늘어나서 장을 볼 때마다 생선을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는 일, 무슨 연유인지 한강 상수원에 녹조류가 증가해 냄새나는 물을 마셔야 하는 현실까지. 하나하나 살피면 결국 잘못된 정치로 인해 내 일상이 무척 피곤해졌다는 사실이다.

새해는 총선과 대선이 있는 중요한 해다. 나도 눈을 부라리고 후보들의 정책을 살필 것이다. 누가 파괴가 아닌 돌봄의 정치를 펼 것인지, 당장의 이익이 아닌 미래 세대를 위한 책임있는 사회를 만들지 꼼꼼히 보겠다. 정치는 남의 일이 아니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침해당하고 싶지 않다면, 내년에 우리 모두 어떤 정치인을 선택할지 심사숙고할 일이다. 


태그:#정치, #4대강 , #강정마을, #후쿠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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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산책하는 삶을 삽니다. 2011년부터 북클럽 문학의 숲을 운영하고 있으며, 강과 사람, 자연과 문화를 연결하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의 공동대표이자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강'에서 환대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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