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연하고 아름다운 엔딩곡이 오래도록 머릿속을 맴돈다. 이 음악을 어디서 들었던가. 얼굴을 찡그리며 기억하려 애쓴다. 한참 뒤 살며시 미소 짓는다. '그래, 저주 받은 걸작인 <바보 같은 사랑>에서 이따금 들었어. 제목은 알 길 없지만. 이 음악이었지.' 나는 안도감에 숨을 내쉰다.

<아멘>이 지난 8일, 광화문 씨네큐브서 모습을 드러냈다. 김기덕 감독의 17번째 영화. 유럽 곳곳을 바람처럼 떠돌며 배우랑 단 둘이 찍은 영화. 손수 개조한 카메라를 들고 13주 만에 찍은, 가히 실험적인 영화. 지난 9월 스페인에서 열린 '산세바스티안 영화제' 경쟁부문에 공식 초청되었던 작품. 그런데 평단은 어찌 조용할까. 개봉한 지 꽤 됐는데도 아직 이렇다 할 평론 하나 없다. 놀랍지는 않다. 그동안 평단이 김기덕을 어떻게 대해왔는지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나는 빨리 늙어버린 아이처럼 그러려니 한다. 슬프지만 이제, 울지는 않는다.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이명수' 찾아 프랑스로 떠난 여자의 이야기

<아멘> (2011) 포스터. 김기덕 감독의 열일곱 번째 영화. 한 여자가 명수라는 이름의 희망, 자유, 신념을 찾아 유럽 곳곳을 방랑하는 이야기.

▲ <아멘> (2011) 포스터. 김기덕 감독의 열일곱 번째 영화. 한 여자가 명수라는 이름의 희망, 자유, 신념을 찾아 유럽 곳곳을 방랑하는 이야기. ⓒ 김기덕필름

'아멘…기도한 대로 이루어주옵소서.'
여자는 배낭 하나 달랑 메고 무작정 프랑스로 간다. 이명수를 만나기 위해서다. 프랑스 공항서 내려 광장에 이른 여자는 느닷없이 명수를 부른다. 마치 그 자리에 명수가 있기라도 하듯이. 그러나 명수는 거기 없다. 그와는 도통 연락이 닿지 않는다.

여자는 명수가 이탈리아 베니스로 갔다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향한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흐르는, 베니스의 강물을 향해 여자는 또 다시 큰소리로 명수를 호명한다. 그러나 명수는 없다.

이쯤 되면 명수는 특정 인물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강한 의문이 든다. 정말 의문일까, 혹은 계시일까. 그리고 문득 사무엘 베케트가 쓴 기묘한 작품 <고도를 기다리며>를 떠올린다. 이 희곡에서 '고도'는 특정 인물이 아니라 신, 구원, 이상향, 자유이다. 여자는 정녕 무얼 찾으러 프랑스로 간 걸까.

그녀는 프랑스에 있을 거라 믿었던 명수가 베니스로 떠났다는 말을 듣고 이탈리아 베니스 행 야간기차를 탔다가 괴한에게 강간을 당한다(괴한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그는 가히 험악해 뵈는 방독면을 쓰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임신까지 하고 만다. 괴한은 시종 여자를 미행한다. 그는 여자를 강제로 범하고 나서 여자의 가방이며 옷, 신발까지 모조리 집어간다. 훔치는 행위는 명백히 아니다. 그건 여자를 제 시야에 묶어두려는 행위다. <선녀와 나무꾼>에서 나무꾼이 선녀가 도망치지 못하게 옷을 감추듯이 말이다.

그리고는 하나씩 되돌려준다. 처음엔 신발, 그 다음엔 점퍼, 그 다음엔 가방을. 여자는 끊임없이 명수를 찾지만 명수는 어디에도 없다. 공교롭게도 여자는 명수 대신 괴한이랑 얽힌다. 운명도 아닌 것이, 자꾸 운명처럼 거슬린다.

괴한은 서서히 본심을 드러낸다. 여자더러 자기의 아이를 낳아달라고 부탁한다. 뻔뻔스럽다. 어떻게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아이를 낳아달라고 할 수 있을까. 기이하다, 당혹스럽다. 피해자인 여자는 분노한다. 그녀는 괴한이 숲길에 놓아둔 갓난아기 신발을 힘껏 던져버린다. 우롱을 당하는 것 같아 참을 수 없다. 신발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제 고향으로 가서 저의 아이를 낳아주세요. 저를 위해서.' 괴한은 순진한 아이일까, 영악한 속물일까.

도대체 이 괴한의 정체는 뭘까. 상처받은 자다. 온전히 제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자이고, 그리하여 방독면을 쓰고 다니는 자다. 그가 어떤 상처를 받아왔는지 알 수는 없지만(전작인 <아리랑>을 보면 넉넉히 헤아릴 수 있다), 분명히 상처받은 영혼이다. 강제로 여자를 범해야 할 정도로 나락에 떨어진 사람이다.

그는 아마도 프랑스 광장서 이 여자를 처음 보았을 것이다. 그는 여자가 난데없이 "명수야, 이명수!"하고 부르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정말 명수를 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무작정 불러야만 하는, 불러내야만 하는 존재. 그것이 명수임을 남자는 본능적으로 느꼈을 것이다. 여자가 찾는 '명수'는 현실 속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또한 여자는 결코 혼자 힘으로 명수를 찾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그리하여 이 어두운 몽상가는 굳게 다짐했을 것이다. '내가 당신이랑 함께하겠소. 내가 명수를 찾게 해주겠소.' 그는 여자를 미행하게 되고, 여자가 베니스행 야간기차 안에서 잠을 자고 있는 동안 범했을 것이다. 여자에게 명수를 찾게 해준다는, 지극히 주관적인 자기확신(자기소명)을 갖고 말이다. 모세가 이집트에서 핍박 받는 히브리민족을 이끌고 광야로 가겠다고 결심한 것도 자기확신이 아니고 무어란 말인가. 보다 나쁘게 말하면 자기망상이지 않는가(그로 인하여 종국엔 히브리민족의 모든 것인 율법이 완성되었다고 해도 말이다).

잠깐 앞쪽 내용을 더듬어보면, 여자는 프랑스로 와 명수를 찾다가 못내 지쳐서 성인들이 묻혀 있는 묘지를 거닌다. 그러다 기다란 의자에 누워, 죽은 사람 시늉을 한다. 몹시 절망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그녀는 비가 사정없이 쏟아지는 밤에 거리를 마구 내달리다 자살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애당초 그녀는 명수를 찾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멘>의 한 장면. 여자는 명수를 찾는 중에 이따금 과거를 환기하듯 
발레를 한다.

▲ <아멘>의 한 장면. 여자는 명수를 찾는 중에 이따금 과거를 환기하듯 발레를 한다. ⓒ 김기덕필름


가령 여자는 자신도 뚜렷이 알지 못하는 불분명한 희망 같은 것(명수)을 찾으려고 파리나 베니스, 아비뇽 따위를 떠돌 생각이었고, 명수를 찾은 뒤 고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으나 뜻밖에도 괴한이 나타나 상황이 묘하게 돌아간 건 아닐까. 괴한, 노트르담 성당 꼭대기서만 틀어박혀 살았던 카지모도처럼 방독면에 얼굴을 가두고 좀체 바깥세계로 나오지 않던 남자가 어느 날 불쑥 나타나 자기를 강제로 취하고, 미행하고, 도움을 주다가, 다짜고짜 자신의 소원을 들어달라고 매달리게 된 건 아닐까.

하지만 여자는 강간범이 아이를 낳아달라고 애원하자 도리어 수치심을 느낀다. 그녀는 기독교병원을 찾아가 중절 수술을 하려 한다. 괴한이 가만있을 리 없다. 그는 제 후줄근한 군복 상의에 편지를 써서 몰래 건넨다. '아이에겐 죄가 없어요. 저는 경찰에 자수하고 벌을 받을게요. 당신을 사랑해요.' 그는 어쩌면 이렇게 말하고 싶은 걸까. '알아요. 저 나쁜 놈이라는 거. 그러니 용서해줘요. 제발 용서를 빕니다. 제 아이만은 낳아주세요. 아이에겐 죄가 없잖아요.' 여자는 이 악몽 같은 상황이 너무도 버거워 한바탕 울음을 쏟아내고, 고민 끝에 남자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남자가 방독면을 벗어 바닥에 내려놓고 자수하러 경찰서로 들어가자 여자는 남자를 향해 "이명수"하고 부른다. 곧이어 온화한 얼굴로 손을 들어보인다. '안녕, 잘 다녀오세요.' 꼭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불현듯 성모 마리아의 가없는 모성애가 떠오른다. 정말 여자는 명수를 찾은 걸까? 방독면을 벗은 남자는 정말 여자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그 명수일까, 아니면 단지 여자는 남자를 명수로 받아들이기로 한 걸까.

일방적 방식이 아닌 쌍방향에서 관객과 직접 소통하리라 믿는다

확실히 김기덕 감독은 전작인 <아리랑>에서 서럽게 통곡하고 자책하고 울분을 쏟아냈으나 <아멘>에선 다소 치유를 받은 모습이다. 오랫동안 등을 돌리고 서 있다가, 폭력적이고 일방적인 방식(강간)으로나마 타인(여자)에게 말을 건네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 폭력적 방식이 <아멘>이란 독보적인 영화를 수상쩍게 만드는 감도 없지 않다. 그러나 나는 이를 한 과정으로 보고 싶다. 감독이 점차 세상 밖으로, 대중과 호흡하기 위해 세상 밖으로 나오는 한 과정으로 말이다. 방독면을 쓴 남자가 방독면을 내려놓고 경찰에 자수를 하러 가듯이, 감독도 스스로 성찰하고 돌아보는 행위를 줄곧 이어가리라 믿는다. 그리하여 끝내는 일방적 방식이 아닌 쌍방향에서 관객과 직접 소통하리라 믿는다.

<아멘> 씨네토크 중. 미국 영화저널리스트인 달시 파켓과 <아멘> 주연배우인 김예나.
이 자리서 달시 파켓은 김기덕 감독이 시스템 바깥에서 영화를 만드는 시도가 참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김예나는 이 영화에서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연기를 했다고 털어놓았다.

▲ <아멘> 씨네토크 중. 미국 영화저널리스트인 달시 파켓과 <아멘> 주연배우인 김예나. 이 자리서 달시 파켓은 김기덕 감독이 시스템 바깥에서 영화를 만드는 시도가 참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김예나는 이 영화에서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연기를 했다고 털어놓았다. ⓒ 서정순


<아리랑>을 보면서는 감독의 고통과 한이 고스란히 전해져와 마음이 무척 아팠다. 그런데 <아멘>에선 한결 밝아진 감독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숲속에 숨어 있다가 여자가 던진 돌멩이에 머리를 맞곤 아프다고 과장을 떠는 모습이 특히 유머러스했다. 위트는 김기덕 감독 영화의 한 부분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 느낌이었다. 진심으로 반가웠다.

아멘 김기덕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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