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 않으려 했다. 게다가 여자농구 WKBL 얘기라 더욱 고민이 많이 됐다. 왜냐하면 난 스무 살 때부터 우리은행 팬이기 때문이다.  

외국인 선수 캐칭이 우리은행 왕조를 이끌 때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춘천 호반 체육관을 찾았다. 한창 한가한 시기였다. 내 친구는 김은혜 팬이었고, 난 김영옥 팬이었다. 내 동생은 김나연 팬이었다. 아직도 김은혜 선수와 내 친구와 내가 찍은 사진을 간직하고 있다. '총알낭자 김영옥'이라고 만든 플래카드는 책상 한 곳에 있다. 지금은 언론사를 나와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지만, 괜찮은 기자가 되면 첫 번째 '진한 인터뷰'는 김은혜로 하겠다는 김은혜 선수와 약속도 유효하다.

 우리은행 응원 유니폼

우리은행 응원 유니폼 ⓒ 임정혁


나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4년간 춘천에서 거주했다. 어느 도시에 내놔도 뒤지지 않게 발전한 도시가 춘천이다. 그런데 조금 더 들어가면 또 한 없이 시골의 고즈넉함을 갖추고 있다. 이런 양면성이 있는 춘천시는 매력적이다. 요즘도 가끔 새로 뚫린 경춘선을 타고 놀러 간다. 수도권에서 가까우면서 안락함을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다. 하지만 이 양면성이 춘천 우리은행 농구단과 김광은 감독까지 갔으니 그게 문제다. 

여자농구 우리은행이 김광은 감독 선수 폭행 논란으로 뜨겁다. 박혜진은 곤란한 입장이다. 지난달 27일 우리은행과 신세계 경기가 끝난 후 우리은행 라커룸에서 김광은 감독이 박혜진을 폭행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예상대로 지난 1일 구리 KDB생명 경기에는 우리은행과 KDB생명 경기 자체보다는 박혜진 폭행 관련 취재가 뜨거운 것으로 전해졌다. 선수단과 사건 본인인 박혜진이 곤란했을 것은 안 봐도 비디오다. 

 임영희(왼쪽), 조혜진 우리은행 감독 대행

임영희(왼쪽), 조혜진 우리은행 감독 대행 ⓒ WKBL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은행은 12연패를 탈출했다. 연패 탈출 때문인지, 코트 밖 사건 마음고생인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선수들의 눈물은 코트를 적셨다. 취재는 '김광은 감독 선수 폭행'에 집중됐다. 당사자 박혜진과 우리은행 선수들, 그리고 조혜진 감독 대행은 언론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후 후속 보도가 나왔다. 조혜진 감독과 주장 임영희, 고참 선수 김은혜는 "과장된 면이 있다"는 한 목소리를 냈다. 피해자 박혜진은 언론 접촉을 피했고, 우리은행 측 관계자들은 기자들과 접촉을 차단했다는 후문이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우선, 시즌 중이고 가장 확실한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선수단이다. 과장된 부분이 있다면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권리가 그들에게는 있다. 언론도 양측의 목소리를 모두 반영해야 할 의무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가치 판단은 그토록 우리가 강조하는 '팩트' 즉, 사실 관계다. 여기서 말하는 사실 관계는 무엇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어찌됐든 선수에게 '물리적 행위를 가했다'는 것이다.

난 항상 주장했다. 프로는 간단한 개념이다. 그걸로 밥 먹고 살면 그게 프로다. 쉽게 다가올 수 있는 의미지만 곱씹어 보면 또 다르다. 밥을 먹는다는 것은 생존과 직결된다. 프로농구 선수는 농구로 생존하는 '사람'이다. 사람은 인격이 있고 생존권은 헌법에도 명시된 조항이다. 생존을 위한 활동에 그 어떤 비인격적 행위는 '악'이다. 

독자들과 팬들은 선수들이 구단 관계자와 홍보팀에 입장을 대변해 사건을 축소하는 인터뷰를 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 혹은 가장 가까운 사람이 말하는 것이 진실이라 믿고 선수들이 말하는 것이 사실이며, 언론이 과장하는 부분이 있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 판단은 온전히 독자와 농구팬들 몫이다. 

 사퇴를 발표한 김광은 감독

사퇴를 발표한 김광은 감독 ⓒ 우리은행 홈페이지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딱 한 줄이다. '사실'은 어떤 방법이든 간에 선수에게 '물리적 행위를 가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점은 김광은 감독 말과 조혜진 감독대행, 임영애 주장, 김은혜 선수 입을 통해서도 증명된 사실이다.

"머리카락은 잡았지만, 머리채는 잡지 않았다."
"목 상처는 조른 것이 아니라 미는 과정에서 나왔다."  

몇 년 전 유행했던 유행어가 떠오른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은, 무당이 줄타기 하는 것보다 언어 줄타기를 잘하시는 그 분은 어떻게 됐나.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목이건 머리건 머리채건 머리카락이건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물리적인 신체 접촉이 있었다는 점이다. 21세기 대한민국 '프로 사회'에서 나올 얘기는 분명히 아니다.

덧붙이는 글 http://blog.naver.com/komsy
WKBL 우리은행 김광은 감독 박혜진 여자농구 폭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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