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서울시청앞 프라자호텔에서 열린 뮤지컬<조로>제작발표회에서 조로 역의 배우 박건형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며 웃고 있다.

지난 7월 뮤지컬<조로>제작발표회 당시 환하게 웃는 박건형 ⓒ 이정민


그와 이렇게 마주할 줄이야. 9년 전, 무대 위 그를 보고 푹 빠져버렸을 때는 꿈에도 생각 못했던 일이다. 어느새 그는 11년 차 배우가 됐다. 지난 12일 뮤지컬 <조로>에서 디에고 역을 맡으며 또 다른 도전에 나선 배우 박건형을 만났다.

공연을 막 끝낸 그는 아직 옷도 갈아입지 못한 상태였다. 땀을 흠뻑 흘려서인지, 관객의 환호를 받아서인지 박건형의 얼굴은 한없이 맑았다. 전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때보다 10kg가량 살이 빠졌다는 박건형은 "몸이 이제 좀 공연 리듬에 맞춰진 것 같다"고 운을 뗐다.

"<조로> 준비하며 외롭기도...앙상블에 힘 받았다"

<조로>에서 박건형은 가면과 망토 뒤 자신을 숨기고 영웅 '조로'로 활동하지만 '디에고'라는 한 인간이다. 1인 2역을 맡게 된 셈이다. 박건형은 "조로와 디에고 모두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굳이 나누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처음에 가면을 쓰면 흥미를 느끼며 나 아닌 다른 모습을 나타내고 싶어하지만 가면의 노예가 될 경우, 정작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고 오히려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박건형은 "조로와 디에고의 삶은 마치 '투명 인간이 되고 싶다'고 하는 것과 같다"며 "박건형이라는 인물이 배우로 사는 삶과 비슷하다"고 했다.

박건형은 <조로>에서 와이어를 타고, 칼싸움을 하고, 집시들과 플라멩코를 추며 마술도 한다. 가히 종합 엔터테인먼트라고 할 수 있다. <햄릿><삼총사>를 거치며 '검객 전문 배우'라는 수식어를 얻었던 박건형은 "잘할 거라는 이미지가 있어서 오히려 준비 과정이 외로웠다"며 "부담감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런 그에게 힘을 준 것은 바로 20명의 앙상블이었다.

"예전 같으면 뭔가 작품을 끌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겠지만, 지금은 모두 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생각이 더 강해요. 앙상블 배우들에게서 힘을 받아서 제가 움직일 수 있어요. 그들도 그렇고요. 공연이 끝나면 주연 배우들은 다들 뻗지만 앙상블 배우들은 다음 회 공연을 준비해요. 모든 것을 다 쏟아내고서도 바로 충전해서 다음 공연을 준비하는 거죠."

 뮤지컬 <조로> 속 박건형

뮤지컬 <조로> 속 박건형 ⓒ 쇼팩


"10m에서 뛰어내리기 무섭지만 창피해서 말못했다"

디에고(=조로) 역에는 박건형 외에도 조승우, 김준현이 트리플 캐스팅됐다. 루이사, 이네즈, 라몬도 더블 캐스팅이다. 짝을 지어 조별로 공연하지 않는 탓에 호흡을 맞추는 이들이 매번 바뀌곤 한다. 그래서 이들은 정규 연습을 끝내고도 한참을 남아 개별 연습을 했다. 박건형은 "연습만 해도 힘이 빠지는 신이 많지만 수많은 약속이 없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지금도 연습을 꾸준히 하고 있다"고 했다.

뮤지컬 <조로>는 주연 배우들의 부상을 우려해 10억 상당의 상해보험에 가입했다. 매 공연, 줄에 몸을 의지한 채 무대 3층 10m 높이에서 몸을 던져야 하기 때문이다. 행여 타이밍을 놓치거나 줄이 엉켜버린다면 공연에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다. "높은 곳을 무서워하진 않느냐"는 질문에 박건형은 "고소공포증에 폐소공포증까지 있다"고 답했다.

"어렸을 때 파이프에서 놀다가 갇힌 적이 있어요. 3층에서 떨어진 적도 있고요. 제가 높은 곳을 안 무서워할 것처럼 생겼잖아요. 하지만 아직도 공연 중에 준비하러 올라가면 다리 뒤쪽이 저려요. 연습 기간에 사실 창피해서 말을 못했어요. '어쩌지' 싶어 식은땀도 났는데 조승우도, 김준현도 다들 뛰더라고요. 장비는 안전하다는 진단을 받았으니 심리적인 불안만 이겨내면 되는 거잖아요. 극복하고 싶었어요."

 뮤지컬 <조로>에서 가면을 쓰고 망토를 입고 '평범한' 디에고가 아닌, '영웅' 조로로 변신한 박건형.

뮤지컬 <조로>에서 가면을 쓰고 망토를 입고 '평범한' 디에고가 아닌, '영웅' 조로로 변신한 박건형. ⓒ 쇼팩


"<조로>는 순수한 열정들이 모인 에너지"

박건형은 <조로>를 "내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정의했다. 자신에게 앞으로의 방향성을 제시해준 작품이라는 것. 라이선스 뮤지컬인 <조로>가 처음 국내에 들어왔을 때, 이미지 캐스팅에서부터 거론됐었던 그는 이후 오디션을 통해 당당히 조로가 됐다. 박건형은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며 "다시 한 번 성숙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무대에 서면 관객들의 기운이 느껴져요. 낯선 것들을 뚫고 공연을 시작하는 거에요. 관객에게도 제가 낯설겠죠. 공연이 끝날 때면 낯선 게 친숙함으로 마무리돼요. 그걸 즐긴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낯섦조차 익숙해지면 식상함을 느끼게 될 테니까요. 전 시간이 지나도 풋풋함을 잃고 싶지 않아요. 노련함 이상이 없을 것 같아서요. 신선함을 지키고 싶어요."

한국 정서에 맞춰 각색한 만큼 오픈 마인드로 순수하게 받아들여 달라는 박건형. 그는 "슈퍼맨과 배트맨은 장비 발이지만 가면 하나밖에 없는 조로는 굉장히 순수하다"며 뮤지컬 <조로>를 '순수한 열정들이 모인 에너지'라고 칭했다. 박건형은 2012년 1월까지 <조로>에 흠뻑 빠질 예정이다.

"공연이 끝나면 쿠바에 가고 싶어요. 나라 전체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일 것 같아서요. 휴양지 위주로 여행을 다녔는데 이번에는 돌아다니며 걷고 싶네요."

 뮤지컬 <조로>에서 'Hope'를 열창하는 배우 박건형

뮤지컬 <조로>에서 'Hope'를 열창하는 배우 박건형 ⓒ 쇼팩


박건형 뮤지컬 <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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