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뿌리깊은 나무>에서 청년 이도(송중기 분)는 기득권 위주 세상에서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변화하고자하는 젊은의 상징을 나타낸다. 이도만의 조선을 꿈꾸는 청년 이도에서 현재 21c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젊은이의 희망을 엿볼 수 있다. ⓒ sbs 뿌리깊은 나무
본격적으로 청년 이도를 맡은 송중기에서 중년 이도를 맡은 한석규로 바통 터치를 이어받은 <뿌리깊은 나무>에서 청년 이도는 여전히 극 속에서 살아 숨을 쉰다. 계속 청년 이도의 회상 신뿐만 아니라, 중년 이도가 청년 이도의 멱살을 잡으면서 숨 막히는 대결을 펼치기도 한다.
비록 4회 남짓 짧은 등장이었지만 청년 이도는 <뿌리깊은 나무>의 전반적 스토리의 핵심이자, 극의 중추선이다. <뿌리깊은 나무> 초반 청년 이도는 상당히 영리하지만, 무자비한 아바마마 이방원의 억압을 받아 제대로 기를 펴치 못하는 유약한 청년으로 그려져 있었다. 그가 유일하게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방진놀이뿐이었다. 그 외의 왕으로서 모든 정사는 아바마마가 시키는 대로만 해야 했다. 젊은 시절 청년 이도는 오직 아바마마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대로 평생 아바마마에게 조종당하는 인형으로만 살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남몰래 아버지를 대적하기 위해 힘을 길렀다. 이도가 집착했던 방진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었다. 아버지처럼 판 가운데 一만 놓는 독재체제가 아니라, 아예 다 치워버리고 처음부터 새로 판을 짜는 것이었다. 누구 하나만 빛나는 존재로 남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사회 그게 바로 이방원의 조선과는 다른 이도가 꿈꾸는 조선이다.
새로운 조선을 만들 수 있는 해법을 찾은 이도는 이제 더 이상 아바마마가 두렵지가 않다. 칼이 아닌 글로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 되겠다고 아바마마 앞에서 당당히 외쳤다. 당연히 이방원은 패기가 넘치는 이도에게 "과연 나의 조선과 다를 수 있겠느냐"면서 반신반의한다. 승하하기 전에는 "넌 나의 무덤 앞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릴 것이다"기까지 하였다. 그렇게 떠나가는 이방원 앞에서 이도는 냉소적인 미소를 띠며 당당하게 "조선의 왕은 그리 한가한 자리가 아니옵니다."를 외쳤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청년 이도가 꿈꾸었던 조선은 오직 문(文)으로서 치세를 하는 이상향에 가까운 통치이다. 이방원의 말대로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차라리 아바마마 이방원처럼 자신에게 걸림돌이 된다 싶으면 무조건 칼로 베는 것이 더 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도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말로서 설득하고, 모든 백성들이 잘 살 수 있는 태평성대를 꿈꾸었다. 비록 극 중에서 이도는 왕으로서 이도만의 조선을 꿈꾸었다. 그러나 절대 군주임에도 불구하고 강자가 아닌 약자의 편에서 누구나 행복한 조선을 만들고자하는 이도의 모습에서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똘똘뭉쳐 긍정적인 변화의 힘을 보여준 2011년 대한민국의 청년들의 희망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모두에게 합리적이고 공평한 세상을 만드는 과정은 결코 순탄지만은 않다. 기득권 유지에 급급한 세력과 맞서 싸워야한다. 그 과정에서 애꿎은 인재가 목숨을 잃기도 하고, 대부분 젊은 세대의 개혁적인 이상은 좌절되고 짓밟혀지는 것이 다반사였다. 운이 좋게 부패한 세력에 이겨서 새로운 세상을 연다 해도, 결국은 그토록 증오했던 부패된 세상과 다를 바 없이 썩어가곤 하였다.
그래서 아예 개혁 의지를 상실하고 현실에 만족하면서 살던가, 가장 기본적인 참정권조차도 "뽑아보니 그 나물의 그 밥이다"면서 기권하는 젊은이들도 많았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기본적인 참정의 책임과 의무조차 겁을 먹는 이상한 시대가 되었다. 심지어 젊은 배우가 정치를 운운하면 주위 사람들이 조심하라고 할 정도로, 20대가 정치와 참정권을 운운하면 건방진 일로 보일 정도다.
▲ 최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20대 참정권과 민주주의 정치에 대한 소신을 밝혀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배우 유아인 ⓒ 오마이뉴스
하지만 지금은 자신들의 힘으로 세상이 놀랄 만한 일대 변혁을 이루었다. 이제 사회에 무관심한다고 구박받는 88만원 세대가 아니라, 기득권층을 향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당당한 기반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연예계에서 촉망받고 있는 배우 유아인처럼 '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존엄을 가진 인간이란 이유로 발전 지향적 변화를 가지는 모든 공통분모 안에서 민주주의가 나왔다. 이기기 위해서 투표하는 것이 아니다' 라는 굉장히 옳은 말을 펼칠 수 있는 의식 있는 젊은이들도 많아 졌다. 그가 지적한 것처럼 누가 되었으나 보다는 누가 참여해서 무엇을 증명했는지가 중요하고, 그래서 의미가 더욱 남다른 서울시장보궐선거이다.
하지만 20대가 세상 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자신들의 힘을 증명했다는 것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유아인이 마지막에 자신의 트위터에서 힘주어 말했던 것처럼, 이상이 현실이 되고 현실은 또 썩어가고 새로운 세대는 이상을 품고 잘 썩어 가야한다. 그래야 젊은 시절 꿈꾸었던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또 우리 후손들은 더 나은 이상을 품을 수 있는 법이다.
무엇보다도 젊은이들이 모처럼만에 자신들의 힘으로 정치권력 이동에 큰 위력을 발휘한 것, 그리고 인기에 몸 사리기보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용기 있게 그가 속한 세대의 참정권과 사회에 대한 소신을 밝힐 수 있는 젊은 배우를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
부디 이들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그 기특한 '초심'을 잃지 않고 어떤 좌절과 유혹 속에서도 끝까지 그 마음을 잃지 않길 바랄 뿐이다. 그래서 무소불위 강한 권력 앞에서 굴복하지 않고, 끝내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하였던 1400년대 청년 이도의 이상은 2011년 대한민국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