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진중권 교수님, 지난 12일 <오마이뉴스>에 기고하신 글(<'곽노현' 거울에 비친 진보의 일그러진 초상>) 잘 읽었습니다. 또 진 교수님 트위터에 "오마이뉴스에 기고했습니다. 그게 논객으로서 저의 마지막 글이 될 겁니다"라고 남긴 말씀도 뉴스를 통해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기고 글 말미에 쓰신 "어차피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면, '논'객이 할 일은 없는 셈"이라는 말씀으로 절필을 선언한 이유를 짐작해 봅니다.

지난 12일은 진보진영의 훌륭한 논객 한 사람을 잃었다는 점에서, 또 곽노현 교육감의 보석신청이 기각되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안타까운 심정을 갖게 하는 날이었습니다.

진 교수님은 곽노현 사건 초기부터 줄곧 "곽 교육감이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저는 곽 교육감의 사퇴를 요구하는 것이 '정의'에 맞고, 사퇴에 반대하는 것이 '올바른 스탠스'를 잃어 버린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더라도 진 교수님의 주장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도덕적 기준치는 상대적이기 때문입니다.

진보진영에서 '진중권의 도덕적 스탠스'를 인정해 주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진중권의 도덕적 고결함'은 마땅히 존중되어야 하지 비난의 대상으로 삼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진 교수님, 한상희 교수님 등 진보학자들이 진 교수님의 도덕적 책임론에 대해서 다소 예민하게 반응한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시다시피 이명박 정부 들어 검찰은 정치적 사안마다 정파성을 보이며 '실체적 진실 발견'이라는 법적 책임을 도외시한 채 도덕적 책임을 묻고 여론몰이를 하면서 범죄자의 각인을 새겨왔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 당시에도 보수극우언론뿐만 아니라 진보언론들마저도 '노무현 싫다'는 감정과 법률적 문제도 구분을 못하는 모습들을 종종 보여주기도 하였습니다. 노 대통령 퇴임 후에는 언론이 줄곧 대통령의 후원자라 부르던 박연차의 금전제공행위에 대해서, 노 대통령은 당시 금전제공 사실도 인지하지 못했지만, 검찰은 대가성도 밝히지 못한 채 언론들과 함께 뇌물죄로 압박하면서, 도덕적 비난 가능성을 형사범죄로 둔갑시켜버리기도 하였습니다.

제가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 <노무현 싫다와 법률적 판단을 구분하자>(2007년 6월 7일)와 <동영상 있어도 증거 無 대가입증 못해도 뇌물죄>(2009년 6월 14일) 글도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제가 우려했던 문제가 대한민국에서는 아직도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곽 교육감 사건을 바라보는 조기숙 교수의 "노무현 전 대통령 (등)에게 가해진 검찰의 편파수사, 기획수사 그리고 우리가 치른 희생으로부터 배운 것이 별로 없어 보인다"는 우려도 진 교수님 생각처럼 주책없는 정치선동으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진보진영의 일부 학자들은 '진중권의 도덕적 고결함이 검찰과 보수극우언론들에 이용당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큰 나머지 진 교수님의 곽 교육감 사퇴 주장에 대해서 감정적으로 비난하는 우를 범했다고도 생각됩니다. 널리 이해해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진중권의 '도덕적 스탠스'도 존중받아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곽 교육감이 검찰에 의해 기소돼 제1심 재판 중에 있고 이제 도덕적 책임이 아니라 법적 책임을 따지는 상황이라면, 도덕적 책임 소재만 추궁하는 것이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습니다.

진 교수님, 곽노현 교육감이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법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곽 교육감이 법적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도덕적 논리와 법적 논리는 일치하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형사법적 논리는 더욱 엄격하게 해석됩니다. 인신구속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형사범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제1단계 '구성요건의 해당성', 제2단계 '위법성', 제3단계 '책임'을 충족시켜야 합니다. 구성요건의 경우에도 객관적 구성요건, 주관적 구성요건 즉 이 두 가지 모두를 충족시켜야 합니다. 현금 2억이 전달되었다는 객관적 요건이 있다 하더라도 후보 사퇴에 대한 대가라는 것을 인식하는 주관적 요건인 '고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곽 교육감은 캠프 관계자의 선거비용 보존에 대한 합의 당시에 그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검찰은 이 부분에 대한 반대증거를 명확하게 입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즉 범죄성립의 제1단계 구성요건 해당성도 검찰이 밝히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검찰이 곽 교육감을 기소한 공직선거법 제232조 제1항 제2호의 규정상 모호함이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따라서 헌법학자인 한상희 교수가 규정상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현 공직선거법 제232조 제1항 제2호도 입법자의 입법의도를 고려해서 해석하는 경우에 곽 교육감이 유죄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공직선거법 제232조 제1항 제2호는 후보자를 사퇴한 데 대한 대가를 목적으로 동법 제230조 제1항 제1호에 규정된 행위 즉 ① 금전 등 '제공' 행위 ② '제공 의사 표시' 행위 ③ '제공 약속' 행위를 한 자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검찰은 곽 교육감이 교육감선거 이후 즉 박명기 후보자의 후보사퇴 후 2억을 전달했으므로 공직선거법 제232조 제1항 제2호로 기소를 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조항으로 처벌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후보자가 사퇴하기 전에 후보 사퇴에 대한 대가로서 (후보사퇴 후에 금전 등을 제공하겠다는) 금전제공 의사표시, 제공 약속 행위" 등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곽 교육감은 캠프 관계자의 권한 없는 선거비용 보전 구두합의 당시에 그 사실조차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 실체적 진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도덕적 판단 말고 '실체적 진실' 밝혀야

진 교수님, 저는 진중권의 도덕적 논리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진중권의 도덕적 스탠스에서는 곽 교육감의 사퇴가 '정답'이고 '정의'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검찰이 밝혀야 하는 것은 실체적 진실입니다. 따라서 형사법적 논리 즉 범죄성립요건이 충족되는지 여부를 살펴야지 지금처럼 검찰이 상황 논리와 도덕적 논리를 앞세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법원이 지난 12일 곽노현 교육감의 보석청구를 기각하며 증거인멸의 우려를 이유로 든 것 또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앞으로 있을 제1심 재판도 상황 논리와 도덕적 논리에 사로잡힌 채 흘러가지는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현재 곽노현 교육감은 박명기 교수에게 선의로 2억을 전달했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검찰은 곽 교육감이 캠프 관계자의 선거비 보전 구두합의 당시 그것을 인지했는지 즉 금전제공 의사표시 또는 금전제공 약속행위를 인지했는지 밝혀야 합니다. 지금처럼 그것을 밝혀내지 못한다면 곽 교육감은 무죄입니다. 또한 법원도 "의심스러운 경우에는 피고인의 이익으로(in dubio pro reo)"라는 법원칙에 따라서 무죄를 선고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진 교수님, 다소 의견 차이가 있더라도 앞으로 감정적 상호비난을 극복하고 마음으로 화해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논객으로서의 절필선언을 거두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진중권의 촌철살인의 한마디가 아직도 절실한 때입니다.


태그:#진중권 , #도덕적 책임 , #법적 책임 , #곽노현 교육감, #정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