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곽노현 교육감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었다. 이미 기소 전에 곽 교육감과 사건 관련자들은 대체로 파렴치범으로 취급되었다. 특히 곽 교육감이 박명기 교수에게 금품을 제공했다는 사실을 기자회견을 통해 밝히자마자 전사회적으로 유죄판결을 내렸으며, 듣고 싶은 진실은 더 이상 없다는 분위기가 여전히 팽배하다. 진보 쪽은 다가올 서울 시장 선거에 악영향을 주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최소한 무죄추정의 법리에 따라 한 번 사태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검사 이야기만 듣고 송사를 끝낼 수 없지 않은가! 2010년 당시 교육개혁을 염원하는 시민사회의 단일화 대의에 동참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지도 않고 범죄자로 매도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

곽 교육감이 발표한 대로 선거부채로 인해 재정적인 어려움에 처한 박명기 교수를 돕기 위한 긴급부조가 진실이라면, 우리는 마땅히 검찰의 정치적 의도에 따라 법이 자의적으로 해석되지 않도록 주목해야 한다. 검찰은 어쨌든 곽 교육감의 행위가 이른바 사후매수죄(공직선거법 제232조 제1항 제2호 참조)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사후매수는 사퇴한 뒤에 '후보사퇴에 대한 대가를 목적으로' 후보자였던 자에게 금원을 지급한 행위를 의미한다. 필자는 여기서 사후매수죄의 불합리함을 여섯 가지 정도로 지적해 보려고 한다.

첫째, 사후매수라는 개념부터 문제다. 예컨대, 이미 내 것이 되어 버린 물건을 내가 다시 살 수 없듯이, 이미 포기해 버린 후보자 지위를 다시 매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후보사퇴와 대가지급에 관한 사전 약속이 없다면 사후매수라는 것은 개념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사퇴 전에 사퇴조건부 대가지급의 약속이 있고 그리고 사퇴 후에 대가지급의 행위가 있을 때에만 이 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본다.

둘째, 제232조 제1항 제1호(사전매수죄)와 제2호(사후매수죄)의 법정형이 동일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조문 참조). 사퇴자에게 돈을 주는 것이 무조건 나쁘다고 하더라도 제1항 제1호의 <사전매수행위>와 제2호의 <사후매수행위>가 법적으로 등등하다고 볼 수 없다.

사전에 사퇴시킬 목적과 사퇴조건부 대가지급의 합의가 없는 상황이 사전 목적과 사전 합의가 있는 상황과 동일하게 평가된다면, 이는 마치 돈이 있는 줄 알고 식당에서 음식을 먹다가 계산할 때에 돈이 없는 것을 발견한 경우(단순무전취식)와 아예 돈이 없는 것을 알면서 음식을 주문해서 먹는 행위(사기)를 동일하게 평가하는 것과 같다. 사전에 일정한 의도 하에서 진행된 행위와 그러한 의도가 없이 후발적으로 이루어진 결과를 법적으로 동일하게 평가할 수는 없다.

셋째, 후보매수죄와 당선인매수죄를 서로 비교함으로써 사후매수죄가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기본적으로 후보자매수죄보다 당선인매수죄(제233조)가 중죄이다. 그런데 당선인매수죄에서는 <사후매수죄>가 없고, 오로지 <사전매수죄>만 있다. 중죄인 당선인매수죄에 사후매수죄가 없다는 점은 설명되지 않는다. 조문형식도 완전히 다르게 구성되어 있음을 비교해보아야 한다. 이렇게 나란히 있는 규정조차 통일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데서 보듯이 입법과정에서의 과오를 추측한다. 제232조 제1항과 제233조 제1항이 왜 달라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넷째, 사전 목적과 사전 합의가 없는데도 후보자들 간의 지원이나 약속을 모두 금지하고, 선거로 인해 형성된 일시적이고 특수한 관계를 영구화하는 것은 법의 한계를 이탈하였다. 법은 시간의 제약 아래에 있다. 공직선거법은 선거결과에서 벗어나 조속한 사회 안정을 추구한다. 그래서 각종 선거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선거일 이후 6개월로 한정한 것이다.

그런데 검찰의 주장대로라면 어느 여유 있는 정치인이 사전에 약속이 없었지만 선거가 끝난 뒤 10여 년이 지난 후에 자신을 위해 사퇴해 주었던 가난한 동지에게 재산을 증여하더라도 범죄가 된다. 오히려 끝도 없이 죄의 성립이 가능하게 되어 있다. 법률 제정시에 심각한 오류를 느끼게 한다. 만약 법률이 당선인과 사퇴자간에 일체의 증여, 지원, 거래, 기회제공을 금지한다면, 이것 역시도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규범이다.

다섯째, 이 법은 사퇴자의 공직참여의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함으로써 해당분야에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고 있는 사퇴자의 공무담임권도 침해하고, 한편 당선자의 인사권을 근본적으로 침해하는 문제도 안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규정은 정치의 본질과도 배반된다. 정치는 정치적 목적을 위하여 이합집산하고, 보다 유사하고 근접한 정치적 대의를 추구하는 세력들과 연합하는 과정이다. 대한민국 입법부가 경쟁자였다가 사퇴한 후보자들에게 정치적 기회나 이익을 제공하는 행위를 진정으로 범죄시하고자 했는지는 의문이다. 정당 안에서도 이미 비용처리나 공직배분에 대한 관행이 확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당이 구조적으로 이러한 조치를 한 때에는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규정을 당파 없는 선출직 공직자에게만 적용하는 것은 평등원칙에 반한다.

사전 목적과 사전 합의 없이 이루어진 일체의 지원행위가 모두 선거법 위반행위라면 공직선거법은 실질적 불법이나 책임이 없는 데도 처벌함으로써 죄형법정주의의 기본원칙에 반하고, 정치를 부정한다. 따라서 사후매수죄는 여러 가지 면에서 신중하게 생각해야할 규정이라고 본다.

참조:

제232조(후보자에 대한 매수 및 이해유도죄) ①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1. 후보자가 되지 아니하게 하거나 후보자가 된 것을 사퇴하게 할 목적으로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나 후보자에게 제230조(매수 및 이해유도죄)제1항제1호에 규정된 행위를 한 자 또는 그 이익이나 직의 제공을 받거나 제공의 의사표시를 승낙한 자

    2.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것을 중지하거나 후보자를 사퇴한데 대한 대가를 목적으로 후보자가 되고자 하였던 자나 후보자이었던 자에게 제230조제1항제1호에 규정된 행위를 한 자 또는 그 이익이나 직의 제공을 받거나 제공의 의사표시를 승낙한 자

    ②제1항 각호의 1에 규정된 행위에 관하여 지시·권유·요구하거나 알선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233조(당선인에 대한 매수 및 이해유도죄) ①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개정 2000.2.16>

   1. 당선을 사퇴하게 할 목적으로 당선인에 대하여 금전·물품·차마·향응 기타 재산상의 이익 또는 공사의 직을 제공하거나 그 제공의 의사를 표시하거나 그 제공을 약속한 자

   2. 제1호에 규정된 이익 또는 직의 제공을 받거나 그 제공의 의사표시를 승낙한 자

   ②제1항 각호의 1에 규정된 행위에 관하여 지시·권유·요구하거나 알선한 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이재승 씨는 현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 재직 중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주간웹진 <사람소리>에 실렸습니다.



태그:#곽노현 교육감, #사후매수죄, #죄형법정주의, #공직선거법
댓글

인권연대는 1999년 7월 2일 창립이후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에 따라 국내외 인권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인권단체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