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현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집행위원장

조재현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집행위원장 ⓒ 성하훈


백제 의자왕이 DMZ 때문에 바빠졌다. DMZ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가 개막하면서 드라마 <계백>에서의 왕과, 영화제를 책임지는 집행위원장 자리를 오가야 하기 때문이다. 책임감이 막중하게 느껴지는 듯 촬영 중 부상을 당한 상태에서도 조재현은 영화제 준비와 관련한 일정을 소화했는데, 개막일 역시 마찬가지였다.

22일 영화제 개막식이 끝나고 조재현 위원장은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는 의자왕이 됐다가 촬영을 마치고는 곧바로 DMZ 영화제가 열리는 파주출판도시로 돌아와 위원장 역할로 복귀했다. 영화도 보고 관객들과도 만나면서 바쁜 하루를 보내는 중이었지만, 하루가 지나면 또 다시 의자왕으로 돌아가야 한다.

일반상영이 시작된 23일 용산참사를 다룬 <두 개의 문>을 보고 나와 한 숨 돌리고 있던 조재현 위원장을 만나 영화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의 첫마디는 지난해 <오마이뉴스>와 가졌던 인터뷰 기사 제목("한국 영화판이 진보인 건 알겠는데...한나라당 찍었다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에 대한 불만이었다.

"당시 인터뷰했던 기자님이 그렇게 제목을 붙이셨던 것은 아닐 텐데, '한나라당 지지하면 이상한 취급당한다'는 말은 내가 한 말이 아니고 내 주변 사람 이야기를 전한 것입니다. 그런데, 주변에 마치 내가 그런 말을 한 것처럼 돼서 오해를 받았었습니다."

"사심이 없는 사람이라는 보고가 김문수 지사와 인연된 듯"

 22일 도라산역에서 열린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개막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조재현 집행위원장

22일 도라산역에서 열린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개막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조재현 집행위원장 ⓒ DMZ docs

DMZ 다큐멘터리 영화제, 의미가 있으면서도 재밌고, 한편으로는 고개가 갸웃해지는 영화제다. 빼어난 다큐멘터리 작품을 통해 대중과의 접촉면을 넓히면서, 독립 다큐영화에 대한 지원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주체가 김문수 지사가 있는 경기도라는 사실에서는 다들 의문을 품는다. 독립 다큐영화의 정치, 사회적 발언이 센 것이야 워낙 잘 알려져 있고, 이 때문에 권력자들은 이런 영화들에 대해 상당히 불쾌한 심기를 갖기 마련이다. 

지난해 독립영화를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됐던 이유기도 했다. 그러니 한나라당 소속인 김문수 경기도 지사가 이를 지원하고 있는 것이 어리둥절할 수밖에.

출범 이후 의혹의 시선도 존재했지만 DMZ 영화제는 3회째를 맞으며 규모와 작품 수준이 더 높아졌다. 몇 년 안에 아시아를 대표하는 다큐멘터리 영화제가 될 가능성이 엿보일 정도로 그 성장세가 가파르다. 그 중심에 조재현 위원장이 자리한다. 김문수 지사는 조재현 위원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며 전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고, 이 신뢰를 바탕으로 DMZ 영화제가 쑥쑥 자라나는 양상이다. 

"얼굴마담으로 생각했다가 나름 열심히 하니까 신뢰를 보내는 것 같아요."

조 위원장은 김문수 지사를 전부터 알고 지냈던 것은 아니라고 했다. 실무자가 '사심이 없는 사람이다'라는 보고를 올린 것 같고, 이게 계기가 됐다고 한다. 그런데 일을 해보니 일하는 방향이나 스타일이 딱 맞았다고 말했다.

그게 신뢰의 바탕이 됐다는 것인데, 그래도 혹시나 또 다른 연결고리는 없을까 물었더니 시인 박노해씨 이야기를 꺼냈다.

"김문수 지사가 박노해 시인과 친한 사이더군요. 제가 예전에 박노해 후원모임에 몇 년 동안 참여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인사를 나누거나 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잼다큐강정> 주시한다는 이야기 들었지만, 차단할 수 있는 세상 아냐"

 22일 개막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상영되고 있는 <재앙의 묵시록> 핵문제의 위험성을 다룬 작품이다

22일 개막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상영되고 있는 <재앙의 묵시록> 핵문제의 위험성을 다룬 작품이다 ⓒ DMZ docs


그렇다고 반전이나 반핵, 용산참사, G20 반대 투쟁 등 권력에 맞선 이들의 저항을 담은 영화가 불편하지는 않을까? 더구나 민간인 출입이 통제된 DMZ 지역에서 열린 개막작 <재앙의 묵시록>은 핵 문제의 심각성을 다룬 영화였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로 핵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는 요즘 시기적으로 적절한 영화지만 어떤 면에서는 부담이 될 수도 있는 작품이다. 게다가 몇 달 새 사회적 이슈로 급부상한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그린 <잼다큐강정>이 DMZ 영화제를 통해 처음 상영된다.

"물론 개막작이 불편했던 분들도 있을 겁니다. 작품에 대해서는 말단 공무원들이 우려를 많이 합니다. 예민한 영화들이 많이 상영돼서인지, 제가 직접적으로 들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어느 쪽에선가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강정마을 다룬 <잼다큐강정>도 주시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차단하고 막고 하는 세상이 더 이상 아닙니다.

DMZ 영화제는 건강한 영화제입니다. 이런 정치적 환경을 뛰어 넘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안에 있으면 바뀔 수 없지요. 우리는 오직 작가를 존중해 주는 차원입니다. 좌파 영화제가 되려는 것은 아니기에,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하거나 해서는 안 됩니다. 김문수 지사도 작품에 대해 다 알고 있는데도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이 만들어졌을 때 부시대통령도 많이 불편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배급도 원활하게 되고 해외로 팔려 나가는 데 어떠한 제약을 두지 않았잖아요. 작가 표현의 자유를 존중했던 것입니다."

조재현 위원장은 작품성과 작가 정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래서 "이념적인 면만 강조할 뿐 수준미달 작품이나 유치한 작품은 아예 배제한다"고 말했다. 작품성이 있고 잘 만들어진 작품인지의 여부만 중요할 뿐이라는 것이다.

"진보든 보수든 서로 존중해 주는 자세 필요"

 조재현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집행위원장

조재현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집행위원장 ⓒ 성하훈

그가 DMZ 영화제를 통해 강조하고 싶은 것은 열린 소통이었다. 내 이야기만 하지 말고 상대의 이야기도 들어보자는 것이다.

"작년에 쌍용차 관련 다큐를 봤는데,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마지막 장면에 노조위원장이 '저는 이제 감옥에 가니 사식이나 넣어 주십시요' 하는데 눈물이 막 쏟아지더군요. 그런데 옆에서 같이 울었던 고등학생이 영화가 끝나고 감독과의 대화에서 질문을 하는데, 이렇게 묻는 겁니다. '왜 노동자들 이야기는 있는데 사측 이야기는 없냐고.'  공감되는 말이었습니다.  

예컨대 4대강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반대하는 주장이 많잖아요, 그런데 찬성하는 쪽 이야기를 전혀 안 들으려고 해요. 찬성은 반대하는 쪽 이야기를 안 들으려 하지요. 그러지 말고 양쪽 이야기를 서로 들어보자는 겁니다. 김여진씨 같은 후배들이 사회적 발언하면 한쪽에서 연기나 제대로 하라면서 욕하는데, 반대쪽도 자신의 생각과 다른 연예인들 욕하기는 마찬가지거든요. 진보든 보수든 서로에게 욕 만하지 말고 존중해 줬으면 좋겠다는 것이지요."

그는 DMZ 영화제의 작품들이 한쪽에 편중돼 있지는 않다고 했다. <김정일리아>처럼 북한 체제를 비판적으로 다룬 작품이나 한국전 참전 용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들도 상영작 목록에 포함돼 있다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자는 게 목적이라고 덧붙였다 

"DMZ가 성장하는 비결? 간섭하지 않고 전적으로 일임할 뿐"

다큐멘터리 영화제 위원장을 맡고 있지만 조재현 위원장은 다큐멘터리 전문가는 아니다. 그의 말대로 조금씩 알아가고 재미를 붙이는 과정에 있다. 하지만 단 3년 만에 DMZ 영화제는 주목받는 영화제로 성장했다. 조 위원장은 그 이유에 대해 "간섭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고 답했다. 

"부산영화제 김동호 위원장을 벤치마킹한 것은 아니었지만, 간섭을 안 하고 심사위원들에게 전적으로 일임합니다. 개막작 선정관리 정도만 제가 합니다. 작품 선정에 대해서는 강석필 프로그래머의 판단을 존중하고요. 김문수 지사가 저를 신뢰하는 만큼 저 역시 프로그래머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는데, 분명한 기준을 갖고 작품을 고르기 때문에 신뢰감이 생기는 것입니다."

영화제가 성장하고 있는 만큼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영화제로 키우겠다는 욕심도 나타냈다. 더불어 영화제가 건강하게 오래 갔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었다. 조재현 위원장은 "상영 편수와 규모를 늘려 오래 갈 수 있도록 토대를 놓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예산을 잘 확보해서 안정적 운영이 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조 위원장은 아직도 DMZ 영화제 성격에 어리둥절한 기분을 갖고 있는 독립영화 진영의 분위기에 대해 "네 편 내 편 구분 짓다보니 그런 것이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적응될 것이라 본다"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이번 영화제에서 관객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작품으로 칸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로는 사상 최초로 비평가 주간 섹션에서 수상한 덴마크 영화 <아르마딜로>를 꼽았다.

"전쟁영화인데 다큐멘터리의 저변을 확대할 수 있을 만한 작품입니다. 감동과 진심이 담겨 있고 극영화에서 볼 수 없는 또 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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