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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 사회에 있어 종교의 영향력은 말할 수 없이 커져있다. 강력한 집단을 구성하게 되면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고 이러한 점은 누구나 인정하는 상황이지만 집단적 파시즘이 어느 때보다 강력한 상황이다. 모두 입을 다물고 있다. 다수의 반사적 공격은 과거나 지금이나 무서운 공격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종교집단의 각 상황에 관하여 내부에서 반성이 나오고 있다. 순수한 종교의 근본으로 향하고자 하는 지식인층의 걱정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하지만 외부에서는 함부로 말을 못한다. 강력한 집단권력자 앞에 잘못 나섰다가는 어떻게 될지 알기 때문이다.

 

한국의 종교가 변해가는 과정인 것 같다. 관료적 사고가 깊이 침투하였고 정치적 권력욕구로 높은 곳을 향하여 포효하는 야수의 모습이다. 사냥반경에 잘못 들어갔다가는 마녀재판에 희생될 것은 너무나 확실하다.

 

다른 측면으로 보면 토착화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종교문화적 포퓰리즘으로 정책이 구성되어지고 아포리즘으로 색칠을 하여 구성원들을 중독시키고 판단력을 약화시켜 내부를 아름답게 포장하고 있으며 내부적인 지도자들은 이미 그러한 것들의 이상이나 이하에도 관심이 없다.

 

안에서는 무속적 판타지에 물들어 있고 집단끼리 나누어 힘을 키우고 있다. 과거 우리 땅의 종교 혹은 무속은 권력지향적이었고 그 과정이 역시 반복 진행되는 것이라 볼 수 있겠다. 과거 지나친 불교의 권력화 극복을 위해 조선은 산 속으로 승려들을 내몰고 유학을 대신하였지만 유학은 주자를 교조로 하여 유교를 만들고 또다시 더 강력한 권력집단을 구성하게 되었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현재의 변화과정은 자연발생적인 것이어서 가장 토속적이고 무속적인 형태로 변화해 가는 것이다. 종교 내부의 지성인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상황이겠지만 호의적 관점으로 맞추어 본다면 보면 이 땅에 맞게 신체의 체질을 변화해 가는 과정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겠다.

 

어떤 면에서는 강력해진 종교의 당연한 진로이며 마치 계절이 변하듯 자연스런 행로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이 변화가 올바른지 아닌지 또 이 변화를 긍정적으로 유도하고 다듬을 수 있도록 종교 내부에서 지도자가 반드시 그 길을 안내하여 주어야 할 것이다.

 

권력지향적이고 그 권력의 쾌감을 잘 아는 여러 종교단체들의 권력을 확보하려는 욕구와 권력의 소유를 간절히 원하는 성장하는 종교단체의 지향점은 모두 같은 곳이다.

 

전체 인구 대비 종교인의 실질 수가 지나치게 많아지면 그 자체적으로도 보수화되거나 권력화 된다. 그것은 완성된 권력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전통의 권위에 자신을 위치하려 하게 되고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고정된 교조주의를 확립하려 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오로지 자기의 것만을 주장하는 종교의 특성상 점유율 전쟁을 하게 되고 종교의 본래적 근본을 향하기보다 형식적 외양과 지위를 더 치중하게 되며, 이러한 과정에 순수한 교리의 자리에는 민족적이며 감성적 전통인 민간신앙이 파고들게 되고 전혀 의도하지 않은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급격한 성장과 변화과정에는 그 만큼의 고통을 필요로 할 것이다. 특히 절대권력을 쟁취한 종교는 많은 사람들에게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족쇄를 채우는 경우가 많게 될 것이다. 권력과 종교의 결탁만큼 강하게 부패하는 경우는 없으니까. 역사상 그것만큼 민중을 고통으로 내모는 경우도 없고 빠져 나오기 힘든 것도 없었다.

 

과거 중세 종교지배의 사회가 어떠했나 상상해 보시기를…, 아집과 교만으로 인해 권력층 소수 이외에는 대부분 종교의 이름으로 희생을 강요당해야만 했고 거기서 빠져 나오는 과정은 엄청난 시간과 피를 요구했다.

 

한국에 있어 기독교 사회가 권력에 저항하고 사회참여적인 정당성은 대략 70~80년대를 지나고 90년대를 넘어서면서부터 이미 사라지기 시작하고 상황은 바뀌었다. 참여적 상황은 바뀌었으나 내부는 더욱더 그곳만을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조직은 관료화되어만 가고 권력만이 그 피를 돌게 한다.

 

그렇다. 이제는 이전의 지향점을 잃은 것이어서 집단을 이루는 인간의 본능과도 같이 정치적 탐욕이라는 본연의 길, 즉 권력을 향해 가고 있다. 이것은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무속적인 피를 빨아들이고 이 땅의 토착화된 혹은 세속화된 종교로 태어나려 하는 것이다.

 

한국민족은 분석적이기 보다는 감성적이고 이성적이기보다는 충동적이며 집단적 행동양식이 뿌리 박힌 사람들이다. 기독교 혹은 종교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전염되기 시작하면 그 파괴력은 엄청난 스피드와 파괴력을 가질 것이다. 즉 순수한 열정을 되살리기도 전에 종교사회 전체가 파괴되어 버릴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내부의 지성인들은 종교적 순수성이 통속적 열등으로 떨어지고 있다고 생각하여 걱정이 태산 같다. 그러나 그분들의 목소리는 작고 관심을 받지도 못한다. 더구나 그분들이 그 안에서 나오면 그분들의 희망은 더욱 멀어질 것이다.

 

선순환의 해결방법이라고 한다면, 현재의 방향을 권력과 집단적 파벌주의에서 다른 쪽으로 에너지가 분산되도록 한다면 원래의 순수함과 풍부함이 되살아날 가능성도 있다. 그것은 어차피 지도적 위치에 있는 분들의 몫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순수한 지도자를 맞이한다는 것은 그러한 지도자를 찾는 문화적 토양 하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또한 그러한 지도자를 찾는 욕구의 변화는 현재의 자기인식과 반성을 통해서만이 가능할 것이다. 자정기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내부의 각성이 있어야만 하고 이를 이끌어 주는 순수한 지도자를 추대할 수 있는 시스템이 신선한 방법으로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글을 마치면서

지금 이 글이 전체 종교사회에 대하여 지나치게 비판적 의미로 이해되지 않기를 바란다.

다만 혜안을 얻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태그:#기독교의 변화, #한국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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