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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출발이었다. 왕은 역시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다.

<거침없이 하이킥>과 <지붕 뚫고 하이킥>을 잇는 <하이킥> 3부작의 완결편인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이하, <하이킥3>)은 방영 이전부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았다. 이 관심은 이전에 방영되었던 두 작품의 훌륭한 성과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하이킥3>는 기존의 팬을 쉽게 모을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는 동시에 앞선 두 작품의 아성을 넘지 못하면 금세 실망을 안겨줄 수 있는 단점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9월 19일 저녁 7시 45분에 왕은 귀환했다. 오프닝은 기존의 작품처럼 미래의 화자가 등장하여 현재를 회고하는 형식으로 제시되었다. 김병욱 PD는 일찍이 체홉이 명석하게 정의했던 "유머란 위기에 시간을 더한 것이다" 라는 개념을 확실하게 활용했다. 오프닝의 시간에서 따지자면 <하이킥3>는 41년 전의 이야기다. 다시 말해서 늙은 소설가로 나온 이적은 2052년에 2011년을 회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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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에 기록될 굵직한 사건들이 파노라마로 지나가고 이적은 그 화면 밖에서 상황을 서술한다. 일본 대지진부터 트위터까지 2011년의 빅이슈들이 지나간 뒤에 이적이 덧붙이는 한마디 말은 <하이킥3>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으며 이야기의 방향을 제시한다.

"그해도 역시 돈의 해였다."

이제 시간은 과거로 흘러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011년 어느 중산층 가정의 주방에 도착한다. 이 집안은 여느 가족 부럽지 않게 잘 살고 있다. 남편(안내상)은 아내 생일에 호텔 뷔페를 예약하고, 아내(윤유선)는 피부관리와 마사지를 받으러 다닌다. 아이스하키 선수인 아들은 팀의 에이스로 대학진학이 문제없고, 유학을 보낸 딸은 건강하고 명랑하다.

이 평온한 가정에 날벼락이 떨어진다. 잘나가던 안내상의 회사가 사업파트너의 '먹튀' 때문에 부도가 난 것이다. 너무나도 상투적인 설정이기는 하지만 지금 이곳에서 '부도'만큼 생생하게 존재의 추락을 드러내주는 것도 드물다.

더구나 <하이킥3>가 노리고 있는 것은 실패한 자들의 패자부활전이기 때문에 '부도'보다는 그 다음이 문제다. 경제적으로 풍비박산이 난 이 가족이 앞으로 어떻게 위기를 극복해갈 것인가? 중소기업이 점점 힘을 잃어가고, 가계부채가 국가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을 만큼 커지고 있는 현상황에서 이 질문을 '남의 것'이라고 여길 사람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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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의 대다수는 현재가 불만족스럽고 미래는 두렵다. 이때 가장 나쁜 태도는 과거를 추억하며 '그때가 좋았지'라고 위안을 삼거나 '내일은 더 나은 날이 될 거야'라고 막연하게 미래에 대해 낙관하는 것이다. 상황이 나쁠수록 현재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의 삶이 왜 이 모양, 이 꼴인지에 대해서 서로 의견을 내놓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하이킥3>는 현재를 생각하게 하는 좋은 이야깃감이 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안내상이 엉덩이에 꽂힌 폭죽을 타고 달까지 날아가는 첫회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보자.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나오는 쓸쓸한 가장, 난장이가 떠오르지 않는가?

그렇다고 너무 진지한 표정을 짓고 볼 필요는 없다. 기본적으로 시트콤은 웃자고 보는 것이니까. <하이킥3>는 명인대 병원을 박차고 나온 두 명의 의사를 등장시킴으로써 <하얀 거탑>을 단숨에 코미디의 소재로 사용해버렸다. 그 장면을 보고 슬며시 웃음 짓지 않은 시청자는 아마 없으리라. 진짜 희극은 웃음과 통찰을 동시에 제공한다. <하이킥3>가 우리에게 그런 희극이 되어줄 것이라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저의 개인 블로그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써라! (http://writing101.tistory.com)'에도 올렸습니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 시트콤 김병욱 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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