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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우어파우스트>는 괴테가 평생에 걸쳐 쓴 <파우스트>의 처녀작으로 괴테의 젊은 시절의 세계관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독일의 젊은 연출가 다비드 뵈쉬의 연출은 젊은시절 괴테의 "우어 파우스트"와 닮아 있다. 바로크주의가 팽배하던 유럽의 18세기 당시, 질풍노도의 시기를 시작하며 괴테는 이성적 인간보다는 감성적 원초적 인간 본연의 욕구에 더 파고드려 하였고, 그 역작이 <우어파우스트>이다.

 

연극전문극장인 명동예술극장이 독일 연극계와의 교류를 추진하며, 독일을 대표하는 연출가 50인에 선정된 젊은 다비드 뵈쉬를 영입하였고, 그가 명동예술극장이 요청한 <파우스트>보다는 <우어파우스트>를 추천하여 무대에 올리게 되었다. 괴테 평생에 걸쳐 다듬고 또 다듬어진 대작 <파우스트>보다는 젊고 다소 거친, 그래서 더 여지가 많은 <우어파우스트>가 연출과 연극에 더 적합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대본 과정에서 뵈쉬는 <우어파우스트>의 내용 절반이 삭제하였으며, 극중 대사도 배역을 넘나들며 옮겨 배치하기도 한다. 

 

극중 정보석은 넘치는 카리스마와 에너지로 인간삶에 고뇌하는 파우스트 박사로 열연하였다. 드라마, 영화, 연극 등에서 일반관객에게 너무나 친숙하고 잘생긴 정보석이다. 인간사의 높은 지위, 부와 권력을 다 가졌으나 허망함을 토로하는 단지 흰 와이셔츠에 검정 양복차림에도 잘생긴 40대 중년신사는 우리가 알던 초연한 절대 에너지의 60대의 노인 파우스트 박사와는 사뭇 다르고 신선하다.

 

메피스토 역의 이남희 역시 카리스마 넘치는 악독한 메피스토 역으로 무대를 압도하였다. 극 중 캐릭터에서 관중과 제일 많이 호흡하는 역이 메피스토이며, 무시무시하고 지독하게 악랄하고 얄밉지만 때론 익살스럽고 하다. 극중 인간들을 파멸시키는 과정, 성적인 유희 등 인간 원초의 욕구를 메피스토를 통하여 느낄 수 있다. 메피스토를 파우스트인 줄로 착각하고 메피스토의 문하생이 되어 결국 농락당하고 개의 신세가 되어버리는 학생(김준호 역)에서는 잘난 줄로 착각하며 살아가지만 본질을 찾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이번 작품은 괴테에 초점 보다는 그레티엔(장지아 이지영 역)이 주인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레티엔에 많은 부분 초점이 맞추어 있다. 실제로 연출가 다비드 뵈쉬는 이번 연극의 제목을 "그레티엔"으로 하고 싶다고 할 정도로 이 처녀에 많은 부분 심혈을 기울였다. 또한 그레티엔의 오빠 발렌틴(윤대열 역)이 누이가 선물받은 귀걸이를 걸며 들뜬 모습에 흥분하고, 마을에서 갈보로 놀림을 받을거라고 으르렁대며 너무도 사랑하는 그레티엔을 죽이려 하는 모습 등은 마치 근친상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그레티엔의 비중을 더욱 부각시킨다.

 

심플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무대 디자인과 조명도 한몫하였다. 특히 메피스토가 그레티엔이나 파우스트 박사, 학생에게 주문을 걸며 자신의 세계관을 주입시키는 장면에서는 배우들의 연기와 함께 뒤편 무대에 흘러내리는 피를 연상시키는 붉은색 선으로 가득차 있다.  

 

마치 처녀성이 훼손되는 그레티엔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며, 그녀의 자궁속에서 만물이 창조되며 타락됨으로 보여진다. 실제로 원작 <우어파우스트>는 젊은시절 괴테의 연애담과 한 처녀의 영아 살해사건을 토대로 지어졌다. 극 초반부터 메피스토는 자신의 성기를 만지기도 하고, 학생이나 그레티엔과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동작을 한다. 관객에게 다소 충격일 수 있겠으나 어색하지는 않다. 파우스트와 그레티엔이 굶주린 듯이 키스를 하는 장면 등에서는 아름다운 원초적 욕구의 극대화가 드러난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신(정규수 역)의 역할이다. 일반적인 신의 전지전능함이나 인간사를 굽어보는 그러한 인자한 신이 아니다. 병약하고 무관심하다. 휠체어에 앉아서 인간사에 관조적이며 때로는 냉소적이다. 하지만 마지막 그레티엔이 죽을 때 등장하여 인간사를 대변해 주는 장면 등에서는 오히려 인간에게 더 연민어린 모습이 보여진다.

 

다비드 뵈쉬 연출, 정보석, 이남희 출연 <우어파우스트>는  9월 3일부터 10월 3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태그:#우어 파우스트, #파우스트, #정보석, #이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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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전공하고 작곡과 사운드아트 미디어 아트 분야에서 대학강의 및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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