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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미사마(神さま) 이야기

가미사마
 가미사마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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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으러 가던 최일성 교수가 거실 벽에 있는 이상한 물건에 주목한다. 나무로 집 모양을 만들고 문을 세 개 달았다. 그 앞에 촛대와 도자기가 두 개 세워져 있다. 도자기에는 어신전(御神前)이라고 썼다. 그러고 보니 우리식 신주단지인 모양이다. 우리는 그 이름이 궁금해 주인에게, 이게 무어냐고 물었다. 그러자 가미사마라고 발한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신님 정도가 되겠다.

그러자 우리 회원들 대다수가 집에 신주단지를 모두 버린 것에 대해 아쉬워한다. 우리는 새마을 운동한다고 신이고 서낭당이고 다 버렸는데, 일본 사람들은 그 전통을 유지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마음에서 하는 소리다. 오늘 또 좋은 공부 하나 했다. 우리 모두는 식당으로 들어가서도 터주대감이니 성주신이니 등 어릴 때 보고 듣던 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아침을 먹고 우리 일행은 9시에 여유있게 관광을 시작한다. 오늘은 먼저 대마도를 남섬과 북섬을 나누는 만제키 다리를 보고 미네마치 역사민속자료관을 방문할 예정이다. 그리고 소우씨의 원찰인 원통사를 찾아 동조약사여래좌상을 보고, 조선 전기 조·일교류를 담당한 외교관 이예의 흔적을 찾아볼 것이다. 그리고 오후에는 왕인박사 현창비와 한국전망대를 보고, 미우다 해수욕장에서 자연을 감상하며 대마도 여행의 대미를 장식할 예정이다.  

만제키 다리에서 느끼는 감회

만제키 다리
 만제키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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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제키 다리는 우리 숙소가 있던 오후나코시에서 20분 정도 걸린다. 다리를 건너기 전 길 오른쪽으로 주차장이 있어 그곳에 차를 세우고 우리는 다리를 걸어서 건널 것이다. 주차장에는 만제키세토(万關瀨戶)를 만들었다는 비석과 안내판이 있다. 만제키세토는 만관 여울을 말하는 것으로 운하라는 표현 대신 세토라는 표현을 썼다.

이곳은 옛날 아소만과 미우라만을 나누는 만제키코시였다고 한다. 1900년 일본 해군이 군사적인 필요에서 이곳을 뚫어 운하를 만들고 그곳에 80m 짜리 직선형 철다리를 만들었다. 군사적 필요란 러·일 전쟁(1904년-1905년)을 말하고, 러시아의 발틱 함대가 대한해협을 지나갈 것에 대비 아소만에 해군 전함을 정박시켰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러·일 전쟁에서 승리했고, 그 후 일본은 을사조약을 통해 대한제국을 무력화시켰던 것이다.

만제키 운하를 지나는 어선
 만제키 운하를 지나는 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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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1956년 만제키 다리를 아치형의 철다리(81.6m)로 바꿨고, 1996년에는 210m짜리 트러스교로 다시 바꿨다. 현재 다리는 빨간색으로 칠해져 있어, 주변의 초록과 바다의 파란색과 멋진 대비를 이루고 있다. 운하를 내려다 보니 물은 아소만에서 미우라만 방향으로 흐른다. 마침 아소만에서 두 척의 오징어잡이 어선이 오더니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미우라만으로 빠져 나간다. 그러고 보니 이 운하의 이용 빈도가 꽤 높은 것 같다.

다리 주변에는 고기가 많은지 새들이 앉아 있다. 대마도는 인구가 적고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어, 참새와 까마귀 같은 텃새, 제비 같은 철새, 독수리와 황조롱이 같은 맹금류 등을 쉽게 볼 수 있다. 다리를 건너 주차장으로 가니 특이한 화장실이있다. 개구쟁이 스머프네 집처럼 보인다. 우리는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미네마치로 향한다. 

미네마치 역사민속자료관

미네마치 역사민속자료관의 석기와 골각기
 미네마치 역사민속자료관의 석기와 골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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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마치는 미네만에 연하고 있어 예로부터 농업과 어업이 발달한 마을이었다. 그래서 대마도에서는 처음으로 야요이(彌生)시대(기원전 3세기-기원후 3세기)의 유적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조몬(繩文)시대(기원전 만삼천년-기원전3세기)로부터 7세기까지의 토기와 부장품이 지속적으로 발굴되었다. 이러한 유물을 보관하고 전시해야할 필요성에 의해 미네마치 역사민속자료관이 생겼다.

이 자료관은 고고학 발굴 자료실과 민속 자료실 둘로 나누어져 있다. 고고학 발굴 자료실에는 사가 패총, 미네유적, 가야노키 유적, 에비스산 유적 등에서 발굴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첫 번째 보이는 것이 사가 패총에서 나온 유물이다. 조몬 중기에서 후기 사이 주거지에서 나온 석기, 골각기, 토기가 보인다. 그 중 수렵용 사슴피리가 눈에 띈다. 그리고 미네 유적에서 나온 야요이 전기의 토기도 보인다.

환두대도와 토기
 환두대도와 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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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한반도와의 친연성을 보여주는 유물로는 세형동검과 환두대도가 있다. 중국에서 발견되는 비파형동검과 달리 세형동검은 만주와 한반도에서 출토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세형동검이 대마도를 거쳐 일본에 전달되었다는 얘기가 된다. 삼엽환두대도 역시 관심이 가는데 가야지방에서 출토된 유물과 재질이나 형태가 같다. 가야의 제철기술이 이곳으로 전달되었거나 가야에서 수입된 유물로 볼 수 있겠다. 환두대도 옆에는 가야계 토기가 함께 전시되어 있다.

민속자료실에는 일본 사람들의 과거 생활상을 보여주는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의류, 백자, 철제 용기 등이 보이고, 쟁기, 탈곡기, 삽과 곡괭이 같은 농기구도 보인다. 이들은 모두 우리가 어릴 때 보던 것들이다. 그리고 한쪽에는 등잔과 램프 등 불 켜는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것 역시 과거를 생각나게 하는 추억의 물건들이다.

생활용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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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마치 역사민속 자료관에는 우리말로 된 '미네마치의 문화재'라는 자료가 있다. 이곳에 보니 미네마치에는 1개의 국가지정 문화재와 6개의 현지정 문화재가 있다. 이것을 보려면 가이진(海神) 신사와 원통사를 가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세 개의 현지정 문화재가 있고, 우리의 조상인 이예 선생 공적비가 있는 원통사를 찾기로 했다. 원통사는 사가(佐賀)에 있다.  

원통사에서 만난 우리 조상과 문화재

원통사
 원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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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는 무로마치 시대 대마도주의 도부(島府)가 있던 곳이다. 1408년부터 1468년까지 소우씨 3대가 60년 넘게 거주했다. 그래서 이곳에는 소우가의 묘소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원통사에 있는 약사여래좌상과 동종에 관심이 간다. 원통사에 이르니 꽃정원이 우릴 반긴다. 이 정원 뒤, 절 앞에는 통신사 이예 공적비가 있고, 그 뒤로 계단을 오르면 범종각과 원통사가 있다.

우리는 먼저 이예 선생 공적비로 향한다. 비석은 2005년 11월 후손들에 의해 세워졌고, 그 옆 오석에는 이예 선생의 삶과 업적이 적혀 있다. 이 글에 따르면, 충숙공 이예(1373-1445) 선생은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외교관이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종합하면, 이예 선생은 조선 태종과 세종 시대 일본, 유구, 대마도 등을 40여회 다녀왔다. 특히 일본과 계해약조(1443년: 세종 25년)를 체결하는데 실무적인 역할을 했다.

이예 선생 공적비
 이예 선생 공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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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 선생의 공적비가 원통사에 세워지게 된 대는 사연이 있다. 외교적인 일로 대마도를 자주 방문한 이예 선생은 1416년 고려대장경을 대마도에 전해주게 되었다. 이후 1487년까지 모두 9세트의 대장경이 대마도에 전해졌고, 그것은 현재 대마 역사민속자료관과 절 그리고 신사에 남아 있다. 그리고 대마도주 소우 사다시게(宗貞茂)가 사망한 1418년에는 소우가의 원찰인 이곳 원통사를 찾아 조문하기도 했다. 그는 소우 사다모리(宗貞盛)가 대마도주가 된 뒤에도 수차례 더 대마도를 왕래했다.

범종
 범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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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계단을 올라 범종각으로 간다. 이곳에 있는 범종이 현 지정문화재인데, 자세히 살펴보니 형태와 조각이 조선종이다. 종의 꼭대기 용뉴(龍?)가 한 마리 용으로 되어 있고, 한 면에 종유(鐘乳)가 9개씩 전체 4면에 36개의 종유가 있다. 이곳에 조각된 부처나 비천상도 눈에 익다. 심지어는 종 아래 괘가 표현되어 있고, 종의 색조도 밝은 편이다. 앞으로 이 종의 출처와 유래도 연구해 봐야겠다.

약사여래좌상
 약사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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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통사 본전으로 들어가면서 보니 이 절이 조동종 계열임을 알 수 있다. 법당 안을 잘 보여주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간곡히 부탁해 들어갈 수 있었다. 불단의 가운데 현 지정문화재인 약사여래좌상이 주석하고 있다. 약사여래가 주존불이라면 그 좌우에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협시해야 하는데, 현재 좌우에 있는 좌상과 입상이 일광과 월광인지는 확인할 수가 없다. 재질로 봐서는 모두 목조불로 보인다.

이들 부처님 앞에는 역대 천왕과 금상 천왕의 존의(尊儀)와 장수를 비는 위패가 세워져 있다. 이처럼 일본의 절은 세속화되어 있다. 그리고 요즘 일본 절은 인권, 평화, 환경 같은 현실적인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신앙도 중요하지만 사랑과 자비의 실천이라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원래 여행일정에는 없던 원통사 방문이 우리에게 생각지도 못한 가르침과 즐거움을 주었다.


태그:#가미사마, #만제키 다리, #미네마치 역사민속자료관, #원통사, #이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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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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