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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자료사진)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자료사진)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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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금권 정치 때문에 망해 가는데 한국도 그런 미국을 닮아가고 있다."

최근 미국발 세계 증시 대폭락과 우리 정부 대응을 지켜본 유종일(54)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의 쓴 소리다. 지난 주말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의 미국 국채 신용등급 강등 여파로 연이틀 '공황' 상태에 빠졌다 겨우 안정을 되찾은 10일 낮 여의도 증권가에서 유종일 교수를 만났다.

"재정 적자가 문제가 아니라 경기 부양 제대로 안 한 탓"

유 교수는 "S&P가 미국 재정 적자 문제를 거론하며 국가 신용 등급을 강등했는데 완벽히 엉터리"라며 "보수파에선 재정 건전성을 앞세워 복지 지출을 해선 안 된다고 나올 텐데 거꾸로 미국 정부에서 제대로 경기 부양을 안 해서 그런 것"이라고 맞섰다.

이어 "미국은 사회 지도층들이 서민 복지 지출을 악착같이 반대하고 부자 감세 철회에도 반대해 선진국 가운데 소득 불평등이 가장 압도적인 나라가 됐다"면서 한국 역시 부자 감세와 복지 예산 삭감 등으로 미국의 이런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오후 과천 정부청사에서 열린 '금융시장 위기관리 비상대책회의'에서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면서 정치권의 이른바 '복지 포퓰리즘'을 경계하기도 했다.

유 교수는 최근 우리 증시 하락폭이 세계 주요 국가 가운데 가장 컸던 점을 들며 "과도하게 성장만 추구하고 금리 인상 시기를 놓쳐 가계 부채, 부동산 거품 문제 해결을 계속 지연시킨 게 금융시스템 취약성을 키웠다"면서 "재정 상황이 다른 나라에 비해 튼튼하다면 재정을 복지와 고용 등에 적극 써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외환 유동성 관리를 철저하게 하는 한편 가계 부채를 선제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심각한 상황이 전개될 것"이라면서 "어제(9일)처럼 연기금으로 주식시장을 떠받친다든지 세계 경기 위축으로 수출에 어려움이 발생한다고 고환율, 저금리 등 팽창 정책으로 가선 절대 안 된다"고 경고했다.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 '경제 교사'로 불리기도 했던 유종일 교수는 지난 2006년부터 3년간 매일 아침 MBC 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를 진행해 일반인들 귀에도 익다. 대표적인 '진보적 경제학자'로 지난달 출범한 민주당 경제민주화특별위원회 위원장까지 맡은 유 교수는 이날도 바쁜 국회 일정 탓에 점심시간에 잠시 짬을 냈다.

"증시 대폭락, 잔인한 깨달음 과정에서 당연한 조정"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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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이날 새벽(한국시각) 미국 연방준비제도 공개시장위원회(FOMC)가 현재 '제로 금리'를 최소 2년간 유지하겠다고 발표한 뒤 미국 증시는 대폭락 하루 만에 반등에 성공했다.

국내 코스피 지수도 이날 반전엔 성공했지만 전날보다 고작 4포인트 정도 오르는데 그쳤다. 지난 이틀 세계 증시 가운데 가장 큰 하락률을 기록하고도 반등은 쥐꼬리에 그친 것이다.

"그동안 주가가 마치 2008년 금융위기가 해소된 것처럼 올랐다. 강석훈 교수가 '소프트패치'라고 주장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잔인한 깨달음이다. 불편한 깨달음 과정에서 당연한 주가 조정이 급격하게 일어났을 뿐이다."

유 교수는 지난 8일 아침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와 최근 미국 경기 침체 상황을 놓고 논쟁을 벌였다. 강 교수는 최근 미국 상황을 '경기가 회복하다 순간적으로 안 좋아지는 가벼운 경기 후퇴 현상"인 '소프트패치' 정도로 본 반면 유 교수는 경기가 일시적으로 회복됐다 다시 침체되는 '더블딥'에 가까운 장기 침체 상황으로 진단했다.

"미국 경제성장률이 2008년에 크게 떨어진 만큼 2009년에 더 크게 반등했어야 했는데 잠재성장률에도 못 미쳤다. 뒤늦게 제대로 된 경기 회복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거다. 이번 증시 대폭락은 결국 올 게 온 셈인데, 그런 점에선 S&P평가가 소가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것처럼 역할을 했다."

하지만 세계 증시 폭락이란 충격을 가져온 S&P 자체에 대해선 매몰차게 평가했다.

"S&P는 금융위기 이후 제대로 개혁했다면 이미 해체했어야 한다. S&P는 2008년 리만브라더스가 망하기 직전까지 'A 등급'을 유지했고 얼마 전 미국 부채 계산 과정에서 2조 달러가 틀려 발표를 연기하기도 했다. 그런 엉터리 기관이 지금까지 감 내놔라 배 내놔라 하는 것 자체가 개혁을 못 했다는 증거다. 결국 오바마 미 대통령이 자초한 거다."


유 교수는 S&P에서 신용등급 강등 이유로 미국 재정 적자를 문제 삼은 것 역시 '완벽히 엉터리'라고 비판했다.

"미국 문제는 재정 적자 때문이 아니다. 보수파에선 그래서 복지 지출해선 안 된다고 나올 텐데 중요한 싸움이다. 재정적자라는 건 국채를 발행해 돈을 빌려 쓰는 건데, 대출은 무조건 나쁘다는 인식 때문에 신용등급을 강등했다면 (미 국채) 이자율(수익률)이 올라가야 한다. 그런데 정반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국채를 더 사고 가장 안전한 자산이라고까지 얘기한다. 아무도 미국이 부도낼 거라 생각 안 하는 거다.

이번 주식 폭락은 그보다 미국 경기 전망이 암울하구나, 앞으로 훨씬 고생하고 실업 늘어나겠구나, '더블딥'은 안 되더라도 기대수익률이 떨어지겠구나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화당 때문에 재정 긴축하게 생겼는데 미국 경제 70%를 차지하는 소비자들이 가격 부채 부담에 짓눌려 있는데 정부가 긴축 들어가면 난리난다. 소비를 줄이면 경제가 안 좋아지기 때문에 주가가 떨어지는 거다. 거꾸로 정부에서 제대로 경기 부양을 안 해서 그런 거다."

유 교수는 레이건 행정부 이후 미국에 만연된 금권 정치와 오바마 정부의 의료개혁 실패를 거론하며 "미국 경제가 장기적으로 망해가고 있다"며 부정적 전망을 내놨다.

"20세기에는 누가 뭐래도 미국이 세계 역사를 이끌었다. 진보적인 아메리칸 드림을 제공했고 달러가 기축 통화 역할을 했지만 지금 그 시대는 끝났다고 본다. 한 사회 지도층이 절제할 줄 알고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지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인데 레이건 때부터 그렇지 못했다. 서민 복지 지출을 악착같이 반대하고 부자 감세 철회 반대하니 미국은 선진국 가운데 소득 불평등이 가장 압도적인 나라가 됐다. 미국 의원들 투표 행위에 유권자 의견이 소득계층별로 어떻게 반영되나 조사해 보니, 고소득층 의견은 투표에 대부분 반영되고 중간층도 많이 반영되는 편인데 저소득층은 오히려 반대로 갔다.

의료개혁 문제 역시 재정 적자 상황에서 1조 달러 추가 지출하더라도 장기적 재정 건전성 영향은 거의 무시해도 될 정도다. 오히려 의료 개혁은 재정 건전성 향상에 큰 도움을 준다. 의료비가 공적인 보험시스템으로 들어오면 정부가 협상력을 가질 수 있어 미국의 값비싼 의료비와 약값을 내릴 수 있다. (보수파들은) 의료 개혁 하면 재정 건전성 얘기하면서 사회주의라고 악착 같이 반대하는데 그럼 세계 선진국들이 모두 사회주의인가. 이게 다 의료계와 보험업계 로비 때문이다. 가진 자들의 후안무치가 극에 달해 이대로 가면 미국은 망할 수밖에 없다." 

"펀더멘털 튼튼한데 왜 미국 증시보다 더 폭락하나"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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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교수는 한국 역시 부자 감세, 재벌 규제 완화 등을 통해 미국의 '금권 정치'를 닮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가계 부채와 부동산 거품을 미국보다 심각한 경제 문제로 거론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현재 외환 보유고와 외채 등 펀더멘털(경제 기초 체력)이 2008년 금융위기 당시보다 양호하다며 자신만만해 하고 있다.

"펀더멘털 타령은 97년 외환위기 때도 했다. 당시 강경식 장관이 펀더멘탈 괜찮다고 했는데 결국 IMF에 무릎 꿇고 돈 빌려달라고 했다. 2008년 9월 금융위기 때도 미국 문제고 우린 괜찮다고 했는데 결국 제2 외환위기까지 겪었다.

최근 우리나라 주식시장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떨어진 건 부인할 수 없는 현상이다. 미국보다 더 떨어졌는데 펀더멘털이 튼튼해서 그런 건가? 미 재정적자로 달러 값이 떨어지고 다른 나라 화폐가치 다 올랐는데 펀더멘털 좋은 원화는 달러보다 왜 더 떨어지나? 외환 유동성 사정이 2008년보다는 비교적 괜찮을 거다 짐작은 하지만 그럼에도 100% 신뢰는 못 하겠다. 근본적으로 보면 재정 상황이 다른 나라에 비해 튼튼하다는 건 맞다. 이건 재정 정책을 적극 써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또 중요한 건 우리 금융 시스템의 취약성이 계속 나타나고 있다는 거다. 우리가 자꾸 과도하게 성장만 추구해 거품이 생겨도 해결하려고 안 하고 '땜빵'만 하고 지연시키다 보니 금융시스템에 취약성이 항상 생겨난다. 그걸 성장으로 풀겠다는 건데 우리도 영국처럼 폭동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국민소득 1000달러일 때도 희망 갖고 직장 나갔는데 풍요롭게 살려고 경제성장 했는데 지금 상황은 왜 이런가. 중요한 건 고용과 복지다. 기본이 안 돼 있는데 무리한 성장 목표를 추구하니까 복지가 부실해지고 양극화가 발생했는데도 747('연평균 7% 경제성장,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경제강국'을 뜻하는 이명박 정부 대표 공약)부터 간 거다."

그는 앞으로 우리 경제를 흔들 '뇌관'으로 늘어만 가는 가계 부채와 여전히 꺼지지 않고 있는 부동산 거품을 꼽았다.

"여기 여의도에 곧 서울국제금융센터(IFC)가 들어서는데 사무실도 거품이다. 지금도 반값 세일하고 그러는데 IFC가 들어서면 근처 사무실 공실률이 커질 수밖에 없다. 정신없이 부동산 거품을 키워왔고 가계부채를 축소해야 하는데 계속 늘었다. '뇌관 폭발'을 계속 지연시켰을 뿐이다. 이게 우리 금융의 현주소다. 이걸 거꾸로 뒤집어야 한다. 성장 지상주의가 아니라 안정을 추구하면서 고용 창출하고 복지 제대로 갖추고 물가를 잡아야 한다. 거품을 깨는 건 괴롭지만 손실 분담해서 손해 볼 사람은 손해 보고 정리해야 한다."

유 교수는 이날 여러 차례 영국 폭동 상황에 우리 처지를 빗댔다. 최근 영국 폭동 사태 밑바닥에는 보수당 정부의 재정 지출과 복지 혜택 축소에 대한 빈민층과 청년층의 반발 심리가 깔려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 위기는 미국 재정 위기와 다르다. 진짜 부도나게 생긴 상황이다. 미봉책으로는 안되고 현실을 인정하고 손실을 분담해야 하는데 재정 긴축하라는 건 힘없는 사람들이 고통을 지라는 것이다. 그래서 데모하고 폭동 일으키는 거다. 요즘 우리나라 젊은이들을 많이 만나고 다니는 안철수 교수가 20, 30대가 분노에 차있고 임계점에 도달했다고 한 것도 그냥 나온 얘기가 아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꼼수' 말고 기준 금리 올려야"

다음날(11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 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유 교수는 "시기는 많이 놓쳤지만 당장 내일이라도 원칙대로 금리를 올리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내가 (한국은행) 총재라도 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미 경기가 둔화되고 있고 금융시장은 패닉 상태인데 보통 배짱으로는 하기 어려울 거다. 그럼에도 물가가 4.7%까지 올랐고 환율도 올라 물가 부담이 커지는데 가계 부채도 계속 늘고 있다. 이 모든 게 금리 인상을 필요로 한다. 안 해야 할 이유는 경기 안 좋아진다는 건데 성장과 안정 중 어디에 방점 찍어야 하나? 안정이 우선이다. 재정 튼튼하니 재정이 더 역할을 해야 한다. 수해 복구나 일자리 창출해서 민생 지원하고 금리는 올리는 게 올바른 해법이다.

미 연방준비제도 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3차 양적완화'를 안 했는데, 사실 해봐야 별 볼 일 없다. 양적 완화가 금융기관에 현금을 쥐어주는 것인데 현금 부족해서 경제 안 돌아갈 때는 효과적이지만 이미 현금 쌓고 있으면서 신용 리스크가 불안해 대출 안 해주는 상황이다. 3차 양적 완화 해봐야 효과는 별로 없고 다른 묘수가 없으니 안 한 거다. 여러 가지 어려울 때일수록 '꼼수' 부리려 말고 정도를 걸어가야 한다. 일시적으로 이자율을 올려 반발하더라도 하는 게 신뢰를 얻는 길이다."

-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이명박 정부의 대응을 어떻게 평가하나.
"가장 먼저 위기 극복했다 선언한 건 세계 경제 상황이나 우리 경제 상황을 너무 안이하게 판단한 거다. 허황된 성장에 대한 집착 때문에 금리인상 시기를 놓쳐 환율도 그렇고 물가 불안도 확대해 정책을 구사하기 어려운 상태로 스스로 만들어 갔다. 가계 부채와 부동산 거품도 계속 키워만 오고 해결하지 않았다. 우리 경제 취약성이 드러난 건 정부가 위기 극복을 제대로 안 하고 덮고 마치 극복한 것인 양 착각한 결과다."

- 앞으로 위기 극복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꼭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꼽는다면.
"외환 유동성 관리를 철저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 안정 위주 정책 속에서 어려운 서민경제에 재정이 적극적 역할을 해줘야 한다. 가계부채는 선제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심각한 상황이 전개될 거다. 지금 생활 자금도 모자라 대출받는 상황이다. 어제(9일)처럼 연기금으로 주식시장을 떠받친다든지, 세계 경제 위축으로 수출에 어려움 발생한다고 또 고환율 저금리 팽창정책으로 간다든지 하면 절대 안 된다."

이날 유종일 교수와 함께한 1시간에 걸친 인터뷰는 마지막 2가지 질문에 대한 답으로 마무리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여전히 "투자은행을 키우고 한미FTA로 미국에 시장을 개방하겠다"는 이명박 정부 앞에 외부 충격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금융 시스템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태그:#유종일, #금융쇼크, #재정위기, #주가폭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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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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