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 만에 프리퀄 형식으로 돌아 온 <혹성탈출>

43년 만에 프리퀄 형식으로 돌아 온 <혹성탈출> ⓒ 이십세기 폭스 코리아


1968년도에 첫 모습을 드러낸 영화 <혹성탈출>은 전 세계인에게 놀라움을 던져준 SF의 고전이다. 인간이 유인원에게 지배당한다는 설정으로, 인류미래의 잿빛 암울함을 생생하게 그려내 찬사를 받았다. 무엇보다 자유의 여신상을 발견하고 절규하는 엔딩 신의 반전은, 충격과 경악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후 연이은 후속작품이 나왔고, TV드라마로 만들어져 각각의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지난 2001년에는 팀 버튼 감독에 의해 1편이 리메이크 되어 젊은 세대들에게도 호평을 받았다. 그 외에도 많은 SF 영화의 교과서이자 자양분이 되었고, 아직도 올드 팬들의 머리에 뚜렷이 각인된 작품이다.

혹 어린 시절이나 당시 영화를 지켜본 이들 중 '과연 어떻게 해서 인류가 거의 멸망하고, 유인원들의 지능이 높아졌을까'하고 궁금해 했던 이는 없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이 40년이 넘어 나왔다. 프리퀄(Prequel : 앞선 이야기) 형식으로 <혹성탈출>이 돌아왔다. '진화의 시작'이란 부제를 달고 말이다.

영속의 꿈을 가진 인간, 새로운 진화를 연구하다

 알츠하이머 치료를 위해 개발 된 제품이 인류의 파멸을 부른다.

알츠하이머 치료를 위해 개발 된 제품이 인류의 파멸을 부른다. ⓒ 이십세기 폭스 코리아


영화의 시작은 무자비한 유인원 사냥이다. 마치 원작에서 인간사냥을 벌이는 인간의 모습을 대비시켜놓은 듯하다. 잡힌 유인원들은 연구용이다. 알츠하이머 치료를 위한 연구가 한창인 연구소. 주인공 윌(제임스 프랭코 분)이 연구에 집착하는 것은, 자신의 아버지가 바로 그 병에 걸렸기 때문. 뇌가 자연적으로 치유되는 물질을 개발하기 위해 유인원들을 시험용 대상으로 한다.

하지만 연구는 지지부진하다. 그러던 중 실험에 참가한 한 암컷 유인원에게서 어린 시저(앤디 서키스 분)가 태어나고 집으로 데려와 함께 지내게 된다. 이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시저에게는 임상실험을 하지 않았음에도 죽은 어미에게서 그 효과를 물려받은 것. 일반 유인원과는 다르게 태어난 시저.

시간이 지날수록 시저의 지능은 높아져 간다. 오히려 인간을 능가하게 된 것. 기어이 사고가 터진다. 이웃집 남자와 시비가 붙은 윌의 아버지를 보호하려는 과정에서 그만 인간을 공격한 것. 결국 유인원 보호시설로 보내진다. 평생 인간 틈에서 살던 시저는 자신이 인간과 다른 존재라는 것을 서서히 자각하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유인원 무리에서 리더십을 드러낸다. 인간에 의해 갇히고 학대당하는 자신들의 처지에 대해 분노의 감정을 느끼는 것. 시저만큼 영리하진 않지만, 조금씩 존경의 뜻을 드러내는 무리. 시저는 그들을 일깨우기 위해 인간들이 치료용으로 개발했지만, 자신의 지능을 높여주었던 물질을 떠올린다. 전쟁의 기운이 퍼지기 시작한다.

수긍되는 스토리, 전작의 값어치를 올려

 유인원 연기를 한 앤디 서키스는 <킹콩>과 <반지의 제왕>서도 열연을 펼친 배우다.

유인원 연기를 한 앤디 서키스는 <킹콩>과 <반지의 제왕>서도 열연을 펼친 배우다. ⓒ 이십세기 폭스 코리아


'전작만한 속편이 없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속편들이 대중에게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다는 걸 말해준다. 쉽게 전작의 아성에 기대려했다가는, 본전은커녕 전작의 값어치마저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속편이 아닌 소위 '프리퀄' 영화의 붐이다.

앞의 이야기는 이러하지 않았을까 하는 그럴듯한 가정과 가설로 이루어진 작품들. 물론 어렵기는 속편과 다를 바 없다. 모든 인과관계가 이미 만들어져 있는 작품의 궤에 빈틈없이 들어맞는 것은 기본, 그 이유가 타당해야 하기에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은 매우 매끈한 작품이다. 유인원들의 지능이 높아지게 된 계기와 그 리더의 태생에 관한 이야기는 받아들이기에 전혀 부담이 없다. 때로 늘어지는 감이 없진 않지만, 전개상 꼭 필요한 장치들이기에 집중이 떨어지지 않는다.

아버지의 치료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던 주인공, 그로인해 탄생하게 된 유인원 리더 시저, "그렇다면 시저는 인간이야, 유인원이야"라고 물으며 순리를 거스르지 말 것을 애원하는 여 주인공, 돈벌이에 눈이 멀어 무차별적으로 밀어붙일 것을 강요하는 의료 회사. 이 모든 상황들이 톱니바퀴가 되어 68년의 원작을 기억하게 한다.

물론 원작을 보지 않은 영화팬이라 할지라도, 이번 작품을 즐기는데 전혀 무리가 없다. 그 근원을 다루었기에 독립적으로 떼놓고 감상해도 무방하다. SF 블록버스터이지만, 드라마적인 스토리가 잘 살아있는 프리퀄 영화의 표본이라 할만하다.

볼거리는 물론 개연성이 살아있는 스토리 라인

 유인원들의 리더로 다시 태어 난 '시저'는 인간들과의 첫 전투를 벌인다.

유인원들의 리더로 다시 태어 난 '시저'는 인간들과의 첫 전투를 벌인다. ⓒ 이십세기 폭스 코리아


현대의 관객들은 매우 현명하다. TV는 물론 온갖 게임과 인터넷에 단련되어 있기에 조금만 볼거리나 스토리가 엉성해도 세찬 비난을 피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은 흠을 낼 구석이 거의 안 보인다.

바로 시나리오의 힘이다. 블록버스터라 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깨고 부수는 것이 아닌, 개연성 있는 이야기와 창조적 액션이 적절히 배분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시가지를 초토화 시키고 LA 금문교 위에서 벌어지는 인류와의 첫 대결에서, 오히려 인간이 아닌 유인원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된다.

유인원들은 단순히 인간과의 대립각에서 악의 무리로 표현되지 않았다. 이렇게 깊게 슬퍼하고 판단의 순간에서 갈등하는 모습들은 첨단 기기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영화 <아바타>로 유명해진 모션 캡처(몸에 부착된 센서로 움직임을 디지털화하는 작업)의 개가다.

이를 통해 유인원들의 고뇌와 번민의 감정들이 지극히 세세하게 표현 된 것. 오히려 이전에는 기기를 입고 연기 후 다시 캡처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는 두 번의 반복이 필요했지만, 이 작품은 무선기기의 활용으로 단 한 번으로 끝낼 수 있었다고 한다. 과학의 발전이 가져온 영상혁명이다.

올 개봉작 중 사실상 가장 수작, 한국영화들도 참고해야

 68년 개봉 된 원조 <혹성탈출>.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작품이었다.

68년 개봉 된 원조 <혹성탈출>.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작품이었다. ⓒ 이십세기 폭스사


반복해 말하지만, 개연성 없는 사건과 사고, 액션 장면의 나열은 필연적으로 관객의 질타를 받는다. 영상혁명이라고 까지 불리지만, 전편에 비해 이야기의 참신성이 떨어진다는 <트랜스포머 3>편이 그런 예다.

여름 극장가를 두고 대작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고, 한국영화들도 빠지지 않는다.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표방한 작품들이 그렇다. 하지만 규모나 볼거리에만 집착한 작품들이 연이어 관객들의 혹평을 받고 있다. 특히 <7광구>의 경우 평론가는 물론 누리꾼들이 기록하는 평점이 사실상 재앙에 가깝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영화를 이끄는 가장 기본적인 힘은 공감이 가는 이야기(Story)다. 볼거리는 그 바탕 위에서 피어나야 한다. 앞의 이야기와 동떨어져 "자, 이제부터 시작!"하고 액션을 펼쳐놓는 것은 관객을 기만하는 행위이다.

영화 <혹성탈출>은 그런 면에서 액션과 이야기가 매우 적절히 조합된, 하나의 전범이다. 나름의 철학도 담겨있는 이 작품, 올해 개봉된 영화 중 가장 짜임새를 갖춘 수작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런 영화는 참고가 아니라 배우고 받아 들여야 한다. 속이 좀 안 좋더라도 말이다.

참고사항 : 영화관에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고 바로 일어나면 안 된다. 20여 초만 참고 기다리면, 매우 중요한 영상이 이어진다.

덧붙이는 글 개봉 8월 17일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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