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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규 검찰총장이 4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 참석해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 논란과 관련해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김준규 검찰총장이 4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 참석해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 논란과 관련해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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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규 검찰총장이 국회에서 가결한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반발하며 사퇴했다. 김 총장은 7월 4일 대검 확대간부회의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른바 '사퇴의 변'이라는 것을 남겼다. 이 자리에서 그는 "간이 녹아날 정도로 힘들었다"고 고백하면서 자신의 사퇴가 지연된 점에 대해 해명했다.

"나라를 대표해서 국제회의(세계검찰청장회의)를 주재하는 위치에서 당시로써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입장을 표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중략) 법사위 수정 의결이 있었을 때 이미 결심을 했습니다.(중략) 국제회의장에서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간이 녹아날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심사가 자못 비장하다는 걸 알리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는 '팍타 순트 세르반다(pacta sunt servanda,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라는 라틴어 법 격언을 인용하더니, "이번 사태는 '대통령령'이냐 '법무부령'이냐의 문제라기보다 핵심은 '합의의 파기'에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합의가 깨어지면 얼마나 큰 결과가 초래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라고 누구를 향한 것인지도 모를 모호한 말을 남겼다.

검찰총장 '사퇴의 변'에 담긴 한국 검찰의 생리

나는 이 '사퇴의 변' 속에 한국 검찰의 생리가 여지없이 담겨 있는 것 같아 자세히 논의해 볼 필요를 느낀다.

먼저 감지되는 것은 김 총장이 자의든 타의든 극심한 사퇴 압박을 받고 있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왜냐하면 수사권 조정안이 국회 법사위에서 수정된 것은 지난 6월 28일이고 본회의에서 통과된 것은 6월30일이었다. 그런데 사퇴를 공식 발표한 7월4일까지 불과 4~6일 동안 그는 "간이 녹아날 정도로 힘들었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나는 다시 한 번 한국 검찰 특유의 '조직 생리'를 엿볼 수가 있었다. 그들은 조직 보호를 위해서라면 누구든 '직'을 걸어야 한다는 신조를 비수처럼 품고 있는 집단인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김준규 총장은 법정 임기를 46일 남겨 놓고 있었다. 굳이 사퇴하지 않아도 청와대에서 후임 인선을 준비하고 있어야 할 계제였다. 게다가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직접 사퇴를 만류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사퇴를 강행(?)해야만 하는 것이 한국 검찰의 특유한 생리인 것 같다. 물론 '조직 보호를 위해서'일 터이다.

나는 한국 검찰의 조직 생리를 그가 총장에 부임하는 과정에서도 본 적이 있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듯이 원래 검찰총장에 임명된 사람은 천성관 당시 중앙지검장이었다. 그런데 천성관 후보가 국회 청문회 결과 낙마하게 되자 그가 대타로 기용됐다. 김준규 총장은 당시 대전고검장이었는데 천성관 후보보다 사법시험 1기 선배였다.

후배가 총장에 기용되자 그는 지체 없이 사표를 던지고는 25일 동안 검찰을 떠나 있었다. 검찰에서는 이런 행위를 흔히 '용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보면 이런 행위는 치졸한 관행에 불과하다. 대관절 사법시험에 먼저 붙고 나중 붙는 것이 뭐가 그리 중요하다는 것일까? 이런 것이야말로 속된 말로 '짬밥' 순으로 권력을 행사했던 과거 '감방의 논리' 또는 '군대' 논리 아닌가? 그리고 이제는 감방이나 군대에서도 개선돼 가는 짬밥 논리를 아직도 의기양양하게 굳게 지키고 있는 집단이 바로 한국 검찰이다.

'사태의 핵심'을 왜곡한 김준규 검찰총장

김준규 총장은 사태의 핵심이 '법무부령'이냐 '대통령령'이냐에 있기보다는 "합의가 깨어진 것"에 있다고 말했다. 이는 다분히 진심을 의심받을 소지가 있는 언명이다. 검찰은 그동안 '법무부령'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줄기차게 제기해왔기 때문이다.

이번에 통과된 조정안은 현실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경찰의 수사 개시권을 명문화하되, '모든 수사는 검사의 지휘를 받는다'는 것으로 되어 있다. 다만 검사의 지휘에 관한 구체적 사항을 애초 정부 합의안인 '법무부령'이 아니라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고쳤을 따름이다.

'대통령령'은 행안부와 경찰청 등의 관련기관과 합의·절충 과정을 거친 후 국무회의에서 의결해야 하는 반면, 검찰이 줄곧 주장해온 '법무부령'은 법무부 장관이 최종 승인권자가 된다. 그런데 법무부는 거의 검사들에 의해 장악되어 있다. 경찰도 엄연히 수사의 주체인 만큼 수사 세부사항에는 경찰이 소속된 행안부 등의 의견이 반영되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검찰은 모든 수사의 지휘권을 행사함은 물론 수사의 구체적 사항까지도 자기들 입맛대로 만들겠다는 허욕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김준규 총장이 말한 '합의'라는 것은 행정부 주재 하에 검찰과 경찰이 이룬 것이었다. 그들은 원안대로 국회에 넘김으로써 합의를 이행한 것이 된다. 이것을 고친 것은 입법권을 가진 국회이고 또한 그것은 명백히 국회가 가진 헌법상 권한이기도 하다. 따라서 "사태의 핵심은 합의가 깨어진 것에 있다"는 김 총장의 말에는 오류가 있다. 나아가 이것은 국회의 입법권에 대한 무모한 도전이기도 하다.

그가 뜬금없이 제시한 라틴어 법 격언 '팍타 순트 세르반다(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역시 전혀 이치에 맞지 않은 인용이었다. 원래 이 말은 계약에 충실해야 한다는 뜻이 있다. 대법원은 이 격언을 계약준수의 원칙으로 사용한 판례를 두 번 남긴 바 있다. 검찰총장의 법정 임기는 계약 중에서도 아주 무거운 계약이라고 할 수 있다. 스스로 법정 계약을 파기하면서 계약을 준수해야 한다는 라틴어 격언 따위나 인용하는 모습에서 나는 한국 검사 특유의 '무개념'을 읽을 수가 있었다.

김준규 검찰총장(가운데)이 4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안이 검찰의 뜻에 반해 수정된 데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를 표명한 뒤 청사를 떠나며 검찰총장 직무대행을 맡은 박용석 대검차장(왼쪽)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김준규 검찰총장(가운데)이 4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안이 검찰의 뜻에 반해 수정된 데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를 표명한 뒤 청사를 떠나며 검찰총장 직무대행을 맡은 박용석 대검차장(왼쪽)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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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그는 "합의가 깨어지면 얼마나 큰 결과가 초래되는지 알아야 한다"고 했다. 앞서 말했듯이 이 말은 누구에게 한 것인지 의도가 분명치 않다. 대국민 겁박용 발언 같기도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큰 결과'란 아마도 자기 자신의 사퇴와 그에 따른 파장을 의미하는 뉘앙스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정작 청와대에서는 "사표를 내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고 한다.

남용되는 검찰 권력은 무서운 흉기

이명박 정부 들어 검찰의 행태를 보며 김대중 전 대통령은,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절규한 바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검찰의 독립성을 보장해주었지만 정권이 바뀌자 정치적 중립성은 증발되었고 오히려 그는 검찰 수사를 받다가 끝내 죽음을 맞았다. 이것은 검찰 권력이 남용되면 얼마나 섬뜩한 흉기로 돌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비극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번 국회에서 통과된 수사권 조정안은 '사법개혁'이라고 할 수도 없을 정도로 민망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검찰이 이토록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데에는 장차 이루어질 사법개혁을 어떻게든 지연, 무산시키려는 선제적 '액션'의 성격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들의 '액션'은 이제 식상해졌다. 나아가 그것이 본질적으로  '할리우드 액션'이라는 점을 간파하는 국민도 많아졌다는 것을 딱하게도 검찰만 모르고 있다.

한국 검찰은 세계 검찰 중 가장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그러면서도 정치적 중립성을 행사할 의사도 능력도 없는 집단이다. 대통령 임기는 5년이지만 검찰은 권력이 바뀔 때마다 옷만 갈아입으면 된다. 그들은 살아 있는 권력에는 악어새처럼 붙어서 기생하지만 지나간 권력에는 악어로 표변하여 난폭해진다.

한국 검찰은 독점수사권·공소유지권·공소취소권·기소독점권·기소편의권·영장독점청구권 등을 망라하여 행사한다. 이 중 하나의 권력이라도 남용되면 역사적 진실이 호도되고 인간의 생사가 여탈될 수 있다.

한국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고 했다. 5·18 고소에는 공소권이 없다고 회피했다. 이것은 기소편의권이 남용된 사례였다. 그리고 피디수첩 수사와 미네르바 구속은 기소독점권이 남용된 사례였다. 미네르바에 대한 법원의 무죄 선고는 표면상 검찰의 패배 같지만 사실상 검찰은, '미네르바처럼 인터넷공간에서 대통령이 불편해할 만한 글을 쓰면 언제든지 수사를 받고 구속되며 재판정에 설 수 있다'는 경고를 국민에게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국민은 검찰이 쓰는 수법을 대충 알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누가 건드리면 그때마다 긴급회의를 소집하는 등 부산을 떤 후 금세 집단 대량 사표라도 던질 것처럼 하다가 그 중 몇 명만 사표를 내면서 총장을 압박한다.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 문제가 전격 합의된 20일 김황식 총리가 이귀남 법무부장관과 맹형규 행정안전부장관이 배석한 가운데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브리핑룸에서 수사권 조정 합의안을 발표하고 있다.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 문제가 전격 합의된 20일 김황식 총리가 이귀남 법무부장관과 맹형규 행정안전부장관이 배석한 가운데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브리핑룸에서 수사권 조정 합의안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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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법사위 수정안이 통과된 6월29일 홍만표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한 핵심 인물이었다. 또한 김호철 형사정책단장과 구본선 정책기획과장 등 부장검사급 세 명도 잇따라 사표를 제출했다고 한다. 이밖에 신종대 공안부장, 김홍일 중앙수사부장, 조영곤 형사강력부장, 정병두 공판송무부장 등 대검 검사장급 참모진도 사표 행렬에 가담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거사' 즐기는 검찰... 사의 뜻 밝힌 검사들 모두 떠나라

지난 5월 26일 조현오 경찰청장은 지방청장 회의에서 "경찰에 수사권을 주기로 한 국회 합의안이 관철되도록 간부들은 직위를 건다는 자세로 헌신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말 그대로 경찰청창으로서 수사권 조정에 경찰 간부들의 노력을 촉구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검찰은 과민한 반응을 보였었다.

김준규 총장은 "나라와 국민이 아닌 조직만을 위해 직위를 거는 것은 공직자의 바른 자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 술 더 떠 박용석 대검찰청 차장은 "수사권 조정을 전쟁하듯 해야 합니까? 조직을 위해 '직(職)'을 건다는 건 조폭들이나 하는 겁니다"라고 냉소했다.

그런데 지금 검찰은 불과 한 달여 전에 스스로 한 말도 기억하지 못하는지 조직을 위해 '직'을 거는 행위를 일삼고 있다. 나는 이들이 수많은 검사 가운데 '경거망동하는 소수'일 뿐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이런 검찰 간부 몇 내지 몇십 명이 옷을 벗는다고 해서 결코 '큰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한다. 현직 검사는 그들 말고도 1800여 명이나 더 있다.

정치검사들은 자기들이 옷 벗는 것을 '대단한 거사'인 양 착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옷을 벗은 후 어떤 일을 하는지도 국민은 소상히 알고 있다. 검사는 옷을 벗으면 전관예우로 일확천금을 거머쥔다는 것을 모르는 국민이 어디 있을까?

한국 검찰을 한 마디로 평가하라고 한다면 '교조적(敎條的)'이라는 말이 적합할 듯하다. '교조'란 역사적 환경이나 구체적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 진리처럼 맹신하는 태도'를 일컫는다. 다시 말하거니와 교조적인 검사들, 몇이 아니라 몇십 명이 사퇴한다 한들 무슨 큰일이 벌어지겠는가? 그러니 이번 기회에 제발 검찰총장은 물론 사표를 냈거나 사의를 표명한 검사들 전원 예외 없이 소신(?)을 관철해 주기 바란다. 덤으로 '떡값검사' '스폰서검사' '그랜저검사' 등등도 동반해주면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울 것 같다.


태그:#검경 수사권, #김준규, #수사권조정, #조폭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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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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