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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하다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우리나라의 평화로운 들녘이다. 막 모내기가 끝난 요즘의 평야는 찰랑찰랑 고인 물위에 심어진 벼들이 연둣빛으로 반짝반짝 빛난다. 봄, 여름에는 푸르름으로 가을에는 황금빛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인상에 강하게 남는 이유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뜨거운 햇볕 아래 논, 밭을 돌보는 농부·농모님들의 수고를 마주치게 되고, 보는 이의 마음 한구석에서 삶의 애환과 함께 숙연함이 느껴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월간 <전원생활>의 사진 기자인 저자 최수연은 이땅의 평야와 들녘을 바라보고 감동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그가 찍은 사진과 글을 담은 책 <논-밥 한그릇의 시원>을 냈다. 앞으로 10~20년이면 지금의 농부들과 함께 스러져버릴 운명에 놓인 논 문화를 기록하고 증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책을 펴낼 결심을 했다고 한다. 아직도 인사로 "식사는 하셨어요?" 말하는 밥 문화의 나라에서 당연하고도 참 가치있는 일을 한 것 같다.  

 

시골이 아닌 도시에서 태어난 나도 추수가 한창인 들녘에 서면 흐뭇함과 배부른 풍요를 느끼고, 모내기가 한창인 논에서 수고하시는 농부·농모님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건 수천 년간 이어온 농경민족의 유전자가 내안에 씨앗처럼 심어져 있어서겠다. 오늘 내 앞에 놓인 한 그릇의 밥이 여기까지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그 시원(始原)이 풋풋하고 때론 가슴 찡한 사진들과 함께 책장 하나하나에 모내기 하듯 소중하게 담겨져 있다.       

 

한 배미 논의 기나긴 역사

(배미 : 논밭의 넓이를 나타내는 단위)

 

가장 중요한 것은 양식이었다. 그저 세 끼 배를 불리는 것이 인류의 목적이었다. 한 뼘의 논을 만들기 위해 손과 발이 닳았다. 오래 전 이야기가 아니다. 불과 백 년 전, 아버지의 할아버지 적, 그 손과 발이 우리를 낳았다 - 본문 중

 

벼농사가 언제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논을 누가 언제 처음 만들었는지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은 없다. 벼는 식석기 시대 유적에서도 일부 확인되지만 청동기 시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재배되었고, 기원전 2천 년경에 중국에서 한반도에 들어온 것으로 본다고 한다. 

 

인구가 증가하면서 산을 개간해 농지를 만들기도 했는데 오늘날 볼 수 있는 계단식 논도 고려 시대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강화도, 석모도, 교동도에서 보았던 드넓은 논들도 고려 후기에 와서 간척 사업으로 생겨난 것들이었다. '보릿고개'의 해결로 지금까지도 많은 서민들의 추앙을 받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논과 쌀은 우리 민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임이 분명하다.

 

이렇게 논이 늘어났지만 예나 지금이나 농민들이 모두 자기 땅을 갖고 농사를 지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지주의 땅은 주로 노비들이 논 주위에 집을 지어놓고 경작했는데 이들 대부분은 매달 양식을 받거나 가을에 수확한 농산물을 가지고 배당을 받았다. 일반 농민들도 자기 땅을 갖지 못하고 지주의 땅을 임대해서 농사짓는 경우가 많았다. 땅주인에게 겨우 몇 마지기 논을 임대해서 농사를 지어도 먹고살기 힘든 고단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자기 땅을 갖고 맘껏 농사를 짓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심정이 오죽했을까. 

 

인간과 함께 한 논의 기나긴 역사와 더불어 많은 속담들이 생겨났는데 그 중 재미있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에 대한 이야기도 책에 나온다. 나락은 수확한 벼를 가리키는 사투리다. 추수를 하면 먼저 다음해 농사에 종자로 쓸 씻나락을 따로 덜어놓은 다음 나머지를 양식으로 사용한다. 그런 귀중한 씻나락을 귀신이 까먹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니겠는가. 농부들이 굶어죽어도 손대지 않을 만큼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 씻나락이었다고 한다.

 

자연을 본뜬 인공 습지, 논

 

하늘이 산과 바다를 열었다면 사람은 들판을 열었다. 해와 달이 바뀌기를 수만 번, 사람이 연 들판이 산과 바다보다 아름답지 않은가 - 본문 중

 

논은 습지라는 자연의 형태를 본떠 인간이 만든 것이다. 습지란 '물기가 잇는 축축한 땅'을 말한다. 여기에 벼농사에 연작 피해가 없는 비밀이 숨어있다. 평소 여행지에서 만난 평야를 보며 매년 농작물을 같은 땅에서 연이어 재배하는데 어떻게 토지가 황폐해지지 않고 잘만 자라나고 있을까 궁금했었다. 

 

아무리 기름지고 좋은 땅이라도 연작 즉, 해마다 쉬지 않고 같은 작물을 심으면 작물이 잘 자라지 못하고 열매도 잘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 피해를 줄이려면 해마다 작물을 바꾸어 재배하는 돌려짓기를 하거나 황토나 활성탄 같은 것을 넣어 땅을 기름지게 해야 한다.

 

하지만 논에는 해마다 벼를 재배해도 여전히 벼가 잘 자라고 낟알이 잘 열린다. 밭에서 벼를 재배하면 2~3년에 한 번은 연작 피해가 나타나지만 논은 한자리에서 수천 년 동안 벼농사를 지어도 연작 피해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 비밀은 때마다 논을 가득 채우고 있는 물에 있었다. 물이 연작 피해를 막아주는 중요한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논이 떠맡고 있는 하고 많은 일들

 

논은 물을 거두어 벼를 심는 땅이다. 논은 쌀을 얻기 위한 오랜 노력, 차라리 위대한 전쟁이라고 불러 마땅할 오랜 역사에서 얻은 소중한 전리품이다. 논은 밥 한 그릇이 비롯되는 곳이며, 밥 한 그릇은 우리의 일상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 본문 중

 

매일 밥을 먹고 있지만 쌀의 고마움을 잘 모르듯, 논이 하고 있는 일은 내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많았다. 한 여름에 쏟아지는 비를 머금어 홍수 피해가 나지 않게 하는 기능부터 지하수 저장, 수질 정화, 대기 온도 낮추기... 나같은 도시민들의 삭막해진 심신을 어루만져주는 것들까지 헤아릴 수 없는 많은 혜택을 인간에게 주고 있었다.

 

며칠 전 자전거를 타고 파주의 어느 논옆 농로길을 달릴 때 뜨거운 여름날씨에도 덜 무덥게 느껴졌던게 이유가 있었다. 정말 논이라는 녹지가 사라지면 산소 발생량이 줄어들고 이산화탄소가 흡수되지 않아 당장 지구 온난화가 가속되고 강수량이 줄어들 것이라는 저자의 말이 근거가 있는 것 같다.

 

이렇듯 논은 맡은 일이 막중하니 종류도 많다. 돌밭 천지인 섬에서 방에 구들을 놓듯 바닥에 구들을 쌓고 그 위에 흙을 덮어 만든 청산도의 구들장논, 지리산 자락 혹은 남해안의 산비탈을 타고 내린 100층 계단의 다랑논, 무논, 보리논, 두렛논... 수천년의 역사만큼이나 무수한 논의 이름들이 소중한 유산처럼 다가온다.

 

논의 고마움을 생각할때 같이 떠오르는 것은 소의 존재다. 인간이 논을 만들게 되면서 들판의 소를 잡아다 길들인 후 오랜 세월 사람에게 봉사해온 친구같은 동물. 들녘의 일을 기계가 대신하게 되면서 더 이상 농사일을 위해 코뚜레를 안하지만 이젠 인간의 먹이가 되고 만, 언제나 인간을 위해 희생을 하는 소를 생각하면 소고기를 잘 먹게 되질 않는다.

 

봄날의 모내기에서 가을날의 타작마당까지 어쩌면 그리 길지 않은 날들이다. 길어야 5개월 남짓이다. 그 다섯 달 동안 하늘과 땅과 비와 바람이, 해와 달과 별이 논배미에 있다. 그리고 사람이 있다. 도시에서도 논밭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 줄 것을 다 주고 난 후의 고요한 침묵, 들녘이 전해주는 말을 들으러 가보자. 이대로 몇 년이 더 흘러가면 그곳이 논이었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혀지고 말것이기에...


논 - 밥 한 그릇의 시원 - 2009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최수연 지음, 마고북스(2008)


태그:#최수연, #논-밥한그릇의시원 , #마고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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