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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조제는 수시로 알토와 소프라노에게 너희는 누구냐고 물었다. 때로 조제가 윽박도 질러봤지만 그들은 두 개의 머리를 이리저리 내저으며 '서로 다른 꿈의 합체', '영혼의 안내자' 하며 까르르 웃기만 했다. 그럴 때면 고양이도 '오옹'하며 달려 오더니 '빛과 그림자', '동전의 앞과 뒤' 같은 못 알아들을 말만 해댔다. 나보다 먼저 지친 조제는 인형웨이터에게 심통을 부리며 화를 냈다.


우리가 관광을 하는 낮 동안에 그들은 방 안에서 저희끼리 놀거나 도시 여기저기를 쏘다녔다. 그리곤 저녁이면 낮 동안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느라 잠도 못 자게 떠들어댔다. 배낭에 짊어지고 다니지 않아서 좋긴 했지만 한편으론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건가도 싶었다.


시인과 나와 조제는 피아졸라가 주로 활동한 콜론 극장도 방문했다. 그곳은 그 자체로 하나의 관광지였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스칼라,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과 함께 세계 3대 극장의 하나로 꼽히는 극장인 콜론은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라 했다. 스테인드글라스로 된 천정창에 빛이 쏟아들어올 때의 찬란한 아름다움과 입석을 합하면 3000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객석은 입이 벌어지게 만들었다. 내벽을 가득 채운 판화, 수 백개의 샹들리에는 낡은 외관과 다르게 엄창난 위용을 자랑했다.

 

더구나 콜론 극장은 세계적 수준의 공연만 올린다는 거였다. 그러니 이곳에서 공연하는 것 만으로도 그 음악가에겐 너무나 큰 영광인 것이다. 예로부터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유럽인들의 겨울 휴양지다 보니 겨울이 되면 북반구에서  몰려온 음악가들이 수시로 연주회를 했는데, 장소는 주로 이 콜론 극장에서 였다 한다. 피아졸라 역시 이곳에서 그런 음악가들의 클래식 음악을 들었고, 이 경험들은 그의 탱고 관점을 변모시키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후에 그가 현대적으로 변신시킨 탱고는 콜론 극장에서 연주되었으니 이곳이야 말로 피아졸라와 함께 탱고의 역사를 만들어간 곳이라 할 만했다.

 

"피아졸라의 반도네온 연주는 바다의 파도 소리를 몰고와요. 쏴악 쏴악 파도가 밀려오다가 어느 틈에 아련하게 먼 수평선 너머로 사라져버려요. 그리움이 목까지 차오르는 그런, 그런 기분이죠. 그의 고향이 부에노스아이레스 남쪽 바닷가 도시, 마르 델 플라타여서 그런 감성이 묻어나는 음악을 만들었는지도 모르죠. 그는 아버지를 따라 뉴욕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긴 했지만 그의 내면에 자라잡은 바다와 아르헨티나의 기운은 그 음악에 평생 영향을 끼쳤다는 걸 느낄 수 있어요."


하고 시인은 감성이 듬뿍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뉴욕에서 그는 처음 '반도네온'을 손에 잡았어요. 그리고 일전에 얘기한 가르델의 통역 겸 반주를 맡은 영특한 꼬마였죠. 함께 공연을 다니기도 했고요. 두 사람에게 얽힌 한 가지 특이한 일화도 있어요. 가르델이 카리브 해 순회 공연을 하러 가던 중에 비행기 사고로 죽었다고 일전에 얘기했었죠? 하마터면 피아졸라도 그 사고로 목숨을 잃을 뻔했지요. 원래는 가르델이 어린 피아졸라도 데려가려고 했었는데 피아졸라의 아버지가 반대해서 피아졸라는 가지 못했대요. 그 덕에 피아졸라는 비행기 사고를 모면할 수 있었다고 해요. "


"이야! 진짜 운 좋은 사람이군요. 세상에는 꼭 그런 사람들이 있더라니깐. 나야 뭐, 만날 지지리 운도 없고 복도 없고, 그렇고 그런 인생이지만. 하여간 신이 선택한 사람들은 따로 있는 것 같다니까요."


조제는 들뜬 소리로 외쳤다.


"성인이 된 피아졸라는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와 반도네온 연주자로 크게 주목받았어요. 그리고 새로운 탱고 음악을 만들어내려고 무척 노력했죠. 하지만 그의 시도는 번번히 외면당했어요. 연주 도중에 무대에서 끌려내려오기도 하면서 너무 푸대접을 받았죠. 크게 상심한 피아졸라는 탱고를 접고 한때는 클래식에 전념하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파리에서 음악을 공부하면서 자신이 진짜 해야 할 음악의 방향을 깨닫게 되죠. 그건 격식 갖춘 음악이 아니라 클럽에서 '생활 속의 대중과 어울리고 호흡하는 그런 음악'이 정말 자신이 가야할 길이란 걸 알게 된 거죠."


"그러니까 결국...자신이 누군지 깨달은 거군요."


나는 시인의 눈을 보며 조용히 물었다.


"그래요. 그렇게 자아를 깨닫고 자신이 정말 가야할 길이 무엇인지 파악한 사람에겐 망설임이란 게 없어지는 법이죠. 그렇게 피아졸라는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어요. '누에보 탱고'라고 이름 붙인  새로운 탱고가 그렇게 탄생하게 된 거구요. 그리고 그는 세계적인 반도네온 연주자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죠."


"그럼 아르헨티나에서도 국민 영웅 대접을 받았겠네요?" 하고 내가 말하자 시인은,
"아뇨. 외국에서의 환대와는 다르게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여전히 그의 음악을 인정하지 않았어요.  모든 것이 변하고 바뀌더라도 탱고만은 절대로 안 된다는 고집이 이 나라 사람들에겐 있었던 거죠. 그만큼 그들의 일상에 탱고는 깊숙히 들어와 있는 것이고,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신성한 것이었으니까요. "


그러자 나는 대뜸,


"전통을 지키려는 것과 현대와의 접목에선 언제나 반발과 찬성이 있기 마련인데, 탱고도 역시 그런 과정이 있었군요. 그런데 전 사실 피아졸라의 누에보 탱고 형식이 훨씬 마음에 쏙 와 닿았어요. 뭔가 박진감이 넘치고 스릴도 있고, 세련되면서도 반도네온 특유의 서정성을 잃지 않는 느낌이 참 좋았어요. 뭐랄까? 그가 연주하는 반도네온 소리에는 저녁 어스름 무렵에 밀짚 태우는 향이 막 나는 것 같았어요. 아, 물론 아주 주관적인 감정이고, 그건 제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지만 그렇게 상상으로도 새로운 세계로 누군가를 이끌 수 있다면 그 음악은 충분히 성공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러자 시인은 모든 예술의 근본 과제는 향유자가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세계로 그를 자연스럽게 끌어들여서, 새로운 세계에 대한 경외감이나 삶에 대한 거시적인 시각을 갖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결과로 그 한 사람의 영혼을 흔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고 했다. 하지만 피아졸라의 발자취를 아르헨티나에선 뚜렷하게 찾아보는 게 조금 힘들다는 것이다. 그의 태생은 아르헨티나지만 외국에서 더 많이 생활한 탓도 무시할 수 없단 것이다.

 

"그의 고향인 마르 델 플라타에 그의 이름을 딴 아스토르 피아졸라 국제공항이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을 뿐이죠. 그가 그렇게 사랑한 아르헨티나와 탱고는 서로가 사랑을 하긴 했지만 만날 때마다 싸움으로만 일관한 사이였다고 해두죠. "


"그 미움도 역시 사랑의 일종인 거겠죠? 흐흐, 우리가 아는 어떤 남녀의 이야기랑 조금 비슷한 것 같아서 조금 남다르게 느껴지네요."


하며 나는 조제 쪽으로 돌아보며 찡끗했다. 하지만 조제는 뚱한 표정으로 '뭔 소리야?' 하는 듯이 쳐다봤다. 어느새 극장 안에는 이미 많은 관광객들이 모였고, 곧이어 시작된 연주가 장중한 울림으로 극장 안을 가득 메웠다.

 

<계속>


태그:#탱고, #장르문학, #판타지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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