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12m의 추자교 다리를 걷고 있는데 슬슬 다리가 아파왔다. 3-4분 정도면 걸을 수 있는 다리지만, 바다 위에 떠 있는 염섬과 예도, 추포도를 바라 보며 너스레를 떨다보니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추자교 위에 서 있으니 마치 배를 탄 기분이다.

 

상추자도와 하추자도를 연결하는 추자교는 다리를 걷는 사람들보다 차량들이 더 많다. 추자도올레 18-1는 17.7km, 야생화의 유혹에 빠져도 보고, 뜨끈한 몽돌에 앉아도 보고, 땀 흘리며 산을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니, 쉼터가 그리워졌다. 이쯤해서 만난 영흥리 쉼터는 안방처럼 포근하다. 운동화 끈을 풀고 잔디밭에 앉으니 돈대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쉼터에서의 5분 휴식, 그리고 그 달콤함, 재충전은 길을 걷는 사람에게 비타민이라고나 할까. 이 때문에 영흥리 조그만 포구까지는 단숨에 걸을 수 있었다. 작은 포구는 밤바다를 누빌 어부들의 아지트다. 잔잔한 파도, 어선들의 흔들거림, 비린내 나는 바람, 여느 포구처럼 영흥리 포구도 그러하다. 하지만 특별함이 있다면 포구에서 산, 바다, 섬을 한눈에 조망할수 있다는 것이다. 

 

포구 방파제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어부들의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자세히 보니, 소금에 절인 꽁치를 잘라서 밑밥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물의 낚시에 꽁치를 꿰는 어부들은 방파제에 나타난 올레꾼들을 보며 말문을 열었다. '어데서 옵디까?'라는 인사를 시작으로, 한적한 방파제는 어부들과 올레꾼들과의 대화로 무르익어갔다. 

 

 

 

'사람도 먹지 못하는 꽁치를 밑밥으로 사용하는군요?'라며 묻자, '꽁치는 우럭들이 좋아하는 먹이'라고 말한다. '요즘 시장에 가면 생선 값이 장난이 아닌데, 꽁치로 밑밥을 만들다니'라며 화답했다. 물론 추자도 사람들이 꽁치를 생선 취급이나 하겠는가? 비린내 나는 꽁치를 어루만지며 출어 준비로 부산했다.

 

처음 출발지점인 추자항을 가슴에 안고 해안도로를 걸으려니 어스름한 저녁시간이다. 어스름한 시간에 걷는 올레길, 그것도 섬길 올레는 조금은 우울하고 조금은 고독하다. 이즈음 상추자도 추자항 주변에는 하나, 둘 불빛이 밝혀졌다. 파랗던 바다가 어느덧 거무스레해져 가더니 추자바다는 등불을 켠 것 같았다. 항구를 주변으로 보건소와 면사무소, 우체국, 파출소 등이 어스름한 어둠에 잠겼다.

 

5월 15일 아침 6시, 숙소에서 창문을 열었다. 50m 전방에 추자도 바다가 둥둥 떠 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서 창문을 열면 보이는 바다, 난 그런 집을 얼마나 그리워했던가. 아마 그래서 섬을 더욱 그리워했는지도 모르겠다.

 

추자항 바로 앞에서 먹는 아침 해장국과 등대산공원에서 마시는 커피가 꿀맛이다. 아침 9시, 추자도 공용버스가 올레꾼들을 기다렸다. 도심의 일반 공용버스나 다름이 없는 추자섬의 공용버스지만, 이 버스는 전날 우리가 걸었던 구석구석의 추자도 올레길을 달렸다. 하지만 전날, 비린내가 풍기며 그물에 꽁치를 꿰던 영흥리 포구 사람들은 어디 갔을까? 영흥리포구는 빈 배만 흔들거릴 뿐 아주 조용하다.

 

아침 10시 30분, 신양항에 도착한 카페리호에 승선했다. 낚시꾼들과 올레꾼들을 실은 노곤한 카페리호 의자에서는 비린 냄새가 났다. 영흥리포구에서 맡았던 꽁치냄새, 추자항에서 말리는 추자도 굴비 냄새, 그리고 추자도 멸치젓갈 냄새가 코에 스며들었다. 그 냄새가 바로 추자도라는 섬 냄새가 아닌가 싶었다.               


태그:#추자도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