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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아내가 사고를 쳤다. 커피 애호가인 아내는 거금(?)을 들여 보이차와 다기세트 일체를 사 들고 왔다.

 

"저게다 뭐여?"

"응 보이차가 건강에 좋다고 해서 ….

"우리 나이도 사십대쟎아, 이제 커피 좀 줄여보려고"

"인터넷 검색해보니 보이차가 우리 몸에 엄청좋데"

 

아내의 말에 갑자기 현기증이 났다. 얼마 전에는 모임하는 계원이 가게를 개업했다고 아는 처지에 그냥 넘어 갈 수 없다며 녹차잔 풀세트를 구입해 오지 않았던가. "이 여편네가 미쳤나?" 라는 소리가 머리에서 목구멍까지 넘어오다 걸렸다.

 

보이차에 대한 사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아내가 사고를 쳤지만 보이차를 즐겨 마시다 보니 우리 가족은 대화의 시간이 점점 많아졌다. 차를 한번 타면 온 가족이 보리차처럼 계속 마실 수 있기에 우리 가족은 점점 보이차 애호가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만하면 사고치고는 개안한(괜챦다의 전라도 사투리) 사고일듯 싶다.

 

물을 좋아하는 나, 찻집에 가기가 왠지 걸쩍지근하다. 차 한잔 시켜놓으면 양이 적어 차를 아껴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얘기로 말이 길어지면 사실 차 한잔으론 너무 작고 간지럽다. 그래서 꼭 엽차 리필을 요구한다. 하지만 엽차를 리필해 달라고 하는 것도 두어번을 넘으면 뚝이다. 물을 리필해 주고 돌아서는 주인의 모습이 마치 나에게 물 먹으로 왔냐고 하는 것 같다. 도둑이 제발 저리는 격이다.

 

딱 잘라 말해 찻집 가면 차가 무한리필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꼬. 그것도 엽차가 아닌 처음 시킨 본(本)차를 말이다. 어디 그런 곳 없을까?

 

소문을 듣고 찾아간 곳은 여수시 화장동에 위치한 찻집이다. 고인돌 공원에서 안쪽으로 20~30m 들어가다 보면 10여평 남짓에 방과 홀이 한개씩인 자그마한 '보이차 전문점 다향'이 나온다. 해변이 확트인 수려한 전망은 없어도 은은한 분위기에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기에는 딱 안성맞춤이다. 이곳에서 보이차를 시키면 진짜로 무한리필이 된다. 딱 내가 찾던 스타일이다. 차 한잔 시키면 수십잔을 배불리 먹어도 눈치가 보이지 않는 곳 말이다.

요즘 유행하는 시크릿이 부르는 샤이보이 (Shy Boy)의 노래 '잘생기지 않아도 마음이 따뜻한 그런남자, 완벽하지 않아도 나만을 아껴줄 그런 남자' 뭐 이런 노래같은 그런 찻집이다.

 

"우리 집은 손님이 가실 때까지 무한리필입니다. 보이차는 숙차와 생차가 맛이 다르잖아요, 숙차 드신 분은 생차 맛도 보여드리고 오래 계신 분은 다른 맛도 보여 드려요."

 

주인 주현옥씨의 말이다. 차(茶)문화 경영학과를 다니는 지인의 소개로 보이차 전문점을 한 지 이제 딱 1년이 넘었다. 이들 부부는 차 마니아들이다. 아내는 차(茶)전문점, 남편은 차(車)전문점을 한단다. 둘 다 차 전문점을 하다 보니 차(茶)에 대한 에피소드가 많다. 어느 날 남편은 아내 가게 오픈 소식을 전하기 위해 친한 친구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일웅아 모월모일 우리각시가 보이차 전문점을 개업한다 꼭 와라 잉~~"

 

이후 그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사실 보이차를 전혀 몰랐던 일웅씨 보이차가 무슨 차인지 내심 궁금해 이렇게 물었다.

 

"학수야 제수씨가 뭔 차를 한다고?"

"야, 인마 나는 자동차 정비를 하고 우리 각시는 차 폰다고 인마"

 

"차, 무슨 차?"

"중국 황제들만 타는 3000cc세단 말이여"

 

"우~아 그렇게 좋은 게 있냐, 야 나 시승 한번 할 수 있지?

"제수씨한테 시승 한번 할 수 있게 얘기 좀 잘해주라"

 

"알았어, 개업 때 보자"

 

이후 개업식 날 친구가 왔다. 그런데 3000cc 세단이 진열되어 있어야 할 매장에는 한지에 둥그렇게 쌓인 보이차만 보이더란다. 친구가 물었다.

 

"황제들이 타는 세단은?

"저게 바로 3000cc 세단, 보이차란 거다 인마(웃음)"

 

세계 3대 명차는 스리랑카의 우바, 아르헨티나 마테차, 인도의 툴시차를 꼽는다. 흔히 한국을 대표하는 차(茶)가 녹차이듯 보이차는 중국을 대표하는 8대 명차 중 하나다.

 

중국은 기름진 음식과 황사로 인해 예부터 차문화가 발달했다. 광활한 땅 때문에 운반과정 중에 차가 발효된다는 사실을 알게다는데 이를 연구를 해보니 이로운 성분이 매우 많아 아무리 마셔도 부작용이 없어 차로 유래되었단다.

 

보이차는 중국남부의 운남성 등지에서 대엽종 찻잎으로 생산되는 토속 명차에 속한다. 이곳은 3천년 전부터 차를 생산해 차의 고향이라고 불린다. 보이차는 오래 묵힐수록 그 향과 맛(向味)을 더욱 느낄 수 있다. 그 이유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찻속에 함유되어 있는 여러 효소 성분들, 특히 폴리페놀 중심으로 자연발효 되어 차색이 변하는 동시에 색다른 맛과 향이 우러나기 때문이다.

 

일명 '감비차(減肥茶)'로도 알려진 보이차를 즐겨 마시면 혈압을 내리고 지방을 감소시켜 동맥경화를 막는다. 또한 풍부한 폴리페놀류의 성분으로 항암예방과 카테진에 포함된 EGCG와 EGC의 함량이 높아 노화방지 효과가 탁월하다. 특히 입 냄새가 많은 사람이 하루 4번만 마시면 치아에 기생하는 세균을 살균하여 구강 냄새를 없애주는 효능이 뛰어나다.

 

또한 보이차는 크게 생차(生茶)와 숙차(熟茶)로 나뉜다. 우리나라에서 주로 음용하는 차는 숙차다. 생차는 잎을 딴 후 일광건조하고 비비는 과정을 거쳐 증기를 쏘인 후 긴 시간을 둔다. 이후 숙성한 차로 자연방식으로 발효시킨다. 발효기간이 짧은 생차는 차의 성질이 비교적 자극적이지만 자주 마시면 개운한 뒷맛을 남긴다. 20년 정도 발효된 차는 시가로 50~100만원(375g기준)을 호가 한다.

 

팁으로 보이차를 마실 때는 첫 물은 버리고 두번재 물부터 마신다. 그 이유는 보이차는 더운 성품을 가지고 있어 첫 차는 더운 기운을 깨우기도 하지만 발효 과정에서 생기는 잡냄새를 없애주기 때문이다.

 

잔잔히 흐르는 음악과 보이차 향이 감미롭다. 질감좋은 보이차를 배불리 마셨더니 마치 보약을 한 첩 먹고 난 기분이다. 머지않아 보이차에 푹 빠질 것만 같다.

덧붙이는 글 | 전라도 뉴스와 제 블러그 <남도맛집, 그래 바로 이 맛이야!>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보이차, #다향, #무한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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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 말해도 좋다. 단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라!" 어릴적 몰래 본 형님의 일기장, 늘 그맘 변치않고 살렵니다. <3월 뉴스게릴라상> <아버지 우수상> <2012 총선.대선 특별취재팀> <찜!e시민기자> <2월 22일상> <세월호 보도 - 6.4지방선거 보도 특별상> 거북선 보도 <특종상> 명예의 전당 으뜸상 ☞「납북어부의 아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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