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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안에서 기함을 하다!

 

케냐 나이로비에서 탄자니아의 다르에살람으로 가는 버스 안에 올라 선 순간, 기함을 할 뻔했다. 이유인 즉슨, 버스 좌석 사이의 복도에 빈틈없이 일렬로 늘어선 사람들 머리 때문이었다.

 

처음엔 일어선 내 시야에 내려다보이는 저 줄이 무언가 했더니 버스 좌석 사이 복도에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사람들 머리의 정렬이었다. 다들 버스 좌석뿐만 아니라 그 복도에 엉덩이만 걸칠 수 있는 작은 의자나 박스 등을 깔고 모두 앉아있는 것이었다!

 

싼 게 비지떡이라더니, 우리 돈 6500원 아껴보겠다고 몇 푼 차이로 제일 싼 티켓을 산 것이 화근이었다. '버스회사에 좀 더 세부적으로 물어봤어야 했는데…'라는 후회를 해보지만 이미 늦었다.

 

역시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기본적인 소비량을 믿었어야 했다. 그래도 나름 버스회사들이 밀집되어 있는 거리의 모든 티켓 판매처를 일일히 답사하고, 나름 똑똑하게 조사한답시고 버스는 얼마만한 규모인지,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요금 차이는 얼마나 나는지, 국경을 넘는 곳에선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확인을 했건만. 내 눈 앞의 광경은, 내가 한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광경이었다. 더구나 밤 8시에 온다던 버스는 새벽 1시가 다 되어서야 도착을 했다.

 

창문 위 쪽으로 붙어있는 좌석번호를 보아하니, 내 자리는 뒤쪽인 모양이었다. "Excuse me"(실례합니다)를 연발하며 뒤로 가려고 시도했다. 사람들을 밟고 지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일일히 좀 비켜달라해야 하는 상황인데 모두들 나에게 주목되는 시선들이 시베리아의 바람보다 차가운 듯 온기라고는 없는 눈빛이었다.

 

말도 붙이기 어렵게 쳐다보는 그 눈빛들은, "또 한 명 들어온거야? 쟤가 뒤로 간다고 하면 앉아있는 사람들 다 일어나야 할 판이구만~!"의 표정이었다.

 

난관이었다. 통로에 앉아있는 그들을 밟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 조금 지나가도록 비켜주면 좋으련만 앉아있는 자기의 아이들에게조차도 "좀 비켜드려"라는 지시는 기대할 수도 없을 뿐더러 앉아있던 성인들도 흘끗 쳐다볼 뿐 냉담한 눈빛으로 고개를 돌려버리는 것이었다.

 

 

아, 아! 난 정녕 그 차가운 눈빛에 상처 받았다

 

에티오피아의 그 금방이라도 털썩 주저앉을 것만 같던 버스도 이 지경은 아니었다. 3인 좌석에 4인이 껴안았지만 통로는 통로대로 남겨놓았었단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가까스로 찾은 내 좌석엔 이미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티켓의 좌석번호를 다시 한번 확인한 나는 그녀에게 얘기했다.

 

"죄송한데요, 이 자리는 제 자리인 것 같은데 혹시 몇 번이신가요?"

 

그녀는 나를 흘낏 보더니 아무 대꾸도 않은 채, 다시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바라보았다. 설령 그녀가 영어를 못한다 하더라도, 상대가 티켓을 들이밀며 무언가를 얘기하는 것을 보아선 충분히 어떤 말을 하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을 터였다. 쳐다보고 있는 옆 사람에게 무슨 말인가 붙여보려 했지만 영어로 대화는 불가능해보였다.

 

그야말로 내 말은 들은 듯 만 듯 무시하고 마는 그 여인 때문에 더 이상 거기서 혼자 말하는 것은 남들에게 민페를 끼치는 일이어서 난 다시 차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기다리며 안면을 익힌, 짐칸을 정렬하고 있는 직원에게 물었다.

 

"이 좌석엔 이미 앉은 사람이 있는데, 무슨 착오가 있는 것 아닌가요? "

 

버스 티켓을 판 여러 지점에서 한 좌석번호를 여러 명에게 판 것이 아닐까 하는 다소 의혹을 품은 질문이었다.

 

"그럴 일은 없어요. 이 표는 뒤 쪽인 것 같은데? "

"아, 근데요. 좌석에만 사람이 앉는 것이 아니고, 원래 통로에도 사람이 꽉 차게 앉아가나요? 탄자니아까지?"

"뭐 그래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어쩔 수가 없어요."

"그래도 그런 건 좀 미리 알려주고 그랬어야 하는 것 아녜요? 표 끊기 전에 이것저것 많이 물어봤었는데. 타사는 안 그렇잖아요."

 

 

이것 때문에 400ksh(케냐실링)이 더 쌌던 거였나? 라는 생각과 함께 억울함이 밀려왔다.

 

"실은 버스가 빅토리아 호수쪽을 먼저 갔다가 돌아와서 그래요. 그쪽에서 바로 탄자니아로 넘어가는 것이 거리상으로는 훨씬 가깝긴 하지만 도로 사정이 아주 안 좋아요. 그래서 버스가 그쪽에서 사람을 태운 다음에 나이로비를 거쳐 다시 넘어가는 바람에 보다시피 버스가 만원인 거죠."

 

빅토리아 호는 아프리카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로 물이 맑고 호수 안에 섬도 많아 아름다운 곳이다. 탄자니아와 우간다, 케냐와 접해있는데 케냐의 빅토리아 호 쪽에서 탄자니아로 바로 접근하면 거리상으로는 짧으나 도로가 너무 안 좋아서 돌아간다는 얘기였다.

 

그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더니 표를 들고 앞장을 섰다. 통로에 앉아있던 그 사람들은 다시 한 번 일어나야했다. 직원이 좌석 앞에 서는 순간, 모든 버스 안의 사람들의 시선은 우리에게 고정되고 있었다.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스와힐리어가 빠르게 오갔고, 앉아 있던 여인이 큰 제스처와 함께 대꾸를 한다. 보아하니, 여자도 무언가 불만이 있는 모양이었다. 남자가 다시 한번 뭐라뭐라 대꾸하며 손짓을 한다.

 

그들 언쟁의 결과는?

 

여자는 내 옆 좌석에 앉게 되었다. 그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은 다른 자리로 가고, 그 다른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은 통로바닥에 앉고. 나때문에 누군가 바닥에 앉게 되었다는 뜻모를 죄책감도 그런데, 그렇게 나를 차갑게 보던 그녀가 내 옆자리에 앉다니. 절로 한숨이 나온다. 현지 도로사정을 생각하고, 하필 그 구역에 사는 그들을 생각하면 그들도 얼마나 답답하고 자리를 얻지못해 억울할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일 오후까지 이대로 함께 할 버스의 여정을 생각하니 탄자니아가 날 반기는 것이 보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지난 2009년 8월부터 2010년 1월까지의 총6개월의 여정을 바탕으로 기고합니다. 외래어의 경우, 소리나는 대로 발음 표기하였습니다.


태그:#케냐에서 탄자니아 가기, #케냐에서 탄자니아 가는 버스, #아프리카 여행, #아프리카 종단, #빅토리아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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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를 담은 사진에세이 [same same but Different]의 저자 박설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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