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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재주가 있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 공동체는 모든 사람의 재주가 사장되지 않고 온전히 발휘될 때 그 공동체는 가장 부유하고 풍요롭다. 그런데 우리는 국·영·수 성적으로 줄 세워서 상위 20%에게는 프라이드와 만족을 줄지 몰라도 나머지 사람에게는 한없이 상처와 주눅을 내면화시키는 공부체계를 갖고 있다."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서울본부 주최로 열린 '학생인권 시민연속특강' 첫 번째 강연자로 나선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의 지적이다.

14일 서대문구청 강당에서 열린 이날 강연에서 곽 교육감은 "공부에 대한 생각, 교육에 대한 생각, 인재에 대한 생각이 바뀌기 전에는 공교육체제가 바뀌지 않는다"는 조벽 교수의 말을 인용하며 "다중지능의 시대를 맞아 '공부한다는 것'의 개념이 바뀌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서대문구청 강당은 300석의 좌석이 모자랄 정도로 학부모들과 학생 그리고 교육단체 관계자들로 성황을 이루었다. 강당입구에서는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를 위한 서명운동이 진행되었다.

"굼벵이는 구르기의 명인...모두가 인재되는 교육 만들어야"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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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피사(PISA)라고 불리는 국제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세계 1등을 했다. 놀라운 성과다. 이러한 위대한 성과를 거두는 데는 누구보다 우리 아이들이 고생을 했다. 학부모들이 무한 희생을 했다. 선생님들이 장시간 가르치는 노동에 종사했다. 그런데 아무도 행복하지 않다. 아무도 만족하지 못한다. 이제는 안 되겠다고 입을 모인다. 그 핵심에 우리가 평가해야 할, 부추겨야 할 공부가 어떤 공부여야 하는지에 대한 개념이 바뀌어야 한다. 창의력과 민주시민의 덕성이 바로 그것이다."

곽 교육감은 이러한 "대전환"을 이루기 위해서는 공부에 대한 개념도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영·수 등의 공부는 학교에서, 교실에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공부지만 문화예술교육, 민주시민교육과 같은 것들은 학교 안에서만 이루어질 수 없다"며 "교육은 이제 더 이상 학교 울타리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학교 밖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곽 교육감은 이를 위해 '5관'과 '5실'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체육관, 공연관. 지역사회의 5관이 우리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활짝 열려야 한다. 그 5관의 활짝 열림을 위해 자치구와 시와 우리 교육청이 긴밀하게 협력할 거다. 전문가들의 5실도 필요하다. 작업실, 연습실, 실험실, 연구실, 상담실 등 개인전문가가 자신의 5실을 아이들을 위해 열어 학교 밖 학교, 교실 밖 교실로 활용해 교육은 학교에서만 이루어진다는 지금까지의 통념을 극복해야 한다."

곽 교육감은 이어 "굼벵이는 구르기의 명인이다. 투박한 사람은 투박한 그 덕성 때문에, 바지런한 사람은 그 바지런함 때문에 인재가 될 수 있다"며 '인재상'의 변화를 이야기했다. 그는 "지금까지는 국·영·수 잘하는 사람, 정답풀이 잘 하는 사람이 인재로 여겨졌다면 이제는 협동할 줄 아는 사람, 소통할 줄 아는 사람, 배려할 줄 아는 사람, 자기 주도력이 있는 사람, 창의력이 있는 사람들이 인재로 대접받는 시대가 왔다"며 "이런 인재상에 따르면 누구나 인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곽 교육감은 이러한 변화들을 통해 아이들이 '배우는 즐거움'을 알게 되기를 기대했다. 그는 "평생 새로운 걸 배울 수밖에 없는 시대를 살고 있는데 배우는 것을 두려워하고 귀찮아하고 재미없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정말 큰일이다. 일부 소수만이 배움의 즐거움을 안다면 그 사회는 가장 큰 격차사회가 될 것"이라며 "배움의 즐거움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열려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를 위해 "누구나 1인 1예 1체 교육을 하는 문예체 교육을 통해 아이들에게 몰입과 발산의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학생인권 인정하자는 건 우리 아이들이 지금까지 사람대접 못 받았다는 것"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2010년 7월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대강당에서 취임식을 마친 뒤 '교육감과 함께 하는 깨소금 토크쇼'라는 2부 행사에서 두두리카와 함께 악기 '젬베'를 두드리며 멋진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2010년 7월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대강당에서 취임식을 마친 뒤 '교육감과 함께 하는 깨소금 토크쇼'라는 2부 행사에서 두두리카와 함께 악기 '젬베'를 두드리며 멋진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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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이 열린 이날은 학교 내 직접체벌 금지 등의 내용을 담은 초·중·등 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통과된 날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곽 교육감은 "그동안 초·중·등 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불가피한 경우에는 체벌을 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번 개정안 통과를 통해 학생들이 체벌로부터의 자유를 국제인권조약이 아닌 국내법령의 이름으로 획득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곽 교육감은 학생인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학생인권은 창피한 이야기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우리 아이들에게 인권을 이야기하다니요. 인권이라는 건 사람 대접 못 받는, 사람 아닌 사람이 '나도 사람'이라고 부르짖을 때 쓰는 용어다. 그걸 우리 자식한테 이야기한다는 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이제는 인권을 인정하자'는 건 우리 아이들이 지금까지 사람대접을 못 받았다는 걸 전제로 하는 거다.

곽 교육감은 "그런데 아이들 사람대접 하자고 하는 게 그렇게 걱정이 되나"라며 말을 이어갔다.

"인권이라는 게 별 거 아니다. 모든 사람이 '사람'이 되려면 자유가 있어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남의 지배를 받는 사람에게, 차별받고 상처받는 아이에게 어떻게 인간성이 꽃 피길 기대할 수 있나. 우리가 인권을 보장해줘야 하는 이유는 그 권리가 주는 자유 안에서 아이들이 인간성을 키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강연에 이어진 질의응답에서는 '학생인권의 현주소'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중앙고등학교 총학생회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남학생은 "학생인권이 강화되려면 학생회의 권한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보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며 "저희 학교의 경우 축제가 원래는 이틀에 걸쳐 진행됐는데 하루로 줄여졌고, 축제기간을 줄이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의견이 전혀 수렴되지 않았고 개학식날 일정표를 보고 알았다"고 말했다.

그러자 옆자리에 앉아있던 이 학교 부학생 회장은 "총학생회가 학교 운영, 학교생활규정, 수학여행 일정 등에 대해 미리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발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한다"고 건의했다.

이에 곽 교육감은 "학생생활과 관련된 사안이 학교운영위원회에서 다뤄질 때 학생회 대표들의 참석 및 의견개진권을 보장하는 것은 학생들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라며 "오늘 통과된 시행령에도 학생들의 학교운영위원회 참관권과 발언권이 보장되어 있다"고 답했다.

또한 "학생들의 자치역량을 키워주는 것은 민주시민교육의 가장 큰 수단"이라며 "학생회 활성화, 학급회의 실질화 없이는 학교를 민주주의와 인권의 체험학습장으로 만들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곽 교육감 싫어한다"  학부모 발언에 "소수 학생 위한다는 건 오해"

곽 교육감의 강연에 '이의'를 제기하는 참가자도 있었다. "곽 교육감을 싫어한다"고 밝힌 한 학부모는 "저는 체벌을 찬성한다. 저희 아이는 안 맞는데 그 옆에서 시끄럽게 하는 소수의 아이들 때문에 저희 아이같이 평범한 다수의 아이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며 "그 다수 아이들의 인권은 어떻게 할 거냐"라고 따져 물었다.

이 학부모는 또한 "여기 계신 대부분의 분들의 아이들이 평범한 아이들일 거라고 본다"며 "이 아이들은 장애아가 아니기 때문에, 가난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 같은 평범한 학부모들은 이런 꿈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보다 실질적인 이야기를 원한다"고 쏘아 붙였다. 그러자 또 다른 학부모가 "지금 신세 한탄하러 온 거냐"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이에 곽 교육감은 "평범한 아이, 사고 안 치는 아이들이 다수고 그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 건 당연하다"면서도 "학생인권을 소수의 학생들을 위한 것이고 보는 것은 오해가 있으신 것 같다"고 답했다.

한편, '학생인권 시민연속특강'은 곽 교육감의 강연을 시작으로 16일에는 이범희 용인 흥덕고 교장, 22일에는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 23일에는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 31일에는 백창우 시인의 강연이 이어질 예정이다.


태그:#곽노현, #곽노현 교육감, #학생인권 시민연속특강, #학생인권, #학생인권조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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